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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초막절 곧 수장절이며 추수감사절이다
출23:14-17 레23:35-44
이제 가을비도 내리면서 완연한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어느덧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추석을 맞이하면 추수감사예배와 성탄예배를 드리는데 오늘은 추수감사예배를 다음주에는 성탄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우리의 추석날이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이며 추수감사절이라는 것을 아는 교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제부터 추석 명절을 지켜왔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절따라 가는 절기가 백로지나 추석이라고 했는데 우리민족 큰 명절 팔월 한가위 추석이면 집집마다 전 부치고 송편을 대광주리에 담으면서 가족 모두가 기뻐하였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화두가 자연스러웠는데 보통 믿지 않는 가정에서는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대세를 이루지만 추석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면 우리민족들도 아주 오래 전 삼한시대 이전에도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다는 제천행사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를테면 고구려의 전신인 부여의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으며 동예는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런 제천행사라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욕단의 후예가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을 잘 믿던 우리조상들은 불교가 삼국시대에 들어오기 까지는 우리 조상들은 가을 제천행사를 통해 하나님께 제사드렸던 민족이었기에 애국가에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하였던 것이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가요?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다는 제천행사라는 것이 중국의 고대사후한서에는 분명히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믿었던 민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중국고대사인 후한서에서 동예전은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이라 한다." 삼국지에서는 고구려는 "시월에는 하늘에 드리는 제사를 동맹이라 했다." 진한은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고 했다." 중국의 고대사 뿐만 아니라 1675년(숙종 2년)에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에도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이자 임금임을 밝히고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박달나무)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 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박달나라의 임금이다'라는 내용이다.
단군이후 약 2천년 지나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 임금'을 박달단(檀)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규원사화에 보면, 제3세 가륵임검 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근본에 보답하는 의식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세의 역대 모든 나라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않음이 없었으니..."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이는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창8:20)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가운데서 취하여 제단에 번제헌물을 드렸더니.
이 말씀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교시하는 내용은 성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중국 고대사와 규원사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믿는 민족임을 알 수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전통종교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인식하는 오해를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귀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유일신을 믿었던 민족이었다. 그러면 불교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AD 67년 중국에 들어온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온 것은 소수림왕 2년 즉 AD 372년이었다. 아무리 교통이 불편한 시대였더라도 어떻게 불교가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데 300년 넘게 걸렸던 것은 고구려에서 불교를 막아낸 강력한 종교세력이 있었다는 것인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 조상들이 불교전래를 막았다는 논리이다. 어쨌든 불교는 고구려에서 성공을 발판으로 신라 포교를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고구려가 받아들이고 다시 155년이나 지난 뒤인 527년 법흥왕 때 호국 불교를 들여오고 다시 5년 후인 532년 기독교의 종주국이었던 금관가야를 멸망시키자 백제의 성왕은 마침내 541년에 양나라로부터 불경과 불상을 도입했다는 역사를 보면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1700년 밖에 안되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토속종교인양 주인 행세를 하고 그보다 2000년 전에 들어온 기독교는 찬밥신세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4~500년 전 동양의 공자와 서양의 플라톤과 인도의 석가가 인생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시대는 흘러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 기독교 선교 140년 정도에 기독교인이 800만 정도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전 세계의 대형교회는 거의 우리나라에 있을 정도이니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유독 그 전파되는 힘이 가히 놀라울 정도였던 배경이 무엇인가? 이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이 땅에는 하나님을 믿었던 조상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성경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말씀들 즉 동쪽이나 땅 끝이라는 말을 알는고 있는가?
(사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려오고 땅모퉁이로부터 너를 불러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내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였으며 너를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하였노라
(사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되 곧 먼 나라에서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르리라. 참으로 내가 그것을 말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이룰 것이요. 내가 그것을 작정하였은즉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사55: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네가 부를 것이요, 주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인하여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로 달려오리니 그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와같은 말씀들은 마지막 때 동방의 한 민족을 불러서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리라는 말씀이신데 여기에 합당한 민족이 우리 민족일까?
우리 민족은 5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35년간 일본치하에서 오욕의 세월을 보냈고 해방 후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가난과 수치와 모멸을 겪으면서도 우리에게는 당장 하루를 사는 생계가 더 급했던 우리들이었는데 경제성장으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잃어버린 역사 찾기를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와 함께 규원사화와 환단고기 등 민간사서들도 출판되면서 이런 뿌리찾기를 위해 이제는 교회도 균형잡힌 기독사관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2000년 전의 땅을 찾아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는데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부터 섬겨온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를 외래 종교로 단정하고 이 땅에 들어온지 1700년도 안되는 불교를 전통 종교라고 내세우는 것부터 바로 잡을 필요성이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삼국시대 이전, 가을에는 제천 행사로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단군시대부터 이미 하나님을 믿었던 민족이다. 창세기 10장 25절 이후에 나오는 욕단의 후예가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을 잘 믿던 우리조상들은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오기 까지 우리 조상들은 추석에 제천행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었던 민족이었기에 애국가에도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하였고 오늘날 우리나라는 도시이건 시골이건 아니면 해외에 나가든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교회가 제일먼저 세워진다는 것은 우리민족은 특별히 하나님이 택하셨던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러므로 추석을 맞이하여 감사를 드릴 대상은 금년 한해에도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조상차례로 추석을 맞이하는 일반인들
추석을 맞이하는 일반인들은 당연히 차례상에 절하면서 추석을 지내지만 다른 종교인들은 어떻게 지낼까 하던 차에 카톨릭식 차례를 소개한 글을 읽었는데 카톨릭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왔을 때는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박해를 받은 적도 있지만 20세기 들어와서는 한국의 제사가 효의 실천이며 미풍양속이라고 해서 카톨릭은 제사에 대한 추도예식을 보급한다는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신자들이 미리 조상의 이름과 봉헌금을 제출하면 추석이나 설날 당일 합동차례상을 차려놓고서 합동위령미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합동위령미사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즉 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자비를 청하는 성경구절에 전통가락을 붙여 구성지게 노래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기도법이라고 합니다. 또 가족들끼리 지낼 때에는 차례상에 십자가를 놓고 성경을 읽고 향을 피운 뒤 절을 하고 마지막으로 연도를 한 뒤 차례가 끝나면 차린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인데 이런 카톨릭 차례는 카톨릭교리와 어긋나지 않으며 명절날에 카톨릭 신자들이 많이 행한다는 합동위령미사는 그들에게는 다소 위로는 되겠지만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드린 미사를 하나님이 받으실 것인가? 자신있게 말하건데 복은 고사하고 저주밖에는 받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되며 그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카톨릭 교리대로 명절날 합동위령미사 지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상앞에 절하지 말라는 제1계명에 대한 것을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성경은 이방인들의 제사는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전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들이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
카톨릭 위령미사나 개인이 드리는 제사가 이방인들의 제사이므로 마귀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성경에는 장례식 이후에는 죽은 자를 위해 추도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제사의 또 다른 방법이며 정말로 주님을 믿는다면 그런 불법행위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추석 명절
올 한해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지진 기근 홍수 가뭄 산불 같은 자연재앙으로 큰 고통을 받기도 하였는가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접하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런 재난에서 보호받았으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정말 올 추석도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잘 익은 과일들로 풍성한 것을 보면 햇빛과 비를 때맞춰 골고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하건데 추석의 진정한 의미는 성경에 수장절처럼 한 해의 농사를 잘 거두고서 풍성한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명절을 지켜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은 추수한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는 절기인데 우리나라 추석은 바로 추수감사절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는 복이란 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12:7)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추석에 가장 많은 듣는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으라는 덕담이 있듯이 이러한 기쁨을 온 가족이 함께 누린다면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들이 복을 준다고 생각하고 추석을 맞이하여 조상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가까운 다른 나라들의 추석은 어떤 모습일까?
(2) 이웃나라의 추석 문화
1)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중국의 ‘중추절’
우리나라처럼 중국도 음력 8월 15일 중추절은 일찍이 주나라 때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달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이었다고 하니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지만 일부는 달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있다. 무생명체인 달은 인간에게 복을 줄만한 존재가 아닌데 인간이 달에게 복을 달라는 것이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또 중국은 중추절 제사상에는 둥근 달의 모양을 본떠 만든 월병을 놓는데 제사 끝나면 먹는다고 한다.
2) 조상의 영혼을 맞아들이는 일본의 ‘오봉’
일본은 양력 8월 15일에 맞이하는 오봉은 조상의 영혼을 맞아들이는 날로 대표적인 행사는 무카에비로,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묘소나 길거리 대문 등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봉오도리라는 민속춤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저녁에 ‘유카타’라고 하는 무명 홑옷을 입고 마을 광장에 모여, 통나무로 짜 만든 높이 3~4미터 정도의 ‘야구라’라는 망대 주위를 돌면서 저승에서 찾아온 조상의 영혼들이 이승에 있는 후손들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고 다시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중추절이나 일본의 오봉같은 문화는 추수 수확을 주신 하나님에게는 어떤 감사도 없다는 것이다.
3)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미국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102명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2달간의 항해를 걸쳐 1620년 11월 19일에 미국 동해안 프리머스에 도착한 이후 이들은 첫 번째 맞이한 혹독한 겨울추위와 기근으로 반이 죽었고 살아남은 51명이 이듬해 가을 첫 수확을 거두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라고 하니 미국선조들의 신앙을 볼 수 있다. 뉴욕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신앙의 자유를 찾은 102명의 청교도들을 상징한다는 기념으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상륙한 102명중 첫 겨울을 보내면서 절반이나 죽었지만 살아남은 청교도들의 후손인 미국인들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그 다음날은 Black Friday로 Thankgivings을 지키고 있다.
2.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한국 교회가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전해준 영향이었지만 성경을 보면 추수감사절은 수장절(초막절)을 근거로 지켜야 하는데 수장절은 추수를 마치고 창고에 저장한 후 추수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절기이다.
(출23:16) 네가 밭에 뿌린바 네 수고의 첫 열매의 수확절을 지키라. 이는 밭에서부터 수고하여 얻은 것을 거두어들인 때 곧 한해의 끝에 있는 수장절을 지키라.
(레23:39) 또 너희가 땅의 열매 거두기를 마치는 일곱째 달의 십오일부터 이레동안 주께 명절을 지키되 첫째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수장(초막)절은 한해의 농사를 거두어들인 후 한주간의 초막생활을 통해 조상들이 광야에서 겪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절기이므로 초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추석은 성경의 초막절 혹은 수장절을 근거로 드려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연관성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먹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와 햇볕과 바람을 골고루 주셔야만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다. 실제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세세히 돌봐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여기까지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추석을 맞아서 우리를 지금까지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조상들은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한 해의 농사를 마친 후에는 제천행사로 감사를 드렸던 것이 고려시대로 오면 ‘풍농제라는 절기였고 조선시대로 오면 추석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한가위는 그 동기가 농사의 결실을 맺게 해준 하늘에 제천행사를 드리는 의식에서 비롯된 만큼 추석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 추수감사절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기록된 수장절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절기는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가을명절인데 우리조상들은 한가위를 기준으로 첫 수확물로 드렸으므로 이제는 추석날을 추수감사절로 정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실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2) 추석의 새로운 모델
이제는 추석을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문화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1) 죽은 조상들 추모하는 문화에서 산 가족들이 즐기는 문화로
인간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되고 영은 구원받았으면 천국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에서 영존하는 것인데 한 번 떠나간 영혼은 다시는 세상으로 올 수 없는데 조상에게 제사하는 추석문화는 한마디로 주인공 없는 잔치와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정말이지 제사는 죽은 부모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이런 제사를 통해 공중권세 잡은 마귀와 교제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2) 과거 지향적 문화에서 미래 지향적 문화로
미래지향적 문화는 앞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문화로서 우리 인간들은 앞날을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 미래를 보장하는 하나님을 믿으면 사는 날까지 두려움 없이 인도해 주실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좋은 일 생길 때만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좋은 일이 생기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으며 또 지난 모든 일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서도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를 선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어떤 사람이 감사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나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항상 미래 지향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참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3. 추석,초막절(수장절) 곧 추수감사절은 감사하는 날이다
구약성서에 대표적인 절기가 유대력으로 1월 유월절(무교절), 5월 오순절, 7월 초막절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절기는 정월 설과 팔월 추석인데 우리의 정월 설은 새해가 시작되는 연두절기인데 유대인들 유월절도 해가 바뀌는 신년 명절이니 우리의 설 명절에 해당되고 추석은 한 해의 농사를 추수하는 감사 절기인데 초막절도 포도 올리브 무화과를 추수한 후 창고에 저장해 놓은 후 온 백성이 함께 지키는 절기로 초막절과 추석은 곡식을 추수한 것에 감사를 드리는 것도 같지만 날짜까지도 거의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1) 수장(초막)절과 추석은 날짜가 일치한다.
음력 8월 15일 추석은 청나라 시헌력을 따른 것이다. 유대력 7월15일 초막절은 레23:39에 따르면 토지의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즉 추수한 것을 저장하는 때이므로 이스라엘은 초막절을 수콧이라 부르며, 추분과 가까운 음력 대보름 저녁부터 초막절을 시작한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 추석과 격년으로 날짜가 거의 겹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격년에는 1달 차이가 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년을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점에 맞추어 니산월 즉 정월 보름에 그들이 출애굽하여 일곱 번째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즉 50일째 되는 날에 둘째 절기인 칠칠절, 즉 오순절을 지켰고 또 일곱 번째인 티쉬리월 15일에 세 번째 절기인 초막절을 지켜서 유대력으로 7월 15일에 지키는 초막절이 우리나라의 음력 8월 15일과 격년으로 겹친다는 이유는 유대력이 시헌력 보다 한 달 늦기 때문인데 우리의 추석과 초막절은 항상 그 날짜가 격년으로 일치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다만 우리의 달력이나 유대력 중 어느 한쪽에 윤년이 들어 있는 해에만 한 달의 차이가 난다. 이런 것을 알게 된다면 추석이 곧 초막절이며 이날이 곧 추수감사절이라고 볼 수 있다.
(2) 달밤을 즐기데서 일치하다
우리들 하루 생활은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에 끝나는데 유대인들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날 저녁에 끝난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날에 모든 것을 창조해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니라’고 하셨듯이 유대인들에게는 항상 하루가 시작되는 저녁이 하루의 출발점이므로 그들의 절기 행사에서 말할 것도 없이 저녁 행사가 모두 중요했는데 그 저녁이란 언제나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달이 떠오르는 시각에 시작이 되면서 그들에게 달밤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다. 일찍부터 태양을 섬겨오던 애굽 사람들과는 아주 정반대인 것이다. 우리나라 추석이라는 명칭을 보면 가을 추(秋)자와 저녁 석(夕)자로 가을 저녁이란 뜻이다. 아침도 아니고 대낮도 아니고 가을저녁이라는 뜻이니 얼마나 놀라운 명칭인가? 저녁을 중요시한 날은 연 중 추석밖에는 없다. 수장절과 추석은 밤에 즐기는 명절로 일치한다.
(3) 고향을 찾고 조상을 기억하는 풍습도 같다
유대인 3대 절기 중에서도 초막절은 고향을 떠나 흩어진 유대인들 즉 디아스포라들은 초막절에는 고향을 찾는 것이 전통인데 이 초막절에 순례를 못하는 자들은 자기 집 곁에 초막을 짓고 전 가족이 그 속에 들어가 절기를 지켰다. 바로 옛날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조상들의 장막 생활을 잊지 않고자 그들은 광야의 장막 생활을 살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추석이 되면 고향 가서 부모 산소에 벌초도 성묘도 할 수 있고 부모 형제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것들이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공통으로 느끼는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4)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절기이다
수장절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헌물은 올리브와 무화과 그리고 포도열매인데 가나안 농경문화에 따른 감사 예물이었다. 그러나 가축을 치는 일부의 사람들은 양이나 짐승을 드려 이스라엘의 유목 문화적 전통을 그대로 고수해 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전에는 추수한 후에는 하늘의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천행사를 하였으나 고려시대 풍농제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추석날에는 고향을 찾아 조상에게 감사의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가 성묘를 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고 저녁이 되면 마을은 각종 놀이하는 독특한 문화이다.
4.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
(1) 고난을 겪은 사람들만이 감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잘 나갈 때 보다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을 찾게 된다. 질병을 통해서, 사업의 어려움을 통해서, 고독한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장 힘들어 하는 때가 정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10명의 문둥병자들이 길가다가 예수님을 만나 치료받았지만 감사를 드린 사람은 열명중 한사람이었다는 말씀이 있다.
(눅17:13-14)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외쳤을 때 긍휼을 요구하는 문둥병자들에게 주님이 내려주신 긍휼은 14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
이처럼 가장 어려운 때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열명의 문둥병자가 다 낫지만 감사한 사람은 오직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 감사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인데 누가 감사할 수 있을까?
(2) 은혜를 잊지 않은 자가 감사할 수 있다
받은 은혜는 아무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는 자들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눅17:15-16)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16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열 사람이 정결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
고침 받은 자들은 열 명인데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 문둥이 한사람만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어도 소유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는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소유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들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도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감사하며 사는 자입니까? 감사를 상실하고 사는 자입니까? 문둥병자 10명중 한 사람은 자신이 치료받았던 것보다도 그것을 치료해 주신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 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무엇이 선포되었습니까?
(3) 주님께서는 감사한자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신 것은 아홉과 돌아 온 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었느냐였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모두 다 예수님이 고쳐주신 것도 알았는데 아홉은 예수님에게 감사하지 못했던 것은 저들은 예수님에게 감사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게 그 동안 떨어져 살았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어서 가장 먼저 주님께 드려야 할 감사가 뒷전으로 밀린 결과 저들은 감사를 상실한 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아홉명 문둥병자의 모습이 바로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닌지 한번 생각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감사가 메마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차이가 난 게 아니라 감사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눅17:19)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멘.
주님의 구원은 감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우리의 믿음은 주님을 향한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한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마지막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영혼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비천하고 사악한 죄인이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셋째 하늘나라에 올라가기도 하고 신약 성경의 27권중의 13권을 기록하였지만 바울은 자신을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겸손히 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감사를 드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없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감사는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4) 감사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감사하는 사람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 온갖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물론이요, 그 사랑의 통로가 된 것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있었고 내가 사용하는 온갖 물건들도 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인데 성경말씀으로 표현하자면 사랑의 빚을 지면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모두가 다 감사할 대상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되었듯이 우리도 온갖 죄악의 노예에서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게 된 은혜야말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가장 큰 영적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 명절인 추석과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그 본질적 의미상통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이제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에 대한 원형적 의미(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를 되새기며, 추수감사절의 시기를 추석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건강하여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합니다. 사실 건강 하나만 있어도 절대로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건강하면서 불행을 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감사이고 두 번째는 남에게 주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물질이 있는 것에 감사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일하라고 했는데 에베소서 4장 28절에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불필요한 재산이 없는 것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인간은 불필요한 재산 때문에 건강도 잃어버리고, 영생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바로 그 세 번째 이야기에 해당되는 사람에 대해 자기를 위하여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눅12:20).
재물을 많이 소유했지만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가난했더라면 예수님께 나와서 구원받았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 어리석은 부자이기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입니다.
5. 추수감사절은 마지막 추수(심판)를 예고하는 것이다
추수가 한 해 농사의 마지막을 말하듯이 우리가 생을 마치는 날 우리에게는 최종적인 수장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태움을 당하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추수 때까지 세상이라는 밭에서 뿌려진 씨는 좋은 씨와 가라지로 자라는 데 에레미야 31장 27절에는 구체적으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뿌려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씨에 속하는 것 같은가요?
(렘31:27)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심으리라
실제로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리셨고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했는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증거하지만 가라지를 금방 뽑을 것 같았지만 예수님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었다는 말씀이고 예수님께서는 추숫군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하늘 곳간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가 바로 세상 마지막 추수 때이다. 세상 추수 때엔 짐승의 씨를 먼저 심판한 후 사람의 씨를 거두어서 곡간에 저장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땅에서 수확한 것을 수확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내가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앞절 22절에는 정반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가 없으리라.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라 가정이 찢어지고 사업이 찢어져 파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빨리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 추수감사절은 한해의 수확한 것을 정산하지만, 최종적인 추수감사절은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수장한 것을 주님이 정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그분이 상주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산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상에 대해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푯대로 삼아 달려간 사람은 부름의 상을 받게 될 것이고 또 주께 받은 사명을 마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늘에 쌓아둔 사람은 그 보물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초막생활의 고난을 이겨낸 사람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남은 고난을 자기의 육체에 채운 사람들은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지 않고 성령을 위해 심은 자들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둘 것이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초막절이 한해의 마지막 절기이듯이 이 초막절은 일생동안 수장한 것을 결산하는 마지막 추수감사절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마지막 날 통곡하는 자가 누굽니까? 마태복음 6장 19절에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게 결론입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부자가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하늘에 많이 쌓아둔 부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하여는 인색하여 땅에만 쌓아둔 부자가 있는데 그런 인간을 가리켜 어리석은 부자는 천국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늘나라를 위해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 추수할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