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웜(Blueworm)-30
“김지영 박사. 얼마나 힘들어요. 여기 의자에서 좀 쉬도록합시다. 내가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요.”
“고마워요. 정 박사님.”
지영은 그의 가슴에 안겼다. 힘을다 빼고 그에게 의지하였다.
“저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그곳까지 데려다 줘요.”
지영이의 음성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긴장이 풀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정인구는 지영을 안듯이 하여 여자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서서 안은 채 그녀의 방한복 지퍼를 내렸다. 지영은 정신을잃은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물 허물하였다. 원피스를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 뒤에서 다시 말아 무릅아래까지 내렸다. 그리고 지영을 변기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 앞에서 지영의 두 팔을 잡고 안았다. 정인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렸다. 그는 지영의 머리를 안아 그의 아랫배에 기대게 하였다. 지영은 지금 정신이 혼미하였다. 그의 배에 얼굴을 묻고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먹은 것이 없으니 소변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둘은 그렇게 앉아 있고 서 있었다.
지영은 한없이 몸이 피곤하였다. 그럴것이다. 리쎗펀에서 여자로서 느낄 수 있는 갖은 치욕을 다 겪었다. 그리고 쿠르타이스 박사가 준 usb를 몸속에 숨겨 가져오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단련을 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머니와 제임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지영은 투털거렸다. '도대체 엄마는 얼마나 제임스 아저씨를 사랑하기에 같이 죽으려고 사지의 그곳으로 갔단 말인가. 제임스 그 바보같은 아저씨는 왜 내가 같이 가자할 때 먼저 나를 보내고 무얼하자는 것인가?' 어머니 김선애와 함께 돌아오지 못한 죄책감이 치밀어 올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으흐흑. 엉엉엉. 제가 어머니를 사지에 두고 왔어요. 이 나쁜 딸이. 으흐흑. 흑흑. 엉엉엉.”
정인구는 흐느끼고 있는 지영을 더욱 힘주어 꼭 안았다.
“지영씨.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곧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올겁니다. 내가 신호를 지켜보고 있어요. 그러니 힘내도록 하십시요. 제가 옆에서 지키겠습니다.”
“이럴 때 옆에 계셔 주셔서 고마워요.”
지영은 지금 젖가슴을 다 들어낸 채 변기 위에 앉아 정인구 가슴에 안겨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60.
"제임스. 제가 당신을 구한 것 느끼셨죠? 선애는 이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 무모하긴 했지만, 잘했어. 죽변에서 맛치를 가지고 난관을 헤쳐 토론토까지 가져 온 그 용기와 행동도 멋졌고 잘했어. 그건 인정하지."
선애는 제임스의 가슴 위에 온 몸을 올려두고 그의 더부룩한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맨몸의 두사람 열기가 침낭을 뜨겁게 하였다.
"여보! 제임스. 나 이제 당신곁에서 안 떠날거예요. 그렇게 해주세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떨어져 살지 않을거예요. 불구덩이 속이라도 당신과 함께 할거예요. 어서 말해줘요. 이제는 당신이 선애를 지켜준다고."
선애의 목소리가 젖었고 눈물이 제임스의 가슴에 떨어졌다. 제임스의 눈에도 눈물이 거렁 거렁하였다.
"그래. 선애야. 이제는 내가 당신을지킬거다. 내가 잡은 당신의 이 손. 죽어도 놓치지 않을거다. 사랑한다 선애야. 당신을 이 세상 끝까지 그리고 영혼까지 사랑한다. 내여자 김선애."
"여보! 제임스. 저도 당신만을 사랑해요. 영혼이 되어서도 당신 제임스 리 만을 사랑해요. 으아아앙~"
선애는 말을 마치자 울며 제임스의 얼굴과 가슴에 키스를 하였다. 제임스는 선애를 빈틈없이 꼭 안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선애는 일어나 침낭에서 나와 옷을 입었다. 그리고 준비한 주사바늘을 제임스 팔에 꼿았다. 쉘터를 나온 선애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심호흡을 하였다. 이제 다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제임스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팔목에 찬 시계는 6시3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마도 오전일거라 생각하였다. 시야는 온통 눈으로 하얗게 뒤덮혀 있었다. 바람이 없는 고요한 설국이었다. 그러나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허드슨 베이 해변가에 덮힌 눈같이 뿌옇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본 선애는 놀랐다. 앞은 끝없는 눈바다였고 뒤는 눈을 덮어쓰고 있는 캐네디언 파인트리 산이었다. 그 속에 쉘터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제임스와 함께 왔을 때는 정신이 없다시피 하였기에 눈치채지 못하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니 막막하였다. 이곳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짐작 할 수가 없었고 더구나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이 고요하여 오히려 깊은 평화를 느꼈다. 아늑하였다. 추위도 느끼지 못하였다. 혹 죽어서 온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애야."
그녀의 평화를 제임스가 깼다. 그때서야 제임스 생각이 났다.
"제임스. 좀 어때요."
"응. 아주 좋아. 그런데 내가 입을만한 옷 없을까? 당신이 홀라당 벗긴거야?"
"ㅎㅎㅎ 예. 제가 다 벗겼어요. 그리고 제 몸으로 덮어 이불이 되었더랬어요."
선애는 수줍어하며 불가까이에 널어 두었던 제임스의 옷을 챙겨 던졌다. 제임스가 그런 그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어요?"
"당신이 입혀줘야겠는데... 그리고 이 주사바늘도 빼주어야 겠고. 가슴을 움직일 수가 없어. 아마도 총알이 아직 박혀있는가 보다."
아하. 선애는 잊어버렸었다. 그가 총알을 맞은 부상당한 환자라는 것을. 그냥 제임스 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제임스는 눈을 뜨자 바로 선애를 먼저 찾았다. 분명 가슴 위에서 자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나서야 안심하였다.
"선애야. 지금 몇시야?"
"6시 50분. 그런데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가 없어요. 밖에는 온통 눈으로 덮혀 있어서 훤해요."
제임스도 때를 분간할 수가 당장은 어려웠다. 선애가 가져온 속옷을 입고 방한복 원피스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상처의 피는 이미 멈추었고 감은 붕대를 선애가 다시 새 붕대로 가슴을 둘둘말아 갈아 놓아서 한결 좋은 기분이 되었다.
"여보- 제임스. 기분이 어때요.?"
마음속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데 표를 내어서는 안될 것 같아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음. 아주 좋아. 통증도 없고... 잠깐 이리와. 내곁에."
선애는 제임스가 그렇게 말하자 얼굴이 먼저 붉어지는 것 같았다. 선애는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제임스는 선애를 꼭 안았다. 그리고 입술에 키스했다.
"여보. 또? 무리하지마요."
"ㅎㅎㅎ 선애야. 그게 아니고 나 좀 일어나게 부축해 달라고 했는데 당신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워 안은거야. 당신이 오버한거다."
"이그- 이런 곳에서도 진담을 해요. 당신은. 자. 일어나 보세요."
둘은 문을 열고 쉘터 밖으로 나갔다.
아직 태양은 떠 오르지 않았다. 희뿌연 운무같은 기운이 사방에 깔려있어 시야를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었다.
“선애야. 걱정되지?”
제임스는 선애의 어깨를 안으며 안스러운 얼굴로 선애를 보며 물었다.
“이제는 괜찮아요.당신이 이렇게 건장하게 옆에 계신데 제가 왜 걱정될까요. 이제는 당신곁에 꼭 붙어있을거예요.”
“그래. 전에는 내 꿈 중에 하나가 토론토를 출발하여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서 허드슨베이를 만나 그 바닷물에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는 것이었어. 지금 그 꿈은 겨울에 실현되어 반만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이백배 이루어진거야.”
“어. 무슨 그런 말이...”
“나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던 일을 운명의 신이 만들어준거야. 여름대신 당신을 보내주어서 함께 이 호젓한 눈 덮힌 허드슨 베이를 바라보고 있는거야. 이 보다 더 완전한 꿈의 실현은 없어.”
“여보! 제임스. 당신은 말도 사랑하지 않고는 못 살게 잘 하셔요. 저는 지금 그 말을 듣고는 너무 행복에 빠졌어요. 사랑해요. 한도 끝도없이 당신을 사랑해요.”
선애는 제임스의 허리를 감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어 이 행복한 순간이 지겹도록오래가길 바랐다.
“그럼, 당신은 여기가 허드슨 베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응. 내가 아테네에서 퀘벡에 비행기로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북쪽으로 온거야. 영어와 프랑스어 도로 싸인을 봤거든. 그리고 리쎗펀 본부 연구실에서 남쪽으로 내려왔고. 아마도 저 남쪽멀지 않은 곳에 온타리오 경계가 있을거고 토론토로 갈 수가 있을거야. 지금부터 이곳에 신혼여행 온 것같이 제대로 푹 쉬었다 다시 움직이면돼. 알았지?”
“얼마나 쉴건데요?”
“아마도 몇 시간?하루?”
“저는 더 있어도 좋겠어요. 당신이 옆에 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