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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3월 1일(주일) 월삭예배
○ 시편 91편 14-15절 하나님의 지켜주신다는 약속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의 길에 함께 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신이 정한 목표를 따라 자신의 길을 갔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을 가게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에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월삭예배를 맞아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알기를 원하시고, 복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시편 91편 14-16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말씀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고 하나는 “그가”입니다. 그러면 ‘내가’는 누구고 ‘그가’는 누구일까요? ‘내가’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의 시작부분을 보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내가’고, 그 말씀을 듣는 ‘그가’라고 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14-16절에 나오는 말씀의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1절에 나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그 그늘 아래 사는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살고 계십니까?
1절 말씀처럼 자신의 피난처가 하나님이며 자신의 유일한 안전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가’입니다. 2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여러분들이 만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구를 의지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의 일을 그들이 해결해주고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을 너무나 의지해서 그들의 도움이 없이는 안될 때입니다. 그들조차도 가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났을 때 그들도 무너지지만 여러분들 역시 대책없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안정감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피하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달려 들어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집안에 누군가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이제까지 그를 의지하면서 살았던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나가서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고 병에 쓰러진 자신의 의지가 되던 가족도 간호를 해야합니다. 난감합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교회는 다녔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자기가 의지했던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자기와 자기 가정에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거부를 당하게 될 때 야속함과 섭섭함과 미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사람들이 미워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했던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그 어려움의 시작점 앞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이 전에 들으신 대로 히스기야왕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앗수르왕 산헤립이 보낸 협박편지를 들고 성전에 들어가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다의 왕들이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왕은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청했고 어떤 왕은 애굽에 도움을 청했고, 어떤 왕은 아람 나라에 도움을 청했고 어떤 왕은 앗수르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했던 지팡이가 부러지는 것처럼 쓰러져 다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이 없음으로 인해 그 실패 속에서 더 큰 멸망 길로 나아가게된 것을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신자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그런 사람을 찾으셔서 그에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가장 안전한 피난처요 요새로 믿고 있으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만큼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보호자가 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지십니다. 물론 사랑은 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건져주시며 또한 지키십니다. 그것도 밤낮으로 지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만날때마다 하나님의 건져주심과 지키심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 121편 3-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졸며 잘지라도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원수 마귀와 온갖 위험들에게서 여러분들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역대하 6장 14-16절을 보면 이렇게 하나님같은 분이 없다고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그들의 행위를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율법대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부터 나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지켜주시는 사람이 누구라고 하십니까? 온 맘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을 지키십니다. 믿음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랑으로 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1장 5절에도 역시 하나님을 믿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그런 사람이 일차적으로 행하는 것이 예배와 기도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지키실 때 눈동자같이 지켜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은혜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무슨 약속들이 있습니까? 시편 91편 3-6절에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하나님은 전염병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건져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설사 왼쪽 옆에서 천 명이 픽픽 쓰러지고, 오른 쪽에서 만 명이 전염병에서 픽픽 쓰러져도 이 재앙이 여러분들에게만큼은 가까이 하지 못하는 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고 건져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두 번째 악속은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여호와”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자로써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특히 일년에 몇 차례씩 침례교 농선회에 가서 많은 목사님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저도 그렇고 다른 목사님들과 사모님들도 그렇지만 세미나에 참석하는 모든 목사님들의 목에는 줄로된 명찰이 걸려 있어 사슴 한 복판에 보이도록 크게 교회와 그 목사님이나 사모님의 이름들을 써놓습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 악수는 하고 안면이 있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눌지라도 헤어지면 거의 대부분의 이름들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단체로는 침례교 농선회 회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정보도 나누고 여러 차례 안면도 있지만 그 정도로 끝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앞으로 계속해서 개인적인 만남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려면 무엇인가를 주고 받아야 하며 그 상대방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앞으로 나누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름을 묻습니다. 헤어진 후에도 전화도 하고,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그의 교회는 물론 사생활까지도 묻습니다. 깊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름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 또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통관심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실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일을 한다고 열심히 했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삶으로 예수님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네가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네 이름을 높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아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높이셨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역시 높여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자신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확실하게 고백했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론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믿고 싸우는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세 번째 약속은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구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은 믿는 사람입니다. 기대도 안하면서 무엇인가를 구하는 사람은 어이없는 사람입니다. 무엇인가를 구한다면 그는 반드시 기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제 응답해주시나 하고 기다립니다.
마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버스가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버스에 탈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꼭 필요한 것을 구한 사람, 그리고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기대감에 차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네가 나를 믿고 기도했으니 내가 너에게 응답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기도를 점검해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응답될지 안될지를 알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이 말씀은 “내가 나를 믿고 기도하는 너를 위해 응답하는 것을 네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응답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네 번째 약속은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불신자들도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오는 환난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반적인 어려움이나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오는 모든 환난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9-1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들조차 여러분들이 당한 어려움을 보고 도망칠 때에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들을 피해 도망치거나 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건져주심은 물론 여러분들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이 오히려 여러분들을 영화롭게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필요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여러분들은 요셉의 환난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나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또 여러분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다섯 번째 약속은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이 장수는 매일 골골거리며 앓으면서 오래사는 장수가 아니라 건강하게 노후 생활을 보내는 장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술술 풀려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합니다.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시면서 이루시는 구원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영혼 뿐 아니라 육신의 모든 일도 구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 인한 풍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왜 그렇게 소중합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알고 기뻐하면서 그 일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복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은밀한 곳이며 그늘이 되십니까?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전능하심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을 믿고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