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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과 우리말 / 대구 달구벌
달(月)이냐 달(山)이냐?
‘달’은 ‘산’의 뜻으로도 붙여져
달아 노피곰 도다샤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치오시라
…즌 ᄃᆞᄅᆞᆯ 드ᄃᆡ욜셰라
<해석>
달이여 높이 돋아
어긔야 머얼리 비추소서
(어두우니)…진 곳을 디디시리다
백제 가요 정읍사의 일부이다. <고려사> 악지에는 정읍 사람이 행상을 떠난 후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에 올라 남편이 있는 곳을 향해 멀리 바라보면서 행여 남편이 밤에 행상을 다니다가 진흙물에 빠질까 걱정하며 이 노래를 불렀는데, 등첨산(登岾山) 망부석(望夫石) 얘기가 전해 오더라고 적어 놓고 있다. (여기서의 진흙물은 ‘다른 여자로 보아도 좋을 듯)
이 노래의 제일 앞에 나오는 ‘ᄃᆞᆯ’은 ‘달(月)’로, 호소의 대상이 되었다. 남편을 멀리 행상 보내고 외로운 마음을 달빛 속에 겹겹이 묻었을 아낙, 막연히 하늘을 보며 지아비의 모습을 그리다가 눈에 확 들어온 그 달은 그녀에게 있어선 마음을 나누는 친구였을 것이다. 남편을 무사하게 지켜 줄 천지신명으로도 생각했을까?
시인이나 화가가 아니라도 달은 그 모습만으로도 하나의 노래요 그림이다. 달이 있었기에 이태백의 풍류가 나왔고 노래도 나왔다. 달밤에 호수에 띄운 배에 여자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니 달이 다섯이나 된다던가? 하늘에 하나, 물 위에 하나, 술 잔에 부은 술 위에 뜬 달이 하나, 나머지 둘은 여자의 맑은 눈동자에서 빛나는 달이란다.
‘달’은 ‘산’의 옛말
어원 연구가인 고 최승렬 님은 그의 저서 <한국어의 어원>에서 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ᄃᆞᆯ’은 ᄒᆞ(해)와 쌍을 이루어 하늘에 있는 음양이다. 땅에는 남녀가 있어 음양을 대표하고,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어 음양을 대표한다. 따라서, 해가 숭앙의 대상이었듯이 달도 또한 숭앙의 대상이었다.
달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라… 달에 담긴 개념은 높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낱 태양이 큰 것이고 달이 높은 것이라는 생각은 짝을 이루는 존경심의 나타냄이라 할 수 있다.
정읍사의 첫머리 ‘ᄃᆞᆯ하’의 ‘하’가 그것을 증언한다. ‘하’는 주지하는 대로 높임부름토(존칭호격조사)이다. 그리고, 그는 ‘ᄃᆞᆯ’에서 ‘돌다(廻)’, ‘덜다(減)’, ‘두르다(周)’, ‘돌(周年)’ 등의 말이 파생했다고 적고 있다. 달은 옛 문헌에 대개 ‘ᄃᆞᆯ’로 표기되었다. 산이름들 중에 달(達)이나 월(月)자가 많이 들어간 것은 ‘산’의 옛말이 ‘ᄃᆞᆯ’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산(小山)’의 뜻인 ‘아사달’은 ‘앗달’, ‘압달’로도 불리어 비슷한 발음의 ‘아홉달’의 뜻인 ‘구월(九月)’이 된다. 그래서 ‘구월산’이 ‘아사달’과 같은 이름이라 하는 주장들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아사달 > 앗달 > 압달(아읍달) > 아홉달(九月) > 구월산(九月山)
최승렬은 아사달(앗달)은 ‘차산(次山)’의 뜻이 된다고도 하면서 ‘한ᄇᆞᆰ달(太白山)’의 상대적 의미로 씌었다고 하고 있다. 즉, 태백은 환웅이 내린 곳이라 클태(太)자를 붙였는데, ‘태(太)’, ‘대(大)’는 ‘머리(宗)’를 나타내고, 단군이 옮긴 곳을 백악(白岳)이라 한 것은 차(次)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한박달 太白山 = 종단 宗壇
아사달 阿斯達 = 차단 次壇.弟壇.小壇
고대의 제단은 산꼭대기에 있어 ‘달(達)’은 ‘단(壇)’과 통한다고도 하였다. 어떻든 하늘의 ‘달’과 ‘땅’이나 ‘산(山)’이란 뜻의 ‘달’과는 음이 같은데, 어원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달’은 오랜 옛날부터 써 온 말로서 많은 관련 지명들이 퍼졌다. ‘산’의 뜻을 갖는 이 말은 오늘날의 ‘양달’, ‘음달’ 같은 말을 이루게 했다. ‘빗긴(경사진) 땅’이란 뜻의 ‘빗달(비탈)’도 나왔다. ‘ᄃᆞᆯ(달)’은 ‘들’, ‘둘’ 등으로 모음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가 ‘드리’, ‘두리’ 로 연철되면서 두류(頭流), 두리(斗里.頭理), 지리(智異) 같은, ‘달’과는 상당히 멀어진 또 다른 지명을 파생시키기도 했다.
지금의 ‘땅’이나 ‘터’라는 말도 ‘달’이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변한 말로 보인다.
달(山) > 다 > 따 > 땅(地) (경음화)
달(山) > 다 > 타 > 터(基) (격음화)
우리말의 ‘따’, ‘터’는 일본으로도 건너가 논이나 땅의 뜻이 되어 ‘田(전)’, ‘地(지)’의 그 곳 발음이 ‘다(夕)’가 되기도 했다. 일본어는 악(岳), 고(高)를 ‘타케’, ‘타카’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우리말의 ‘달’과 상당히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들에 ‘달’이 산의 뜻으로 들어간 것이 별로 없으나 여기서 갈려 나온 말들은 적지 않다.
-달래꽃 : 달山+외(오이)+곶(꽃) = 달외꽂 > 달래꽃 (진달래꽃)
-달래 : 달(山) > 野+혜 = 달혜 > 다뢰 > 달뢰 > 달래(野生菲)
-달구질 : 닭(땅)+ᄋᆞ+질=ᄃᆞᆯᄋᆞ질 >달구질(石. 땅을 단단히 다지는 일)
‘달’은 원래 고구려어로서 삼국이 통일되기 전에 ‘~달(達)’식으로 불리던 고을 이름들이 통일 후인 신라 경덕왕 때 거의 ‘~산(山)’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보아도 ‘달’이 ‘산’의 뜻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달은 ‘산’의 뜻으로 지어진 옛 땅이름>
-식달현(息達縣)(평남 중화) - 토산현(土山縣)
-석달현(昔達縣)(함남 안변) - 난산현(蘭山縣)
-가지달현(加支達縣)(안변 부근) - 청산현(菁山縣)
<달은 높다는 뜻으로 지어진 옛 땅이름>
-달홀(達忽)(강원도 고성). 고성군(高城郡)
-달을성현(達乙省縣)(경기도 고양). 고봉현(高烽縣)
-달을참현(達乙斬縣)(경기도 강화도 교동면). 고목근현(高木根縣)
‘달냇골’이 영암으로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달(達)’자가 들어간 산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경기도 수원의 팔달산(八達山), 충북 영동의 박달산(朴達山), 충남 아산의 서달산(西達山), 충남 금산의 달왕산(達往山), 전북 전주의 고달산(高達山), 전남 목포의 유달산(鍮達山), 무안의 승달산(僧達山), 황해도 수안의 아달산(阿達山), 곡산의 고달산(高達山), 신계의 기달산(箕達山), 송화의 달마산(達摩山), 평북 창성의 달각산(達覺山) 등이 그 예인데, 이들 산이름 중에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불리는 것이 많다.
달이 산이니 이러한 이름의 산들은 결국 ‘산’이란 뜻이 겹쳐 들어간 셈이 된다.
‘달’이 고구려 지명에 많은 반면, 백제 지명에는 ‘돌’지명이 많은데, 통일신라 이후 이들 지명은 대개 ‘월(月)’자로 대역되었다. 백제어의 ‘돌’은 고구려어의 ‘ᄃᆞᆯ’에 해당하는데, 지명에서 돌은 한자로 ‘돌(突)’, ‘진(珍)’으로 표기되었다가 뒤에 ‘월(月)’자로 바꾸기도 했다.
‘난진하 일운 월량하難珍阿 一云 月良阿’
(난진하는 월량하라 하기도 한다.)
‘월왈돌(月曰突)’(‘달’을 ‘돌’이라 부른다)<계림유사>
월출산과 월악산은 ‘산산산’의 뜻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달이 하늘의 달이건 산의 뜻이건 ‘달’ 또는 ‘월(月)’이 들어간 지명들을 살펴보면서 이들 지명이 달이 원래 어떤 뜻을 가졌던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월출산(月出山).
88년 6월에 국립공원으로 된 월출산(月出山)은 글자 그대로 ‘달이 뜬다, 달이…’와 같이 이름으로 보면 우선 달을 연상할 만하다.
매월당 김시습은 ‘호남에 제일가는 그림같은 산’이라고 극찬했고, 이중환은 ‘대단히 맑고 뛰어난 이른바 화성조천(火星祖天)의 지세’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월출(月出)은 ‘달돋이’의 뜻이기에 ‘달뜨는 산’이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고들 있다. 그러나, ‘월(月)’자가 들어갔다 해서 이름 유래를 무조건 달과 관련짓지는 말아야 한다. 월출산은 백제와 신라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월나악(月奈嶽)이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월출산이 되었다.
‘월나-월출’에서 ‘월’은 같은데, ‘나’가 ‘출(出)’로만 바뀌었다. ‘나’를 ‘나다(出-生)’의 뜻으로 보면 두 이름이 얼마나 근접한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월나’가 어떤 뜻으로 붙여졌나 하는 것인데, 영암의 옛이름 월나(月奈)를 유추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산이 있는 영암의 옛이름이 월나, 월생(月生)이기도 했으니, 결국 월나, 월생, 월출, 영암은 뜻으로는 서로 통한는 것이다.
ᄃᆞᆯ아 > 달아 > 달나 = 달(月)+나(生) = 월출산(月出山)
결국, 월출산은 ‘달나뫼’이며, 이 이름은 그저 단순히 ‘산’의 뜻인 달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는 것이다.
월출산의 ‘월’이 산이듯이 월악산(月岳山)의 ‘월’도 산의 뜻이다.
월악산(1,093m)은 충북 제천시에 있는데, 이 이름은 ‘산’이 세번 겹쳐 들어간 셈이 된다. ‘월’도 산, ‘악’도 산, ‘산’도 산이니 ‘산산산’의 뜻이 되고 말았다.
이 산은 신라시대에 월형산(月兄山)이라 하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이 산 아래 제천시 덕산면에는 월악리(月岳里)가 있는데, 이 이름은 전남 함평군 월야면과 영암군 시종면에도 있다.
월산리(月山里)란 행정지명이 전국에 30개 가까이 있다. 이들은 중에는 ‘달과 같은 산이 있어’, ‘달뜨는 산이 있어’하는 식으로 하늘의 달과 관련지어 유래를 쓴 것이 많으나 대개는 달과 아무 관련이 없다. ‘달’자가 들어간 땅이름이 산지쪽에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달‘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예)>
‘달미(月山)’(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달매(月山)’(전북 남원군 산동면 월석리),
‘달산月山’(강원도 양구군 동면)
‘달산(達山)(경남 양산)
‘다라실(月谷)’(충남 당진, 전남 화순),
‘다리실(月谷)’(충남 연기, 전북 순창),
‘다릿골(月谷)’(전남 장성, 경북 금릉, 경남 산청)
달구벌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을의 뜻
대구(大丘)라는 명칭은 신라 757년(경덕왕 16) 주-군-현 의 명칭을 중국식 이름으로 고친 때에 역사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이 개칭은 다음 혜공왕 이후의 기사에 옛 명칭인 달구벌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동안 양쪽이 함께 쓰이고 있었던 것 같다.
달구벌(達句伐)이 대구(大丘)로 바뀐 것은 삼국 통일 이후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신라가 모든 제도 문물을 중국식으로 정비해 가는 변화의 한 산물이다. 종래 여러 가지로 불리우던 벼슬 이름이나 지방 이름을 두 글자의 한자로 개칭하였다. 개칭의 방법은 음을 딴 것, 뜻을 따르는 것, 아름답게 고치는 것, 글자를 줄이는 것 등이 있는데 달구벌이 대구로 바뀐 것은 음을 딴 경우에 해당한다.
조선 영정시대에 와서 구(丘)자는 구(邱)로 바뀐다. 그 글자가 공자의 이름자라 하여 1750년(영조 26) 구(丘)자를 다른 자로 고치자는 상소에 따라서다. 이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1779년(정조 3) 5월에 처음으로 대구(大邱)로 나온다. 그러나 그 후에도 두 글자가 혼용되다가 철종 이후는 1850년(철종 원년) 공사간에 모두 대구(大邱)로 쓰게 되었다.
어떻든 ‘달구벌’이 ‘대구’로 바뀌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달구벌은 어떤 뜻일까?
닭(산)+으+벌 >닭으벌 > 달그벌 >달구벌
위와 같은 과정으로 달구벌이란 이름이 나왔을 것이란 가정이다. 즉, ‘산으로 둘러싸인 고을(분지)’이란 의미로 보는 것이다. 실제 대구 고을은 분지로 된 고을이다.
서울 성북구의 상월곡동(上月谷洞), 하월곡동(下月谷洞)은 각각 ‘웃다리실’, ‘아랫다리실’로 불리던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다리’가 ‘들’의 뜻으로 붙은 것인지 ‘산(산)’의 듯으로 붙은 것인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전남 장수군의 월현리(月峴里)는 <장수군지>에 ‘달을 산에서 본다’고 해서 ‘월(月)+산(山)+현(峴)’이 되었다가 월현(月峴)이 되었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산 아래 있다고 해서 ‘달아래(月下村)’, ‘달아실(月下)’이라 불리던 마을이 영암과 해남에서 각각 다른 마을과 합쳐 상월리(上月里), 월호리(月湖里)란 지명을 이루고 있고, 산 안쪽이란 뜻의 ‘달안(月內)’ 마을이 예천에서 역시 다른 마을과 합쳐 월오리(月梧里)란 행정 지명을 만들고 있다.
<‘산(山)’의 뜻을 가진 이름들>
월곶동(月串洞) 경기도 시흥시
월곶리(月串里) 경기도 강화군 월곶면
월송리(月松里) 충북 보은군
달산리(達山里) 충남 서산시
달밭(달밭.달전.達田) 충남 연기, 충북 영동, 전남 승주, 경북 안동, 청송군
달밭(月田) 경북 성주군 월곡리(月谷里)
달내의 전설
충주시에 달천동(達川洞)이 있고, 이 앞을 달내(달천.達川)‘가 흐르고 있다.
두 오뉘가 아래옷을 걷고 이 내를 건너다가, 주착없이(?) 커진 가운뎃다리를 자르고 죽은 남동생 시체 곁에서 ‘달래나 보지’하며 누이가 울부짖어 ‘달래(달내)’가 되었다는 이름 전설을 가진 내이다. 그러나, 달내는 들 가운데의 내란 뜻의 ‘들내’의 변한 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의 신월동(新月洞)은 큰 들의 내란 뜻에서 불린 듯한 ‘곰달내’란 마을이었다.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는 ‘예부터 달빛이 맑게 비치는 곳이라 하여’라고 유래를 적고 있으나, 지명은 그런 식으로 정착되는 일이 별로 없다. 한자로도 고음월(古音月), 신월(新月)로 표기하여 달과 관련한 이름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시에서 몇년 전 이 곳을 지나는 길을 ‘곰달래길’이라 하여 사라질 뻔한 이름을 되살려 놓았다.
‘달바우’ 중에는 산의 바위란 뜻으로 붙여진 것이 많다. 마을 이름에선 한자로 월암(月岩)이 되어, 경기도 의왕시, 전남 무안군 일로면, 충남 공주시 등에 있다. 전남 무안군 해제면 옥월리의 월암(月岩)은 지형이 반달과 같이 생겼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고, 전북 완주군 상관면 신리의 월암 마을은 앞에 달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의 월암동, 전남 무안군 일로면의 월암리 등도 같은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하고 있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옥월리의 월암 마을은 뒷산에 달바위에서 달맞이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달바위月岩’ 중에는 달처럼 생긴 바위, 또는 달맞이하던 바위의 뜻으로 붙은 이름보다는 ‘산의 바위’의 뜻으로 붙은 것이 많다. ///
2022년 8월 31일
* 친척말
-달동네(산동네) 양달 응달 비탈(빗달)
* 친척 땅이름
<산고개(月嶺)란 뜻의 이름>
‘달고개(月山里)’(충남 서천시)
‘달재(月嶺里)’(경남 창녕군)
‘달앗태(月峴里)’(전북 장수군 계북면)
‘다리울(달울)’(충남 보령시 남포면 달산리)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