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박사의 『프랑스 혁명을 다시 생각한다』를 읽고
-대화식으로 작성한 글-
〇 매서운 한파가 창문을 때리는 날이었네. 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가락을 동무 삼아, 손때 묻은 중국 도자기에 보이차 한 잔을 우려냈지.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천천히 한 모금 들이켜니, 바깥공기는 칼날 같아도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도 고요하더군.
지난해에는 눈이 참 많이도 내렸지. 고갯마루 한옥까지 올라오는 길이 어찌나 험하던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눈 덮인 그 풍경만큼은 참으로 감동이었지, 올해는 눈 대신 지독한 추위가 길게 이어지는구먼.
생각해보면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부족하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이지.
안방 한쪽 벽에 편백 나무를 덧대었더니 방 안에 은은한 나무 향이 돌아 마음이 참 차분해지더군. 그런데 그 향기에 취해 있다가도 문득 걱정이 앞서대.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은 지금 어디를 향해 불고 있는 걸까.'
그 깊은 질문 끝에, 나는 젊은 시절 뜨겁게만 읽었던 프랑스 혁명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네.
숭고한 구호 뒤에 숨은 칼날
1789년, 그때 사람들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참으로 귀한 말을 내걸었지.
인간을 짓누르는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겠다는 그 약속,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겠나.
하지만 그 환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그 고귀한 구호들은 무서운 괴물로 변해버렸지.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면서도 이웃을 밀고했고,
평등을 말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렸으며,
박애를 주장하면서 수십만 명을 차디찬 단두대로 몰아넣었네.
가장 인간적인 꿈이 왜 가장 비인간적인 핏빛 역사가 되었을까.
산전수전 다 겪고 보니,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날까지 가슴에 새겨야 할 묵직한 숙제가 아닌가 싶네.
정치가 도덕의 옷을 입을 때
프랑수아 퓌레라는 학자는 이 책에서 혁명을 단순한 옛날이야기로 보지 않더군.
그는 공포정치가 지도자 한 명의 광기나 어쩔 수 없는 사고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 오히려 그 이념을 너무나 '충실히' 밀어붙인 결과였다는 거지.
혁명 전의 정치는 그래도 서로 달래고, 나누고, 타협하는 맛이 있었네.
그런데 혁명이 시작되니 정치가 갑자기 '선과 악의 싸움'이 되어버렸어.
내 편은 절대 선이고, 네 편은 절대 악이니 타협은 곧 배신이 된 게지.
자유와 평등이 정책이 아니라 종교 같은 '도덕적 명령'이 된 순간, 반대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처단해야 할 범죄자가 된 것이야.
'국민'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권력
퓌레는 '국민'이라는 말에 주목했네. 혁명은 늘 "국민의 이름으로" 행해졌지.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순식간에 '국민의 적'이 되고 말았어.
그러니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있겠나?
그저 제거하면 그만인 것을. 공포정치는 그렇게 해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것이지.
참으로 무서운 역설이지 않나.
자유는 원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데,
혁명은 오직 '하나의 올바른 자유'만을 강요했어.
내 생각과 다른 자유는 '가짜'라고 몰아붙였지.
결국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금지하는 비극이 벌어졌고,
단두대는 그 뒤틀린 논리가 만들어낸 마지막 종착역이었네.
평등도 마찬가지야. 법 앞에 공평한 건 좋지만,
그것을 도덕적인 잣대로 들이대면 정치는 감정의 싸움터가 되고 말지.
누구보다 부유하거나, 영향력이 있거나, 많이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세상. 재산은 의심의 대상이 되고 명성은 범죄가 되며,
그저 가만히 있는 중립마저 공범으로 몰리는 광기의 시대였어.
혁명은 적을 먹고 산다
혁명은 쉬지 않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적'이 필요했지. 적이 사라지면 혁명의 열기도 식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혁명은 쉴 새 없이 적을 만들어냈고,
공포정치는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톱니바퀴가 되었던 거야.
퓌레는 혁명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그렇다고 저주하지도 않더군.
그저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를 절대적이라고 믿을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를 경고하고 있네. 자유와 평등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인간 위에 군림하게 한 것이 문제였다는 뜻이지.
평안을 위하는 간절한 기도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참으로 크네.
도덕을 독차지하려는 정치,
국민의 이름을 빌려 휘두르는 권력,
나를 따르지 않으면 악으로 규정하는 그 서슬 퍼런 언어들….
이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서도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모습이야.
성경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나는
프랑스 혁명은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는가"를 시험했던 오만한 실험이었다고 보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지.
그건 종교를 믿으라는 강요가 아니라, 인간 권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라는 겸허한 선언이라네.
기준 없는 자유는 폭력이 되고, 책임 없는 평등은 시기심이 되며, 하나님 없는 박애는 결국 강요로 변하고 말지.
프랑스 혁명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증명한 사건이었어.
자유는 신을 부정할 때 얻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미천함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겸손해질 때 비로소 지켜지는 법이라네.
가슴에 남은 몇 마디
공포정치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그릇된 이념이 낳은 필연이었다.
정치가 도덕의 탈을 쓰면, 반대자는 이웃이 아니라 죄인이 된다.
'국민'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이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결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소박한 평안이 내 자손들에게도 온전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 하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포용하는 그 '너른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