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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태극 원문보기 글쓴이: sak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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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가 모두 우리땅였음을 증명하는 자료군요.. 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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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님. 1. 참으로 긴요(緊要)한 자료(資料)를 올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연해주 북동해안’과 관련해서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인물(人物)이 바로 ‘고주리(高朱利)’입니다. 좌계는 이 ‘고주리’란 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래’와 관련이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리사초(高句麗史抄)에는 이 ‘고주리’를 동해곡(東海谷) 태수(太守)로 임명하는데, 그런데 이 동해곡(東海谷)이라는 지역이 바로 ‘연해주 앞바다’에서 ‘사할린’ 섬 까지의 해역(海域)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계는 고구리사초(高句麗史抄)에 등장하는 북해(北海)는 오늘날 ‘오츠크츠 해(海)’라고 보고 있는 것이지요. 이 고주리(高朱利)는 아시아(Asia) 촤고 무가(武家)인 환나국(桓那國) 출신으로써 고주몽(高朱蒙)-동명성왕을 지킨 계후(桂后)와 같은 집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츠크츠 해(海)’는 험하기 짝이 없는데, 이곳에서 고주리(高朱利)는 ‘고래’를 잡았던 것입니다. 솟대님께서 올리신 ‘연해주 북동해안’은 바로 고구리(高句麗)의 동해곡(東海谷)이고, 특히 ‘고주리’를 비롯한 포경선(捕鯨船)을 타던 사람들의 기지(基地)라고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고주리’와 고래>에 쓰려고 구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최근에 ‘투석기를 쓰는 전함(戰艦)’ ‘포경(捕鯨)에 쓰인 천보노(千步弩)’등을 연구하고 있는 중에, 솟대님의 글을 읽게 되어서 더욱더 감격스럽군요. 2. ‘고주리’에 대한 고구리사초(高句麗史抄) 잠시 ‘연해주 북동해안’ - 고구리(高句麗)의 동해곡(東海谷)의 태수(太守)로 있던 ‘고주리’의 기록을 메모(memo)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第四世<閔中帝>紀 ◎ 四年丁卯, - 중략(中略) - 九月, <東海>使人<高朱利>献鯨目于<烏>后. 夜有光當燭. ○ 4년{단기2400년/AD67}정묘, - 중략 - 9월, <동해>의 사인 <고주리>가 <오>후에게 고래의 눈알을 바쳤는데, 밤이 되면 빛이 나서 촛불을 켠 것 같았다. 高句麗史略卷之二/第六世<神明仙帝>紀 ◎ 三十年壬寅, 正月, 以<高朱利>爲<東海谷(今尼港)>太守, 使鎭<北海(白羽岺)>及島(樺太)酋. <朱利>, <高婁>之孫也. 質重似愚而內明. 上以<東海谷>爲可守而設官, 遠無欲去, <朱利>自請往之. 人皆危之. ○ 30년(단기2435년/AD102)임인, 정월, <고주리>를 <동해곡>태수로 삼아 <북해(백우령)>와 섬(화태)들의 추장을 잘 다독거리라고 하였다. <주리>는 <고루>의 손자이다. 본바탕이 묵직하여 바보스러워 보이지만 속은 명철하다. 상은 <동해곡>을 지켜내야 할 것으로 보고 관리를 두려고 하는데, 멀다고 아무도 가려하지 않고 있었는데, <고주리>가 자청하여 가겠다고 하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동해곡>으로 부임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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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사료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동해곡태수가 북해北海및 인근 섬들의 장酋을 다스렸다고 할 수 있는 지리는 아무리 내려보아도 연해주 특히 연해주남부의 제섬들일 수 밖에 없겠네요. 아마, 최대한 넓게 본다면 당시 고구려의 국세에 달려있겠지만 흑룡강하구의 사할린에서부터 북해도(훗카이도)를 걸쳐 일본 혼슈本州 북부까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용량관계만 아니면 사할린지도도 온전히 올려드리고 싶네요.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텍사스대에 동북아지도자료가 상세히 공개되어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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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님께서 쉽게 요약하셨네요. 유물발굴된 것으로는 북으로는 흑룡강 이북의 러시아 아무르주와 하바롭스크주 일대까지 동으로는 포세트만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흑룡강하구의 연해주동북해안가까지 모두 진국-발해강역이었음이 드러났으니 현재 일반적으로 발해지도라고 알려진 강역은 발해동부강역의 절반만 그린 반쪽 지도가 되네요. 당연히, 고구려강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항상 고구려 중심강역을 현 압록강 연변으로 비정하고 이로써 송화강이남으로 고구려-발해지도를 그려놓으면서 최대한 남쪽으로 끌어내리려는 강단의 학설이 완전히 엉터리임을 보여주네요. |
출처:우리역사의비밀(솟대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