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갯버들
Wolfkang Lim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가는 기막힌 행운을 갖게 되었다. 시골 생활이 불편한데도 행운이라고 말 하는 것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 순수한 자연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있지만, 남녀가 유별했던 시절에 겪은 풋사랑이 환갑의 나이가 지난 지금도 희미한 얼룩이 되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추억은 언제나 버들강아지와 함께 되살아난다.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해, 전라북도 전주에서 불과 12km 밖에 되지 않는 구이면은 전기, 수도 그리고 전화조차 연결되지 않는 두메산골이었다. 하나뿐인 시내버스노선이 문명의 도시 전주와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고 하루에 한 번 지나가는 시외버스는 자갈투성이의 비포장도로에서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마을 앞 신작로를 지나 다리 건너 첩첩산중 사이로 사라졌다. 이 산골 마을을 지나 더 깊이 들어가면 얼마나 더 험한 시골이 저 너머에 있을지 궁금했었다. 계곡 사이로 굽이굽이 가다가 호수를 만나서 길이 끊기면 버스는 큰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는 말만 들었다. 호수는 이름 그대로 구슬처럼 맑은 운암 옥정호로 섬진강의 물줄기이다.
남으로 옥정호에 막히고 동쪽의 노령산맥 줄기와 서쪽의 모악산 자락에 낀 천혜적인 시골의 초등학교에 전근하시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이사 온 이 곳은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건너편 산자락이 호수에 잠긴 풍경만으로도 아름다운 별천지였다.
이사 오던 해 어느 날, 마을 공터에 하얀 천막이 쳐졌다. 낮에는 차력술을 보여주고 밤에는 발전기로 동력을 얻어 영사기를 돌려 영화를 상영하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졌다. 십 리 안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구경 나왔다. 그해 겨울, 그 차력사는 우리 마을 처녀와 눈이 맞아 혼인했다.
이런 시골 마을로 이사 왔을 때 맏형은 군 복무 중이었고 둘째 형은 서울에서 자취하며 대학교에 다니고 셋째 형은 대입 시험 준비 때문에 전주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는 나만 혼자 남아 있고 유일하게 전주 시내로 학교에 다니는 버스통학생이 되었다. 시내버스는 한 시간씩 걸렸고 다시 15분을 부지런히 걸어야 겨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군에 간 맏형이 휴가 나오거나 방학 때 형들이 집에 오면 나는 신이 났다. 군복을 입은 맏형은 믿음직했고, S 대학 배지를 단 둘째 형은 너무 잘생기고 멋있었고, 셋째 형은 나와 잘 놀아 주었다. 형들은 확실히 달랐다. 무작정 돌아다니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저수지에서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아 어탁을 뜨고, 청둥오리 박제를 만들고, 산 중턱에 밭을 일구어 수박을 심고, 논에 물을 대어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키우고, 역기와 아령을 만들어 놓고 운동을 하고, 나무에 새끼줄을 감아 정권단련을 했다. 형들이 한 번씩 다녀가면 뭔가 새로운 일이 하나씩 생겨났다. 가끔 형 친구들이 우르르 놀러 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조용한 마을이 활기를 띠고 소란스러워졌다.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와 함께 잔칫상을 차리듯 음식을 준비하고 양조장에서 자전거로 막걸리 한 통 씩 배달 왔다. 젊고 잘생긴 대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동네 처녀들이 힐끔힐끔 곁눈질로 살피며 다녀가기도 했고 길모퉁이 외딴 주막집에서 일하는 처자도 우리 집 앞을 여러 번 서성거리며 지나갔다.
형과 형 친구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린 나의 우상이었다. 철학적인 용어를 인용하며 헤르만 헤세, 칸트를 비판하고 브람스에서부터 비틀스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음악을 이야기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잔심부름하면서 얻어들은 언어들은 내 청춘의 시작을 알리는 단어들이 되었다. 규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포커 게임까지도 신나고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가끔 나를 방에서 쫓아내고 소곤거리다가 킬킬킬,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형들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고 친구들이 서울과 전주에 있으므로 언제나 나가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나만 시골 마을에 적응해가는 촌놈으로 변했다. 시골에 사는 도시 촌놈, 심심하고 무료하고 재미없는 시골, 그래도 산과 들 호수로 돌아다니는 것이 유일한 취미가 되고 자연스럽게 홀로 사색에 빠지는 외로운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나는 모악산 치맛자락에 있는 안골마을을 지나 선녀 폭포와 대원사나 천일암까지 가는 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버스에서 본 여학생 때문이었다. 하얀 블라우스 교복에 세로 주름이 가지런히 잡힌 청색 치마가 뽀얀 종아리와 잘 어울리는 여학생, 곱게 빗은 검은 머리칼은 양 갈래로 땋아 내렸고, 예쁘고 통통한 얼굴은 떠오르는 달처럼 탐스러운 그 여학생이 안골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일부러 안골마을을 지나가곤 했다. 여러 번 그 마을을 지나친 후에야 그 여학생의 집을 찾아 낼 수 있었는데 안골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나는 근처에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지날 뿐이었다. 행여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고대했지만 한 번도 보거나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저 통학버스에서 슬쩍 얼굴을 훔쳐보는 것이 전부였으며 어쩌다 만원 버스에서 옷깃이라도 스칠 듯 가까이에 서 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레었다. 나는 결국 말 한마디도 붙여보지 못하고 안골 마을 주변을 맴돌았다. 연인은 창가에서 노래 부른다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으리라.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꽁꽁 얼었던 저수지가 녹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날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냇가 쪽으로 걷다가 문득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보니 화사한 봄 처녀가 내 발자국을 따라오고 있었다. 단번에 이 동네 처녀가 아님을 알아챘다.
이상했다. 내가 가는 쪽은 사람이 지나갈 곳이 아니었다. 산에서 나뭇짐을 지게에 매고 내려오는 사람이나 저수지 쪽에서 낚시꾼들은 가끔 만났어도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들판을 홀로 걸어오는 여자가 학생인 나를 따라 올 리 없고 기분이 묘했다.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에 나비 리본이 달린 하얀 모자가 아지랑이 바람에 아른거렸다. 어깨너머로 검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가죽 손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른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지나가겠거니 생각하고 노란 복수초 꽃을 바라보고 있는 척 수풀 사이에 서 있었다.
“안녕?”
가까이 온 그녀가 아주 자연스럽게 내게 인사하며 말을 붙여왔다.
“네, 안녕하세요?”
수줍어하는 내가 우스워 보였는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너 J 고등학교에 다니지?”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네, 그런데요. 어떻게 아세요?”
“버스에서 봤어. 이름도 아는걸.”
이름은 교복에 박혀있는 명찰에 있으니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내버스에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전주에서 몇 정거장 안 되는 가까운 평화동에서 타고 내린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세요? 마을도 없는데…….”
“그냥 바람 쐬러 나왔어. 괜찮다면 나 좀 안내해줄래? 이곳은 처음 와봐. 아는 사람도 없고…….”
“글쎄요, 여기는 뭐 유명한 곳도 없고 그냥 산골짜기라서 볼만한 데는 없어요.”
“아름다워!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가 이렇게 청아하게 들리다니 마치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나는 산으로 가는 길과 냇가로 가는 길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느 길로 가고 싶어요?”
“어느 시인이 말했어.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그래서 나도 이 길로 가보고 싶어.”
그녀가 냇가 쪽을 바라보았다. 오래전에 사람이 다닌 흔적만 남아 있는 그런 길이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네요.”
“어머! 프로스트를 알아?”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잘못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했다.
“아는 것은 아니고 그냥 어디서 읽었어요.”
“어디?”
“형 책에서.”
“그래, 그랬구나! 대단하네. 그런 시도 읽고……. 그럼 형은……. 뭐 하셔?”
“서울에서 학교 다녀요.”
“그렇겠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대꾸했다. 나는 괜스레 문학 소년이나 된 것 같아 기분이 우쭐했다. 사실 나는 문학이나 시를 잘 모르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시골 마을로 이사 온 뒤로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어서 형 책상에 꽂혀있는 세계문학 전집, 한국문학 전집, 소설집, 철학서 등 손에 걸리는 대로 집어 들고 뒤적거린 것이 전부다. 제목과 작가 이름만 외워 내 친구들에게 문학적 유식함을 자랑할 수 있었고 형들에게서 얻어들은 몇 마디 조각단어로 아는 척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자연이 좋아. 너도 좋으니?”
“그런 것 같아요.”
한껏 신이 난 나는 그동안 돌아다녔던 곳, 마치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이라도 보여주는 것처럼 그녀를 가장 아담하고 멋진 곳으로 안내했다. 예쁜 들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는 들판을 따라 냇가에 도착했다.
“어머! 이 보드라운 털 좀 봐!”
냇가에 다가가자 그녀가 고음의 감탄사를 내질렀다.
“이름도 예뻐요. 갯버들! 버들강아지라고 하죠.”
“그래, 옛날에는 멀리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주었대.”
“그건 왜요?”
“관세음보살님이 현세에 나타나실 때 버들가지를 손에 들고 오신다고 했어. 버들은 물과 생명을 뜻하므로 멀리 떠나는 이에게 선물하였는데 그게 이별한다는 의미로 와전되었지. 좀 슬프지?”
그녀는 갯버들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우수에 젖어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나는 갯버들에서 이별의 흔적은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강아지처럼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꽃잎에 인사하고, 작은 물고기에 환호하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하늘을 보고 잔잔하게 시 한 구절을 읊기도 했다. 한 손에 든 책을 이따금 펼쳐 들고 뭔가를 적어두곤 했다. 흘깃 본 책 안은 온통 백지였다. 책처럼 생긴 예쁜 노트였다.
냇가를 따라 올라간 상류에서 물에 반쯤 잠겨 서 있는 큰 바위에 도착했다.
“이 바위가 각시바위래요.”
“아!……. 뭔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맞아요!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저 위에 큰 바위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서방 바위라고 불러요. 원래 두 바위가 함께 있었는데 홍수 때 덜 무거운 각시바위가 더 멀리 떠내려 와 이렇게 각각 떨어져 있는 거래요. 그래서 각시바위는 서방 바위 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래요.”
“슬픈 이야기네……. 그래서 갯버들이 이렇게 많은가보다. 사랑은 원래 슬픈 거지. 사랑은 아름다울수록 더 슬픈 거야. 그래서 사랑이 사랑이야. 버지니아 울프도 슬픈 사랑을 품고 아름다움을 노래했어.”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이 먼 산을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사랑을 슬프다고 하였지만 나는 전혀 슬프지 않을 것 같았다. 안골마을 여학생을 가까이 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대체 사랑하는데 무슨 슬픈 이유가 있을까?
“저 모악산에 올라간 적이 있니?”
“그럼요, 여러 번 올라갔었죠.”
“대단하구나!”
“높이가 791m나 되지만 4시간이면 충분해요. 지금이라도 출발하면 선녀폭포와 대원사까지 금방 갔다 올 수 있어요.”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모악산은 암탉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형상이라서 포근하대요. 함께 올라가요. 제가 안내할게요. 한겨울에 올라가면 겨울의 눈꽃, 상고대도 볼 수 있어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그래? 나도 상고대가 보고 싶어. 고마워. 나에게도 너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누나라고 부를까요?”
“정말? 나는 형제가 아무도 없어. 그래 이 누나가 너를 동생으로 삼을게.”
그녀가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등을 타고 흘렀다. 다른 한 손은 툭툭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묘한 설렘이 가슴을 요동쳤다. 안골마을 여학생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날렸다. 하필 이때 그 여학생이 생각나다니! 내 뺨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어색하게 변한 분위기에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상류 쪽을 가리켰다.
“서방 바위까지 가 볼래요?”
“가고 싶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막상 누나라고 부르기에 쑥스러웠다. 내 눈에는 예쁜 여자로 보였다.
누나가 버스를 타고 떠난 후에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처음 데이트라도 하고 온 소년처럼 황홀하고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누나는 정말로 다시 찾아왔다. 온다는 말도 없이 불쑥 나타났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 쉽게 띄었다. 시골에서 보기 힘든 화사한 도시 옷차림 탓이기도 했지만, 시내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내리는 손님을 살피는 내 버릇도 한몫했다.
오늘은 각시바위를 지나 서방 바위까지 갔다. 길고 아담한 각시바위에 비해 넓고 크고 우람하게 생긴 바위는 흐르는 냇물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치 각시바위가 있는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누나는 오래도록 바위 위에 앉아서 무심히 흐르는 물살을 바라만 보았다. 마치 바위와 한 몸이라도 된 듯했다. 누나에게서는 뭔지 모를 고독감이 애잔하게 쏟아져 내렸다. 슬픔이 있다면 이런 걸까? 나도 모르게 울컥함이 솟았다. 누나 말대로 사랑이 슬픈 거라면 왜 사람들은 사랑하는 걸까?
학생에게 연애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우리 반 친구 중에는 여학생과 사귀고 있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고 친구들과 여자 이야기는 서로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래도 가끔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여동생이 있는 친구를 보면 은근히 부러워했는데 이제 내게는 가끔 만나는 누나가 있다. 연인은 아니지만, 연인 같은 누나, 누나는 예쁘고 세련됐고 진지했고 아는 것도 많았고 마치 시와 자연의 노래 속에 묻혀 사는 동화 속의 여주인공 같았다.
나는 주말마다 기다렸지만, 누나는 어쩌다 한 번씩 왔고 나는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산과 들판 그리고 숲속으로 다녔다. 저수지에서 노 젓는 배를 주인 몰래 탔을 때는 누나가 가장 즐거워했다. 누나는 저수지를 좋아했다. 주로 상류 쪽과 산으로만 다녔었다. 안골마을을 지나는 선녀폭포는 한 번도 누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 여학생을 만날까 두려웠다. 그 여학생을 보고 싶어도 왠지 누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여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해 봄에 만나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저수지 제방이 있는 수문 쪽은 전주에서 찾아오는 데이트족이 가끔 있었다. 누나는 수문에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져 나가는 물줄기를 보고 하염없이 감탄했다. 항상 조용하고 속삭이듯 말하던 누나였지만 시원한 물줄기에 막힌 가슴이라도 뻥 뚫린 양 환호성을 질렀다. 폭포수 같은 물소리에 맞추어 시를 읊었다.
오늘따라 물방울무늬가 있는 원피스가 잘 어울려 보였다. 곱게 빗은 긴 머리가 찰랑거리고 동그란 옷깃이 뽀얀 누나의 목덜미를 눈부시게 돋보이게 해 주었다.
제방을 따라 누나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나는 대학생이 되면 나도 이런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지금 바로 그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안골마을 여학생을 떠올렸다. 만약 누나가 아니고 그 여학생이었다면 손이라도 잡았을까? 뽀뽀라도 할까? 얼굴이 확 붉어졌다. 누나가 눈치 챘을까? 두근거렸다.
제방을 지나 산으로 접어들자 나무가 우거진 산길은 어느새 붉은 가을 색으로 물 들어가고 저수지의 파란 물빛에 비쳐 가물거렸다.
“겨울이 되면 저수지는 얼음이 얼까?”
“그럼요.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어서 마을 사람이 소달구지를 끌고 반대편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요. 몹시 추운 날 밤에는 얼음 우는 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요.”
“얼음 우는 소리라고? 처음 듣는데?”
“우는 소리는 아니고 어는 소리예요 얼음이 부풀어 오르며 금이 가는 소린데 메아리에 울려 무척 크게 들리거든요.”
누나는 반신반의하였지만,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은 안다.
“얼음이 얼면 젊은 사람들은 스케이트 타요. 겨울에 스케이트 타러 오세요.”
“나 못 타는데…….”
“나도 잘 못 타지만 형이 잘 타요.”
“그래 그럼, 그럴까?”
누나가 웃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누나는 책을 펼치고 뭔가를 썼다. 항상 누나 손에 들려 있는 바로 그 책에 마치 일기라도 쓰는 것처럼 비밀스럽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어서 선뜻 물어보지 못했다.
“어허이, 보기 좋네. 씨~발!”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부룩한 장발의 세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나는 큰일 났음을 직감했다. 동네 친구 승관이는 그의 형을 제일 무서워했다. 그 형은 체격이 우람하고 뒤뜰 나무에 샌드백을 매달아 놓고 두 주먹으로 펀치를 날리는 두려운 존재였다. 우리 형들과는 전혀 딴판인 승관이의 형은 언제 어디서든지 힘센 놈이 최고라고 말버릇처럼 우리에게 충고했다. 그러면서 논두렁깡패가 도시깡패보다 더 무서우니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않았다. 논두렁깡패는 텃세가 심하고 포악했다. 술이라도 마시면 위아래 가리지 않는데 특히 도시에서 놀러 온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괴롭혔다. 멋모르고 데이트 온 남녀는 그들의 질투심까지 폭발시키는 대상이 된다. 남자는 피투성이 되도록 얻어맞고 여자는 숲속으로 끌려 가 수모를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그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까 아찔했다.
“어디 남의 동네에 와서 연애질이야? 연애질은…….”
다른 더벅머리가 어깨를 건들거렸다.
“저희 데이트 온 거 아네요. 제 동생이에요.”
누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는 새말 운동하느라 뭣 빠지게 일하는데, 이렇게 놀러 다녀서야 쓰것나! 너는 학생이면 공부나 하지 뭐 한다고 여길 와?”
한 사나이가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주먹을 불끈 쥐어보았지만 아무 대항을 할 수 없었다. 이때 덩치가 큰 한 남자가 반대편 산 너머쪽에서 나타났다. 누나는 약간의 용기를 얻었는지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서 말했다.
“왜,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그래요? 우리를 그냥 가게 놔주세요.”
일종의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더벅머리가 누나를 사납게 밀쳤다. 누나의 블라우스 윗단추가 떨어지며 뒤로 풀썩 주저앉았다.
“우리 잘못한 것 없어…….”
나도 힘을 내서 대들었지만 퍽! 소리와 함께 마지막 말은 하지 못했다. 주먹이 내 복부를 강타했고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사이에 덩치 큰 남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뭣들 하냐?”
남자가 대뜸 물었다. 껌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각진 턱에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는 짧은 머리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우락부락한 사나이였다. 전주극장 뒷골목에서 노는 도시 깡패 같았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우리끼리 장난하고 노는 거야.”
결국 그놈이 그놈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 같은 눈치였다.
“잘 해라! 사고치지 말고!”
“우리끼리 재밌게 놀것잉게, 형씨는 볼일이나 보셔.”
세 명중 가장 험악한 인상을 가진 덩치 큰 남자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산에서 내려온 사나이는 괜한 시비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듯 물러섰다. 누나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도움이라도 요청하고 싶었는데 이제 깡패들이 네 명이나 된다.
이때 그 덩치의 사나이가 배를 움켜쥐고 구부리고 있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소리쳤다.
“너 인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다. 나를 아는 동생처럼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누나를 위아래로 살펴보고 나서 다시 물었다.
“형은 잘 있냐?”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예…….”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덩치 큰 사나이의 얼굴이 내 눈에 익었다. 2년 전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통학할 때 버스 안에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있었다. 서로 욕하고, 소리치고, 주먹을 주고받고 때로는 통학생들을 이리저리 밀고 장난치고 거칠게 놀던 불량 학생들 중에서도 체격이 가장 크고 우두머리 격이 남자가 바로 지금 나를 내려 보고 있다. 훨씬 더 험악한 인상의 깡패가 되어 나타났다. 그때도 얼굴만 봤을 뿐 한마디 대화를 나누거나 서로 아는 것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그가 형의 안부를 물어온 것은 의외였다. 나는 통학을 하였으니 보았겠지만 형들은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알 리가 없다. 더구나 형은 모범생으로 이런 깡패들과 친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형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투로 물었다.
“형은 아직 서울에 있는데요.”
“그래? 형 내려오면 쌍룡이가 한번 만나자고 전해라.”
“예, 알았어요.”
형님 이야기를 하니 나도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야, 내 친구 동생이다. 건들지 마라!”
그가 사내들을 돌아보고 명령하듯 말했다.
“잉, 친구 동생이여? 그럼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냥 심심해서 장난해 본거여.”
그 더벅머리가 내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이런 데 돌아 댕기지 말고 빨리 집에 가라, 알아들었냐?”
누나가 재빠르게 나를 부축하고 산 아래쪽으로 허겁지겁 걸었다. 누나는 블라우스 앞가슴 옷깃을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은 채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신작로에 와서 비로소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며 안정을 찾았다.
쌍룡이라는 우락부락한 남자 덕분에 위기를 모면해 다행이었지만 그가 형 친구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도와주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거라고 속으로 단정했다.
그날 이후 누나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저수지가 꽁꽁 얼어붙고 스케이트장이 오픈하자 전주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누나가 스케이트 타자고 했던 말을 잊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혹시나 하고 기다렸지만, 얼음이 녹고 봄이 찾아와 갯버들이 피어 날 때까지도 누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각시바위를 지나 서방 바위까지 혼자 걸으며 누나와 나눈 이야기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했다. 그리고 드디어 선녀폭포를 가다가 안골마을에서 그 여학생을 만났다.
마침 손에 들고 있던 갯버들을 건네주며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버들강아지가 예뻐서…….”
여학생이 하얀 치아를 보이며 수줍게 웃었다.
“갯버들, 꽃말은 ‘포근한 사랑’이래요.”
지금까지 이렇게 딱 맞고 잘 어울리는 꽃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누나는 이별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그러나 만남도 한 번뿐, 두 번 다시 그 여학생을 만나지 못했다. 사랑은 슬픈 것이 아니라 가슴을 태우며 두근두근하는 일이다. 창가에서 부르는 세레나데가 아니고 먼 발치에서 서성대는 아쉬움이다.
더위가 시작되는 7월 초 학교를 마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통학생들로 꽉 찬 만원 버스의 한가운데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었다. 누나였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쳐 부를 뻔했다. 누나가 입술만 움직여 말했다.
‘다 음 정 류 장 에 서 내 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하고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내렸다. 반갑게 내 손을 잡은 누나는 아주 밝은 표정이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야윈 얼굴은 하얗다 못해 해쓱해 보였다. 그 사건만 없었어도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버스에서 내린 누나와 나는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다 왔어. 우리 집은 여기야.”
누나가 걸음을 멈춘 곳에는 택시가 한 대 들어갈 정도의 넓이로 아치형의 철제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평화 보육원’ 세로로 된 나무 간판이 보였다.
누나가 보육원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누나 뒤를 따라 엉거주춤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채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나고 한참을 걸어가 조그만 집 앞에 도착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쪽마루와 막아놓은 미닫이문이 보였다. 아마도 반대쪽에는 다른 사람이 살겠거니 생각되었다.
방은 작지만 정갈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누나의 성격으로 보아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장롱, 앉은 책상과 책꽂이 작은 찬장이 가구 전부였다. 혼자 사는 여자의 방을 처음 들어왔기에 아주 어색했다. 처음 맡는 달콤한 향내가 코를 자극했다.
“엄마하고 살 때는 집이 컸어, 광에 고구마를 담아 둔 가마니가 있었고 마당에 쥐가 돌아다니곤 했지. 엄마가 해준 토란국을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먹고 싶어.”
누나는 그냥 독백하듯 아무렇지 않게 계속 이야기했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통 알 수 없었다. 누나가 가족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어릴 때 나는 그저 읽고 또 읽었어. 보이는 것은 모두 읽었어. 간판, 책, 잡지, 시장에서 생선 싸준 신문지도 곱게 펴서 읽고 또 읽었지.”
누나의 시선이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나는 책상의 노트에 적힌 이름을 봤다.
“이향금. 누나 이름이야?
“촌스럽지? 예쁘지 않지?
“향! 금! 나는 좋은데…….
내 말에 누나는 풋 하고 콧소리를 냈다.
“형은 잘 있어?”
한 번씩 던지는 질문이었고 ‘네, 잘 있어요.’ 매번 똑같이 대답했었지만 오늘은 내 대답이 달랐다.
“어떤 형이요?”
누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형이 또 있어?
“네, 맏형, 둘째 형 그리고 셋째 형……. 그리고 제가 막내고요…… 모르셨어요?”
정말 내가 4형제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누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2 년 전, 버스에서 우연히 한 무리의 대학생들의 대화를 의도하지 않게 엿듣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 버스 종점까지 따라갔었어.”
누나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곱게 포개어 살포시 가슴에 얹었다.
“처음 마주친 눈동자......, 그 안에 비친 미소가 단숨에 내 숨을 멈추게 했고 웃음소리는 내 심장으로 들어와 자리 잡았어. 행여 사라질까 여기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 나도 몰라. 왜 그런지는.”
나는 숨을 죽여 가며 누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안골마을 여학생의 얼굴이 누나의 얼굴 위에 아른거렸다.
“단 한 번의 시선이 그토록 마음을 흔들어 놓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 벅찬 설렘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작이기도 해. 그 후 매일 버스를 탔지만,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어, 나는 망설이다가 그 때 그들이 내린 버스 종점까지 가게 된 거고 거기에서 너를 만난 거야.”
누나의 손은 가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형과 친구들은 모두 한두 번씩은 다녀갔기 때문에 어떤 형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 말을 해야만 했다.
“큰형과 둘째 형은 캐나다에 이민 갔고, 셋째 형은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있어요.”
누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가늘게 떨고 있는 어깨의 움직임이 나까지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코끝이 시큰했다.
사랑 때문에 슬프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누나는 손바닥만한 분홍색 노트 한 권을 건네주었다.
“네가 읽어도 좋아, 혹시라도 형에게 전해 주어도 괜찮아. 나도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어. 이제 어디를 가도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온갖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웠다. 형 셋과 누나, 안골마을 여학생과 쌍룡이라는 깡패 그리고 나까지 머릿속에 어지럽게 맴돌았다. 나도 모르게 울렁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애써 침착하려했다. 할 말도 없었고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소년이 알면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그 느낌만은 확실했다. 비록 설명할 수 없어도.
누나와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분홍색 노트의 첫 장을 펼치자 예쁜 손 글씨와 함께 누나의 향기가 꽃 냄새처럼 은은하게 스며왔다.
갯버들 물오를 제
바람도 멈추어 선 시냇가에
날리는 버들 꽃
가슴에 품었네.
깊은 봄
배꽃 바람에 흩날리고
국화 낙엽이 될지라도
외구름 산 너머로 흘러가 듯
꿈속에 님은 시름으로 지나가네
해는 지고 물은 다시 흘러
갯버들 다시 물오를 제
천 리 길 떠나간 님
돌아볼까 가슴만 설레네.
나는 즉시 노트를 덮었다. 어쩐지 내가 읽어서는 안 되는, 또는 읽기가 두려운 그 어떤 내용이 있을지 겁이 났다. 그동안 내가 상상하던 그 아름다운 꿈이 깨질 것만 같았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려고 하는 나쁜 마음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또는 누나의 애틋한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그 분홍색 노트를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고 두 번 다시 꺼내 보지 않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반 백 년이 지났다. 나도 형님들을 따라 캐나다에 이민 와서 결혼했고 두 딸을 키우고 흰머리가 센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아쉽게도 분홍 노트는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도 없고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바람 타고 흘러들어 온 고향 소식에서 주근깨투성이의 친구 승관이가 전주에서 가장 큰 호텔의 주인이 되었고 그 형은 유명 백화점의 사장이 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불현듯 떠오른 것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와 갯버들이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누나.
‘이향금’
구글 검색 창에서 ‘갯버들 물오를 제’라는 제목의 시집을 발견했을 때 나는 흥분과 설렘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나는 화려하게 활동하는 시인이었다. 한국의 도서목록에서 이향금 시인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주문하다가 작가 프로필에서 눈에 익은 이름을 보고 숨이 멎을 듯 깜짝 놀랐다.
‘배우자 이쌍룡과 슬하에 두 자녀를 둔 중견 시인으로 갯버들…….’
저수지 제방에서 벌어진 그 날의 사건은 바로 이쌍룡! 그가 꾸민......,
설마?
정말?
맏형님의 고희 생일날, 4형제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을 때 내가 물었다.
“형님, 이쌍룡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아니, 없는데.”
“형님, 그럼 혹시 ‘이향금’이라는 시인을 알아요?
형 셋 모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향 금? 모르겠다! 누군데?”
형들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터질 듯한 내 가슴에 고이 묻어 두리라!
한국에 가면 꼭 이향금 누나와 함께 모악산에 올라가고 싶다. 약속했으니까.
그런데 안골마을 그 여학생은 갯버들을 기억이나 할지 궁금하다.
끝
|
첫댓글 나는 한동안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
그시절 풍광
그시절 공기
그시절 소박함
그시절 설레임으로....
시간여행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구나!
황순원의 소나기가 있다면
Wolfkang Lim 의 갯버들이 있네!
친구들은 그 때를 기억하겠지.
우리들은 청춘은 빈곤,통제 제한 속에서 청춘을 보내며 철없이 성장한 베이비붐 세대였다. 그러나 가장 밑바닥에서 지금의 풍요까지 모두 경험하는 귀한 인생을 살고 있다.
추억은 우리의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무성, 잠시나마 옛추억에 잠기게 했다면 정말 다행이네.ㅎㅎㅎ.
황순원의 '소나기'와 어찌 우열을 다투랴!
훌륭하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임강식이는 완전히 작가다.
좋은 글들을 계속 쓰는, 해외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다른 단편소설들을 보면,
일단 구성(plot)이 넘 좋다.
이 새벽 기분이 좋다.
그런 친구가 나온 고등학교, 화이팅이다.
생활글 작가 우천에 비할바는 못되지.
나는 그저 생각에 빠져 있는 시간이 좋아 글을 쓰는 것뿐이다.
요즘 낙향한 선비가 된 자네가 한없이 부럽다네.
울프, 건강은 좀 어떠신가? 하는 일없이 바빠 자네의 블로그에 잘 들어가지 못했네.
당연히 자네의 그 재미난 PLOT의 소설들도 읽지 못했네.
아, 훌쩍 날라가 토론토에 함 가 만나고 싶네.
그곳에는 나의 20년 선배부부가 또한 활짝 반길텐데.
2008년에 9박10일, 토론토와 동부지역 여행했는데,
어찌하다 사진 파일이 클릭 잘못 눌러 몽땅 삭제돼 버린 기억이 있네.
흐흐. 이렇게나마 간간히 소식 전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