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부활한 주님을 만남으로만 믿어진다 2(요20:11-18)
1. 부활주일을 지났지만, 부활 메시지를 오늘과 다음 주일까지 나눕니다. 부활은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이에요. 영화, 부활(케빈 레이놀즈 감독 작품, 2016년)은 부활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전해주었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빌라도 총독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호민관 클라비우스입니다. 그는 출세를 목표로 달려가는 군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남쪽 변방 유대 지역에서 빌라도의 수하에 있지만, 공을 세우고 곧 로마 황제가 인정하는 지휘관이 되기를 갈망하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클라비우스는 예수님의 십자가형 책임자로 현장에서 지휘습니다. 이후 주님의 부활 소식이 퍼지면서 그 허구성을 드러내라는 빌라도와 유대 종교인들의 요구를 따라 파헤치는 역할(마치 탐정처럼)을 하며,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 등을 심문합니다.
클라비우스는 상관의 명령을 따라 성실하게 부활 수사를 진행하며 갈등을 겪습니다. 그가 심문하던 부활의 증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에. 처음에는 이 증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점점 부활이 사실일까? 갈등하기 시작했어요. 영화 부활은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고요, 오늘 본문을 통해 지난 주일에 이어서 주님이 부활하신 이른 아침 예루살렘으로 가봅시다. 마가복음 16장은 세 여제자들이 향품을 들고 아침 일찍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주님의 무덤에 가보니, 걱정하던 돌은 옮겨졌고 경비병들도 없었습니다. 무덤에 들어가 보니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천사가 부활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빈 무덤 만을 보고서는 세 여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어요.
갈등
2. 오늘 본문 1-10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마가복음과 다른 점은 막달라 마리아가 빈 무덤을 보고, 베드로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을 때 베드로가 다른 제자(요한)와 함께 무덤을 방문했습니다. 두 제자도 역시 빈 무덤을 부고도 부활을 믿지 못했어요. 6-7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시신을 쌌던 그대로 있었어요. 이상한 것은 10절에, 부활의 현장을 보고도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는 집으로 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좀 이해가 안 되죠.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사람이 있다면, 시신을 입혔던 세마포와 수건을 벗기고 가지런히 두고 갔을까요?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아요. 세마포와 수건이 덮인 상태로 가지고 가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죽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어요. 단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이런 생각은 예수님의 부활 전에 어떤 사람도 부활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었다면 생각이 좀 달랐을 것입니다. 역사 초유의 일을 만난 일이었어요.
갈등심화
3.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른 아침, 혼돈의 시간 속에서 오늘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집중해줍니다. 마가복음 16장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셨다고 짧게 요약해주는데,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구체적으로 전해줍니다. 40년 전 기록한 마가복음을 보고, 요한이 보충해준 것이에요. 빈 무덤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만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왔던 여인들도 떠났어요. 오직 마리아만 다시 빈 무덤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번에는 천사들이 주님이 누우셨던 양편에 앉았습니다. 12-13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이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이 다 떠난 후에도 홀로 현장에 머물렀지만,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어요. 마리아는 부활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어요. 단지 그는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옮겼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만 생각하며 무덤 밖에서 울었을 뿐이었어요. 1999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두 팀으로 세 명씩 나누었어요. 한 팀은 흰옷을, 다른 팀은 검은 옷을 입혔어요. 학생들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며, 흰옷을 입은 팀의 패스 수를 세게 했습니다. 1분 남짓한 동영상을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동영상에서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을 보았니?”질문을 했습니다.
4. 동영상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사이를 지나가면서, 가슴을 두드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9초 정도 나왔습니다.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절반이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는 데만 집중하고 말았어요. 패스 숫자를 세다가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나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어요. 이런 심리 효과는 사람들이 현상을‘있는 그대로 정확하게’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라고 말하니다. 우리 인식구조는 특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마리아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그의 시신 찾기에 온통 집중할 때 다른 모든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영화 부활의 클라비우스도 마찬가지에요. 그는 부활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단지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군병들을 동원해서 무덤들을 파헤치며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여정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비슷한 시신을 찾기도 했지만, 실제 가보니 다른 사람임을 발견하고 허탈해 했습니다.
실마리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리아가 주님을 보았지만, 주님이신 줄은 알지 못했어요.(14절) 이런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엿볼 수 있어요. 이 문제의 실마리는 어떻게 풀리는지 당시 현장으로 달려가 봅시다. 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으나, 그가 주님인 줄 모르고 동산지기로나 알았습니다. 여전히 마리아의 시선은 주님의 시신에 있었어요.
5.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16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마리아는 동산지기로 알았던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동산지기가 마리아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또 마리아의 이름을 안다고 해도, 동산 관리인이“마리아야!”라고 다정다감하게 부를 리가 없지요. 눈으로 보지 못하던 주님을 마리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금방 주님이심을 알았어요.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믿음은 보면서 난다고 하지 않아요.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예수님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요10:3).
마리아는 주님의 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야 했을 때, 마리아가 눈물이 났습니다. 이전에는 주님의 시신이 안보여 울고, 이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나니 너무 기뻐서 울었어요. 오늘 우리도 지금 선포되는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만 찾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순간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17절, 마리아가 주님을 꼭 붙들었어요. 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기를-주님을 빼앗기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무의식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6.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18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마리아가 왜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은혜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주님의 절대적인 권한이기에요. 우리가 생각해 볼 수는 있어요. 첫째, 부활의 첫 증인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고통을 함께 나눈 자라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가슴을 치며 슬픔 가운데 보고, 그 자리에서 주님과 눈을 마주 보고 교제한 자가 누려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 요한 외에는 남자 제자들이 아무도 없었으니, 여성이 이 영광을 차지했어요.
또 부활의 첫 증인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끝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찾는 자가 담당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낙심하고 다 부활의 현장을 떠났어요. 십자가의 증인, 유일한 남제자 요한도 떠났어요. 마리아만 남았어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주님이 다 보셨어요. 지금도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 보시고 있어요. 주님은 인격이시기에 자기를 찾고 사모하며 환영하는 자에게 먼저 다가오십니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가 누구보다 뛰어났어요.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보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었어요. 일곱 귀신-많은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평생 괴롭힘 받다가 주님께서 사단의 권세에 신음하는 자신을 완전히 해방시켜주셨어요. 이후, 예수님은 마리아의 모든 소망, 삶의 참 주인이 되셨어요.
복음
7.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 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여기 엄청난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께로(하늘로) 올라가시는데-40일 후 제자들이 부활을 확신할 때까지 그들을 만나주시고-주님이 부르신 아버지가 곧 우리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이전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신 분은 예수님뿐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주님은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이 말씀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과 같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주기도에서도 이것을 가르치셨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우리 인생의 최대 복입니다. 찬양,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많이 있으리라.”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의 권세를 누리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도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살고 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공짜로 된 것이 아니에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결과에요.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께로 가시기 전에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8. 부활하신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사람들의 영적 눈이 열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렇게 하시지 않았으면 제자들이 주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40일을 지상에 더 머무셨어요. 영화 부활은 주인공 클라비우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시는 장면을 연출했어요.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심문하는 클라비우스에게, “마음을 열어보세요.”권하고. 주님의 제자 바돌로매는, “부활한 예수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everywhere(어느 곳에서나).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빛이 무덤에 임했다. 스스로 무덤 문이 열리고 돌이 던져졌다.) 그러다가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급습했다가 그곳에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실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잠시 후 사라지시고요. 제자들의 증언이 거짓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주인공 클라비우스의 마지막 대사는, “이것이 진실인지? 내 모든 걸 걸어도 되는 것인지?”
기대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최초의 증인이 되었고, 오늘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들입니다. 부활의 증인 사역-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다는-을 잘 감당해야 해요. 이것이 포항 땅을 거룩하게 하는 사역이에요. 나아가 통일 후 선봉에 서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성전 입당을 앞두고 우리교회를 향한 응원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어요. 어제 단톡에 소개한 서울의 한 목사님은, “포항빛내리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예배당 전체에 임하심이 느껴집니다. 감격의 눈물 감사의 눈물이 납니다. 주님안에서 사랑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어제 포항에 사는 다른 교단 교회의 집사님이 건축헌금을 보내주며 제게 문안 문자를 보내주었어요. “기도하시는 대로 포항과 나라와 북한을 위한 사명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분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만나달라고 기도하세요. 부활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만 믿어집니다. 주님은 인격이시기에 오늘 본문의 마리아와 같이 간절히 사모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다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