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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 왕실의 여인인 의순공주의 한 많은 삶 ♡ 의정부에 있는 천보산 자락에는 의순공주라는 조선조 어느 공주의 산소가 있다. 천보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심심할 때 그곳을 가끔 오르기도 했었다. 산정상에서 금오동 쪽으로 내려오면 그 동네가 바로 금오동 꽃동네라는 마을인데 등산로 바로 입구 주변에서 좌측으로 5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산자락에 그 누구의 묘인지도 모르는 봉분이 몇 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의 봉분이 의순공주의 묘라고 한다. 묘소가 그늘이 져서 잔디가 자라지도 못하고 그냥 진흙더미에 이끼가 끼어있다. 내가 의순공주의 묘를 처음으로 본 지가 40여 년은 훨씬 더 지난 것 같은데, 어느 해던가? 나는 그 의순공주의 묘소를 처음으로 보는 순간 공주의 묘가 너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묘소의 주인이며 한 많은 세상살이에 피곤한 삶을 살다가 간 의순공주에 관한 얘기를 간략하게 펼쳐보고자 한다…. 의순공주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였던 인물이 아니고, 조선 왕실의 종친이었던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태어난 종실의 여성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아버지인 이개윤은 성종과 숙의 홍 씨 사이에서 난 익양군의 손자이고 그 손자의 딸이 바로 의순공주이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조선이 청나라의 요구로 왕족 여성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갑자기 효종의 양녀로 책봉되어 의순공주라는 작위를 받고 공주 신분으로 청나라로 보내져서 당시 청나라의 실세였던 도르곤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인데, 그 유명한 도르곤은 병자호란 때에 삼전도에서 인조대왕에게 항복을 받아낸 청 태종의 심복이었고, 청 태종의 이복동생이기도 한 인물이다. 청 태종이 죽은 후 청 태종의 아들이며, 어린 여섯 살짜리 황제인 순치제를 섭정하던 섭정왕이다. 사실상 청나라의 최고 실력자이다. 오랜 세월 조선이 황제의 나라로 섬겨왔던 명나라도 그의 손으로 멸망시켰었지.∼♡♡ 의순공주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라의 필요에 의해 결정된 혼인의 신부가 되어 16세 어린 나이에 낯선 땅으로 떠나야만 했었지. 당시 조선으로서는 전쟁 패배의 대가를 치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정작 그 대가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건 나라도 왕실도 아닌 16세의 어린 의순공주였다.∼♡♡ 청나라로 간지 얼마 안 되어서 남편이었던 도르곤이 사냥을 나가서 말에서 떨어져서 죽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의순공주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고, 도르곤의 사후에 그녀는 도르곤의 조카이자 부하 장수였던 친왕 보로(博洛)에게 재가하였지만 보로 또한 1652년 2월에 사망하여 홀로 지내다가, 1656년 4월에 청 연경에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온 그녀의 아버지인 금린군이 순치제에게 요청하여 그녀를 다시 조선으로 데려왔다. 정작 친정에서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라를 위해 희생했음에도 돌아온 뒤에는 오히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이 이 사연이 특히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1662년 8월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현 의정부시 금오동)에 안장되었다. 아쉽게도 그녀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것이 전부이고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그녀의 초상화 한장도 남아있지 않다.∼♡♡ 청나라가 여진족들이 세운 오랑캐의 나라라고는 하나 그 나라의 최고 실력자인 도르곤에게 보내는 여자를 못생긴 박색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의순공주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학식과 품행도 아주 모범인 여성일 것으로 추측된다. 의순공주를 모시고 동행한 호행사였던 원두표라는 사람은 귀국하여 도르곤의 반응에 대해 말하기를 도르곤이 처음 의순공주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했으며, 성해옹의 《연경재집》에 “도르곤이 의순공주를 매우 기뻐하여 백송골(白松鶻)”이라 하였으니 백송골이란 그 자태가 뛰어나다는 말이라고 한다. 당시 16세 그러니까 이팔청춘의 나이에 의순공주의 외모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인조 시대에 조선의 처녀를 첩이나 시녀로 강제로 차출해간 공녀(貢女)와는 다르게 봐야 할 것이다. 흔히들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가던 시기를 병자호란때라고 잘못 알고있는데,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갈때는 이미 병자호란이 종료된지가 14년이나 지나서이다. 그 시기가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죽고 봉림대군인 효종이 보위에 올라서 청나라를 상대로 북벌계획을 준비할 때가 아닌가? 그런 시기에 청나라에서는 느슨해지는 조선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의순공주를 정실부인인 비(妃)로 맞이하겠다는 정식 구혼이 아니었을까? 결혼 상대가 여느 황족이 아닌 순치제의 섭정왕으로서 언제 황제로 등극해도 이상치 않을 도르곤의 정비(正妃)가 되는 것이었지만 반청감정이 높았던 조선으로선 달갑지 않은 구혼이었다. 효종은 미혼인 공주는 2세에 불과하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질녀인 소현세자의 딸들도 모두 숨겼다고 한다. 다른 왕족들과 대신들도 딸을 숨기기에 급급하였는데, 이때 자진하여 혼기의 아름다운 딸이 있음을 밝힌 자가 그녀의 아버지인 금림군 이개윤이었다고 한다.∼♡♡ 의순공주의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다. 효종은 금림군의 딸 이애숙을 양녀로 삼아 공주의 작위를 내리고 청으로 보낸다. 애숙에게 내린 공주 봉작 명은 의순(義順)으로 대의(大義)에 순종(順從)하였음을 뜻한다. 효종 1년(1650년) 4월 22일,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출발하자 효종은 서대문 밖 모화관까지 나아가 송별했으며, 백관들은 반으로 나누어 홍제원까지 수행토록 했다. 그녀의 오빠 두 명이 수행원으로서 그녀를 청나라까지 배종하였고, 통역에 아주 우수한 역관 5명과 공노비 중에서 선발된 시녀 16명과 유모, 몸종, 수모(머리 단장과 화장을 책임지는 여성), 의녀 등이 그녀를 따랐다. 5월 21일, 도르곤이 6만 명의 수행인을 이끌고 산해관 부근의 연산(連山)으로 마중 나와 혼인의식과 초야를 치렀다고 전한다.∼♡♡ 효종 7년(1656년) 4월 26일 의순공주가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그녀의 귀국에 앞서 청의 순치제가 보낸 칙서의 내용에 따르면 "그녀가 미망인(孀)이 되어 종친의 사저(邸)에 지내며 부모 형제와 멀리 떨어졌으니 측은하게 여긴지 오래되었는데 아비인 이 개 윤이 딸을 보고자 주청하니 더욱 안쓰러워 의정대신(議政大臣)과 함께 귀국시켜 친지와 살 수 있도록 하니 조선에선 따르라."라는 것이다. 효종은 호조에 명령을 내려 그녀에게 매달 쌀을 내려 평생을 마치도록 하였다. 하지만 오랑캐에게 시집을 갔고 남편의 사후에 수절치 않고 이내 재가까지 했던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조선의 시선은 곱지 못하였으며, 더 정치적 가치도 사라진 그녀에 대한 조정의 태도도 돌변했다. 윤오월 1일, 사헌부에서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데려온 금림군 이 개 윤을 탄핵하여 파직시켰으며, 윤오월 10일에는 사간원에서 파직으로는 벌이 부족하다 하여 이개윤은 삭 탈관 잘되어 성 밖으로 쫓겨났다. 또한, 귀국한 의순공주의 칭호는 이개윤의 딸(女 혹은 女子)로 격하되었으며, 현종실록에는 의순공주가 정식으로 공주로 보호된 것이 아닌 공주로 일컬어졌을 뿐으로 기록되어 있고, 당연히 공주의 예우도 받지 못하여 오히려 청에서 황족의 예우를 받았던 시절보다 처지가 나빠졌다. 청의 시선 때문인지 이개윤은 다시 사용되어 청의 사신으로 활동하였다.∼♡♡ 그녀에 대해 민간의 불만이 고스란히 반영된 잘못된 전설도 존재하는데, 청으로 시집가는 의순공주가 평안도 정주에서 짐승보다 못한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가파른 벼랑 아래 깊은 물 속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였으며, 시체가 떠오르지 않아 그녀가 쓰고 있던 족두리만으로 무덤을 만들어 족두리 묘로 칭했다는 설도 전해진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매우 싸실 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에 따라서 기록한 실록에 기록된 것을 정설로 봐야 할 것이다.∼♡♡ 분명 의순공주는 효종 7년(1656년) 4월 26일 청나라에서 그의 아버지가 데려와서 조선에서 살다가 1662년 8월 18일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현 의정부시 금오동)에 안장되었다.∼♡♡ 의정부 양주지역에는 여기저기 왕손들이 포진해 사는 동네들이 많았다고 느껴지네요. 우리 노인정에 의정부시에서 동장도 하고 공직생활을 오래하신분의 말에 따르면 천보산 아래 의순공주묘가 있는 그 마을이 이씨들 동네였고 옛날에 포천사람들이 의정부 장에 왔다가 갈 때면 그 동네앞을 못지나가고 다른곳으로 돌아서 갔다고 하네요.ㅎㅎ∼♡♡ 의순공주가 어린 소녀 시절에 이곳 의정부 어디쯤에 살지 않았을까. 의정부를 지켜온 도봉산아! 수락산아! 흥복산아! 하늘에 보물인 천보산아! 말을 좀 해 보렴∼♡♡ |
첫댓글 가슴 저미는 아름다운 글 , 지난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살펴보는 주옥 같은 글 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글 대하게 해주신 준강님께 감사 드립니다 꾸~뻑 ^^
부족한 저의 졸필을 언제나 좋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마추어의 글이나마 더 용기 얻어서 가끔 이렇게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