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5. 31 수요일
(1990 회)
- 최후(最後)의 승자(勝者)는 늘 시간이다 -
와인은 위스키나 맥주 등과 비교해, 2000년대 들어 소비(消費)가 가장 크게 늘어난 술입니다.
와인은 다른 술과 달리, 가격(價格) 차이가 심합니다.
같은 품종(品種)이지만 3만 원짜리가 있고 300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와인의 가격(價格)과 등급(等級)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要因)이 있지만, 중요한 게 생산 연도, '빈티지'입니다.
또 하나는 포도밭의 지형 기온 토양 강수량 일조량 등인데 흔히 '테루아'라고 부릅니다.
동양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빈티지는 시간(時)이고, 테루아는 공간(位)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경전 중의 경전인 주역(周易)의 핵심입니다.
주역(周易)은 해와 달이 운행하는 대 법칙(法則)을 서술한 것이고, 동양 사상의 근원(根源)입니다.
시간과 공간(空間)이 핵심(核心)이라는 점을 인생에 적용(適用)해보면 이렇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人才)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소용(所用)이 없습니다.
반대(反對)로 때를 만나면 별 쓸모없는 사람도 큰 능력(能力)을 발휘합니다.
또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필요(必要) 없는 곳에 놓이면 쓸모가 없습니다.
맹자(孟子)는 그래서 "지혜가 있어도 세(勢)를 타는 것만 못하고, 농기구가 있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때를 만나는 것, 기회를 잡는 것이 매우 중요(重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에서 이것들을 잡도록 노력(努力)해야 하고, 전진(前進)과 후퇴(後退)를 적절하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핵심(核心)은 결국 인생에서 나를 어떻게 안배(按配)하느냐로 귀결됩니다.
나아가는 것만 알고 물러나는 것은 모르고, 사는 것만 알고 죽는 것은 모르고,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모른다면 파국(破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 상황(狀況)과 시대정신에 맞춰 변하고 진보(進步)해야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소리 없이 물러나 초목처럼 살아야 합니다.
와인 얘기로 돌아가면, 와인의 일생(一生)도 인생(人生)과 비슷합니다.
병입 이후 와인은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맛과 향이 계속 발전하고 복잡해지고, 20∼30년 지나면 정점(頂點)에 이르지만 그 후엔 점점 쇠퇴(衰退)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와인이 20년 이상 나이를 먹게 되면, 어떤 품종(品種)으로 빚었든 맛과 향(香)이 비슷해진다는 사실(事實)입니다.
흙냄새나 낙엽(落葉) 냄새 같은 것들입니다.
색깔조차 오래될수록 화이트 와인은 짙어지고 레드 와인은 옅어짐으로써 서로 수렴합니다.
부자(富者)나 가난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늙고 죽을 때는 비슷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世上)의 명리란 별 게 아닙니다.
때를 만나고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영원히 곤란한 것은 없습니다.
반대(反對)로 때를 만나 돈과 명예(名譽)와 권력(權力)을 얻었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하늘 끝까지 오른 용(龍)은 반드시 후회(後悔)할 일이 생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제도 내일(來日)도 아닌 오늘 이 순간에 집중(集中)하고 이 순간(瞬間)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인생(人生)은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미제입니다.
시간(時間) 앞에서는 모든 게 패배자고, 분노(忿怒)와 슬픔조차 풍화되고 맙니다.
최종 승자(勝者)는 늘 시간(時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