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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사람 김영갑이 제주에 들어가 섬사람이 되고 제주의 바람으로 영원히 돌아간 지 십 년이 흘렀다. 그 십 년간 강산도 제주도 변했다. 그러나 김영갑의 자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김영갑 갤러리두모악은 세상의 변화에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영갑의 사진 속에 담긴 제주의 참모습, 우리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하는 소중한 것을 조용히 일깨우고 있다.
2015년 여름,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 제주의 푸른 바람을 이끌고 서울로 나들이를 한다.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개최되는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展은 김영갑 사후 십 년 만에 제주 섬 밖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형 전시회다. 그의 10주기를 맞이해 제주의 김영갑갤러리두모악과 ‘오름’을 주제로 연계해서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는 1980년대 중반 제주에 정착한 이후 제작한 초기 작품부터 그의 대표적인 파노라마 작품 등 70여 점의 컬러 작품을 엄선해서 선보인다. 그중에는 그의 생전에 인화된 작품, 그가 액자 제작에 손수 참여한 작품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을 통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제주의 오름 자락에 묻혀 보낸 김영갑의 이십여 년의 세월과 넘실거리는 오름들의 오롯한 아름다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또한 제주의 김영갑갤러리두모악에서 열리고 있는 <오름>展에 전시된 작품들을 한데 아울러 김영갑의 ‘오름’ 작품들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위대한 제주의 자연, 즉 김영갑을 섬을 대표하는 사진가로 키워낸 어머니 같은 자연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되어 관람객들을 맑은 바람이 부는 제주의 오름 한복판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오름, 제주 사람들의 어머니
제주 섬사람들이 ‘중산간’이라고 부르는 해발 200~600미터 지대에는 기생화산인 오름이 360개 이상 분포해 있다. 섬사람들은 섬의 창조신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흙을 집어놓아 오름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들은 오름에 기대어 작물을 재배하고 마소를 먹이며 살다가 그 기슭에 영원히 몸을 뉘었다. 오름은 제주 섬사람들의 삶과 영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뭍사람 김영갑도 중산간의 오름 들판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름의 거친 바람 속에서 시련을 견디고 방황하고 성장의 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제주 섬의 속살, 참된 아름다움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그의 사진 속에 담겼다.
김영갑의 사진은 그저 지나가다 멈춰 서서 찍은 풍경사진이 아니다. 출사를 나가 사나흘 머물며 찍은 풍경사진이 아니다. 카메라가 작동할 수 있는 빛이 허락되는 한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오름 자락에서 수만 시간을 서성이다 한 컷씩 찍어낸 사진이다. 흙과 꽃과 풀과 나무의, 빛과 구름과 바람과 안개의,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밭을 일구는 섬사람들의 충만한 에너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삽시간의 황홀을 담아낸 사진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욕심 같은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몰입했을 때 찍을 수 있는 사진이다. 그의 영혼이 바람과 함께 각인된 것이다.
맑고 푸른 제주의 바람이 불어온다
전체 4부로 이루어진 전시는 김영갑이 그토록 사랑했던 오름을 중심으로 그의 초기, 중기, 후기작품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동시에 평범한 사내 김영갑이 제주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이십년의 세월을 지내며 어떻게 그 세상의 일부가 되어갔는지 말해준다. 나아가 김영갑과 그의 사진을 품은 위대한 제주의 자연,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해준다.
올여름, <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展에서는 제주의 맑고 푸른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그 바람은 시련의 바람, 정화의 바람, 생명의 바람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씻어 내릴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관광공사와 문체부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대표 관광지를 선정한 ‘2015 한국관광 100선’에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 한라산과 나란히 그 이름을 올릴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줄 것이다. 김영갑의 사진과 그의 영혼이 숨 쉬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제주의 자연유산을 기록하고 간직한 문화유산이다.
1부 오름에 부는 바람
한라산이 주재하는 제주 섬.
그곳에서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 바람을 맞으며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아가야 한다.
기대 의지하거나 숨어들어 피할 곳 하나 없는 섬에서는 나를 뒤흔드는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약한 내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아픈 바람이 잦아들기까지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한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김영갑이 1980년대 중반 제주 섬에 정착해서 찍기 시작한 초기 작품들로, 이 시기의 화면 비율은 1: 1.5다. 거칠고 고단한 섬 생활의 자취가 황량한 바람과 눈발 사이로 내비춰지고 있다. 언뜻 눈에 비치는 대로의 단조로운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친 바람이 부는 오름과 들판에서 빛나는 생명력을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2부 잠든 혼을 흔들어 깨우다
섬 전체에 넘실거리며 자리한 오름들은 풀과 나무, 벌레와 새들만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섬 사람들 또한 오름에 기대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고 마소를 먹이며 살아간다.
기쁨과 희망, 생명의 향기에 취한 삶은 오름에서 나고 자라다 오름으로 돌아간다.
온몸의 감각들이 깨어나며 모든 것 본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제주 섬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화면을 모색하기 시작하며 화면을 가로로 확장해 1: 2 비율의 작품들을 찍어냈다. 맑게 깨어난 그의 감각으로 들어온 자연의 다채로운 빛과 울림이 차분하고 묵직하게 담겨 있는 듯하다.
3부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자연에 묻혀 지낸다.
내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되자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빛과 구름과 바람과 안개가 어우러진 속에 나 또한 하나가 되었다.
태초의 적막함과 평화로움이 이런 것일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향기와 숨결이 충일한 가운데 너영나영 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인다.
“초원에도, 오름에도, 바다에도 영원의 생명이 존재한다.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낌으로써 나는 신명과 아름다움을 얻는다. 나는 자연을 통해 풍요로운 영혼과 빛나는 영감을 얻는다. 초원과 오름과 바다를 홀로 거닐면, 나의 영혼과 기억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나의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그럴 때면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사라진다.”
김영갑은 멀리 한라산이 굽어보는 가운데 출렁이는 제주의 오름과 들판의 아름다움을, 태곳적의 적막함이 가득한 분위기를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 화면은 가로로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3 비율의 파노라마사진을 선택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눈에 비친 섬의 황홀함을 완전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김영갑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를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렇게 하여 ‘김영갑 갤러리두모악’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투병 생활을 한 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갤러리두모악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 그 섬에 영원히 있다.
주최사 소개
김영갑갤러리두모악
故 김영갑 선생은 제주 섬에서 작업하는 내내 필름과 인화지를 해치는 습기 때문에 애를 태웠다. 열심히 작업한 작품들을 보관할 공간이 절실하던 그는 2001년 말 성산읍 삼달리의 삼달분교를 임대해 갤러리로 개조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온통 갤러리 만드는 데 바친 끝에 2002년 8월, 아이들과 선생님이 떠나 쓸쓸히 방치되었던 폐교가 김영갑갤러리두모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에는 그가 20여 년간 제주의 오름, 들판, 바다 등을 찾아다니며 담아낸 사진들이 상설 전시되며, 제주의 자연석을 쌓아 구불구불한 작은 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제주 중산간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정원은 편안하게 명상하며 쉬어가는 공간의 역할을 해준다. 제주의 참모습, 그 아름다움의 정수가 한데 모여 있어‘제주 속의 작은 제주’라고도 불리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문체부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대표 관광지를 선정한 ‘2015 한국관광 100선’에 한라산과 나란히 그 이름을 올렸다.
아라아트센터
아라아트센터는 한국 예술문화의 중심지인 서울 인사동에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대중예술의 가치를 높이고 보다 창의적인 전시를 선도하고자 태어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2012년 9월에 개관한 아라아트센터는 지하 4층, 지상 5층(총 9개층)의 대규모 문화공간으로 연면적 1,500평, 40평에서 180평에 이르는 15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라아트센터는 전시, 공연, 이벤트, 파티 등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사동의 문화산업 창출과 관광벨트 형성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인사동과 함께 뒤로는 북촌, 앞으로는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형성하고 유기적인 문화공간으로 확장시켜 한국 관광산업의 콘텐츠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결과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주관사 소개
(주)도서출판다빈치
예술서 전문 출판사로 알려져 있는 다빈치는 2000년 설립된 이래 도상과 에세이가 어우러진 예술에세이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며 서양미술 중심의 많은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2004년 주식회사로 개편한 뒤로는 디자인과 사진, 건축, 생활문화 등으로 분야를 넓혀 차별성 있는 편집과 획기적인 책꼴, 그리고 고난이도의 인쇄를 실험하며 예술서 시장의 새로운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현대카드, 고양아람누리 등과 함께 출판과 전시를 연계한 협력 작업을 여러 차례 한것은 물론 Cartier의 다국어판 도서 편집 작업에도 참여했다. 2013년에는 인사동에 위치한 국내최대 규모의 전시 공간인 아라아트센터에서 900평에 이르는 초대형 전관 기획전 <어머니의 땅, 지리산 진경 순례>를 주관했다.
자세한 내용은 http://midahm.co.kr/?sd=1&sc=1_1_view&gnum=452
미담아트가이드 http://www.midahm.co.kr
첫댓글 전시 시작됐군요. 언제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