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2코스 걷기
○ 일시 : 2021.6.2(수) 09:10~14:00
○ 구간 : 축산항→사진 2→ 사진3리→사진1리→ 대진3리→대진2리→대진1리→ 고래불 해수욕장
○ 거리 : 16.24.km
○ 보행 : 2만보
해파랑길 걷기 22일차
남은 거리 394.76km
걸은 거리 376.24km
해파랑길 22코스는 축산항을 출발하여 고래블해수욕장 까지 걸은 코스다.
이제 부터는 험난한 과정이다
창원에서 기장 까지 1시간 소요, 기장에서 고래불 해스욕장 까지 2시간 20분 소요, 오고가는 시간에 6시간 40분이 소요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23코스 걷기 부터는 1박을 하고 이틀 연속 걷기로 했다.
아침 8시 40분 고래블 해수욕장 주차장에 넷이 모여 한대의 차는 고래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머지 한대의 차로 축산항 까지 거의 이동을 다 했을 무렵 친구의 전화벨이 울리고 잠시후 차를 돌려 다시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가잔다.
내용을 알아 보니 해수욕장 주차장 정비 공사를 해야 하니 차를 좀 이동해 달라는데...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다시 고래불 해수욕장 주차장으로 가서 다시 차를 이동 주차를 하고 22코스 걷기 출발점인 축산항으로 갔다.
사람들의 준비성일 것이다.
공사가 예정 되어 있으면 언제 부터 언제 까지 공사를 해야 하니 주차를 하지 말라는 안내 표지나 진입금지 줄이라도 하여 쳐놓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 아침에 바쁜 걸음을 했다.
좋은게 좋다고 미안 하다는데 어쩔 것인가 알았노라고 좋은 말로 하고 와야지...
한바탕 소동으로 30분 정도 지연된 출발이다.
엷게 깔린 구름으로 흐릿한 날씨 빛이야 나지만 그리 맑은 날씨는 아닌 듯 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볼때 이런 날씨의 공통적인 특징이 잔잔한 파도 조망이 그리 좋지는 않고 햇빛도 오락가락 보이다 말다...
축산항의 아침은 바쁘다.
이미 한바탕 바쁜 시간이 지나 갔는지 어구를 손질 하거나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겟바위에는 간혹 강태공들이 보이고 평일이라 걷는 길은 한가하다.
원래 해파랑길 가이드는 산길을 걸어라고 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기준이 충실코자 했기에 오롯이 바닷길을 걸어보자며 애써 산길을 외면하고 해변의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물론 초입에 남씨의 발상지 유적이 있고 가는 길에 봉수대도 있고 산을 내려 오는 길에 목은 이색 선생의 유적과 괴지리 한옥 마을 등을 둘러 보라는 의미도 포함 되었겠지만 매일 가는 산 이고 또 무릅이 좋지 않은 친구도 있고 바닷길도 놓칠 수 없으니...
날씨가 흐리고 다른 조건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바닷물은 한없이 맑은 명경 지수다.
바닥이 훤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 파도가 없이 잔잔한 바다, 해초 하나 돌 하나 조개 껍질 하나 하나가 가 보일 정도다.
조금 걸어 우리가 도착 한 곳이 사진2리다
작은 항구 부두는 방파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마을 회관 앞에 나와 있던 분들 지나가며 던지는 인사에 어디서 걸어 왔나며 반가운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날 지점 부둣가의 정자에 먼저 가던 친구들이 자리를 잡아 배낭을 풀었다.
오랫만에 울산 친구 족발을 준비 해왔다.
넷이 막걸리 한병에 족발 한점씩 나누고 나니 어디서 생긴 자신감 인지 모두들 당당한데다 등짐도 조금 가벼워 졌단다.
사진 3리로 이동하는 과정 길가에 핀 노오란 금계국이며
나팔꽃 인동초 꽃 등등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들꽃이 발길을 붙잡는다.
이제 사진3리 이곳의 작은 항구엔 낚싯배가 많아 보인다.
아마도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원해서 걸은 해변 길이지만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라 과히 권장할만 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바다를 접하며 걷는 길이라 작은 만족으로 해파랑길의 기대치를 채워야 했다.
길을 걷는 도중에 방파제 공사를 위해 오고가는 화물 트럭이 다소 거슬리는 점도 옥에 티였지만 그 것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다.
사진리 시작 부터는 반건조 오징어 10마리 만원에 판매 한다는 안내 간판이 많이 붙어 있었고 또 오징어를 말리는 덕장 또한 곳곳에 보인다.
오고 가는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과 다이옥신은 고려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생각이 많아 지지만 이것 또한 시각적 욕구를 불러 오기 위한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일을 하는 사람들 보니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걷기를 계속하다 어느 가판대에 들러 가상비가 좋다며 친구가 오징어 5마리 한 묶음을 사서 나누어 준다.
아직 맛을 보진 않았지만 내 생각에도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 이다.
그리고 해안의 차도를 따라 걸으먼서 바다를 내려다 보니 특이한 지층과 귀암괴석의 바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이 일대가 원생대 국가 지질 공원이란다.
사진리를 지나고 이제 대진리다.
이곳 역시 부두는 공사 중이며 인적이 한산한 어촌 마을이다
어느 마을 없이 항구는 비슷한 풍경이지만 다연 환경은 마을 마다 특색이 있이 보인다.
해변의 갯바위와 송림들이 어울어져 만들어낸 뷰가 환상 적이기도 한 곳이다.
대진 2리 의 시작 이다
제법 큰 부락에 항구에 정박한 배의 숫자도 제법 되고 시골 마을 치고는 큰 부락 이다.
항구는 정박 해 있는 배와 어구를 손질 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바쁘기도 하고 특히 이곳도 낚싯배들이 많이 보이고 부두 주변은 제법 공원화를 시커 나무도 심겨저 있고 조형물도 만들어져 있으나 태풍의 영행인지 ....
항구가 끝이 나고 조금더 걸어 가니 오른쪽 해변에 도해단이 보인다.
김도현 선생을 추모 하는 비각과 단을 설치해서 추모 하는 곳으로 을미사변후 의병을 모아 싸웠고 고향에서 영흥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한일 합방후 이 땅에서 시신이 묻히기를 거부하고, 일제 통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이곳 영덕 바다 산수암에서 순국하셨다고 한다.
我生五百末 赤血滿空腸
오백년 왕조 말에 나 어이 태어나서 붉고
붉은 의분의 피 가슴에 가득하다
中間十九載 鬚髮老秋霜
국모가 시해 되고 그 뒤에 십구 년 간 머리와
수염 늙어 가을 서리 다 되었다
國臣淚未己 親沒心更傷
나라 망해 피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 서거 하사 마음 더욱 병들었다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내 고장 푸른 산에 홀로 서서 생각하니
백 가지 계책 중에 내 쓸 방법 하나 없다
萬里欲親海 七一當覆陽
할 수 없다 넓은 만 리 바다를 찾아가자
새 양기 돌아오는 동짓날 초 이래에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희고도 또 흰 바다 그 깊이 천장이니
이 한 몸 간직하기 넉넉하고 남겠네.
- 遺詩 絶命詩 / 碧山 金道鉉 -
도해단에는 1971년 박 대통령이 김도현 선생의 충정을 알고 천추대의'(千秋大義: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일을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큰 의리)라는 휘호를 내려 도해단을 건립 하였다고 한다
이제 대진 1리다
작은 부두가 있으나 배도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항구다
해변에 늘어선 마을의 규모는 제법 있어 보인다.
파도가 잔잔한 탓일까 해변에는 군소를 잡는 사람이 보이기도 기도 하는대 나는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좀은 징그로워 보이는데 저걸 어떻게 먹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문드문 민박과 팬션이 보이기 시작한고 아스라히 수평선과 맞 닿을 듯한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 온다
드디어 고래불 해수욕장의 시작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벌써 백사장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보이고 차박이나 캠핑을 즐기는 사람은 적지 않게 보인다.
백사장 초입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걷기를 이어 갔다.
해수욕장 진입부 어떤 분이 모래밭에 차가 빠져 낭패를 보고 있는데 6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부부 청송에서 난생 처음 차박을 나와 낭패를 당했단다.
장정 4명이 힘을 더하어 차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너무 많이 빠진 탓에 차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몇번을 시도 했지만 어쩔 수 없어 보험회사 연락 해서 도움 받으라고 소개를 해드리고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돌아 서는데 아주머니 청송 사고라며 먹어 보라고 4개를 주신다.
당이 떨어진 영향일까? 청송사과 꿀맛이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없이 백사장을 걸어 가다 강을 만났다
제법 물이 많은 강이지만 보통 해수와 만나는 지점은 모래 사구가 만들어져 있기에 욕심을 내어 그냥 건너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물앞에 다가 서 신발도 벗고 바지도 걷고 해서 건너고자 하니 깊이가 장난이 아니고 폭도 넓어 도저히 건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거리가 있고 헛걸음을 하긴 했지만 하는 수 없이 다리로 돌아 가야 했다.
고래블 해수욕장의 시작으로 해수욕장이 엄청난 규모다.
어림잡아 7~8km 정도 되어 보이는데 나중 알아 보니 국내 최장 길이의 백사장 이란다
해수욕장 안쪽은 송림으로 된 방재림이 있고 그리고 도로 도로 안쪽은 넓은 평야다
이곳의 전체를 불려지길 고래불 해수욕장이고 또 관리는 지역별로 하기도 하고 통합 고래불 해수욕장 관리 센타도 있는 모양이다
몇십년은 되어 보이는 해송군락에 수없이 많은 캠핑시설 이곳이 캠핑의 천국임을 ....
고운 모래의 백사장 그리고 솔밭 속에 설치된 야영장 이며 카라반 시설들 해수욕장의 규모가 워낙에 크니까 그랬겠지만 청소년 수련원도 있고 해양 수산물을 연구를 하는 시설도 있으며 다양한 수련 시설들이 존재 한다.
해수욕장을 걷는 길은 초입을 제외 하고 대부븐 안쪽 도로를 따라 걷게 되어 있으며 백사장으로 걸어도 괜찮지만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중간 중간 작은 하천이 있는데 자칫 돌아 와야할 염려도 있으니 하천을 건널때는 가능하면 다리를 건너야 헛수고를 줄인다는 교훈을 얻은바 있다.
해수욕장 중간 지점일까 봉송정이다.
해맞이를 해도 좋고 달맞이를 해도 좋은 위치다.
인근의 관어대와 연계하여 고래불 해수욕장응 홍보하고 알리기 위해 만든 곳으로 옛날 봉송정이 있었다는 역사성에 근거 하여 새로이 만든 곳이란다.
봉송정에서 바라보면 해수욕장 안쪽 들녘엔 모내기가 이미 끝이 났고 도로변은 노오란 금계국이 군락을 이루며 지천에 피어나 환상적인 길이다.
백사장 안쪽 농수로와 백사장이 겹치는 부분은 갈대밭이 자연 스럽게 조성되어 있어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명소로 이 또한 고래불 해수욕장이 간직한 비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의 고운 모래, 초승달 처럼 아름다운 해안선의 미학, 밀려오는 파도 누구든 이곳에 오면 하루쯤 머물다 가고픈 충동을 느낄 것이다.
고래불?
거래불이란 단어가 참 생소하여 내력을 알아보니 그렇다.
이곳은 옛날 목은 이색 선생이 어릴적 바닷가에 나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고래들이 몰려와 물을 뿜어 올리며 노는 것을 보고 고래벌 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벌에서 불로 음변화가 일어나 지금의 고래불로 지명이 고착되었다고 한다.
檜樹蒼蒼石勢頑(회수창창석세완)
회암사의 숲길 우거지고 바위 모습 단단해
葉間風雨半天寒(엽간풍우반천한)
나무잎 사이에 부는 비바람에 하늘은 차네
老僧出定忘聲色(노승출정망성색)
노승은 수도 차 출가하여 세상사를 잊었는데
頭上光陰走似丸(두상광음주사환)
눈앞에 흘러가는 세월은 굴러가는 구슬 같네
- 목은 이색 의 회암사 시한 수 -
그렇게 해파랑길 22코스 걷기가 끝이 나니 다들 시장끼를 느낀다며 점심을 먹고 가잔다.
고래블 해수욕장의 끝자락 병곡의 작은 부두 앞 횟집에서 물회 한그릇으로 시장끼를 지우고 해파랑길 22코스 걷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