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25장은 욥기 가운데서 가장 짧은 장으로서 불과 6절밖에 안 됩니다. 25장은 수아 사람 빌닷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닷은 악한 자들의 형통을 주장한 욥의 반론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상대적으로 인간의 비천함에 대하여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욥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1) 세번째 변론에 나서는 빌닷
25장은 빌닷의 세번째 변론으로 친구들의 모든 변론들 중 마지막에 속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은 지금까지 욥의 말을 듣고 욥의 견해를 반박하지는 않지만 나약한 인간이 감히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빌닷의 주장은 친구인 욥의 고난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진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25장의 빌닷의 논리가 욥을 비판하는 데 사용된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그의 주장은 진리임에는 분명합니다.
a.권능이 하나님께 속함(시62:11)
b.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음(대상16:27)
2) 권능의 하나님
빌닷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주권과 권위의 근원이 되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권능은 독립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어느 누구도 이러한 권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다(참조, 신32:39)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 주듯 이 하나님께서는 유일무이하신 분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구원 역사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은 그 어떤 희망이나 구원의 가능성도 없는 것입니다.
a.큰 권능으로 구속하심(느1:10)
b.주의 오른손의 권능(출15:6)
3) 위엄의 하나님
하나님은 위엄이 있는 분으로 모든 피조물은 그 앞에서 굴복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공통점은 정확한 신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맹목적이고 광적인 신앙에 휩쓸리게 될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된 것일수록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더욱 올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촉하심으로 우리에 대하여 모르심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머리털이 몇 개 인지까지 계수하시며 마음의 계획과 생각까지 세밀하게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숨기거나 감춰지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a.존귀와 권위를 입으심(시104:1)
b.여호와의 이름의 위엄(미5:4)
2. 화평하게 하신 하나님
1) 화평을 베푸심
빌닷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베푸시느니라'의 원래 뜻은 수행하다 혹은 준비되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미래형인 동시에 조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간구하기만 하면 언제나 영원히 은혜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암시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낮추어진 심령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면 화평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a.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심(엡2:16)
b.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목(고후5:18)
2)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주권과 위엄만을 소유하신 엄한 분이 아니라 인류에게 평화를 제공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참조, 엡2:14). 또한 예수께서는 친히 평화의 제물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가 영원한 평화 조약을 맺게 하셨습니다(참조, 요일4:9-10)
화평 하는 자의 복(마5:9)
3) 화평하게 해야 될 성도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로 자기의 몸을 드려 희생의 제물이 되심같이 화목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분쟁과 분열이 생겨져서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화목한 가정을 건설하기 위해서 제물이 되어야 하며 화목한 교회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a.하나님과 화목해야 평안함(욥22:21)
b.벗어 버려야 할 옛사람(엡4:22)
3. 하나님 앞의 인간
1) 의롭지 못한 인간
빌닷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고 불결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의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불의밖에 드러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주장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의 행위로써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진리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을 터놓으셨습니다. 부녀에게서 난 자들인 인간은 모두 깨끗하지 못하지만 산 소망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는 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a.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함(욥9:2)
b.행위로 의에 이르지 못함(롬3:19-20)
2) 의로운 인간이 없음
빌닷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어둡고 부족함을 설명하며 여기에 인간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가를 추론해 내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하지 못하고 별도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인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유전적인 타락성으로 인해 한 사람도 죄악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인간이 새로워져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죄악 중에 출생함(시51:5)
b.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3) 벌레와 구더기 같은 인간
인간의 부패성과 유약성을 표현하기 위해 성경에서는 벌레나 구더기 외에도 진토(참조, 시103:14),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벼운 존재(참조, 시62:9), 풀과 안개라 고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이렇게 연약한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겸손히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a.티끌과 같은 존재(창18:27)
b.신속히 날아감(시90:10)
결론
25장에는 빌닷의 세번째 변론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빌닷의 말은 진리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논리를 욥에게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도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