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렬공께서 문하시중으로 부임한 내용과
공직활동 등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에 대하여는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밴드 게재시에
일차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지존으로 등극하는 예종에게
신하를 대표하여 옥새를 전달하고,
특히나 유학을 좋아하는
예종임금 때 큰 기대를 모으면서 '문하시중'으로
부임을 하였음에도 사직서를 2번이상 제출하고
또한 결과적으로 재임기간도 너무나 짧아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이에
'장흥위씨 천년세고 선집' 외
김종서가 편찬한 '고려사절요'
에서 충렬공 관련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혹시 첨부의 자료 등을 보시고
층렬공의 퇴직사유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나 관련정보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알려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여진족을 정벌하기에 앞서 단행한 내각 명단(일종의 전시내각 겸 초대내각이라 사료됩니다)에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문하시중'에 충렬공 위계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종 즉위년도인 1105년 11월)- 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