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펠(복음성가 ‧ 생활성가)을 부르며
수삼 년 전 캄보디아에 갔다 오는 도중 비행기 안에서 육필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수신인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비구니들의 도량(道場으로 적는 줄 안다.)도 화운사 주지 스님. 하지만 그걸 부쳤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내가 스님들 앞은 아닌, 불자들에 섞여서라도 좋으니 노래 몇 곡을 부르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그 소원은 버리지 않고 있다.
나는 회갑에서 두어 살 넘겼을 때까지는 절에 다녔었다. 해서 나는 교육공무원 줄곧 인사기록카드에도 종교 란에 ‘불교’라 적은 채 정년퇴임을 했다. 평생 거의 앞을 못 보신 엄마 때문(덕분)이었다. 난 고희가 가까워져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또 지나간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처절한 투쟁을 할 때, 나는 성당에 가서 교리 교육을 받고 영세(領洗)했다. 딸이 시집을 가는데, 상대가 가톨릭 신자여서 따라 개종한 것이다. 70명의 의사가 달려들어도 치유를 못 시키던 병을 난 내가 부른 복음성가‘살아 계신 주’를 통해 떨쳐 내었다. 그로부터 나는 괴롭거나 슬플 때, 목청을 가다듬고 거기 ‘살아 계신 주’를 싣는다.
기독교(가톨릭 및 개신교) 행사 찬양 ‧ 축하곡으로도 안성맞춤인 게 이 복음성가(지금은 가톨릭에서 ‘생활 성가’라 칭한다.)다. 목사들이 많이 모인 문학 시상식 때며, 어느 원로 교육자(그의 부군이 장로인 독실한 기독교 신자/ 이영님 전 교장)의 팔순 잔치 때도 나는 조심스럽게 이 노래를 불렀다. 나 자신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고 남았다.
내 결점 중의 하나가 ‘엉뚱한 발상’이다. 낯선 타관에서 서울까지 가서 TKBN-TV라는 케이블 방송에서 노래 2백곡을 녹화하기 시작한 것도 그중 하나다. 선곡을 신중하게 하다 보니 근래엔 방송국 행이 뜸할 수밖에.
그러다가 나는 도약(?)한다.‘살아 계신 주’를 비롯한 가스펠(복음 성가/ 생활 성가)를 카메라 앞에서 부르고 그 영상과 노래를 전국에 송출해야겠다! 씨디를 하나 내고 싶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자 궁여지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쉬울 리 만무하다. 스무 곡쯤을 목표로 하는데, 거기 방송국 반주기에 입력되어 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는데, 그끄저께 경기문학인협회 사무국장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찬양(讚揚)’이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주워들은 풍월로 그게 가스펠이라는 걸 재빨리 알아차렸고. 두말 않고 가겠다고 했다.
부천은 그 옛날 내가 정말 수모를 당한 도시다. 교장 시절, 거기 검찰지청에 끌려(?) 간 적이 있다.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무협의 종결 처분을 받았다.
이번에 중동 역에 내리라기에 거기가 부천시인 줄 모르고 발걸음 했다. 묻고 또 물어, 택시를 두 번씩이나 바꿔 타고 가까스로 방송국을 찾았다. 이윽고 저 유명한 한인수 탤런트가 들어섰다. 수인사를 나누는데 그는 굉장히 겸손하고 친절했다. 다섯 살 위라며 나를 예우,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뒤에 선 채로 사진을 찍게 할 정도로….
앞뒤 사정을 살펴보니 두 곡은 무리겠다. 나는 잽싸게 ‘살아 계신 주’만 택하곤 눈치껏 연습에 돌입했다. 반주기의 박자가 빠르고 음정은 낮다, 나는 몇 번이나 맞춰 달라고 채근한 뒤에,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무대에 정식으로 올라서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가사가 많이 다르다. 본래 한 박자를 쉬고 들어가야 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자막이 흐려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 도중에 목사(牧師)가 거들어 주어서 백 점 만점에 70점이 될까 말까할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출연진 모두 우르르 달려 나와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닌가?
하루 이틀 혼자서 낯을 붉혔고말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겨우 그 정도냐고 누가 항변해도 하는 함구할 수밖에. 그런데 전화위복. 섬광이 내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래 이 ‘경찰방송’에 몇 달간 나가자! 거기서 가스펠을 녹화하면 개신교 신자든 가톨릭 신자든 누구에게나 내 목소리가 찬양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마침내 나는 마리안 앤더슨의 Deep River까지 떠올리고 말았다.
방송국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것 같더라. 내가 가스펠을 봉헌하는 대신, 출연료는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내면 될 테고….해서 난 바야흐로 가슴이 설레는 중이다. 세속 표현을 빌어, ‘죽으란 법은 없다’며 안도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와 ‘주여 이 죄인이’를 두고 검토 또 검토 중.
살다가 보면, 불교 관련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찬불가’를 부르게 될지 누가 아나. 아니 저승에 계신 엄마를 위해서도 난 죽기 전에 ‘찬불가’ 몇 곡을 소화해야 한다. 내 작은 몸부림이 종교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비행기 안에서의 육필 편지를 찾는 것도 급선무다.
*후기/ 마침 나는 이 흑인영가(가스펠)의 가사를 일고 있다. 1953년 마리안 앤더슨이 남일 초등학교에소엔가 공연을 했다는 소릴 일고여덟 해 뒤에 들었을 때, 흉내를 내 봤기 때문이다. 악보를 볼 줄 아니 곧 원어로도 부를 수 있게 되겠지. 발음(발성)은 윤원일 작가에게 부탁한다. 혹시 스펠링이 틀렸다면 바로잡아 주시기 부탁한다.
Deep River
Deep river(*r과 i가 안 붙음)
My home is over Jodan/
Deep river Lord I want to cross over into campgound/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
Deep river Lord, I want to cross over into campground/
Oh don't want to go to that gospel feast/
That promis'd land where all is pease?
Oh deep river Lord I want to cross over into campg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