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강도 빡세기로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는, 그 훈련자료를 우리나라 해병대 훈련과정에서 많이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외인부대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중세 이후에는 특히 프랑스의 외인부대가 유명하다. 프랑스의 외인부대는 루이 11세가 대규모로 외국 용병을 모집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나폴레옹 1세가 전 유럽에서 외인병사를 고용하고 그들을 유럽 및 이집트 원정에 사용한 데서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최근까지 외인부대의 대명사처럼 세계에 알려지고 있던 알제리 주둔 외인부대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반란진압을 위해서 루이 필립이 1831년에 창설한 것이며, 1862년 나폴레옹 3세 때 멕시코전쟁이나, 제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에 참전한 예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프랑스 식민지에서만 활동하도록 되어 있어, 주로 인도차이나 ·마다가스카르 ·모로코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1954년의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해서는 많은 무훈을 세웠으나 결과적으로 1만여 명의 희생자만 내고 참패한 사실도 유명하다.
근래의 외인부대는 보병을 주로 하고, 소수의 포병 ·전차 ·공병 또는 공정병(空挺兵)까지 보유하고 있으나, 최신무기나 특수무기를 장비한 경우는 드물다. 외인부대의 편성원칙은, 지원에 의한 계약제도이며, 장교만은 거의 프랑스 본국인으로 되어 있다. 지원자에 대해서는 그 전력(前歷)이나 국적을 묻지 않기 때문에 범죄자나 외국의 망명자 또는 모험심이 강한 방랑자들이 입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근무한 기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 명이 복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5년 현재도 5명 정도가 복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입대시에 프랑스에 대한 충성 대신 부대에 대한 충성만을 맹세하는 특이한 성격은, 현대 국가의 군대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핵심적인 부분에는 투입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