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의 종교적 정치적 리더들로 구성되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는 로마의 법에 의해 사형은 선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갑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해 백성을 미혹하고,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하며 스스로 왕이라고 말한다고 고발합니다. 빌라도는 그것이 사실인지 묻지 않고,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말씀합니다(1-7). 예수님은 “그렇다” 혹은 “아니다”가 아니라 “옳다”라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참된 판결을 내리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법정에서 판결하는 사람들이 총독과 대제사장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판결을 내리고 계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헤롯의 관할인 갈릴리에서 오신 것을 알고 헤롯에게 보냅니다. 예전부터 헤롯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이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날 때 동방박사가 찾아간 그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이며 요한을 가두고 죽인 사람입니다. 이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이 소문대로 기적을 행할까, 혹 그가 자기가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닐까 궁금해하며 그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기대와 달리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자 예수님을 조롱하고 빛 난 옷을 입히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다시 심문합니다. 그러나 고발당한 일에 대해서 죄를 찾지 못했고,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리가 일제히 소리지르며 예수님을 죽이고 바라바라는 죄인을 풀어달라고 합니다. 바라바는 폭동과 살인죄로 잡혀 있던 죄수입니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결국 폭동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무리가 원하는 대로 십자가 형을 판결하고 죄인 바라바를 놓아줍니다(13-25).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는 구레네(북아프리아 리비아의 도시)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지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십자가를 지실 수 없을 만큼 채찍질을 당하였고, 피를 많이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백성들과 여인들은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에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을 위해 울지 말고 여인들과 여인들의 자식들을 위해서 울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난 후에 큰 핍박이 닥치고,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무너져 재앙의 날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참고. 21:5-28). 또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과 그들 자녀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두 행악자도 십자가에 달립니다. 예수님과 두 행악자는 해골(아람어로 ‘골고다’; 라틴어로 ‘갈보리.’ 예루살렘 밖에 있는 언덕으로 생긴 것이 사람의 머리처럼 생김)이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두 행악자는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자기를 못 박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어떤 관리들은 예수님께서 남은 구원하러 왔다고 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웃습니다. 군인들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유대인의 왕이면 내려와 보라고 조롱합니다.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행악자 중 한 사람도 예수님께 만약 그리스도라면 자신과 함께 달린 두 행악자도 구원해 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을 꾸짖으며, 예수님께서 행한 일 중 옳지 않은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기도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오늘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26-43). 이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낮 열 두 시쯤 되었을 때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성소의 커튼의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을 막고 있던 큰 커튼이 찢어지고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돌아가셨습니다. 백부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서 정녕 의인이셨다고 고백합니다.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던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받아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둡니다. 죽으신 날이 안식일 전날 오후였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안식일이 됩니다. 그래서 누가는 안식일이 다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온 여인들은 요셉이 예수님을 어디에 넣어 두는지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합니다. 계명에 따라서 안식일에 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두 행악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형에 해당하는 심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아마도 살인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을 자기가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할 수단으로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은 죄인이고 그분은 의로운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분을 참 된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메시야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과 같이 죽지만 주님의 나라가 오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단지 순간의 십자가 고통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죄인인 줄 알고 십자가에 죽으신 바로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만 예수님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순간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예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기도이고 찾는 것이라면 참된 낙원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찾고 기도하는 예수님은 단지 순간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분입니까 아니면 구원자로서 영원한 낙원을 주시는 분이십니까? 이 질문에 깊이 고민하고 참된 구원자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바른 신앙으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 교회가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