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생겼기에 이제는 아침에 두 아들을 풍곡 초등학교까지 6KM를 태워다 주고
돌아왔다가 오후에 다시 가서 태워 옵니다.
아이들이 하루에 12m를 걸어다녔는데 이제는차로 왔다갔다하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주일에는 우리 모두 차를 타고 호산 공소에 미사하러 갑니다.
그러다가 큰 축일인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삼척 사직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합니다.
본당 신부님이신 박무학 신부님은 우리가 그 먼곳에서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온 것에감탄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평일에 신부님이 차를 타고 와서 풍곡에 맡겨두고 6m를 걸어서 옵니다.
신부님의 등에는 무거운 미사가방을지고 왔기에 땀에 젖어 있습니다.
나는 신부님을 뒷곁으로 모시고 가서 등목을 해 드립니다.
물을 퍼서 등에 끼얹자
"으흐흐"
하시며 좋아라 하십니다.
"이제야 살것 같네"
라고 웃으십니다.
신부님은 내 아내에게 옷을 사왔고 내가 입을 옷도 사왔고
두 아이들이 입을 옷도 사오고 과자도 사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미사를 들여주신다고 하여
나는 둥근 밥상을 펴고 흰 보를 갈고
야생화를 꺾어 병에 꽂아두고 촛대에 불을 켜고
신부님의 미사 가방에서 미사경본을 꺼내어 상에 놓고
포도주와 물과 그릇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부부는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시작합니다.
나는 중고 때 성당에서 일을 하였고 미사때 복사도 해 봐서 복사는 잘 합니다.
나는 이 고마운 박신부님의 이야기를 적어 원주 주교관에 보냈습니다.
너무나 좋으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원주교구청에서는 내 글을 바로 주보에 올린게 아닌가?
그리고 원주교구청에서는 원고 청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시초가 1995년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게된 시초도 하느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후 나는 오늘에 이르기 까지 글을 쓰는데
맨 먼저 보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거짓은 눈꼽만큼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컴을 배울때 글씨 쓰는 것만 배우고
그외의 컴퓨터의 작용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아 늘 같은 글이라도 다시 씁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님
차가 있어 새로운 삶이에요
아이들의
등교가 행복하고요
글을 매번 새로이 쓰신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를
어제 일 처럼 올리시니ᆢ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겠어요
모두가
축복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어서오세요 윤주님 감사합니다.
예 매번 새로 써요 ,제 글을 알아주시니 더욱 감사하며
하느닙ㅁ의 은총이 님과 가내에 가득하시길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