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라 길고 어렵게 써 본 뒷북 : 인터넷 대란, 그 불온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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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가오'까지 잡고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
나는 얼마 전, 큰 맘 먹고 예스24에서 책 4권을 구입했다.
4권의 리스트.
수잔손탁이 60년대에 쓴 시각문화 비평서 '해석에 반대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살바도르 달리'.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링크'
요즘 워낙에 책을 안읽었기도 했고, 뭐 하나 쓸라고 해도 머리 속에서 짜낼 것 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쩜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갑자기 새로운 지식에 허기짐을 느꼈다고나 할까? 아니면 넘 허접한 회사일로 내돌리다 보니, 책이 그리워졌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없는 돈에 철커덕 카드결제를 하고 다소 뿌듯한 마음으로
무거운 택배 상자를 받았다.
먼저 잡은 책은 'LINKED'
우리 제목으로는 그냥 '링크'.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문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아주 쉽게 씌여져 있었다. 제법 두꺼운데도 하루만에 홀라당 읽어 버렸다.
이 책을 맛있게 읽다가 최근 인터넷 대란에 대한 뒷북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INKED' 는 2000년 미국의 대부분의 메이저 웹사이트를 마비시켰던 최대의 '인터넷
대란'이 DOS(Denial-Of-Service)의 범인이 단지 '마피아보이'라는 닉의 평범한 장난꾸러기 15살 꼬마가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로 부터 시작한다. 굉장한 테러집단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진 전문적 크래커 집단도 아닌 너무도 허설픈 '개인'의 장난기로부터 기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별 다른 악의 없이도 거대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이 네트워크의 사회의 특징을 대변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번 언론들이 난리를 치는 인터넷 대란도 이런 전형적인 예이다. 밝혀진대로 해커의
공격이나 목적의식적인 네트워크 교란행위도 아니었고, 그저 MS의 허약한 DB 서버를
파고들었던 바이러스의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SQL 서버를 장착할 필요가 전혀 없는 내 PC나 여러분 대부분의 PC는 안전했다.
해커의 공격이니 뭐니 주접을 떨던 KT와 정통부가 '대국민 행동요령'이라고 뻥친, 개인 사용자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55메가 짜리 패치를 다운받느라 법석을 떤 걸 생각하면 열받을 뿐이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깝깝한 넘들!
그나저나 바이러스 공격을 받은 서버들은 어떻게 복구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시간 날 때마다 WINDOWS 다시 깔 듯 했을 것이다. -.-;; 리부팅이나 전원 뺐다끼기가 않되면 다시깔기가 MS가 요구하는 가장 안전한 복구방법 아니던가. 열라 나쁜 쉐이덜...
각설하고,
오늘하고픈 하는 이야기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94년 쯤 나는 어느 대학 학보에 싸구려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 적이 있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완전히 전술적으로-'서울 시내 어느 맨홀 뚜껑이라도 열어보면 드러나는 종합통신망 라인들을 온통 자르고 다니기 시작한다. 시내는 갑자기
통신 두절 상태가 시작되고 각종 팩스와 컴퓨터 등은 가입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완전히 중지한다.각 전화국과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에는 항의와 문의가 빗발친다. 은행의 온라인 시스템과 언론사들의 기사 전송이 정지된다. 복구를 시도하지만
범인은 의도적으로 주요한 연결부위만을 골라 연속적으로 절단하거나 화재를 일으켜서 복구는 빨리 진행되지 않고 혼란이 일정시간 계속된다.
이 당시에는 인터넷보다는 pc통신이 지배적이었고, 핸드폰보다는 '삐삐'가 많았던 시기였다. 이 글의 말미에서 나는,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만들어 낸 권력의 분산,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방식의 변화 따위를 주장했던 듯 싶다. 유치한 발상을 잘도 떠들어 댔다....그리고 물론 지금도 난 유치하다....^^
'LINKED' 에 따르면 네크워크 시대의 이러한 놀라운 파급효과는 네트워크의 결정적인
취약성에서 온다. 취약성은 '노드(Node)'라는 개념에서 나온다. 네트워크의 중요한 결절점이라고 볼 수 있는 노드는 일정한 흐름들이 모여서 다시 흩어지는 중요한 매듭같은 것을 말한다. 쉽게 생각한다면, 이번 인터넷 대란의 핵심인 KT의 DNS 서버 같은 것을 생각하면 노드 개념은 쉽게 이해된다. 수많은 개인 접속자와 거대 정보 포탈들이
정보로 만나는 지점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런 네트워크의 대륙에 일정한 크기마다 생기게 마련이고, 이를 통해 네트워크는 진화하는 데, 만약 어떤 이유로든 이 곳이 공격받거나 흔들리면 전체 네트워크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혜화 전화국에 화재가 났으면 혜화동만이 전화불통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파급이 틀리다, 전화는 인터넷으로 인터넷은 다시 금융망으로,
또 쇼핑몰로 신용카드 결제로 방사형으로 마구마구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공격은 단순하고 국지적인 효과가 아닌 전면적인 효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이 예전에 말하던 '권력의 집중' 같은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정보의 중요한 결절점인 노드라 하여 어떤 결정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저 정보의 매우 중요한 유통로일 뿐, 혜화 전화국이, 쇼핑몰을 신용카드 회사를,
개인 사용자를, 포탈 사이트들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차라리 이전
개념의 권력은 그 노드에 접속한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불균등하게 분산되어 있다. '미쉘 푸코' 라는 대머리 프랑스 학자의 권력 개념과도 일치 하는 부분이다.
하여튼 불온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것은 이쯤인데, 15살 어린 아이가..그리고 바이러스 하나가 이 중요하지만 권력의 핵 같은 것은 아닌지라 언제나 헛점이 있는 곳을
공격할 수 있다면, 무언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말하자면 이 사회 전반의 혼란이나 개인의 이익을 노리고 흔들어 본다면 어떨까?
요즘 일어난 은행 사고들과 연결 시켜 본다면, 몇번의 연속적인 은행 서버와 금융전산망의 다운만으로도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은행이나 금융권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다. 증권전산망이 하루 이틀 다운되어 버린다면, 주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각'의 문제인데, '계몽'스러운 노땅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쩜 자제하고 말한다면....
스스로 아무리 난 '컴맹'이야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이 작은 커뮤니티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한 게시판에서 글을 올리고, 까페 온을 날리는 바로 그 순간, 하나의 가능성.....
네트워크에서 반란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는 말이다.
촛불시위를 일으킨 개인 '앙마'처럼, 네트워크 상의 정보의 흐름의 약한 고리를 살짝
건들여 줌으로서 매우 중요한 어떤 사건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울 까페 쥔장의 글 하나가 어느 날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무언가 놀라운 화제가 될 수도 있고, 관촌의 영화 '영웅' 읽기가 엉청한 파장으로 영화 흥행을 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dvd 로 국내 기록 경신을 해 낸 바도 있다. -.-;;;
이 책은 왜 이게 가능한가 한가를 이론적으로 증명을 하기도 한다.
'LINKED'는 10조 정도의 페이지 인덱스와 현재 60억개 가량의 노드를 가진 무한해 보이는 월드와이드웹(WWW)도 결국 6가지 단계와 19개 단위의 거리로 정리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WWW는 결국 흔히 Depth라고 하는 수직적인 깊이가 6단계에
불과하고(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다음 메인-까페 메뉴-네멋30 메인-30살의 향기리스트- 이 글 이렇게 5단계이다) 모든 페이지와 페이지는 아무리 많아도 수평적으로 19번의 클릭이면 연결된다는 말이다.(미국의 한개인 홈피에서 시작해서 여기 게시판을 찾을라 치면 19번의 클릭을 넘지 않는다는 이론적 수치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오프라인에서도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고, 세상 졸라 좁다고들 말해왔다.
^^)
이것이 네트워크의 실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전파되고 너무 광범한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80년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과연 '광주항쟁'은 그 놀라운
정보차단과 피비린내는 있을 수 있었을까? 광주의 실체를 대다수의 국민이 대충이라도 알기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렸다. 만약 무선 인터넷이 있었다면..어떠했을까?
나의 불온한 상상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지금 120억이니 뭐니 하는 '로또'가 열라 맘에 안들거덩, 그거 없어졌음 하거덩..사무실에서 로또 용지들구 생각 없이 웃고 다니는 색히들, 심지어 와서는 '팀장님도
하나 넣어보시죠' 이러는 색히들은 아주 때려주고 싶거덩...보통 이러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나 : 로또는 월요일보다 토요일에 사는 것이 좋다는데?
그 색히 : 왜 여?
나 : 당첨될 확률보다 금요일까지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더 높다던데?
그 색히 : -.-;;; (먼 소리여?)
키키...하여튼....그건 그렇고...
바이러스를 하나 정확히 그들이 쓰는 서버와 편의점 통신망의 주요 노드에 잠입 시키는 것이지, 뭐 그렇게 어렵겠어? DB와 백업 DB를 추적해서 몽땅 데이타를 지워버리는
그런 바이러스를 말이다.
수십 수백만명이 입력한 데이타가 순식간에 날라가고, 항의가 계속되고 '로또'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쌓인 돈은 어쩔 수 없고, 대혼란을 일으켜 보는 것이다. 물론 수습은 될 것이다. 그러나 한 6개월 뒤에 조금 방심하면 한 판 그 짓을 하면 어케 될까?
그 정도 되면 아마도 로또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신뢰가 깨진 마당에 누가 교통사고보다 낮은 확률에 돈을 걸려고 할 것인가? 로또를 없애고자 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데..(나만 그러나? ^^;;;;)
한 사람의 약간 사려깊은 노력만으로도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대, 그
시대의 네크워크 귀퉁이에 우리가 서 있다.
비록 게시판에 허접한 글 따위를 올리면서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 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떠들고 보니 별로 한 말도 없다.
걍 생각이 드는 것은 뭐 대단한 발견은 아니지만, 무언가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 정도...
개인은 무조건 사소하고 사적인 상태 그리고 억압받는 상태가 아닌 무한히 넓게 깊게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작은 '노드' 들이라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훨씬 하고 싶고 해야할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아...썰렁하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