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폴리스체제의 성립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기원전 800년경에 성립된 폴리스(polis), 곧 도시국가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폴리스는 미케네 문명이 파괴된 이후의 무질서상태에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세워진 전사공동체국가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곧 폴리스는 흩어진 채로 자연촌락을 이루어 살고 있던 3-4개의 부족들이 공동의 방어를 위하여 중심으로 연합하는 집주, 곧 시노이키스모스(synoikismos)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 때 집주를 주도했던 것은 부족장들이었습니다.
폴리스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도시입니다. 도시는 지리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및 종교적인 면에서도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안에는 그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이 건립된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는 작은 언덕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일단 유사시에 이 곳에 집결하여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지요. 또한 아크로폴리스에 인접한 아고라(agora)라는 광장은 정치, 경제활동 등 시민들의 공공활동과 사교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지요.
(3) 폴리스 초기의 정치체제 - 귀족정
폴리스의 성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른 바대로 폴리스적 동물, 곧 정치적 관심이 높은 자유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족사회에 기반하여 혈연 및 지연으로 맺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질서를 제공하는 공동체에 자신의 안전과 운명을 결부시켰습니다. 여기서 폴리스는 단순한 전사공동체일 뿐 아니라 정치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성원들은 형제애적인 유대로 결속하게 되었지요.
이중 집주를 주도했던 부족장들은 대지주귀족인 동시에 스스로 무장을 갖추었던 전사로서 정치, 군사적 실권을 장악했고, 일반평민인 클레로스 소유농은 소규모자영농으로서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따라서 폴리스 초기의 정치체제는 귀족정으로서의 성격을 지녔으며, 평민들은 귀족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분배지를 몰수당하는 위험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4) 식민운동과 폴리스의 민주화
기원전 8세기 후반부터 폴리스체제가 안정되어 가면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우선 식민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스 지역에서는 척박한 토지와 건조한 기후로 곡물경작이 용이하지 않았고,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는 포도나 올리브의 재배와 양이나 염소 등의 목축 등이 적합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 폴리스들 사이에는 충분한 영토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지요. 다행히 그리스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고, 에게해와 지중해 곳곳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은 살 길을 찾아 일찍이 바다로 진출하여 에게해의 여러 섬 및 소아시아 등 지중해 각지에 정착하여 폴리스체제를 확산시켰습니다.
지중해세계의 교역 촉진은 식민운동의 당연한 결과였지요. 이와 함께 폴리스 안에서도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포도주와 올리브유 등 수출품을 위한 대규모 과수재배가 확대되었고, 도자기를 비롯하여 교역을 위한 수공업이 발전했지요. 특히 평민층의 부유한 농민과 상공업자들이 출현했습니다.
경제적 변화는 폴리스의 민주화를 초래했습니다. 부유한 평민들은 자발적으로 무장을 갖추고 폴리스의 방위에 기여하는 중장보병, 곧 호플리테스(Hoplites)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군사력이 수적으로 증진됨에 따라 그 조직을 위하여 방진밀집부대 즉 팔랑크스(Phalanx)제라는 집단전투의 전술이 도입됐지요.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이 대형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것이었고, 이는 전사들의 상호방어 내지 협조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집단전투는 폴리스성원들 사이에서 공동체 및 형제애의 의식을 심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종래 까지 귀족에게 독점됐던 군사력의 기반이 확대되면서 평민들은 정치적 발언권을 요구하게 되지요. 이는 폴리스의 정치가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발전해 나가는 계기를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