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으로 첫 출근
경칩을 하루 앞둔 삼월 첫 월요일이다. 퇴직 전 몸담았던 학교에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정년을 맞은 이후 자연인이 되어 이태 동안 산천을 주유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비가 오는 날이면 도서관을 찾아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 그새 변화가 한 가지 있다면 평소 즐겼던 술은 줄이지 않고 아예 끊고 말았다. 오래전 담배를 끊었을 적보다 몸이 더 개운해짐을 느낀다.
지난겨울 어느 날 연금공단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문자자 오길 일선 경찰서에서 초등학교 근처로 배치하는 아동안전지킴이를 선발한다는 문자가 왔다. 예사로 스쳐 넘겼는데 주변에 한 지기가 마음이 내킨다면서 같이 응해보자고 해 머뭇거리다가 간단한 서류를 제출했다. 생활 근거지를 벗어난 다른 곳으로도 지원 가능하다고 해서 교외로 나가는 시골이면 마음을 내켜볼까 싶었다.
설 직전 지원자를 대상으로 신체 체력 측정과 면접이 있다 해서 희망 경찰서 강당으로 갔더니 지원자가 꽤 되어 열기가 후끈함을 느꼈다. 전직 경찰관이나 교정직을 비롯한 공직 은퇴자에게 봉사활동 기회를 주고 소외 계층이나 저소득층 노인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뜻도 있을 듯했다. 난 번잡한 도심이 아닌 한적한 외곽이라면 오전은 들녘을 거닐고 오후는 근무에 임할까 싶었다.
설을 쇠고 안전지킴이에 선발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건강 검진 결과서를 제출해주십사는 문자를 받았다. 경찰서와 담을 쌓고 살다 연달아 세 번이나 경찰서 여성청소년계로 출두했다. 앞서 지원서를 제출하는 걸음을 했고 뒤이어 신체검사와 면접을 다녀왔으니 세 번째였다. 그날 경찰서는 학교처럼 부서 내 인사이동이 있었던지 직원들이 책상을 옮기고 서랍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아동안전지킴이로 위촉되면 삼월부터 십이월까지 열 달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근무였다. 이렇게 맡겨질 임무 수행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이 신학기를 맞는 기분으로 기다린 삼월이다. 그동안 자연에서 들꽃을 관찰하거나 책을 펼쳐 하루를 보낸 동선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올봄부터 일상에 변화가 올지라도 부닥치면 부닥치는 대로 임하면 되겠거니 느긋하게 받아들였다.
월요일 아침은 일찍부터 현관을 나서지 않고 평소와 달리 집에서 미적댔다. 새벽밥처럼 이른 아침을 먹었으니 새참 격으로 점심까지 먹고 열 시 경 집을 나섰다. 소답동으로 나가 동읍을 거쳐 대산 신전까지 오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낙동강 강가로 산책을 나설 때면 가끔 이용하던 마을버스였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둘러 대산 들녘을 지났다.
치안 보조 인력이 된 첫 출근으로 대산파출소로 가는 걸음인데 정한 오후 2시보다는 서너 시간 일찍 나섰다. 마을버스가 대산 들판에서 일반산업단지를 지날 때 내렸다. 익숙하지 않은 인문환경과 자연경관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가촌마을로 가니 청주 한씨 통덕랑 일족 무덤과 정암재가 나왔다. 가술교회를 기준으로 남가술에는 오일 장터였고 북가술은 단감 과수단지가 이어졌다.
내게 임무 부여가 맡겨질 대산파출소 앞을 지나 길 건너 초등학교와 주변 들판도 거닐어 봤다. 이방인으로 나타난 한 사내는 대산 일대 촌락을 둘러보고 파출소로 들어 소장과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안전지킴이 넷 가운데 둘은 경력직이고 나와 다른 한 사내는 신규였다. 본청 계장은 짧은 인사 후 떠나고 소장으로부터 간단한 업무 지침과 함께 형광조끼와 모자를 건네받았다.
나와 같은 조가 되어 근무할 분은 인근 지역 교회 목사로 올해 일흔아홉으로 나이보다 훨씬 정정해 보였다. 올해 삼 년째 하는 아동안전지킴이로 둘이서 맡은 순찰 구역은 면 소재지 초등학교 주변이었다. 학교 앞 들길을 걸어 찻길과 멀어진 산언덕으로 오르니 낯선 풍광이 펼쳐졌다. 다시 학교 주변으로 되돌아 와 하굣길의 몇 아이들을 먼발치서 지켜보다 주어진 임무를 마쳤다. 24.03.04
첫댓글 아동안전지킴이로 봉사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하실 자연학교 교장선생님의 새로운 책무가 기대됩니다
ㅎ ㅎ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ㅋㅋㅋ
드디어 취업했구나!
이왕지사 들녘 산책길에
아이들도 보호하고, 운동도 하고, 詩想도 떠올리고,
덤으로 받는 용돈은
아내에게 두 손 모아 챙겨주니
적잖은 나이에 어찌 사랑받지 않을소냐...
훌륭하시도다, 우리 교장 선생님! 이제 토일만 누리실 일이로다. 새로 맡은 일에 보람을 얻으시는 한편 자연 사랑도 더 애정을 가져 주시리라 믿습니댜. 늘 건걍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