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시골과 도시의 고요 차이를 아시나요? 경적이 멎고 정적이 세상을 장악한 이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각 5시 5분. 오늘은 트럭도 택시도 휴무인가. 밤늦게 도착해서 사워만 하고 나자빠졌는데 엉덩이 가까운 사타구니 쪽에 모기가 실컷 유린한 총탄 자국이 4개가 있었고, 비몽사몽간에 노랑 모기 채를 들고 눈을 희번덕거려봤지만 벽도 천장도 고요합니다. 이놈의 새끼들! 카운터에 나가 불을 켰고 소피를 본 후 맑은 변기 물까지 확인한 하고 스쾃 150개를 합니다.
-
싱크대 쪽에서 나는 음식물 냄새가 신경이 쓰였지만 무시하고 온수 한 잔 먹고 다시 침대로 걸어들어 왔어요, 2차로 서치라이트를 작동시켜 게릴라 한 놈을 발견, 정 광 속화처럼 타격해 사살했습니다. 딱! 소리와 함께 난 핏자국의 희열을 아시나요? 나는 소시오패스다! "무대미술과 1차는 떨어졌습니다용 괜찮으니 걱정 마시고 수능 때까지 공부해서 서울 대 준비합니당(예주)" 속으로만 예주야 괜찮아? 하고서 답글을 달 수가 없었습니다. 염병, 시험이 고역이니 시험만 없으면 학생들도 학교 다닐만할 것입니다.
-
시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시험이 애먼 사람을 잡습니다. 그런데 잡아 죽이는 시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시험도 있습니다. 사사기가 끝났고 야고보서가 새로 시작됐습니다. "시험이 사람 잡네(약 1:1-11)" 죽여주지 않습니까? <<"한 예종 입시는 어렵다" 연기전공은 때에 따라 140: 1을 넘기도 하니까. 그리고 지원자들이 또한 실력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학생들은 한 예종 입시를 굉장히 어렵게 생각한다. 특히 실기 중심 대학이니까
-
얼마나 실기를 잘해야 될까... 생각하는 경향도 많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거나 또는 아예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다. 오늘은 좀 의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 예종 입시는 어렵지 않다. 다만, 불확실할 뿐이다. 어려운 것과 불확실한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사법시험은 어려운 시험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공부할 분량이 엄청날 뿐이지. 입시에 대해 특별한 통찰이 필요하지는 않다. 물론 사법시험에도 운이 작용하겠지만
-
그것은 죽도록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 중에서 운 좋은 사람이 합격하는 의미에서의 운이다. 한 예종 입시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예를 들어 1차 언어능력 평가는 고교 수능 언어영역 중에서도 좀 쉬운 편에 속한다. 물론 변별력은 크게 나타나도록 문제가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보통 수능 등급이 잘 나오는 학생이라면 무리 없이 고득점 할 수준이다. 또한 영어 역시 마찬가지다.
-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대형 영어학원에서 중3 특목고 준비생들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한 예종 영어시험이 특목고 준비하는 중3 영어시험과 난이도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장수 생들, 나이 많은 학생들이 1차에서 많이 떨어지는 이유는 쉽게 풀 것을 어렵게 풀어서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내는 문제이기에 복잡하게 자신의 경험과 기준을 문제에 적용시켜서 더 나가면 나갈수록 더 많이 틀리게 되는 걸 많이 봤다.
-
언어능력 평가 고득점 하는 학생들은 2시간의 시간 중 한 시간 동안에 풀고 자는 학생들 중에 많이 나오는 게 우연은 아니다. 복잡하고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닌, 단순한 기준을 통과할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시험 보는 고3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붙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 예종 입시는 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고 그래야 통찰이 생긴다. 언어도, 영어도 모두 쉽게 생각해야 한다.
-
어렵게 생각해서 오히려 더 합격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는 대신, 정확하게 준비하라" 한 예종 입시가 쉽다는 것은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쉽지만... 한 예종 입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한 예종 입시는 어렵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잘못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예종 영화과에서는 잡다한 영화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영화 마니아라고. 영화에 대해 박식하다고 해서 그것이 입시에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
물론,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 자체는 아주 좋은 일이다. 실제로 작년 신입생들을 보면, 절반은 영화 마니아 절반은 영화 별로 모르는 일반학생이었다. 그러나 영화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공부에 대한 확신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언어와 영어.... 논술. 그런 것들이다. 특히 미학 교재 등을 미리 공부해두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
미학 공부를 하기 전에, 영화 지식을 쌓기 전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철학,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한 예종 입시 준비는 정확해야 한다. 1차를 붙어야 2차가 있다. 그래서 영화 지식을 공부하기 전에 수능 언어영역을 공부해야 하며, 재미없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논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1차에서 600명 중 약 500명이 떨어진다. 당신이 1차를 붙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가?
-
1차를 붙어야 글쓰기도, 면접도, 자기소개서도... 일말의 가능성이나마 생기는 것이다. 정확하게 입시를 분석하고 정확하게 준비해야 한다."결국은 조그만 운의 차이다" 나는 입시를 지도하면서 많은 학생을 합격시켜 봤고 또 많은 학생이 떨어지는 것도 지켜봤다. 결론은 이것이다. 한 예종 입시는 너무나 변수가 많기에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너무 많다. 우리는 이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자신에게 딱 맞춤으로 들어맞는 상황을 간단히 줄여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
한 예종은 운이 많이 작용한다. 앞서 말한 의미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붙은 학생과 떨어진 학생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된다. 우려스러운 점은 한 예종을 학부로 20대 초의 어린 나이에 들어간 학생들은 이 작은 차이를 무슨 대단한 차이인 줄 여김으로 오히려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예종에 운 좋아 합격하고 나면 유명한 예술가들과 맥주도 한잔하면서 친해지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도 많고 주변에서는
-
한 예종 들어갔으니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겠느냐면서 천재라고 바람 넣어준다. 그러나 실제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채 예술의 분위기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아도취에만 빠져서 사회로 나왔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는, 예술세계는 정글보다도 무섭다. 무조건 실력만이 통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뉴욕 대 M F A를 나왔다고 하면 현장에서 처음엔 사람들이 기대를 한다. 그러나 그 기대만큼의 실력이 없다고 판정 나면 오히려 학력이 없는 사람보다 몇십 배는 더 욕을 먹고 빨리 도태되는 것이 또한 현장인 것이다.
-
"그러니, 한 예종에 목숨 걸지 마라" 나도 한 예종 나왔고 한 예종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나도 그저 운이 조금 좋았던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한 예종에 목숨 걸지 말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왜냐면 뜻대로 안되고, 예측대로 안 움직이는 것인데다가 한 예종만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을 하려면 실력이 중요하며 그 실력은 꼭, 유명 대학, 좋은 시설, 좋은 문화 속에서만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
1,2차 세계대전을 겪는 인류의 가장 밑바닥 몰락에서 20세기 예술은 꽃을 피웠고 우리나라도 독재시대 탄압과 압박 속에서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게 예술 아닌가? 예술은 오히려 편안하고 안전하고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는 그 생명을 잃는다. 결론은 이거다, 네가 한 예종에 붙는다고 해서 네가 예술적으로 탁월한 것도 아니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니 스스로 자 뻑 하지 마라.
-
그리고 네가 한 예종에 떨어진다고 해서 네가 명문대를 붙지 못했다고 해서 네 예술적 재능이 없고, 예술가로서 길이 막히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한 예종을 열심히 준비해라. 운은 최선을 다할 때 따라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사람 중에서 운이 좋은 사람이 붙는 거니까. 당연하게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운이 좋을 자격조차 없는 거니까. 그러나 떨어진다고 해도 미련 갖거나 너무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구속하지 마라.
-
한 예종 입시는 그러한 너의 미래를 결정짓기에는 너무 불확실하며 너무 제약이 많은 입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 네 꿈을 감히 좌절시키기엔 한 예종 입시가 너무 작은 세계라는 거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라도 너 자신을 믿어라. 그게 예술가 아닌가? 우리 모두 정상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인생이란 긴 승부에서 '영혼이 있는 승부'를 통해서 인생은 길고 기회는 많고... 10년 전엔 10년 뒤 오늘날을 전혀 예상 못했듯이 미래엔 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것은 실력인가, 운인가? 그리고 한 번의 시험이 인간의 가능성과 예술적 재능까지 평가할 수 있는가?
2.
시골의 고요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침묵이지만, 도시의 고요는 소음이 잠시 물러난 자리에서 발견하는 낯선 평화다. 그러나 세상이 고요해졌다고 인간의 내면까지 고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기 한 마리와의 전쟁을 끝내자마자 딸의 불합격 소식이 찾아왔다. 외부의 적은 전기 모기채로 제압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좌절 앞에서는 그 어떤 무기도 무력하다. 아버지가 끝내 답장을 보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시험은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어느 순간 인간의 존재 가치를 판정하는 권력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시험은 사람을 비교하고 분류하며 서열화한다. 그러나 평가의 결과가 곧 인간의 본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합격은 특정한 제도와 기준에서 내려진 판단이지, 한 인간의 가능성 전체에 대한 판결이 아니다.
한예종 입시가 어렵다기보다 불확실하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다만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분리할 수는 없다. 실력이 있어도 탈락할 수 있고, 합격했다고 반드시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력과 운의 변증법이다. 실력은 가능성을 넓히지만, 운은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과정에 개입한다. 그렇다고 운을 합격의 자격처럼 설명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조차 운은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
철학자 알랭 바디우에게 사건은 기존 질서가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능성의 출현이다. 불합격 자체가 곧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통해 자신의 길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가능성에 충실할 때 실패는 주체를 변화시키는 사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술가의 정체성은 대학의 합격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작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비판할 대목이 있다. 예술은 고난 속에서 꽃핀다는 낭만주의적 주장이다.
-
전쟁과 독재 아래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다고 해서 고난이 예술의 필수조건인 것은 아니다. 고난은 창작의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창조성을 파괴하기도 한다. 예술을 성장시키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해석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야고보서의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는 권면도 이 지점에서 새롭게 읽힌다. 시험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시험이 인간의 마지막 가능성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시련과 인내가 반드시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성찰하고 새로운 선택으로 연결할 때 비로소 인내는 창조적인 힘이 된다. 예주의 불합격은 아쉽지만 예주의 예술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서울대 진학 역시 또 하나의 가능성이지 예술가로서 존재를 증명해야 할 최후의 관문은 아니다. 아버지의 역할도 딸의 실패를 서둘러 성공의 서사로 바꾸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위로보다 침묵이 깊고, 충고보다 기다림이 위대하다.
-
결국 시험은 인간을 선발하지만 인생은 인간을 형성한다. 합격은 하나의 문을 열어 줄 뿐이고, 불합격은 하나의 문이 닫혔음을 알려 줄 뿐이다. 그 문밖에도 세계는 존재한다. 시험은 한순간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간의 가능성까지 판정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철학은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예주야! 대학이 너를 예술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살아갈 예술의 세계가 너를 예술가로 만드는 것이란다."
2026.10.16.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