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발길을 끊었지만 나는 한때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몇 번 나간 적이 있다. 참고로 내 고교 동창들이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대체로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데를 졸업한 50대 남성들이었다. 굳이 내가 밝히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이런 부류가 지니는 특성이 어떠한지는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열 명 남짓 참석한 소규모 동창 모임이었는데 장소가 서울 서초구 어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늦게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얼굴과 이름이 모두 생소한 그에게 동창 누군가가 말했다.
“넌 젤 가까운 데 사는 녀석이 왜 젤 늦게 나타나니?” “일은 하고 와야 하잖아.” “오… 늘 노동절인데 병원 쉬지 않았어?”
대화로 보아 그는 의사인가 보았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 앉으며 태연하게 내뱉은 말 때문에 나는 조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마, 내가 노동자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말이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식,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무람없이 발설하는 태도, 늦게까지 일하고 왔다면서 자기가 노동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사가 지식인인지 아닌지는 더 논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그는 모종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특권의식이란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차별의식일 터이고, 이것은 곧 ‘내가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는 주류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내가 겪은 바로 볼 때 한국 지식인의 대부분은 바로 이 주류의식에 젖어 있다. 그들은 젊어서 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다가 나이 들어서 일정한 정도의 명성이나 지위가 형성되면 ‘이제 주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을 가리켜 이른바 주류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주류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지식인들에게는 ‘나는 결코 비주류와 함께 놀 수 없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부단히 대중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누구보다도 대중의 여론에 민감하다. 왜냐하면 대중은 자기를 주류로 만들어 주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지식인으로서 대중의 여론을 선도하기는커녕 대중의 여론에 편승하거나 추수하게 된다. 한국 지식인들은 ‘사건’이 터졌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대중의 여론을 감지한다. 물론 그들은 자기 판단의 기준을 주류언론의 논조에서 취하기도 한다. 주류언론의 기자나 기고자들 역시 대부분 그들과 동질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지식인들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 이석기 내란음모조작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이석기가 소속된 통합진보당이 이 사회의 소수·비주류라는 점 때문에 그들의 행위지침은 다른 사건 때보다 단연 더 수월히 결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주류콤플렉스는 너무도 강렬하여 사건의 유일한 논리적 근거였던 녹취록의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고, 또한 그것이 피의사실공표라는 현행법 위반 자료라는 점까지도 고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맹목적으로 이석기 그룹을 매도해 버림으로써 가차 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진중권 김대호
“녹취록 전문, 완전히 정신병동 수준이네요. 소수 극렬화 현상으로 봅니다.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현실적 무력감을 보상받으려 집단으로 과격한 환상으로 발전시키는 거죠...딱 소설 속 돈키호테의 무장 수준,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30~50대 아줌마, 아저씨라고 하던데…. 발달장애죠"(진중권)
“갑-을 프레임에 이어 우리 사회의 속살과 뼈대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 떴다. 발달장애(developmental disability, 發達障碍)라는 프레임이다. 두산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해당 연령의 정상 기대치보다 25% 뒤져 있는 경우를 말한다. 염색체 이상과 미숙아, 주산기 이상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산모의 음주, 부모의 약물중독, 부모와의 격리 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발달 지연과 언어발달 지연, 전체적 발달 지연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사실 (내가 써 온)비슷한 개념이 몇 개 있다. 그런데 시운이 맞지 않아서인지 너무 신랄해서인지 널리 회자되지 않았다. 그런데 ‘발달장애’라는 프레임은 널리 퍼질 것 같다.”(김대호)
위 두 사람의 지식인은 똑같이 ‘발달장애’라는 어휘를 선택했다. 미발달자나 장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 없이 이런 어휘 선택이 나올 리가 없다고 본다. 미발달자도 그렇겠지만 장애자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회의 비주류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미발달자나 장애자를 싫어하는 것은 단지 비주류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일 유학 출신 진중권이 젊어서 대학에 전임 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박사학위를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과 관련될 것이다. 그는 대학 강사로 떠돌면서 시사평론가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50 가까운 나이에 대학 전임 자리를 구했다. 한편 김대호는 유망한 정치인 축에 드는 송영길 인천시장 보좌관, 유종필 관악구청장 보좌관 등을 하다가 여의치 않았는지 1995년부터 사회디자인연구소라는 것을 차리고 언론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진중권과 김대호는 생년이 같은 1963년으로 올해 나이 50세의 서울대학교 출신들이다. 유감으로 생각할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이력을 보아서 그들은 한국 사회의 진짜 주류는 못 되는 것 같다. 혹시 그들은 아직도 이 사회의 주류로 확실히 올라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들 자신은 스스로 자기가 이 사회의 주류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들은 최소한 ‘가까스로 주류가 되었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하거니와 내가 보기에 그들은 한국 사회의 진짜 주류가 결코 아니다. 두 사람은 주류가 이용해 먹기에 적합한 외형과 성정을 구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은 한경오를 넘어 종편이나 조중동에 둥지를 틀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 이석기 사건이 터졌을 때 누구보다 맹렬하게 차별화를 시도하고 누구보다 극렬하게 그들을 비난해야만 했다. 그래야 확실히 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거의 환상과 같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일정 기간 이용만 당하다가 끝날 것 같기 때문이다.
첫댓글 진중권 참 천박하죠....이석기 사건이 왜 터졌는지 번연히 알 만한 사람이 저런 발언을 하다니 양심도 없지.
진중권이 종편이나 조중동에 둥지를 틀고 싶어한다?
그냥 진중권의 자극적인 글에 자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정도로 이해하심이
그런거겠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