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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붓다의 뗏목 원문보기 글쓴이: 뗏목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다제 비구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識)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 라고 그와 같이 말하였는가?"
다제 비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참으로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식(識)인가?"
다제 비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이 식이란 말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짓고 남을 짓게 하며, 일어나고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다제 비구야, 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하였다고 알고 있으며, 누구에게서 내가 그렇게 설법을 하더라고 들었느냐?
너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는구나.
너 어리석은 사람아, 모든 비구들에게 꾸짖음을 들었으면 너는 그때 마땅히 법대로 대답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보리라."
이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아, 너희 또한 내가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설법했다고 기억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는 내 설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저희는 세존께서 '식은 연(緣)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라고 설법하신 것으로 압니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식은 연을 따르게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세존께서는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가 그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왜냐하면 나도 또한 그렇게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라고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라고 말했다.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곧 눈과 빛깔을 연하여 식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眼識)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식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意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불이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 것과 같나니, 그 연이란 나무를 연하여 불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불이 생긴 뒤에는 나무의 불이라고 말한다.
또 풀이나 똥 무더기를 연하여 생긴 불은 풀의 불, 똥 무더기의 불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곧 눈과 빛깔을 연하여 식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과 법을 연하여 식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이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는 내가 이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런데 저 어리석은 사람 다제 비구는 그 뜻과 글을 거꾸로 받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거꾸로 받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모함해 비방하고, 스스로 자기를 해쳤으며, 계를 범하고 죄를 지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나무람을 받고, 또 큰 죄를 지었다.
너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이렇게 악하고 착하지 않은 줄을 알겠느냐?"
중아함경 제54권 《201. 다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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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사띠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됩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띠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지워져서 일어난다[緣起]고 설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반문하고 대꾸하고 대화하였지만 그 삿된 견해를 완강하게 국집하고 고집하여 주장하였다.
“도반들이여, 저는 세존께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識)가 건너가고 윤회한다.' 라고 설법하셨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비구들이 사띠를 데리고 세존께 가서 지초지종을 다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사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띠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識)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좋고 삿된 업들의 과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쓸모없는 인간이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이 쓸모없는 인간이여, 참으로 나는 많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지워져서 일어난다고 설하였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쓸모없는 인간이여, 그러나 그대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부덕을 생기게 하는구나.
이 쓸모없는 인간이여, 그러니 그대는 긴 세월을 이익됨이 없고 괴롭게 될 것이다.” <중략>
“비구들이여, 마치 무엇이든 그것을 반연하여 불이 타면 그것에 의해서 용어가 생기나니,
장작을 반연하여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지저깨비를 반연하여 불이 타면 지저깨비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짚을 반연하여 불이 타면 짚불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소똥을 반연으로 하여 불이 타면 소똥불이라는 용어가 생기며,
왕겨를 반연으로 하여 불이 타면 왕겨불이라는 용어가 생기며,
쓰레기를 반연하여 불이 타면 쓰레기불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 참고 : 제자의 죽음 앞에서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 : 기름과 등불 http://cafe.daum.net/bd-dm/BQ8r/4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무엇이던 그 조건을 반연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에 의해서 용어가 생긴다.
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눈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귀와 소리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귀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코와 냄새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코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혀와 맛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혀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몸과 감촉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몸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마노[意]와 법들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일어나면 마노의 알음알이라는 용어가 생긴다.” <중략>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역시 이와 같이 설하고 나도 역시 이와 같이 설한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行]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알음알이[識]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名色]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六入]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受]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愛]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 남[生]이,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 12연기 유전문 순관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5취온苦]가 일어남이다.”
[집성제(지금 여기 현실에서의 괴로움의 (원인)발생 구조인 12연기 유전문), 제헹무상] => [고성제(5취온苦), 일체개고]
(* 외도의 주장경 [4성제] 설명 부분 참고 : http://cafe.daum.net/bd-dm/AHxb/15)
(* 연기법에 쓰인 용어의 의미 http://cafe.daum.net/bd-dm/ALiV/93)
“그는 눈(眼)으로 형색[色]을 보고서 [6입] => [촉] => [수]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홀리게 되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는 혐오한다.
그는 몸에 대해서 마음 챙김[念]을 확립하지 못하고 머문다.
마음은 제한되어 있고 그에게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무슨 느낌[受]이든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치우쳐서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가 그런 느낌[受]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므로 기쁨[愛]이 일어난다.
느낌들에 대한 기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5취온苦]가 일어남이다.
[집성제(유전문, 제행무상)] => [고성제(5취온苦, 일체개고)]
귀(耳)로 소리를 듣고서, …
코(鼻)로 냄새를 맡고서, …
혀(舌)로 맛을 보고서, …
몸(身)으로 감촉[觸]을 닫고서 …
마노(意)로서 법을 분별하여 알고서
사랑스러운 법에는 홀리게 되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는 혐오한다.
그는 몸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머문다.
마음은 제한되어 있고 그에게서 삿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어버리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무슨 느낌이든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데 치우쳐서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다.
그가 그런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으므로 기쁨이 일어난다.
느낌들에 대한 기쁨이 바로 취착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덩어리가 일어남이다.” (M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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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We Have to Know About Dependent Arising?
왜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에 대해 알아야 하는가?
For the purpose of learning and cultivation, we must know dependent arising. Because nobody understands it, it has become a fallacy. The ordinary people’s fallacy is similar to Bhikkhu Sati’s belief: “Only the consciousness is going around in samsara.” This bhikkhu insisted that there was a “person,” “self,” or “sentient being” in the consciousness, which dwelled in samsara from one lifetime to the next. Believing that the consciousness has a “person,” “self” or “sentient being” that is perpetually going around in samsara is a fallacy resulting from ignorance of the nature of dependent arising.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의존적 일어남[연기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릇된 믿음' 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그릇된 믿음은 빅쿠(수행승) 사띠의 믿음과 유사합니다.
즉 "의식(識)만이 윤회한다"는 그릇된 믿음입니다.
빅쿠 사띠는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윤회하여 머무르는 의식(역주 : 후대의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재생연결의식 및 바왕가)에 '사람', '자아', 또는 '유정체' 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식이 영속적으로 윤회하는 '사람', '자아', 또는 '유정체'를 가진다는 믿음은 의존적 일어남의 법(담마)을 모르는 것에서 생긴 그릇된 믿음입니다.
All the bhikkhus tried to convince Bhikkhu Sati to abandon the fallacy, but Bhikkhu Sati was adamant about his view. The bhikkhus then told the Buddha about it, and the Buddha talked to Bhikkhu Sati. The Buddha asked him, “Do you really have such a concept?” Bhikkhu Sati said, “There is only the consciousness that is going around in samsara.” The Buddha then asked, “What is this consciousness that you speak of?” Bhikkhu Sati replied, “Esteemed Buddha, the consciousness is the entity that can talk, feel, or receive all the karmic repercussions.”
His was a very serious fallacy: a consciousness that facilitates talking, feeling, and receiving of all karmic repercussions.
모든 빅쿠들(수행승들)이 빅쿠 사띠가 그릇된 믿음을 버리도록 설득했으나, 빅쿠 사띠는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빅쿠들은 붓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붓다께서는 빅쿠 사띠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정말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빅쿠 사띠는 "의식만이 세상을 돌며 윤회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붓다께서는 "그대가 말하는 이 의식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빅쿠 사띠는 "존경하는 붓다시여, 이 의식은 말하고 느낄 수 있고 모든 업의 영향(결과)을 받는 실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띠의 견해는, '말하고 느끼는 것을 돕고 모든 업의 영향(결과)을 받는 의식이 있다'는 매우 심각한 그릇된 믿음입니다.
Ordinary people do not know why it is a fallacy because they believe, as Bhikkhu Sati did, that the consciousness exists perpetually. Since they are used to the idea, they do not consider it a fallacy. It is false to believe that the consciousness is perpetual, that it exists and acts on its own, and that it is not dependent arising. Consciousness, a manner of dependent arising, is devoid of ego. It manifests in an instant because of the interaction of mutually dependent conditions, and it advances to successive stages.
보통사람들은 빅쿠 사띠가 믿고 있었던 것과 같이, '의식이 영속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왜 그릇된 믿음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은 이 견해에 익숙해져, 이것이 그릇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식이 영속하고, 존재하며, 그 스스로 작용하고,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그릇된 믿음입니다.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방식의 의식은 에고가 없습니다.
의식은 서로 의존하는 조건의 상호작용 때문에 한 순간에 나타나서, 이어지는 단계로 진전됩니다.
Bhikkhu Sati maintained that there was an ego or a consciousness with an ego that went around in samsara. This consciousness did not only exist in the instant but also persisted to the next life. He called the ego that could talk, feel, or receive karmic repercussions consciousness.
빅쿠(수행승) 사띠는 세상을 돌며 윤회하는 에고, 또는 에고를 가진 의식이 있다는 견해를 유지했습니다.
이 의식은 이 순간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음 생으로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빅쿠 사띠는 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업의 영향(결과)을 받는 에고를 의식이라고 했습니다.
The common view prevents people from seeing the fallacy. Consciousness is devoid of ego. If consciousness exists, then it is dependent arising. It is a natural phenomenon manifested from successive occurrences due to mutually dependent conditions. It is not an entity.
보통 견해는 사람들이 그릇된 믿음을 그릇된 것으로 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의식에는 에고가 없습니다.
의식이 존재하면 그것이 의존적 일어남입니다.
이것은 상호 의존적 조건때문에 잇다른 사건으로부터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입니다.
이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http://cafe.daum.net/bd-dm/G1Xy/7
* 참고 : 정견(正見)이 먼저 정립되어야...[사견(邪見)이 괴로움의 원인!] http://cafe.daum.net/bd-dm/BGji/257
[사념처 위빠사나의 지혜에 대하여]를 읽고...[윤회는 없다!] http://cafe.daum.net/bd-dm/BGji/312
첫댓글 업력이란게 있어서 윤회 할까요 쌋띠비구하고 같은말하는건 아닐가요?
마음=업=업력=식=의식=전오식=야뢰야식 이런관계가 성립되는데요?
조건으로 해서 생겨나고 소멸해간다
_()_
야쇼다라님 파알리어로 씌여졌다는 니까야라고 하는 것도 석가모니 사후 400년이 지나서 구전 돼어 오던 것들을 모았다고는 하나 마가다어를 썼다는 석가모니 말이 산스크리스트어의 고어인 범어로 또 구정 돼고 그렇게 구전 돼던 말이 또 파알리어라고 하는 언어로 번역 돼어져 씌여 졌다고 하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공통 됀 주장이죠....여러가지 갈레로 구전 돼어 오던 것을 모아서 가감없이 정리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부파별로 종파별로 자기 입맛에 맞게 전승돼어지던 것들이라~~한번쯔음은 니까야라고 하는 것도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라는 용어가 정의 돼어진 시기는 제가 찾아 보니 대승입능가경 시대 즉 용수보살 시대정도가 돼어서 씌여진 용어더군요.....고 무상 무아가 석가모니 삼법인이고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는 후대 용수시대정도에서나 정립됀 개념이더군요....저는 용수~~나가르주나~힌두교 나가족 출신의 성자라고하는 용수보살을 불교도라고 보지는 않습니다....그의 사상은 구차제정으로 봐도 비상비비처정에서 보는 의식의 적멸~공의 자리를 득한 8지라서 육신의 한계를 보고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단계를 보지 못한 수행자라서 팔정도가 없죠....단지 공사상이 그의 전부인 셈이죠....
육신을 가진 인간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고 그러한 죽음을 맞이하면 육신에 연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같이 멸해서 없어진다~~뭐 그게 불자들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 초딩들도 아는 말이라고 하든데~~실은 사성제 중에서도 그 말이 더 엄청난 무게를 지닌 말이라고는 사람들이 잘 생각을 못하더군요....자기 속에 든 상을 수행을 해 보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게 됍니다.....자기 속에 든 상 역시 자신이 있기때문에 존제하는 것이거든요.....
전 빨리어가됐던 마가다언어가 됐던 그것이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죽어서 가는 윤회는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껏 교육되고 쇠뇌된 법은 문제를 내포한다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만 사성제 팔정도 37보리분법은 맞다란 입장이고 도를 딱는다는게 팔정도를 여기서 행하면서 살아가는것이 부처님 법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같이 안거를 보낸스님 말씀도 부처님처럼 사는 것이 아라한이고 부처다 말하는거죠
아라한은 누구죠? 부처님이 지시하신 팔정도 잘 행하는 분아닌가요?
아니다 하면 할말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든 상을 보는 단계~~즉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라는 단계정도는 제가 보기에 색계선을 마친 자라야 가능한 수준이고 그 때의 색이라고 하는 것은 무색계선이라고하는 단게에 들었을 때 즉 엄청난 집중이 돼어진 상태에서 자기 무의식계 속에 든 상이 저절로 일어나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자기 속에 든 환~~~을 이야기하는 것이죠...그런 수행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말이 뭔 말인지도 모르더군요....단지 글짜 그대로 색이라는 단어를~~물질계로 번역을 해 버리고는 인생이 무상이다~~하고 있더군요.....
네 그 사성제가 아리아쌋자고 그것이 이 삶속에서 고통이란걸 정확히 보고 잘살자는 말로 알아 들엇습니다
구루뫼님 말씀대로 그 사성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전부 녹음기죠
중들 입에서 나온대로 받아 들여서 그런거죠
사성제 고집멸도 이말만 하면 100점이고 돈마니 갔다주면 대보살아닌가요?
제가 중들 돈주지 말라고한적있습니다
목사들 보세요 배지 부르니 쎅스 스캔들에 사람이 상하자나요
에어짱 잘아시죠
이런 한심한 세상 부처님이 결정고 그런말슴 하신적 없다는 겁니다
중놈이라 했을때 실은 조금 동요하던데요 오죽했으면 그렇게 하셨냐 생각에 감사할따름입니다
님 역시 그러한 글을 몸으로 확증하지 못하고 글짜들만 모아서 추측내지 그러한 것이 맞다는 정도 하시는 것으로 저는 봅니다.....그러한 분들의 그런 소리는 해 봐야~~~찬양가 밖에 돼지 못하더군요.....글짜 잘 이해한다는 사람치고 어떤 상황이든 부딪혔을 때 자기 중심을 잃치않고 바로 서서 바르게 행하는 사람 별로 없더군요....자기 스스로를 아주 객관화 시켜 볼줄 아는 힘~~그렇게 해서 아주 객관화됀 시각으로 판단하는 힘~뭐 그런 것도 자기를 보다 보면 조금씩은 보이더군요....찬양가는 아무리 뜻이 좋고 위대한 진리로 각색을 해서 찬양가를 부른다손 치더라도 찬양가일 뿐이죠.....그럼 이만~~~~
그 정도로 밖에 안보인다면 할수 없죠 어떻게 보여줄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색계선 무색계선 이거 부처님 별로 탐탁치 않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선정이란단어에 미쳐 있는분 같은데요 그럿담 그렇게 해야죠 딴말하기가 그렇내요
윤회없다는 뎃목 등의 카페를 보면
윤회가 없다는 자들이 뭔 걱정을 그렇게 하는지 몰라요.
남들은 윤회를 끊어 해탈열반 하려고 위빠사나 사띠 수행에 골치 아픈 교리교학에 두타행을 하니 장자불와를 하니 하는데,
죽으면 그뿐이라는 단멸론자들이 뭐하러 불경을 헤집고 다니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ㅎㅎㅎ...
윤회를 끊는다~~어리석은 행위를 끊는다~~~정도 하시는게 어떨까 합니다...결국 인간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게 돼면 몸으로 증득을 한 아라한도 증득하지 못한 범부도 가면 오지 못하는게 현실입쬬....그 법이 누구에게는 통용이 돼고 누구에게는 통용이 돼지 않는 법도 아닌데~~결국 초기불교를 만든 놈들이 이천년 전 우매한 중생들을 겁박해서 중놈우월주의를 만드는 과정에서~사무색계에든 성자를 지칭해서 가도 몇번 더 온다~가면 한번 온다~가면 인제 다시 안온다는 허황됀 종교를 만들고는 중놈들한테 보시해라는 식의 교리를 만들다 보니~~그런 허황됀 주입식 교육에 빠진 것이 지금의 불교가 돼어 버렸더군요...
죽으면 끝이라는 단멸론자들이 불경을 헤집고 다니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뭐 심심해서 그러고들 있는건 아니겠죠~~ 그들이 하는 말에도 읽어보면 일리있는 이야기들 많던데요..
구르뫼 님!!! 단현님 !!!
한 가지 물어 봅시다 ...
제 글중 노 보살님과 삼존불 그리고 노보살님 . 가피와 위신력. 허공계의 즐거움 등등...
이것은 조건이 만들어져 결과를 이룬것이지요..
개중에는 결과를 이루는 과정의것도 있지요..
이것은 무엇으로 정의 할련지요..
그럼 이것은 인을 심어서 과를 받음인데 이것은 윤회의 원리중 어디에 속합니까???
가피와 위신력인 경우 갈비집 보살님과 거사님이 일심으로 기도하여서 초상치르라 말한것을 뒤집었고 지금 아주 건강한데...
인은 제가 심었지만 아니지 인도 갈비집 내외가 심고 과도 갈비집 사장이 받았으면 이미 그들은 윤회의 한 과정을 겪음인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 합니까??
그러함은 찰라적인 생멸에서 오직 일심만이 가능한데 그럼 찰라의 강력한 일심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리는지 그것은 연기에서 무슨 말로 설명되는지 그것이 인을 심어서 과를 받는 윤회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 바랍니다...
실천적 행을 해보고 드리는 질문이니 묵살하지 마시지요...
만약 그분들이 간절함이 아닌 육도의 생각으로 살았더라도 그 분들이 다시 새로운 삶을 살수가 있었겠는지요!!!
천개의 논리와 개념보다 한 행이 중요한 법입니다..
_()_
제가 님글을 자세하게 읽어 본 적은 없습니다..하지만 연기니 인과라고해서~~그것이 현실 세계의 연기와 인과로서 이야기 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연기라고 하는 것은 선정과 삼매 상태에서의 의식의 차원으로서의 연과 기를 말하는 것이고 님이 말씀하시는 가피나 어떠한 내가 아닌 나 아닌 다른 신적인 차원에서 주는 인과라고 하는 것은 제가 알기로는 자이나교나 힌두교기독교 같은 나아닌 신격을 믿는 종교 교리정도 돼는 것인데~~그러한 것이 실제한다~~주변에서 일어 난 일이다...는 간증 같은 것은 기독교가시면 더 많습니다....차라리 그런 종교를 믿으시는게 어떨찌 하는데요....
위에 본문 같은 경우만 하드라도~~실제 수행자들이나 봐야 할 내용인데~~쓸데 없이 종교화 시키다 보니 현실세계에서도 그러한 법칙이 성립돼드라는 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서 도움이 돼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려다 보니~~해괴한 간증도 법이드라라는 말이 돼어버리는 것 같습니다....그런 것은 나 아닌 신이나 믿는 사람에게 가셔서 말슴하시는게 나을듯 합니다....
아 !!!
그래요..
내가 예수쟁이니 가서 하나님께 기도 해라 이말이요..ㅎㅎㅎ
이것보시요. ...님!!!
말만 앞세우는 양반들아...
행이 뭔지 아시오!!!
행이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것이 행이오...
난 ...
말을 뻑쩍찌근하게 해서 뭔가 아는줄 알았더니 별거 아니네..ㅎㅎㅎ
말로 앞세우기나 하고 행의 자리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불법을 논하고...
여러가지 하네..ㅋㅋㅋㅋ
그러면서 세치혀로 스승이나 까고..
난 또 쭉정이가 아니고 알맹인줄 알았지...
그깟 지식 나부랭이가 뭐 대단한줄 알아!!!
님!!!
그게 그리 간단한줄 알아!!!
말처럼 쉬운줄 알아 입만열면 예수타령하면서 지들이 맹신에 빠진것 알아!!!
행이라 불교라는 싸이비 종교에 행이라는 말은 의미가 참 다양하죠....색수상행식에서 보면 행은 식 이전의 식을 일으키는 관념이 돼고~~색상 수상 상상 행상 식상으로 보는 초기불교식의 행은 오수음이라는 말의 개념으로서 그 때의 행은 행의 상이라고 해서 색계선 이후에나 보는 허공장을 행의 상이라고 했죠....부모미생전이리 토끼뿔이니 하는 것이 전부 그러한 행으로 표현이 돼는 그러한 말로~~말에는 개념이 중요하죠....안촌장님이 말하시는 그러한 행은 행위나 행동을 뜻하는 말로 자비행을 하고 싶따 뭐 그런 모냥이신데 그러타면야 굳이 수행을 씨부리는 불교라는 종교는 왜 믿으시우????봉사단체 가시지~~~
수행자의 기준이 뭐요!!!
머리깍은이... 좃나게 교리에 밝은이 아님 돈 많아서 공부하는데 힘 안들이고 하는이...
님!!!
다른이를 위해서 울어봤어!!!
그들을 위해서 몇 날 몇칠을 날을 새면서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온 정열을 쏟아 부어봤어!!!
좆도 뭘 했다고 수행자 타령에다가 수행하는이 안하는이 구분을 지어 짓기는!!!
내가 입으로 욕 안할려 했는데 ...
수행을 말하기전 수행이란것을 온몸으로 겪어보고 수행타령을 들먹여...
좆도 자비 사랑이 왜 자비 사랑이라 부르는줄 알아 ...
니 몸뚱이로 실천해봤어!!!
조동이만 살아서 그깟 글자 몇 자 가지고 씨부렁거리기나 하고..
불법이 뭔데 상생법이야 상생법..
알간!!
그리고 저야 몸뚱아리를 혹사해야 먹고사는 직업이 기름쟁이다 보니 자식들 키우며 내 쳐 묵꼬 살기도 바빠~~그런 것은 꿈도 못 꾸는 지경이라우~~~직업도 변변찮은 나라는 놈도 제 식구도 자기도 못 챙기는 놈이 뭔노메 남을 생각할 겨를이 있어야죠~~~뭐 하다 못해 집에 퇴근이나 하면 나름 폼이나 잡는다고 쪼매 쳐 앉아서 자기 본거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놈이라우~~~뭐 그런 싸가지 없는 놈한테는 남의 나라 이바구같은 그런 소리는 왜허슈????내한테 딸린 식구가 줄 잡아서 열손구락 정도 돼는데~~그놈들이나 자알 키우는 것도~~나름 보람이 있는 일이라우~~
어이 !! 내가 뭘하던 니 허락 받고 혀!!!
안보이는 사이버상이라고 조딩이 함부로 굴리지마!!!
좆도 아무것도 없는게 조딩이만 까져서 뭐...
꼴 값 고만 떨어 ...
알간..
꼴 깞은 니 집에 가서 혀...
수행은 감정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남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죠...쳐 앉아서 골 아프게 쳐 봐야~~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자기 밖에는 없는데~~~뭔노메 남타령???자기 하나도 바로 세우질 못하는 등신들이 주댕이로야 남들 위한답시고 쳐 만든게 종교라든데~~~뭐 보니 지넘들 비러 쳐 무글라꼬 맹근게 종굡디다~~~
불자도 아닌 놈이 있어 봐야~~별로 조을 것은 없는것 같꼬~~~여하튼 남타령들 많이들 하시구랴~~그럼 이만~~
치고 빠진다...ㅎㅎㅎ
잘 가시오...
욕 해서 미안하외다.
용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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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끝까지 못읽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