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생기를 더해가는 봄입니다. 새잎을 틔운 나무를 보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오규원 시인은 나무에서 새잎이 돋아나는 어느 봄날 아침의 정경을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태어났다’고 표현했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그 잎들이 ‘어리둥절해 한다’는 표현이 떠올리게 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오규원 시인은 평범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한 편의 시를 그려냈습니다. 이 시인의 시선처럼 지금부터 ‘낯설게 보기’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낯설게 보기 : 들여다보기 앞서 소개해드린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문학, 특히 시는 일상의 삶을 낯설게 보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문학에서는 아예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이 존재합니다. 이는 일상화되어 친숙하거나 반복되어 참신하지 않은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것* 을 말합니다. 시인은 특유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낯설게 보고 그것을 섬세하게 묘사하지요.
간장게장
광고 기획자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 이 시를 접하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간장게장을 보면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바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데요. 안도현 시인은 간장게장을 보고 삶의 어찌할 수 없음에서 오는 비애와 천천히 스며드는 그 비애를 받아들이는 존재의 숙명을 그려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간장게장을 그냥 본 것이 아니고 ‘들여다본’ 것이지요. 들여다본다는 것은 곧 어떠한 사물이나 대상을 깊이 있게, 천천히, 자세히, 애정을 가지고 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 낯설게 보기 : 비틀어 보기 이번에는 미술 영역으로 넘어와 마르셀 뒤샹의 <샘>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평소 미술에 무지해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가 된 작품,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저희 부천지원에서 주최한 ‘인문학 愛 빠지다’라는 제목의 인문학 강좌를 듣고 이 작품의 의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변기를 화장실에 있는 배설의 도구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화장실 밖으로 끌어내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우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통념과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술 공간에 전시된 일상적인 사물도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볼 수 있을 것인가?’
3. 낯설게 보기 : 새롭게 보기 문학, 미술 외의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낯설게 보는 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영역에서 어떤 대상을 낯설게, 다르게, 새롭게 보려고 했을까요? 이 질문은 결국 세상을 낯설게 보는 시각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과도 연결되는데요.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잘 느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 생활인으로서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되풀이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복되는 업무, 반복되는 일상에 마비된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규원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부”을 때가 찾아오는 것이지요.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꺼내 들며 “인간은 분명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항상 생각하는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즉 “친숙함이 사라지고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인문적 사유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결국, 무감각한 일상 속에서 잠자는 생각을 깨우기 위해서, 주변에 있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못 보는 혹은 안 보는 것들을 다시 새롭게 보기 위해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그렇다면 낯설게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저는 인문학으로의 여행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인상 깊은 여행 경험 한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부천지원 인문학 강좌에서 정약용의 형법서 『흠흠신서』를 통해 조선 시대 유학자들에게 법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풀어낸 강의, 중국인의 빨간색 사랑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살펴본 강의 등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9주간의 인문학 여정은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사를 확장하고, 세상을 낯설게 보는 힘을 조금이나마 성장시킬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더 넓고 깊은 인문학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심을 가지니 제 주변에 있던 인문학이 보였습니다. 아주 가깝게는 법원 사이버 연수원 누리집(http://scourt.hunet.co.kr)에서도 인문학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문학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라는 고은 시인의 말씀처럼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인문학 여행을 통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보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