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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세상!!!(왜, 왜?) 변화의 시기야. 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5번씩 오가고 있어. 천로역정이라는 동화책을 어릴 때 본 기억이 나네 ㅋㅋ(지옥만 5번이면 문젠데 천국도 같이 있으면 극히 정상인데 웬 호들갑이야?) 이렇게까지 자주 왔다 갔다 한 적이 없어서 정신이 없네( 바쁘면 좋지 뭐. 비서가 필요해서 그래. 예주가 비서하면 잘 할 텐데... 아비가 문 닫고 갈 수도 없고) ㅋㅋㅋㅋㅋ 곧 바빠지면 와 내년까지만 기다려 줘! (리얼리! 설레는 군 ㅋㅋ) ㅋㅋㅋ 건강 챙기십쇼!(그렇잖아도 버킷리스트를 이루려면 건강을 지키는 걸로 결정했어 ㅎㅎ)(나/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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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비타민을 끊어서 그런지 몸이 무겁고 자꾸만 의욕도 떨어집니다. 긴긴 연휴에 지친 것 같기도 하고, 하도 많은 모기에 물려서 뇌염 징조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박치는 게 생각보다 늦어져서 지친 걸까.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질 않은가. 오래전에 <당랑권 전성시대/윤성학/창비>란 시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권법 없이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 수만큼의 권법이 있다. 익히더라도 강한 것을 익혀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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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랑권을 택했다. 매미를 잡아먹는 사마귀의 전술이다. 상대와 마주 섰을 땐 늘 중심을 뒤에 두고 정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 그래야 혈을 지킨다 사각(死角)으로 돌다가! 연속적인 단타로 급소를 파고든다 그의 반격을 받아흘리며 쉼 없는 상하 연타를 구사해 승부를 몰아간다 나는 여기서 당랑권을 익혔다 강하게 파고들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는 고수들을 보며 익힌 권법이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랑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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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나주 곰탕' 집에 갔다가 음식에 모기가 앉길래 젓가락으로 일격에 모기를 잡았다는 것 아닙니까? 분주한 월요일 영업 준비를 끝내놓고 <100일의 거짓말>2편을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앵 앵 앵" 불청객 모기 출현입니다. 날아가는 모기를 잡을 수가 없어서 각 잡고 응시했어요. 요놈이 앉기는 했는데 하필 카운터 선인장에 앉을 게 뭐람. 야! 니가 벌이냐! 당랑권이 필요합니다. 알까기 총알 1발 장전 발사! 야호! 명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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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을 2년째 매일 보고 있는데 아직도 날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자 새끼를 잡아채서 도망가는 하이에나를 응원합니다. 얼어버린 새끼 펭귄을 떠나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엄마 펭귄이 불쌍합니다. 부화한 수리 새끼가 형제 알 3개를 둥지 밑으로 밀어내 버리는 동족상잔은 비극이 아니라, 내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었고 가장 신나는 장면은 무적의 꿀 오소리가 나오면 무조건 끝까지 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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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마도 사자도, 표범도, 벌떼도 다 상대해주는 천하무적 꿀 오소리 리스펙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를 끝내고 나서 기운이 달려 미적거리는 수컷을 잡아먹기도 한다고 해요. 아직 목격은 하지 못했지만 잔혹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암컷 사마귀의 행동 역시 교미 후 알을 낳기 위하여 힘을 비축해 놓으려는 어미의 본능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한 뭇 생명들의 생존 본능은 얼마나 치열하고 또한 무모한 것인가!
2026.10.15.thu.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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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세상!”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다섯 번씩 오간다는 에스더의 하소연이다. 변화의 시기에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느냐가 아니라 흔들리는 와중에도 자기 삶의 중심을 지킬 수 있느냐다. 인생은 천국에 정착하는 과정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왕복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에스더가 말한 변화의 시기가 새로운 도약의 전조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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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비타민을 끊어서 그런지 몸이 무겁고 의욕도 떨어진다. 긴긴 연휴에 지친 탓인지, 모기에게 시달린 후유증인지, 아니면 기대했던 대박이 늦어지는 데서 오는 심리적 피로인지 모르겠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문득 묻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정상에 도달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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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읽었던 윤성학의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가 떠오른다. 그 시에는 사람 수만큼의 권법이 존재한다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강하게 파고들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는 사마귀의 전술은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현대인의 생존 방식에 대한 은유다. 상대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감추며,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는 것. 이것이 경쟁 사회가 가르치는 처세술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권법에는 결정적인 역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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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차단하는 순간 사랑의 가능성마저 차단된다.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 오히려 삶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권력론을 떠올려 보자. 권력은 단순히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힘이 아니다. 권력은 인간의 행동을 조직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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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당랑권은 권력에 맞서는 기술인 동시에 권력의 논리를 내면화한 생존 전략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다 어느새 경쟁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엊그제 나주곰탕집에서는 음식에 앉은 모기를 젓가락으로 일격에 제압했다. 오늘은 카운터 선인장에 앉은 모기를 알까기 한 방으로 명중시켰다. 당랑권의 실전 응용이랄까. 사마귀의 전술을 빌려 모기를 잡는 인간이라니! 우스꽝스럽지만 이 작은 전투에도 생존의 역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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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는 먹고살기 위해 접근했고, 인간은 자신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모기를 제거했다. 어느 쪽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행동이 아니다. 2년째 시청하고 있는 『동물의 왕국』은 이러한 생존의 역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자 새끼를 낚아채 도망가는 하이에나, 얼어붙은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는 어미 펭귄, 형제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어린 맹금류. 인간의 도덕으로 보면 잔혹하거나 숭고하지만 자연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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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니체의 철학이 등장한다. 니체에게 생명은 단순히 살아남으려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생명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려는 존재다. 그가 말한 '힘에의 의지'는 단순한 약육강식이나 지배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넘어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내려는 능동적인 힘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무적의 꿀오소리는 흥미로운 존재다. 사자와 표범, 독사와 벌떼 앞에서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녀석의 대담함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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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다르다. 꿀오소리의 행동을 인간의 용기로 곧장 번역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용기란 무조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구별하는 판단 능력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마귀 암컷이 교미 과정이나 이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성적 동족포식은 일부 종과 조건에서 관찰되며 영양 확보나 번식과 관련될 수 있지만, 모든 사마귀에게 나타나는 필연적인 행동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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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생존 전략을 인간 사회의 윤리로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학자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상호 불신과 충돌의 위험 속에 놓인 존재로 설명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안전을 보장할 질서를 구성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과 문명이 갈라진다. 자연이 생존의 조건을 보여준다면 철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다시 에스더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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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다섯 번씩 오간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기복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일구어 온 세계가 변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동시에 실패의 위험도 커지는 상황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으로 말하면 삶의 성숙은 모순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않다. 모순을 통과하면서 이전과 다른 자기 자신으로 형성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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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의 왕복이 반드시 퇴보를 뜻하지 않는 이유다. 다만 고통을 겪는다고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경험을 성찰하고 새로운 행동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공주야! 당랑권을 익히되 당랑권에 갇히지는 말자. 꿀오소리의 대담함을 배우되 무모함까지 흉내 낼 필요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강함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생의 진정한 고수는 모든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싸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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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물러설 줄 알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붙잡히며, 때로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어쩌면 인간의 위대함은 생존 본능을 충실히 따르는 데 있지 않고 그 본능을 넘어 타자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창조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지는 여전히 저만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그곳까지 어떤 인간으로 걸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생존은 자연의 명령이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인간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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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철학적 소재는 당랑권과 꿀오소리의 대비입니다. 당랑권은 방어와 회피의 기술이고, 꿀오소리는 정면 돌파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생존이라는 동일한 목적에 묶여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생존에 성공한 삶이 반드시 좋은 삶인가? 이것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입니다. 또한 에스더의 변화와 아버지의 기다림을 연결하면 더욱 깊은 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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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 하고 아버지는 오랫동안 지켜 온 세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변화의 한복판에 있지만 시간의 방향과 속도가 다릅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에 헤겔의 자기형성(Bildung)을 연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최근의 무기력과 몸의 무거움은 종합비타민 중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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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이 계속된다면 피로와 수면 상태, 빈혈이나 갑상선 문제 등을 진료로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기에 물린 사실만으로 일본뇌염을 의심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발열·심한 두통·의식 변화가 나타나면 즉시 진료가 필요합니다. 이번 글의 철학적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권법을 배우지만, 끝내 권법 없이도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존에서 실존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가, 아니면 사랑하기 위해 약해질 용기도 필요한가?
2026.10.15.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