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속은 아름다운 수레국화의 꽃잎처럼 파랗습니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처럼 맑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어떤 닻줄도 닿지 못하고, 바닥에서 물위까지 수많은 교회 종탑을 쌓아야 닿을 정도로 깊답니다.
그 깊은 곳에 바다의 종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저 흰 모래밭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나무와 식물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 나무와 식물들의 줄기와 잎들은 너무나 부드러워 물살이 조금만 일어도 흔들린답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구요. 마치 새들이 하늘에서 공기 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바다 임금님의 궁전이 있습니다.
궁전의 벽은 산호로 만들었고, 길고 뾰족한 창문들은 가장 맑은 호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지붕은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조개 껍질들로 덮었답니다.
거기 조개껍질 하나하나 속에는 모두 빛나는 진주들이 놓여 있습니다. 정말 그런 궁전의 모습은 굉장하답니다. 거기 진주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임금님의 왕관을 멋지게 장식할 만큼 값진 것들이거든요.
바다 임금님은 혼자 살고 있답니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살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영리한 그 부인은 자신이 귀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꼬리에 열 두 개의 굴을 달고 다녔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여섯 개까지만 달 수 있도록 했지요. 그것만 빼고는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요.
그녀는 나이 어린 바다의 공주들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여섯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막내 공주가 가장 예뻤습니다.
피부는 장미빛처럼 깨끗하고 맑았으며, 두 눈은 깊은 바다처럼 파랗답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발이 없고 물고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바다 속 궁전에서만 살았습니다.
공주들은 궁전의 커다란 수문에서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그 수문 벽에는 살아 있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커다란 호박 창문이 열리면 거기로 물고기들이 헤엄쳐 들어오죠. 우리가 창을 열면 제비가 날아 들어오듯이 말이에요.
물고기들이 작은 공주들에게 헤엄쳐 오면 공주들은 먹이를 주기도 하고 물고기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궁전 바깥에는 불길처럼 붉고 검푸른 나무들이 있는 큰 정원이 있었습니다. 과일들은 황금처럼 빛났고, 꽃들은 타고 있는 불길 같았습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그 모래는 유황의 불길 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바다 속 공주들은 바람이 잠들면 해님을 보러 나왔습니다. 공주들에게는 해님이 자주 빛 꽃처럼 보였습니다. 꽃받침이 모든 빛을 뿜어내는 그런 꽃 말이에요.
공주들은 정원 안에 자기만의 구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땅을 파고 식물을 가꿀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공주는 고래 모양으로 만들었고, 다른 공주는 인어 모양의 꽃밭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막내 공주는 꽃밭을 해님처럼 둥글게 만들고, 붉게 빛나는 꽃들을 심었습니다.
막내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특별한 공주였습니다. 다른 언니 공주들이 난파한 배에서 주워온 진기한 물건들로 치장을 해도 그녀는 저기 위 해님과 닮고, 장미꽃처럼 붉은 꽃들과 오직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만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것은 흰색의 맑은 돌로 조각된 아름다운 소년상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막내 공주는 조각상 옆에 장미빛처럼 붉은 수양버들을 심었습니다. 수양버들은 근사하게 자라 푸른 모랫바닥을 향해 싱싱한 가지를 뻗었습니다. 조각의 그림자가 바이올렛 빛으로 모래바닥에 비치고 수양버들의 가지들이 흔들흔들 움직이면, 마치 수양버들의 꼭대기와 뿌리가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주는 저 위쪽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는 배와 도시, 인간과 동물 등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는 그 중에서도 꽃들이 향기를 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다 속 꽃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숲들이 초록색이라는 것과 나무들 사이에서 고기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등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할머니가 나무들 사이의 고기라고 부른 것은 작은 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주들은 한 번도 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너희들이 열 다섯 살이 되면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나가서 달빛이 비치는 바위 위에 앉아 지나가는 배들을 볼 수 있단다. 그러면 숲들과 도시들도 볼 수 있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큰언니 공주가 제일 먼저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공주들은 꼭 한 살씩 나이 터울이 졌습니다. 그러니 막내 공주가 인간 세상을 보려면 아직도 5년이나 남은 것이지요. 공주들은 자기가 본 것을, 그리고 첫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공주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할머니가 얘기해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어떤 공주도 막내 공주만큼 동경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막내 공주는 가장 바다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가장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창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첨벙거리는 바닷물을 통해 저 위를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희미하게 비쳤지만 달과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 같은 무언가가 그 아래를 스쳐 지나가면 고래이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작고 아름다운 인어 공주가 하얀 손을 내밀고 있으리라곤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맏이인 첫째 언니 공주가 열 다섯 살이 되어 바다 위로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맏언니는 돌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달빛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곳에 앉아 수백 개의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거리는 큰 도시를 바라보는 것, 음악과 마차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많은 교회 종탑을 바라보면서 종소리를 들었던 것은 잊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막내 공주는 그곳에 가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모든 것을 정말 그리워했답니다.
아! 막내 공주는 정말 얼마나 열심히 귀를 기울였던지요.
늦은 저녁 창가에 서서 검푸른 물결을 통해 위를 올려다보면서 떠들썩하게 소리가 울리는 큰 도시를 상상했답니다. 그러면서 교회 종소리가 바다 밑까지 울려온다고 믿었습니다.
2. 막내 공주의 열 다섯 번째 생일
그 다음에는 둘째 공주가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을 때였지요. 해가 지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온 하늘이 황금처럼 보였지요. 그리고 그 구름들! 그래요, 그 아름다운 모습은 도저히 그려낼 수 없었답니다.
구름은 붉은 색과 바이올렛 빛을 띠고서 그녀의 머리 위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하얀 면사포처럼 한 떼의 들오리들이 해가 떠 있는 물 위를 향해 구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그녀는 해를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그러나 해는 곧 가라앉고 바다 표면과 구름 위의 장밋빛 홍조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셋째 공주가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자매들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바다로 흘러드는 넓은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포도 넝쿨이 우거진 찬란한 초록 언덕과 찬란한 숲들 사이로 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공주는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햇볕이 어찌나 따뜻하게 비치는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물 속으로 들락거려야만 했지요.
바닷가에서는 발가벗은 어린아이들이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지요. 공주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공주의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때 작은 검은 색 동물이 공주에게 뛰어왔어요. 그 동물은 바로 개였지요. 그 개가 얼마나 크게 짖어대는지 공주는 무서워서 얼른 바다 속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공주는 바다 위에서 본 그 찬란한 숲과 푸른 언덕들, 그리고 물고기 같은 꼬리가 없이도 물 속에서 귀엽게 헤엄치던 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공주는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냥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멀리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이 마치 유리로 만든 종처럼 펼쳐 있었다는 거예요. 또 멀리 지나가는 배들도 보았답니다. 배들은 마치 갈매기처럼 보였습니다. 돌고래들은 즐겁게 재주를 넘고, 커다란 고래들은 콧구멍을 물을 뿜어댔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분수처럼 말이에요.
이제 다섯째 언니의 차례였습니다.
다섯째 공주의 생일은 마침 겨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다른 공주들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짙은 초록색이었습니다. 커다란 빙산들이 물위를 떠다니는 그 모습이 마치 진주처럼 보였습니다. 빙산은 사람들이 세운 교회의 종탑보다 더 컸고, 아주 멋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가장 커다란 빙산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하늘이 온통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였습니다.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높은 파도가 일어나 커다란 빙산을 때렸습니다. 빙산들은 밝은 번개 불빛 가운데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들도 돛을 올렸습니다.
모든 것이 무서워 보였지만 공주는 그래도 떠 다니는 빙산 위에 걸터앉아 푸른 번개 불빛이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바다로 내리뻗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바다 위로 올라갔던 공주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보았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자랑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바다 위로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곧 바다 위의 풍경에 대해서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다 속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섯 공주는 서로 손을 잡고 줄을 지어 바다 위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들은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면 그들은 바다 위 배 가까이 다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폭풍이 다가온다는 것을 선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원들은 인어 공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어 공주들의 노래 때문에 폭풍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그 선원들이 바다 속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다 속 궁전으로 오게 되니까요.
언니들이 물을 헤치고 높이 올라가고 나면 막내 공주는 혼자 남아 언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막내 공주는 울고만 싶었답니다. 하지만 인어들에게는 눈물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아, 나도 빨리 열 다섯 살이 되면 좋으련만..."
막내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저 위에 있는 세상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세월이 흘러 마침내 막내 공주도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자, 보렴. 너도 이제 다 컸구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오렴. 너도 다른 언니들처럼 단장을 해야지."
할머니는 하얀 백합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막내 공주의 머리에 씌워 주었습니다. 그 화환의 꽃잎은 하나하나 모두가 진주였어요.
할머니는 또 여덟 개의 커다란 굴을 공주의 긴 꼬리에 매달아 주었습니다.
"아파요!"
"하지만, 아름다워지려면 이런 건 참아야 한단다."
아, 막내 공주는 차라리 이런 온갖 장식들을 떼어 버리고 무거운 화환도 벗어버리고 싶었어
요. 정원에 피어 있는 붉은 꽃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거역할 수는 없었어요.
"안녕!"
막내 공주는 마침내 그동안 꿈에 그리던 바깥 세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공주가 바다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마침 해가 막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마치 장미꽃처럼 빛나고 있었어요. 그리고 밝게 빛나는 저녁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지요. 공기는 맑고,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습니다.
바다 위에는 돛대를 세 개나 단 커다란 배가 떠 있었습니다. 돛 가운데 하나만 감아 올려져 있었어요.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습니다. 배의 활대에는 선원들이 올라가 앉아 있었어요. 배에서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등불이 몇 백개씩이나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온 세상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 같았답니다.
3. 왕자님의 생일 잔치
인어 공주는 선실의 창문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일렁이는 물살에 기댄 채 공주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랗고 검은 눈을 가진 젊은 왕자님도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열 여섯 살이 넘어 보이지는 않았답니다.
오늘은 바로 왕자님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배 안을 온통 화려하게 꾸민 것이랍니다. 갑판 위에서는 선원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공중에는 불꽃이 펑펑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은 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곧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자기에게 떨어져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꽃은 이리저리 튀면서 화려하게 빛나는 물고기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불꽃은 맑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고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왕자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어요.
점점 밤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아름다운 왕자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이제 화려한 등불이 모두 꺼지고 더 이상 불꽃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않았지요. 대포 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혼자서 조용히 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배는 돛을 활짝 펼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커다란 구름도 몰려왔어요. 멀리서 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렸습니다. 배는 커다란 파도 때문에 바다 위를 날 듯이 달렸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마치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시커먼 파도가 마치 배를 덮치려는 듯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배는 높은 파도 사이에서 백조처럼 가라앉았다가 다시 치솟으면서 거칠게 흔들렸어요.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여기저기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배의 두꺼운 몸체가 거센 파도에 얻어맞고 휘어졌어요. 그리고 그 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돛대가 절반으로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해진 것을 보고 인어 공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도 부서진 배의 파편들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요.
그 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이며 주위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가 막 왕자님을 발견한 순간 배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인어 공주는 무척 기뻤습니다. 왕자님이 바다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반가웠거든요. 하지만 곧 사람은 인어처럼 물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오면 왕자님은 곧 죽고 말 거예요. 그러나 왕자님은 절대 죽어서는 안됩니다.
인어 공주는 물위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배의 파편들을 피해 왕자님에게로 헤엄쳐 갔습니다. 자기가 다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파도 위로 떠올라 왕자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왕자님은 정신을 잃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름답던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인어 공주가 아니었다면 왕자님은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지난밤 그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빛나는 해님이 붉게 떠올랐어요. 왕자님으 두 뺨이 햇빛을 받아 차츰 붉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두 눈은 그대로 감겨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어요. 왕자님의 모습은 마치 바다 속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조각상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한 번 왕자님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살아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때 인어 공주는 육지를 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산꼭대기에 백조처럼 하얀 눈이 덮여 있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멋있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 앞에 있는 집들은 아마 교회나 수도원들이겠지요. 거기 정원에는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키가 큰 종려나무들이 서 있었구요. 바닷가에는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을 끌어안고 모래밭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양지쪽에 왕자님을 눕혔습니다.
그 때 종소리가 울리더니 젊은 처녀들이 정원으로 뛰어 달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래서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왕자님에게 누가 오는지를 지켜보았어요.
어떤 젊은 아가씨가 왕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가씨는 깜짝 놀라 곧 사람들을 불러 왔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왕자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몹시 슬펐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왕자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막내 공주는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습니다. 언니들이 막내 공주에게 바깥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막내 공주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공주는 매일 밤 왕자님이 누워 있던 그 바닷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뒤 단 한 번도 왕자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높은 산을 뒤덮고 있던 하얀 눈도 모두 녹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제 꽃도 가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꽃과 나무들이 날이 갈수록 시들고, 정원은 무척 쓸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공주는 한 언니에게 이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차츰 다른 언니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언니 가운데 하나가 그 왕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 언니도 배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왕자님을 보았던 거예요.
"막내야, 이리 오렴."
공주들은 막내 공주를 이끌고 왕자님의 궁전이 있는 곳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궁전은 노란 돌로 지어져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바다에서부터 커다란 대리석 계단이 궁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4. 왕자님과 인간의 영혼
지붕에는 아름다운 탑들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탑의 동그란 지붕에는 황금을 입혀 놓아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궁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비싼 커튼과 벽걸이로 장식되어 있고,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방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천장을 덮은 둥근 유리창에까지 솟아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매일 왕자님의 궁전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언니들보다 훨씬 더 육지 가까이 간 것이지요. 바다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화려한 대리석 발코니 바로 아래까지도 갔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는 거기서 왕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밝은 달빛 아래 혼자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또 왕자님이 보트를 타며 음악을 듣는 모습도 초록색 갈대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인어 공주의 은백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곤 했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보고 그저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인어 공주는 자기가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던 왕자님을 구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인어 공주는 그 때 왕자님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입을 맞추었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지요.
인어 공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바다속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마음대로 다니는가 하면 높은 구름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물 밖 세상은 숲과 들판이 있고, 인어 공주가 바라보는 곳보다 훨씬 더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언니들도 거기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할머니만이 바다 위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나요? 바다 속 우리와 달리 죽지 않고 살 수 있나요?"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아니, 사람들도 죽는단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죽게 되지. 우리는 300년 동안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죽은 다음에 그냥 물위의 거품이 되고 마는 거야. 무덤도 없고... 다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단다. 우리는 저 푸른 갈대와 마찬가지야. 한 번 꺾이면 두 번 다시 파랗게 살아나지 못하는 저 갈대 말이야.하지만 사람들은 죽어서 흙이 된 뒤에도 그 영혼은 영원히 살 수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솟아올라서 저 반짝이는 별로 간단다. 우리가 물위로 떠올라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올라가는 거야."
"우리는 왜 영혼을 얻을 수 없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제 생명을 버리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못써! 우리는 지금 인간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지 않니."
"하지만 제가 죽으면 바다 위 거품으로 떠돌겠지요? 파도가 노래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이나 붉게 빛나는 태양도 볼 수 없잖아요? 영혼을 얻으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방법은 없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면 그 사람의 영혼이 네 몸 속으로 흘러 들어와 너도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을 함께 누리는 거야. 서로의 영혼을 나누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생길 수 없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사람들이 네 꼬리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들은 우리와 달라서 다리라는 것을 갖고 있지."
인어 공주는 슬픈 얼굴로 자기의 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말했어요.
"자, 이제 좀더 즐겁게 지내자꾸나. 우리는 30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건 정말 즐거운 거야. 인간들은 무덤으로 가지만 말이야. 오늘 저녁에 궁전에서 무도회를 열도록 하자."
바다 속 무도회는 사람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렇게 화려한 축제예요.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지요. 장미처럼 붉은 조개와 초록색 조개들이 사방으로 줄을 지어 있구요. 이 조개 껍질들이 파란 불빛을 비춰 무도회장을 아름답게 밝힌답니다. 그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리벽 사이로 헤엄치구요. 물고기들의 비늘은 자주빛, 붉은 색으로 반짝입니다. 어떤 물고기의 비늘은 금빛과 은빛이랍니다.
맑은 시냇물이 무도회장 가운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남자 인어들과 여자 인어들이 사랑스러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지요. 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는 못할 거예요.
막내 인어 공주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답니다... 막내 공주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결코 왕자님을 잊을 수 없었어요. 자기가 왕자님처럼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혼자서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작은 정원에 앉았어요. 그 때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저 배에는 왕자님이 타고 있을 거야. 왕자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 나는 꼭 왕자님을 얻고야 말 거야. 그리고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거야. 그래, 마녀에게로 가 보자. 어쩌면 마녀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인어 공주는 정원을 빠져 나와 바다 저쪽 거칠게 날뛰는 소용돌이 속으로 갔습니다. 마녀는 바로 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전에 한 번도 그 길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꽃은 말할 것도 없고 흔한 바다 풀조차 나 있지 않은 곳이었어요. 쓸쓸한 회색 모래만이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마녀의 집으로 가려면 소용돌이와 부글부글 끓는 진창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마녀의 집은 거기를 지나 이상한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나무와 덤불에는 모두 대가리가 달린 것 같았습니다. 마치 흙에서 솟아나 꿈틀대는, 수백 개 머리가 달린 뱀처럼 말이에요. 가지는 마음대로 휘어지는 긴 팔 같고, 몸통이 따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지나가는 것을 단단히 붙잡아 휘어 감아서는 두 번 다시 놓아주지 않는답니다.
인어 공주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앞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차라리 이제라도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팔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 살아 움직이는 덤불들이 손을 댈 수 없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으고, 가지를 내뻗는 무서운 그 덤불 식물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쳐 지나갔습니다.
그 덤불 속에 사람들의 하얀 해골이 보였습니다. 또 그 덤불들이 목을 졸라 죽인 여자 인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습니다.
5. 목소리를 주고서...
인어 공주는 드디어 아주 커다란 늪에 도착했습니다. 살이 찐 커다란 바다뱀이 보기 흉한 노란색 배를 드러낸 채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어요.
이 늪의 한가운데에 배가 난파당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뼈로 만든 집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마녀가 살고 있었어요.
"네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난 이미 다 알고 있다."
마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지. 아름다운 작은 공주님... 하지만 넌 아무리 그래도 네 물고기 꼬리를 없애고 그 대신 인간들처럼 걸어 다니는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거겠지? 그 젊은 왕자와 영원히 죽지 않을 그 영혼을 얻고 싶어서 말이야."
마녀는 소름 끼치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마침 때를 잘 맞춰 왔어. 내일 해가 뜨고 나면, 앞으로 1년이 지날 때까지는 너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으니 말이야. 내가 아주 효과가 좋은 물약을 만들어 주마. 그걸 가지고 해가 뜨기 전에 육지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그 물약을 마시는 거야. 그러면 네 꼬리가 떨어져나가게 된다. 그 대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다리가 생기는 거야. 사람들은 너를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얘기할 거야. 하지만 네가 걸어다닐 때는 마치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무척 아플 거야. 하지만 별 수 없지. 네가 이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다면 내가 너를 도와주마."
"네, 그렇게 하겠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영혼을 생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녀는 다시 말했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한 번 인간의 몸으로 변하면 두 번 다시 인어가 될 수 없어. 두 번 다시 네 언니들이나 아버지가 있는 궁전으로 내려올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왕자가 진정으로 널 사랑하지 않으면... 넌 영혼도 얻지 못하고, 결국 네 심장이 쪼개지면서 넌 물위의 거품으로 변하고 만단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어요."
인어 공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마녀는 또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요구가 하나 있다. 네 목소리는 여기 바다 밑에서 가장 아름답지. 넌 아마 그 목소리로 왕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그 목소리를 나에게 주어야 해.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내 목소리를 가져가면 난 무얼 갖게 되나요?"
"아름다운 모습이지. 경쾌한 걸음걸이, 속삭이는 듯한 두 눈... 그것만 가지고도 넌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어. 어때, 아직도 용기가 남아 있어? 그렇다면 이제 네 혀를 내밀어라. 그걸 잘라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하겠어요."
마녀는 그 마술 물약을 끓이기 위해 불 위에 솥을 얹었습니다. 그러더니 칼로 자기 가슴을 그어 검은 피를 나오게 해서, 그 핏방울을 뚝뚝 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솥에서 김이 솟아올랐습니다. 마녀는 계속해서 솥 안에 뭔가 이상한 물건들을 집어넣었습니다.
마침내 물약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그 약은 마치 맑은 물처럼 보였습니다.
"자, 이제 네 혀를 다오."
마녀는 인어 공주의 혀를 싹둑 잘랐습니다.
이제 인어 공주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네가 숲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그 괴물 덤불들이 너를 잡으려고 하거든 이 물약을 한 방울만 떨어뜨려라. 그러면 그 덤불들의 팔다리가 산산이 부서질 거야."
그러나 인어 공주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덤불들은 물약을 보자마자 소스라쳐 놀라 움츠러들었거든요. 인어 공주는 그 소용돌이 속을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궁전에 갔습니다. 무도회장의 불빛은 이미 꺼져 있었어요. 아마 다들 잠이 들었겠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여기를 영원히 떠나야 하니까요.
인어 공주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생각하고 무척 슬펐습니다. 그래서 살그머니 정원으로 들어가 언니들의 꽃밭에서 꽃을 한 송이씩 꺾었어요. 그리고 나서도 인어 공주는 궁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푸른 바다로 나왔습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고, 달빛이 바다를 조용하게 비치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을 굳게 하고 물약을 마셨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부드러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어요.
인어 공주는 해가 높이 떠오른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실을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녀 앞에 아름다운 왕자님이 서 있는 것 아니겠어요?
왕자님은 검은 두 눈으로 인어 공주를 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꼬리가 있던 자리에는 작고 하얀 두 다리가 있었습니다. 완전히 발가벗은 모습이었어요. 인어 공주는 부끄러워서 긴 머리카락으로 얼른 몸을 감췄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도대체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부드럽게 왕자님을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혀를 잘린 인어 공주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왕자님은 곧 인어 공주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녀가 말한 것처럼 인어 공주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잘 참았습니다. 왕자님의 손에 이끌려 마치 비누방울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왕자님은 우아하고 가벼운 인어 공주의 걸음걸이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비단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는 궁전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였어요.
인어 공주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비단과 황금으로 단장한 여인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왕자님은 박수를 치면서 여인들에게 미소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아, 왕자님의 곁에 오기 위하여 내 아름다운 목소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왕자님이 알아줄 수만 있다면!'
여인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도 춤을 추었습니다. 발끝으로 마루 위에 서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춤을 추었어요. 그 아름다운 춤은 여인들의 노래보다 훨씬 더 깊은 가슴 속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왕자님은 인어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발이 마루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어 공주는 더욱 열심히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승마복을 입혔습니다. 함께 말을 타기 위해서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과 함께 말을 타고 초록색 숲을 달렸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며 노래하고 있었어요. 높은 산에도 올라갔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드러운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인어 공주는 오히려 즐겁게 웃곤 했습니다.
6. 그 바닷가의 공주님
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이면 인어 공주는 넓은 대리석 계단을 걸어 내려와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러면 타는 듯 쑤시던 발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인어 공주는 저 바다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언니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이 날도 인어 공주는 뜨거운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있었어요. 이 때 귀에 익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언니들이었어요.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언니들은 다가와 막내 공주 때문에 다들 얼마나 가슴아파 하는지를 얘기했습니다.
그 뒤로 언니들은 매일 밤 인어 공주를 찾아왔습니다. 한 번은 늙은 할머니와 아버지까지도 올라왔답니다. 할머니는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바다 위로 올라온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는 멀리서 인어 공주에게 손을 흔들기만 하고 육지 가까이로 오지는 못했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꼭 왕자님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어 공주는 영혼도 얻지 못한 채 바다의 물거품이 되어야 하니까요.
'왕자님, 나를 가장 사랑하실 수는 없나요?'
왕자님이 인어 공주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 인어 공주의 두 눈은 이렇게 묻는 것이었어요.
"그래요, 당신은 나에게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라오.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 마음씨가 곱고 아름다워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 아가씨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 때 나는 배를 타고 있다가 그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파도에 휩쓸려 바닷가로 밀려왔지요. 그리고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를 살려주었어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아가씨를 잊을 수 없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아가씨를 꼭 닮았어요. 아마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내게 보낸 모양이지요?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아요."
'아, 제가 바로 왕자님을 구한 사람이랍니다.'
인어 공주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이 말하는 그 아가씨는 바로 왕자님을 교회로 옮겼던 바로 그 아가씨였어요.
'그래, 나는 바위 뒤에 숨어서 그 아가씨를 보았어. 왕자님을 교회로 옮긴 아리따운 그 처녀 말이야.'
인어 공주는 깊이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그 처녀는 성스러운 수도원에 있다고 했어. 그 아가씨는 절대 이 세상에 나와서 살지 않을 거고, 두 번 다시 왕자님을 만나지도 못할 거야. 하지만 난 이렇게 늘 왕자님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내가 왕자님을 돌볼 거야. 왕자님을 위해 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어.'
그런데 어느 날 왕자님이 이웃 나라의 공주님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인어 공주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왕자님의 마음속은 자기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전 이제 떠나야 합니다." 왕자님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결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가씨를 사랑할 수 없어요. 그 아가씨는 너와 그 아리따운 교회의 처녀와도 닮지 않았을 테니까요. 만약 내가 내 뜻대로 신부를 선택한다면 당신을 고를 겁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습니다.
"혹시 바다를 무서워하는 건 아닙니까?"
이웃 나라로 가기 위해 화려한 배에 오른 왕자님이 인어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폭풍우, 바람이 잔잔해진 바다,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이상한 물고기들에 대해 얘기해 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미소만 지었습니다.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어 공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모두 잠든 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배의 난간에 앉아 맑은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바다 속 궁전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렇습니다. 머리에 은관을 쓴 할머니가 인어 공주가 타고 있는 배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언니들이 물 위로 떠올랐어요. 언니들은 하얀 손을 내밀며 슬픈 눈으로 인어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가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어떤 선원이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언니들은 서둘러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배는 이웃 나라의 화려한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도착하자 교회들이 일제히 종이 울렸습니다. 깃발이 나부끼고, 번쩍거리는 칼을 찬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높은 탑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면서 사람들이 왕자를 맞이했습니다.
그 도시에서는 매일 밤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그 나라의 공주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공주님은 멀리 떨어진 어느 수도원에서 왕비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배우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드디어 그 나라의 공주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그 공주님을 보았습니다. 공주님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길고 검은 속눈썹, 검푸른 눈... 그렇게 미소를 짓는 그 공주님의 모습은 이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바로 당신이군요! 그 바닷가에서 저를 구해주셨던 분이..." 왕자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자님은 얼굴을 붉히며 서 있는 공주님을 껴안았습니다.
"아,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야!"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도 자신의 기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말했습니다.
"이제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당신도 나의 이 행복을 기뻐해 주겠지요?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와 생각이 같으니까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무척 슬펐어요. 이제 왕자님이 저 공주님과 결혼을 하면 자신은 바다 위의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의 종들이 울리고, 심부름꾼들이 여기저기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왕자님과 공주님의 결혼식을 알렸습니다.
도시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신랑 신부는 나란히 손을 내밀고 주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물거품이 되고야 말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죽음의 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7. 해가 떠오르기 전에
그 날 저녁 신랑 신부는 배에 올랐습니다. 대포가 울려 퍼지고 하늘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배의 한가운데에는 왕자님과 공주님을 위해 황금빛과 자주빛으로 곱게 장식한 방이 마련됐습니다. 바람을 받아 돛이 부풀어오르자 배는 이제 가볍게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오색 찬란한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갑판 이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의 생일 날 바다 위에 난생 처음 올라와서 보았던 그 배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도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치 제비가 날쌔게 맴을 도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춤을 추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면서 인어 공주에게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인어 공주도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춤을 춘 적은 없었답니다. 부드러운 두 다리를 날카로운 칼날이 베는 것 같은 고통도 지금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 두 다리보다 마음이 훨씬 더 아픈 거예요. 오늘이 왕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인어 공주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주어가면서 이런 고통을 참았던 것은 오직 왕자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과 함께 공기를 숨쉬는 것도, 깊은 바다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오늘이 마지막이랍니다. 영혼을 가질 수 없는 인어 공주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영원한 밤의 어두움일 뿐이지요.
배 위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즐겁고 흥겨운 축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 가득 품고서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님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신부를 안고서 화려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배는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적에 잠겼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팔을 난간에 기대고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바닷물 위로 언니들이 떠올랐습니다. 언니들도 인어 공주처럼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언니들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린 해가 뜨기 전에 너를 살리려고 이렇게 달려왔단다. 우리 모두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고 이렇게 칼을 얻어 왔어. 자 여기 있단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이 칼을 왕자의 가슴에 꽂아야 한다. 왕자의 따뜻한 피가 네 발을 적시면 네 꼬리가 다시 자라나는 거야. 그러면 너는 다시 예전처럼 인어가 되어 앞으로 300년을 더 살 수 있어.서둘러야 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를 죽여. 아니면 네가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할머니도 너무 슬퍼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흰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었어. 왕자를 죽이고 돌아오려므나! 서둘러야 한단다! 저기를 봐! 하늘에 저렇게 붉은 띠가 나타나는 게 보이니? 이제 금방 해가 솟을 거야. 그러면 넌 죽고 마는 거야!"
언니들은 칼을 인어 공주에게 주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주빛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님이 왕자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자는 모습이 보였어요. 인어 공주는 허리를 굽혀 공주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아침 노을이 밝아오는 하늘과 날카로운 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꿈을 꾸면서도 신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칼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러나 마침내 그 칼을 멀리 바다 가운데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왕자님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 부드러운 햇살은 죽음처럼 차디찬 바다를 비추었어요.
인어 공주는 죽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밝게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었어요. 햇빛 사이로 투명한 모양들이 수백 개나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모양들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위 배의 하얀 돛과 하늘의 붉은 구름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투명한 모양들은 어떤 곡조를 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점점 더 하늘 높이 떠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형체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인어 공주가 물었습니다.
"공기의 딸들에게로 가는 거예요."
다른 형체들이 대답했습니다.
"인어는 영혼이 없지요.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질 수 없어요. 공기의 딸들도 역시 영혼은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착한 일을 하면서 영혼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는 중이에요. 공기를 통해서 꽃의 향기를 이 세상 멀리까지 퍼뜨리는 거랍니다. 300년 동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영혼을 얻을 수 있어요. 가엾은 인어 공주님, 당신은 마음을 다 바쳐 영혼을 얻으려고 했지요. 엄청난 아픔을 참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그 고통이 당신을 공기의 요정들의 세계로 끌어올린 거랍니다. 이제 당신이 착하게 살아가면 300년 뒤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두 팔을 해를 향해 뻗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 위에서는 왕자님이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인어 공주를 찾고 있었어요. 그들은 슬픈 얼굴로 진주빛으로 빛나는 바다의 거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어 공주가 바다 속으로 뛰어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신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에게는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공기의 요정들과 함께 장미빛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300년이 지나지 않아도 우린 그 곳에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착한 어린이를 찾아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 기간을 줄여 주십니다. 그러면 300년 가운데서 1년이 줄어드는 거에요.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도 하루씩 늘어나게 됩니다."
첫댓글 동화속으로 잠시 빠저 봅니다.....이많은 글 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