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끊기고 엘리베이터 먹통… 전세사기 아파트, 피해자 두번 울린다
이혜진 기자
입력 2023.04.25. 10:38
업데이트 2023.04.25. 11:25
지난해 11월경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의 급수가 중단돼 구청에서 주민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모습. /피해주민 제공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들에서 각종 하자·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한 아파트에서는 지난해 엘리베이터가 한 달간 고장 난 채 방치되고 사흘간 수돗물이 끊기는가 하면, 또 다른 아파트에서는 주차타워에서 차량 승강기가 추락하면서 세입자의 차량이 박살 났다.
21일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 주민에 따르면 2015년 준공된 H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여름 경매 대란이 터지자마자 2동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는 한 달간 고장이 난 상태로 방치돼 56가구 주민들은 더운 날씨에 매일 14층짜리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당시 H 아파트를 관리한 H 관리업체 측은 “비가 많이 왔는데 옥상 방수가 제대로 안 돼 엘리베이터 부품에 습기가 차고 환기마저 잘되지 않아 고장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옥상에 직접 올라가 확인해보니 이 아파트는 우레탄 방수 시공이 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당시를 떠올리며 “경매 대란이 터진 후 정신없는 와중에 관리업체를 찾아가 고쳐 달라 사정했지만 부품이 안 구해진다는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더라”며 “알고 보니 부품만 제대로 있으면 전문업체를 불러 하루 이틀이면 고칠 수 있었는데 한 달을 끌더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11월에는 2동의 지하 물탱크 펌프가 고장 나 급수가 3일 동안 중단됐다. 구청에서 1t 트럭으로 생수를 실어줘 식수는 해결했지만, 화장실 이용, 세탁, 샤워를 할 수 없는 주민들은 한겨울에 대중목욕탕을 찾아야 했다.
원칙적으로 집의 하자로 인해 수리가 필요할 경우 집주인, 즉 임대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차인의 과실이 고장의 원인이 아닌 이상, 집주인인 임대인에게 수리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관리업체는 ‘집주인이 없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엘리베이터 수리비와 물탱크 모터 수리비를 세입자들에게 ‘수선유지비’ 명목으로 청구했다. 비슷한 시기 고장 난 채로 방치돼있던 CCTV를 고치더니 이 수리비도 세입자들에게 청구했다고 한다.
피해 주민은 “애초에 집을 제대로 지었다면 지은 지 7여 년만에 이렇게 많은 하자가 동시다발로 발생할 리가 없지 않느냐”며 “집을 이렇게 부실하게 지어 놓고도 집주인이 제대로 고쳐 주지 않으니 결국에는 수리 비용은 수선유지비 형태로 모두 세입자들한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 주민은 “수선유지비가 더해지면서 과거 8만원 정도 부과되던 관리비는 집마다 3~4만원이 올랐다. 전세 사기를 당한 마당에 수리비까지 부담하려는 세입자가 어디 있겠나. 일부는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아파트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결국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관리업체가 바뀌어 M 관리업체가 H 아파트의 관리를 맡고 있다. 조선닷컴은 당시 관리를 맡았던 H 관리업체와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이미 결번된 번호였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주차타워에서 차량 승강기가 추락하면서 세입자의 차량이 크게 파손됐다./ 피해주민 제공
각종 시설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H 아파트뿐만 아니다. 피해 아파트 중 하나인 2016년 준공된 S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8월 주차타워의 차량 승강기가 추락하면서 차량이 파손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면, 한 흰색 승용차와 차량 승강기가 추락해 차량이 아래에 깔리면서 차량이 처참하게 구겨지는 등 완파된 모습이었다. 관리업체에 따르면 주차타워 회전판의 결함, 혹은 차량 하중 문제 등 기계적 문제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사고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주차타워 관리업체 측은 차량 수리비를 보험 처리했다. 그러나 주차타워 수리비는 지난해 9월, 10월 2개월 동안 고스란히 입주민들에게 수선유지비 명목으로 청구됐다.
주차 타워의 회전판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차량을 입고할 때는 전진으로 입차하지만, 출차할 때는 후진으로만 차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전세사기 공포에 세입자 “나가겠다”… 뱅크런 닮은 ‘전세런’ 우려 커져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택 사면 ‘취득세 면제’ 추진
원희룡 “전세사기 피해금 국가가 지원? 선 넘어선 안된다”
해당 사고 이후 S 아파트를 관리를 맡게 된 S 관리업체 측은 “우리로서는 세입자들이 사용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수선유지비를 청구했다. 부실 공사나 시공의 문제라면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시공사에게 항의하면 된다”며 “집주인이 시설을 소유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땐 집주인에게도 수리비를 일부 청구하고 싶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 우리도 답답하다”고 밝혔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인 S 아파트의 건물 외벽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금이 간 상태. /피해주민 제공
또 다른 피해 아파트인 2017년 준공된 S 아파트는 1층과 옥상의 외벽 균열 등의 문제로 현재 거주하는 세입자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급하게나마 인천시청을 통해서 ‘헬프미 안전 점검’(노후‧위험시설물 등에 대한 안전점검을 요청하면 5일 내에 현장에 전문가가 찾아가 점검 및 자문하는 점검 서비스)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위험 건물에 대한 점검, 진단 책임은 집주인이나 건설사가 부담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세입자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각종 하자 문제는 결국 무리한 무자본 갭투자에 따른 부실시공이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 건축업계 종사자는 “1군 건설사가 짓는 대규모 아파트조차 부실 공사나 하자가 문제가 되는데 개인이 무자본으로 대출받아 지은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에 부실이나 하자가 없을 수가 있겠느냐”며 “싼값에 대충 지어 저렴하게 전세를 놓으면서 결국 부실시공, 하자의 피해와 비용은 세입자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피해 주택 중에서는 관리업체를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소한 곳도 있다”며 “저런 큰 문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세입자가 누수, 곰팡이 등 크고 작은 하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조치가 쉽지 않아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검찰, ‘돈봉투 의혹’ 송영길 피의자 전환...출국금지 조치
[단독] ‘가슴킥’했던 택배노조 그 간부, 이번엔 ‘헤드락’ 폭행
“국보법 폐지 되면…” 헌재 앞 시위 나선 국정원 퇴직자들의 한탄
100자평3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엘리트
2023.04.25 11:47:05
저렇게 하지 못하도록 법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하다!
답글작성
2
0
ehfvkfdkdy
2023.04.25 12:55:42
이건 전세사기보다도 부실공사문제인데... 기사가 초점이 안 맞네.
답글작성
1
0
정직한정치
2023.04.25 13:12:40
누가 승인했지?
답글작성
0
0
많이 본 뉴스
1
검찰, ‘돈봉투 의혹’ 송영길 피의자 전환...출국금지 조치
2
“국보법 폐지 되면…” 헌재 앞 시위 나선 국정원 퇴직자들의 한탄
3
“한국이 결정하면 존중해야”… 미국서 잇단 ‘한국 핵무장 찬성론’
4
넷플릭스 CEO가 환하게 웃었다… 尹대통령이 보여준 영상은
5
[김대중 칼럼] 우리가 중국에 해주고 싶은 말-‘부용치훼’(不容置喙)
6
野 양이원영 “尹, 넷플릭스에 왜 투자하느냐” 글 올렸다 삭제
7
[단독] ‘가슴킥’했던 택배노조 그 간부, 이번엔 ‘헤드락’ 폭행
8
“넥타이를 풀어라”… 퇴직한 화이트칼라가 새 직장 구한 비결
9
바이든·尹 만찬때 나올 ‘크랩 케이크’… 文때와 다른 점 있다는데
10
교민 구출 수송기, 美·UAE가 이륙 돕고 일본인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