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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한 판잣집 사이로 길게 뻗어있는 철길에 컨테이너 박스를 연결한 디젤기관차가 시속 10km의 느린 속도로 굉음과 함께 철길을 지난다. 기차의 진동으로 낡아가는 판잣집은 무너질듯 흔들렸다. 어마어마한 소음이 마을 전체를 휘감으며 거주민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열차가 지날 무렵 거주민들은 화분과 빨래, 말리던 고추를 들인다. 열차 앞 쪽에서 통제하던 3명의 역무원은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사람들의 접근을 강력히 차단했다. 그렇게 5량~10량에 이르는 화물 열차는 무언가를 싣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이 철길을 지난 열차는 군산 조촌동에 위치한 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에 도착하고 '페이퍼코리아'의 원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된 2.5km의 이 철길을 총칭하여 '페이퍼코리아선'이라고 불렀다. 반 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수 십년이 지난 지금은 기차도 역무원도 보이지 않는다. 쓸모없는 것들은 낡아지기 마련이라고 붉게 물든 녹이 철길을 뒤덮었다. 잡풀도 무성히 자라간다. 지금은 간간히 시민들과 관광객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항선을 거쳐 군산역을 지난 열차는 이 철길마을을 달렸다. 그리고 그 긴 여정 끝에 2008년 6월, 열차는 운행을 멈추었다.
군산 이마트 앞에 위치한 경암동 철길마을은 중간중간 보여지는 삶의 흔적과 같이 그 역사 또한 60여년을 훌쩍 넘겼다.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 그 옆으로 시멘트를 곱게 바른 허름한 상점들이 자리한다. 늘어가는 빈 집에 몇 가구가 채 되지 않던 판잣집들의 일부는 재건축을 통해 변화해간다. 대부분 창고, 화단으로써 쓰이며 허물어진 판잣집에는 컨테이너가 들어서기도 했다. 우측으로 시멘트 구조의 나열 된 집들에는 소박한 카페가 들어선 모습도 보인다. 열차 운행이 멈춘지 5년, 이제는 철길마을이 군산의 대표 랜드마크로써 영향력을 키워가는 듯 보였다.
열차는 멈추었다. 제한되었던 공간 활용을 위해 다양한 공사들이 진행된다. 판잣집들은 하나둘 허물어져간다. 새로운 상점이 들어서고 비었던 집들은 다시 하나둘 채워져간다. 붉은 녹이 비치는 길고 긴 이 철길 외곽으로 이렇게 또 다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원래 바다였던 경암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방직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육지로 만들어냈다. 해방 후, 땅주인이 없었던 이 황무지에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4년, 페이퍼코리아에 원자재를 실어나르기 위해 이 곳에 철길이 세워졌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별반 다를 게 없듯이 지금의 모습 또한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곳을 꾸준히 지켜보던 주민들의 회상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볕이 따스하게 드리우는 철길마을에 화분과 바삭한 빨래의 풍경이다. 단지, 판잣집들이 허물어져가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국 변화한 철길마을의 매력은 변화하지 않는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이미 경암동 철길마을은 명소로써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촬영지로도 손색이 없어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군산 고속&시외버스터미널과 인접해있어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하나둘 몰려든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은 쓰이지 않는 낡은 철길에 추억을 새긴다. 그렇게 새겨낸 추억은 먼 훗날 그들을 기억해줄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던 철길마을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사람이 거주하지 않을 듯한 허름한 상점에 상당히 오래 거주했을 법한 마을 주민이 나를 빼꼼히 바라본다. 나 같은 여행객들을 다수 목격했던지 다시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고선 다시 밖으로 나와 바싹 마른 빨래쓰담더니 이내 다시 걷어가는 모습에 정겨움과 소박함 등 삶의 진솔함이 느껴졌다.
군산시에서는 철길마을에 사업비를 투자하며 관광지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변화한 철길마을의 일부분이기도 한데, 철길마을 외곽에 쌈지공원을 조성하기도 했고 벽화 등 조경을 위해 다양한 경관복원사업을 펼치고있다. 특히 공공디자인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철길마을 500m 구간을 추억의 탐방길로 조성하기도 했다.
<취재 : 청춘예찬 주형빈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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