원인을 찾아라.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의사가 먼저 한자의 병을 진단하여 그 원인을 알아서 처방약을 쓰는 것처럼 문제의 시발점에서부터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시정(是正)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반드시 그것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 있고, 또 그 원인이 새로운 결과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불교의 모든 교리에 통용되는 기본 교리인 인과법(因果法)이다. 인과법은 자연 과학의 법칙으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이법(理法)이다. 인과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믿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한다. 인과를 무시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하서 책임을 회피하고 막행막식(莫行莫識)하고,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는 사람을 사견(邪見)을 가진 자라 하여 불교에서는 가장 경계한다. 사견을 가진 사람은 올바른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구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 몸에 병든 사람, 공부를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 등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이런 사람의 공통점은 인과법을 믿지 않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점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도 성적이 부진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서 노력해야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지, 선생님이나 부모가 야단을 치고, 들볶는다고 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기초가 부진한 경우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노력해도 별 성과가 없다. 기본 원리를 잘 이해하면 어려운 과제도 풀 수 있는 것이다.
인과의 법칙을 확실히 알고 노력하여 실천하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공부를 잘 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될 수 있고, 몸이 허약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좋은 원인은 좋은 결과를 만든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나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은 인과의 법칙을 설명한 말이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아나듯이 자연 현상계의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業)에 의한 결과도 선한 행위[善因]에는 선한 결과[善果] 나쁜 행위[惡果]에는 악한 결과[惡果]가 따른다. 불교사상에 있어서는 인과는 업인업과(業因業果)를 의미한다.
《광명동자인연경》에 보면 ‘중생이 지은 행위[業]는 백 겁(百劫)을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여 때가 되어 인연이 결합되면 반드시 과보를 스스로 받아야 하느니 라,’는 말씀이 있다. 인간의 인과업보(仁果業報)는 시간과 장소의 차이는 있을지도 인연이 성숙되는 때는 어디서나 그 결과가 맺어지는 것이다. 선악의 원인과 결과는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 되고, 현재의 결과는 미래의 원인이 된다. 이렇듯이 삼세(三世)를 통해 인과가 연속된다.
자신의 해위에 대한 결과[業報]를 즉시로 받게 되는 것을 순현보(順現報)라 하고 즉시 받지 않고 그 다음 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하고, 받기는 받되 다음 내생(來生)이 일정하지 않는 것을 순후보(순후보)라고 한다. 《비내야잡사》에서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 받고 있는 행복과 불행이 스스로가 지은 자신의 행위(業)에 의해서 결정됨을 설하셨다. 전생(前生)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今生)에 받는 것 그대로니라. 내생(來生)의 화복(禍福)를 알고자 하는가? 금생(今生)에 선행을 닦는 것 그대로니라. 인과의 업력(業力)은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개척되고 운명 지어진다. 어느 누구도 노력하지 않고서 성공 할 수 없고, 고구마 밭에서 인삼을 캘 수는 없다. 중국 당(唐) 나라대 백장(百丈)이란 스님은 최초로 선문(禪門)의 수행 규식(規式)을 제정한 《백장청규》로 유명한 분이다. 이 분의 ‘백장야호(百丈野狐)’의 화두(話頭) 즉 ‘인과(因果)에 불락불매(不落不昧)한 이야기’가 《종욕록 《종용록(從容錄)》에 있다.
백장 선사가 설법을 할 때마다 한 노인이 기어 있었는데, 하루는 설법을 듣고 가지 않음에 백장 선사가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자 노인은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전생(前生) 가섭불(迦葉佛) 대 백장산(百丈山)에서 수행하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젊은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인과의 지배를 받습니까?)’라고 묻는 말에 불락인과(不落因果)나라(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즉, 인과법의 지배를 안 받는다’ 하고 잘못 가르쳐준 벌로 그 뒤 오백 생(五百生) 동안 여우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라건대 큰 스님께서 일러 주셔서 여우의 탈을 벗겨 주옵소서.” 그리고는 노인은 다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깨달음을 얻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백장 선사는 ‘불매인과(不昧因果)니라(인과에 어둡지 않다. 따라서 인과 분명하다. 인과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하고 대답하는 순간 노인은 크게 깨달아 여우의 탈에서 벗어났다.
깨달음을 얻은 성이도 벗어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진리가 바로 인과(因果)의 법이다. 《법구경》에 선악에 대한 인과의 과보가 받는 시기에 차이만 있을 뿐 틀림없음을 노래한 게송(偈頌)이 있다.
악의 열배가 맺기 전에는 악한자도 복을 만난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었을 때는 악한 자는 재앙을 입는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는 선한 사람은 복을 누린다.
그러나 선종(禪宗)에서는 모든 고정 관념을 타파한다.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도 죽인다. 진리인 인과법을 초월하고, 살불살조(殺佛殺祖)하는 역발산(力拔山)의 기백으로 무심(無)을 얻어 천하 대장부(부처)가 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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