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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명이라는 복음 찬양의 가사입니다. 가사 중에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따라가겠소.
주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외로운 길이지만 그 길이야말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인 줄을 믿습니다. 사순절 기간 또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함께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뜻을 정하게 될 때’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이 뜻이란 사전적 의미를 보니까 무엇을 바라거나 이루겠다고 속으로 품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뜻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거나 또 아니면 또 새로운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그때 나름 뜻을 품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뜻을 세워봤자 뭐 해 다 주님이 알아서 하실 텐데 그냥 나는 무개혁이 개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뜻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여행을 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좋든 나쁘든 계획을 정하고 계획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은 친구 사드랑 메삭 아벤느가 함께 이 블레셋에 잡혀와 있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 다니엘과 새 친구가 있었고, 이들에게 교육과 함께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제공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기가 먹는 음식 중에 특히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들을 지도하는 이 황 관장은 이런 다니엘의 요구에 굉장히 당황해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단일 이런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아서 얼굴색이 좋지 않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자기가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하자 다니엘이 10일 동안 테스트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말씀이 12절 13절인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아멘 그랬더니 다니엘은 더 건강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결국 자기가 원하는 음식만 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 16절 말씀 읽겠어요. 15절 16절 시작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리라.
아멘 여기 보면 왜 우리가 뜻을 정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뜻이란 무엇인지 또 왜 뜻을 정해야 되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뜻을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왜 성도 여러분이 뜻을 정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왜 뜻이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먼저 이 뜻과 뜻이 모여서 꿈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떡과 뜻이 모여서 뭐가 된다고요? 꿈
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해년마다 새해가 되어서 뜻을 정하고 또 실패해도 또 뜻을 정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꿈이 되고 비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뜻도 없다. 이 말은 꿈도 없는 것이고 비전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많은 뜻을 정하고 또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뜻을 향해서 나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까 다니엘이 내가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뜻을 정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한 번 정도 결심해야 되겠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한 번쯤 해보는 결심을 우리는 작심 3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말고 포기하고 그런 것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뜻을 정했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생각을 해보고 정말 준비하고 또 준비해서 심각하게 결심했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8절의 말씀입니다. 시작
아멘 다니엘은 무엇을 정하여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뭐 하지 아니하리까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괴롭히지 아니하도록 황 관장에게 구했다라고 했습니다. 뜻을 정했다. 비록 짧은 이 한마디이지만 여러분 결코 이 뜻을 정한다는 것은 가볍지가 않습니다.
내가 왕의 음식을 먹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쉽게 나오겠습니까?
그런 결심이 묵살당할 수도 있고 또 자칫 말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뜻이라는 것은 어떤 한 번 해보고 말고의 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미 다니엘은 황 관장이 이 말을 하기 전에 나름 사진의 생각도 하고 계획도 하고 어떤 방법으로 왕의 음식을 먹지 않고도 얼굴에 좋은 빛이 들 수 있을지도 생각하고 고민과 고민 끝에 뜻을 정한 것입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왕의 음식을 먹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것 아닙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뜻을 말하고 그 뜻을 관철시키고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1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7절의 말씀 시작
아멘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뭘 주시고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맞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뭘 주셨으니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무엇과 무엇을 깨달아 아멘 결과적으로 보면 이 다니엘은 뜻을 정했는데 그 뜻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꿈을 알게 되는 그런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시작은 뜻으로 시작을 했는데 끝은 꿈으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경의 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뜻을 정해야 할까요?
우리가 뜻을 정하게 되면 그 뜻과 뜻이 모여져서 훗날의 꿈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살려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그 꿈도 생기게 되고 비전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코로나 이후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모이지 않을 때 그때 우리 교회는 새벽 기도를 2부로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때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 교회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가 됩시다. 그렇게 선포할 때에 우리 성도들이 새벽에 주님을 찾고 열심을 다해서 새벽 재단에 참여하고 기도할 때에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이 새벽의 부흥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으로 끝이 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더 큰 꿈을 꾸게 되고 더 큰 비전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뜻이 꿈이 되고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어떤 꿈으로 야 너 신학교 들어가라 환상을 보여주면서 너 나중에 목사 되라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주님이 좋고 그냥 주의 일하는 것이 즐겁고 기뻐서 그래서 신학교를 들어간 겁니다. 신학교를 들어가 보니까 더 큰 은혜가 주어지고 정말 귀한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주겠다 그런 것 아닙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더 큰 꿈을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뜻을 정해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뜻을 정해야 될까요?
기도의 동기 여부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가 된다고요?
기도의 동기 여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뜻이 있는 사람과 뜻이 없는 사람 누가 더 뜨겁게 기도를 할까요?
그렇죠 뜻이 있는 사람이 더 간절히 찾고 더 간절히 주님을 부르짖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뜻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꿈도 생기고 비전도 생기는 것이지 뜻이 없이 그냥 교회만 왔다가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전 총회장이셨던 우리 김태영 목사님이 저희 교회를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숙제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게 뭔지 여러분 아실 겁니다. 3대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와 내 자녀들과 내 손자들 3대를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잘 믿고 믿음의 명문 가문을 이루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여러분이 준 기도 헌금 봉투를 받아들고 그때부터 그 이름을 부르며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이것은 저의 뜻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주신 뜻입니다. 그 기도 속에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저에게 무슨 큰 복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것만 있겠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뜻을 위해서 구하고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청량하지 못하는 놀라운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내 안에 여러분 안에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뜻이 없는데 그 열정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간절히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뜻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릅니다.
그러면 뜻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는 여러분의 기도의 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뜻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5분 10분 기도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가 어렵습니다.
뜻을 정하지 않고 기도 시간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힘든 것 어디 있습니까?
어느 집사님이 기도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분 여기 기도 줄이 안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서게 되었는데, 근데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니까 이제는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 제목이 주어지고 기도 시간이 기다려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뜻이 없으면 더 이상 기도의 무릎도 강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뜻이 없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적당주의 신앙이 됩니다. 뭐가 된다고요? 적당주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적당하게 하고 예배도 적당히 하고 찬양도 적당히 여러분 이렇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의 열정 갈급함이 사라집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만일에 먼 바다를 향해서 떠나는 어떤 배의 선장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곧 태평양을 향해 떠나갑니다.
여러분 어떻게 준비하시겠습니까?
아마 작은 것 하나, 먹는 것 것 하나 어떤 장비 하나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되면 절대로 적당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뭘 그렇게 챙기느냐 그냥 적당히 챙겨라.
그렇게 누군가 말해도 여러분 정말 적당하게 챙길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세심하게 세밀하게 살펴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챙길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라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적당하게 적당하게 신앙생활하다가 그냥 천국 가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러분 우리가 뜻을 정하지 않아도 간혹 때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떨 때는 차라리 뜻을 정하지 않고 계획 없이 사는 것도 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 앞에 받은 복이 무엇인지 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지 그 비전과 꿈이 다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알아야 됩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객관식 문제를 풀어가는데 자기가 문제를 푸는 것보다도 연필을 굴려가지고 문제를 맞추면 더 좋은 점수가 나올 수도 있다라는 그런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또다시 다음에 또 그 점수를 또 그렇게 될까요?
이와 같이 우리가 뜻을 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비전도 꿈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런 뜻이 없는 신앙생활은 전혀 여러분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의심만 차게 되고 더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해 봐도 소용없더라 기도 안 해도 어차피 다 되는데 뭐 여러분 그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정말 고난이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의 신앙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 여러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끝으로 그러면 어떻게 뜻을 정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뜻을 정할 수 있을까요?
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내가 뜻을 정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언제 뜻을 정했을까요?
다니엘이 언제 뜻을 정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생활 중에 뜻을 정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편안한 나라에서 자기 집에서 뜻을 정한 것 아닙니다.정말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 앞에 뜻을 정했다라는 사실 우리가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뜻을 정할 때 물론 우리 삶에 참 평안하고 잘 되고 일이 풀릴 때 뜻을 정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정말 고난이 찾아옵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삶 내 마음대로 안 되고 이런저런 문제 앞에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을 향한 뜻을 정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정말 어떤 경우에는 오늘 다니엘처럼 내가 포로로 잡혀 살아가는 것과 같은 그런 암담한 현실, 내 일이 보장되지 않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뜻을 정할 때 주의해야 될 사항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나 조건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이 중요하다고요?
사랑의 마음 우리 8절 말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8절 말씀 시작
아멘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를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황 관장에게 구했다. 이 왕의 음식이 더러워서가 아닙니다. 왜 뜻을 정했을까요?
그 음식들 우상에게 들여준 음식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바로 다니엘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그 시기였기 때문에 즉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런 뜻을 정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간혹 정할 때가 있어 뜻을 정할 때 있습니다. 판단할 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내 환경과 내 여건과 내 삶, 내 중심으로 뜻을 정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뜻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 조건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뜻을 나타낼 때 그 결단이 얼마나 소중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결단합니다. 하나님 이거 주시면 제가 할게요. 하나님 이 기도 응답 주시면 내가 뭘 할게요? 그러다가 안 주시면 안 주시네. 포기하고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조건 이유 때문에 움직이시는 분 아닙니다. 그걸 잘 모르시면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겁니다. 우리의 기도나 우리의 꿈에 어떤 조건이 담기면 어떤 꿈이라 해도 응답되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사실은 하나님의 조건 따라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는 것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거 해주면 하고 저거 해주면 안 하고 그런 어린아이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뜻을 정해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 출발점도 사랑으로 뜻을 정하고 그 끝나는 것도 사랑으로 끝이 나기를 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뜻을 정하십시오. 우리 믿는 성도들이 뜻을 정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 뜻을 향해서 기도하고 기도할 때에 꿈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꿈이 되고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뜻이 없으면 그냥 적당하게 적당하게 예배드리고 적당하게 기도하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다가 여러분의 인생이 끝이 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말씀 들었던 말씀 꼭 기억하십시오. 결코 우리는 뜻을 세워야 됩니다.
뜻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만 간절함도 있고 사모함도 있지 않겠습니까?
잠언 8장 11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고,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적당주의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너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적당하게 적당하게 틀리대로 그렇게 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온마음 다하여서 주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