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가 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생물학 연구소를 미국이 지원해 각종 박테리아 및 생화학 물질을 개발했다고 말했습니다. 협상장에 관련 자료 갖고 나오라네요... 한편, 6일(현지시간) 이고르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의 군사생화학 프로그램을 지원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수군사작전의 목표로 우크라이나의 Denazifying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요즘에 무슨 나치가 있느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푸틴의 말은 점점 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나치즘의 중추는 이른바 아조프 연대, 또는 아조프 대대라고 불리는 극단 민족주의 그룹입니다. 체첸의 카듸로프 무슬림 민병대가 푸틴의 편에 선다고 하자 아조프 민병대는 총탄에 돼지기름을 발라 이들을 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아조프 대대는 나치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등을 모두 갖춘 무장세력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이 명백한 종교, 인종혐오 포스팅에 대해 페이스북은 제재조치를 취했지만 곧바로 이를 뒤집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푸틴의 러시아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도 아조프 대대입니다. 아조프 대대는 모두가 자원병으로 구성된 군사조직입니다. 원래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던 2014년 우크라이나 애국 조직이 확대 발전한 겁니다. 그리고 창립멤버 가운데는 네오 나치 Social National Assembly조직원도 많았습니다. SNA는 우크라이나내 소수그룹에 대한 무장공격도 자행했습니다. 이들은 외국인 혐오정서와 네오 나치주의를 전파하면서 이민자나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가했습니다. 아조프 대대의 지도자는 우크라이나의 애국자조직과 SNA의 리더였던 안드리 빌레츠키였습니다. 2010년에 그는 우크라이나의 민족목표는 마지막 크루세이드에서 세계의 백인을 지도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빌레츠키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이 되면서 조직을 떠났습니다. 아조프 대대는 2014년에 우크라이나 내무부의 자금지원을 받았습니다. 2015년 안드리 디아첸코 아조프 대변인은 10%-20%의 대원들만 네오나치주의자를 선발한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아조프 대대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SS돌격대 문양을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아조프의 군복에도 네오나치의 Wolfsangel 늑대잡는 올가미 심볼을 달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군대편제에서 네오나치 부대를 보유한 나라입니다. 2016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3000명의 아조프 대대가 벌인 행사입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을 압박하는 애국단체임을 과시하기 위해 벌인 퍼포먼스입니다. 붉은 색 연막을 터뜨리며 축제를 벌이는 광경이 마치 종교단체의 제사의식을 방불케 합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광기어린 장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일찌감치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인이라면 민족의 적이니 멸종시켜도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공개적인 지원을 받을 정도니 21세기에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나라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거대하고도 잔인한 조폭조직을 국가차원에서 양성했습니다. 푸틴의 분노는 이 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미 타임지의 특파원 사이먼 슈스터는 1년전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 행사를 보고는 경악했습니다. 네오 나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아조프 대대가 키예프 시내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하는데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덤덤했으며 오히려 그들을 애국자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고 적었습니다. 스탈린의 붉은 군대에 맞서 독일군 편에 부역했으며 유태인에 대해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모두 잊은듯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아조프 대대는 공공연하게 나치식 경례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서방언론들은 이를 별로 문제삼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난리가 났을 일들입니다. 아조프 대대의 신병 모집 행사는 아주 호전적이면서 기괴합니다. 팔뚝에 다들 나치 문양 문신을 하고 입대 기념으로 격투기 경기도 벌입니다. 나치 독일이 독일에서 발호하기 시작했을 때 젊은이들의 광기를 연상시킵니다. 또 좌파PC 이데올로기 세뇌도 이뤄집니다. LGBT에 관용을 베풀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도 교육합니다. 아조프 대대 조직원들은 모두 형제나 다름없다면서 동지의식도 강요합니다. 나치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죽박죽 믹스됐습니다. 푸틴은 이 참에 Denazification을 명분으로 아조프 대대를 뿌리뽑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조프 대대가 바로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최대 14만명까지 학살한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또 결사항전을 외치며 화염병을 제조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행동도 아조프 대대의 감시와 협박때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적 회랑 포격도 러시아 소행으로 선전하려는 아조프의 책동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57 아조프 대대는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에 개입하자 우크라이나 국민방위군으로 편입됐습니다. 아조프 대대는 당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의 찬사를 받았고 우크라이나 군이 친러시아 무장세력보다 약하다는 판단에 정부의 지원을 정식으로 받기 시작했습니다.아조프 대대는 에너지 부문의 올리가르흐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개인적 지원도 받았습니다.우크라이나 전쟁은 급속히 극단주의 세력의 온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제 정치 분석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극우 낭만주의를 품고 있던 이들에게 실전경험을 제공하는 장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극우는 요즘 상당히 헛갈리는 용어입니다. NAZI는 사실 극좌전체주의인데 세계적으로 많은이들이 극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외국인에게도 자기나라 전쟁에 참여해 달라고 국제의용군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여러나라들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더라도 자기나라 청년들이 국제의용군에 참여하는 것은 극구 말리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극단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데다 아조프 대대의 네오 나치즘에 물들어 과격한 혁명을 역수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3월 10일 우크라이나가 미 펜타곤의 자금지원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실험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코나센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올해 우크라이나의 바이오랩에서 조류와 박쥐, 그리고 파충류의 병원체 연구를 계획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바이오랩에서 입수한 극비문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중공 외교부도 미국은 전세계 30개국에 336개의 바이오랩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에만 26개의 연구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증거라면서 여러 나라가 참여해 검증해야 한다고 러시아편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화학 생물학 병기를 개발한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덮기 위한 가짜정보전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바이오랩은 푸틴이 특수군사작전을 개시하면서 핵발전소와 함께 우선적인 장악 목표였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우크라이나가 의학 선진국도 아닌데 비밀 바이오랩이 그렇게 많았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생물학적 무기 프로그램을 은닉하고 있다고 서방을 비난한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생물학적 혹은 화학적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것이라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수요일(9일) 밝혔다.
러시아는 이번 주 미국 실험실이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똥을 튀겼다.
러시아 외무부는 화요일(8일)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지원하는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소의 존재를 러시아 군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마리아 자하로바(Maria Zakharova)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월 24일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연구소에서 연구한 "전염병, 탄저병, 토끼열병, 콜레라 등 치명적인 질병"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빅토리아 눌랜드(Victoria Nuland) 미 국무부 차관은 8일(화) 의회 청문회에서 "생물학 연구 시설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러시아가 장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생물학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러시아군이 통제권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접근한다면 연구 자료가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키는 트위터에 러시아의 음모론을 비난하는 장문의 성명을 내고 미국은 화학무기협약과 생물무기협정에 따른 의무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이 같은 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키는 "러시아는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와 같은 푸틴의 정적들에 대한 암살 시도와 독살 등 화학무기를 사용한 오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화학무기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온 시리아 아사드(Assad) 정권을 계속 지지하고 있다"면서 "국제법을 위반하여 오랫동안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해 온 나라는 러시아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러시아는 서방세계가 자행하고 있는 바로 그 위반행위를 비난한 전력이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화학무기를 보유한 계약자들을 배치했다고 거짓으로 비난했다."고 덧붙였다.
사키는 러시아가 "거짓 깃발 작전"이 될 수 있는 생물학적 화학무기 공격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러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고 중국이 이러한 선전을 승인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지, 아니면 이를 이용한 가짜 국기를 만들지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한 패턴이다"라고 그녀는 결론내렸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현지시간으로 10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우크라이나 내 ‘고위험 병원체’를 보유한 ‘생물 실험실’을 폐기하는 것으로 전쟁으로 인한 바이러스 유출을 방지하도록 권고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일은 곧 바로 해외 온라인상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내 고위험 병원체가 다량 보관돼 있는 실험실들이 미 국방부가 비용을 들여 건설했고, 장비와 인력 교육도 미국 측이 제공한 것으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우크라이나와의 '협력'이 "소련 시절 남아 있던 생화무기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고위험 바이러스 연구를 통한 '공중보건'의 '과학연구 지원'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생화무기에 대한 미국의 수상한 행태와 과거 악행이 많기 때문이며, 특히 미국은 생물무기협약에서 다자간 검증 메커니즘 협상을 항상 거부해왔다.
또한 미 국방부와 우크라이나 측의 협력문서를 보면 이들 실험실에 저장된 균과 연구 성과를 미국 측이 우선적으로 얻을 수 있는 데다 협력 내용도 공개할 수 없는 '제한적 정보'에 해당한다.
한편 ‘겅즈거(耿直哥)’는 지난 3월 9일 우크라이나 '생물 실험실' 관련 기고문에서 생화무기 문제를 다루는 미 국방부의 한 전직 관리가 생화무기 연구는 백신 등 '공중보건' 분야 연구로 위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이 관리는 북한이 코로나19 백신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코로나19를 무기화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지만, 그 프로세스에 대한 익숙함이 사람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의 많은 증거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들이 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미국 스스로가 행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이전부터 우크라이나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미국이 벌인 이른바 협력 '생물 실험실'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국제사회의 의혹 제기를 '가짜 소식'이라고 계속 주장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조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가 이 실험실에 저장된 '폐기'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로이터를 통해 공개된 후, 이 실험실의 진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많은 외국 네티즌들은 주요 증거들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어쩌면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이 세계보건기구에 우한바이러스연구소를 개방한 것처럼 세계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전 세계 다른 곳에 있는 미국의 '생물 실험실'을 조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러시아연방 유엔 상임대표인 바실리 네벤자(Vasily Nebenja)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미국이 자국 주도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생물연구소에 대한 사찰을 거부하고 있다"며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1일(현지시간) 러시아 위선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의 요청으로 11일 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 내 미국의 군사생물 활동을 논의했다.
네벤자는 "미국은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구소련 주변국 등 30개국에서 수백 개의 바이오랩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워싱턴은 국제 사찰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 국가의 협약 준수 여부를 검증할 수 있고 법적 구속력 있는 '생물무기 금지협약'의 검증의정서가 제정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앞서 미국이 미군 생물학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생물연구소 운영에 2억달러 이상을 지출했다는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생물학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생물무기금지협약' 틀 내에서 협의 메커니즘 가동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생물학 연구소에 대한 정보에 대해 논평하면서 미국이 국내외에서 생물학적 군사화 활동을 설명할 것을 촉구했다.
외국 매체가 보도한데 따르면 세계보건기구는 전쟁으로 인한 병균 유출을 피면하고 대중의 건강에 위험을 주는 것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이미 비축한 공공보건실험실의 고위험 병원체를 소각할 것을 우크라이나에 제안했다. 그런데 일전에 러시아 군부측은 우크라아나 경내에 자금을 지원하여 미국이 군사생물계획을 실시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국제사회는 미국이 도대체 어떤 은밀한 일을 벌이고 있는가를 저마다 질의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가 10일 발표한 최신 소식에 따르면 미국과 나토 맹우는 우크라이나 경내에서 생물무기 연구를 진행했다는 것이 문건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철새의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 '박쥐가 인간에 전파한 세균과 바이러스 등 병원체" 등등 여러 종목 연구가 망라된다.러시아측은 또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한 생물군사행동은 '중국침략 일본군 731부대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진정한 의도가 구경 무엇인지 반드시 잘 해석해야 한다.
특히 수상한 것은 러시아측이 일전에 관련 사건을 폭로한 후 미국 여러 관원의 태도가 모순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 국회 상원이 일전에 가진 청문회에서 눌런드 미 국무차관은 우크라이나에 '생물연구 시설'이 있다는 것을 승인했다. 그는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협력하여 그런 '연구자료'가 러시아군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네드 파라이스 미 국무원 대변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그 어떤 화학 혹은 생물 실험실을 보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다고 승인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외계에서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미국이 아무리 덮어 감추려 해도 많은 연구와 증거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300여개 생물실험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표명한다. 이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가맹공화국에서 전개하고 있는 군사생물 프로젝트이다.
러시아측이 확보한 문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경내의 수십채의 생물실험실은 미 국방부의 명령에 따라 운행되었다. 미국은 이런 실험실 활동에 이미 2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펜다콘의 청부업자도 관련 실험실 건설에 참여했다.
한편 러시아가 밝힌데 따르면 미국은 또 우크라이나 실험실에서 박쥐를 생물무기의 캐리어로 삼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확인한데 따르면 박쥐의 체외 기생충을 넣은 140여개의 용기가 이미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생물실험실에서 국외에 전이되었다.
바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생물실험실 행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우크라이나 국내에 일부 '이상한' 사건이 발행했다.
2016년 하르키우시에서 돼지 인플루엔자가 발발하여 우크라이나 군인 2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입원했다.
이로부터 볼수 있는바와 같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생물연구와 개발 활동에 종사한 증거는 확실하다.
현재 우크라이나 정세가 악화된데는 미국과 그가 주도하는 나토가 책임을 밀어버릴 수 없다.
세계 민중의 건강을 고려하여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전문가들을 조직하여 미국이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 지역에 설치한 생물실험실을 사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반드시 국제의무를 이행하고 전면적으로 해명하며 다자 사찰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오물을 던지는데' 습관된 미 정객은 이번에 더는 기만행위로 세계를 속일 수 없다.
극우 성향의 네오나치 그룹은 우크라이나 군대, 거리 민병대, 정당의 일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022년 1월 30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방위군 아조프 대대의 베테랑이 민간인을 위한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File: Gleb Garanich/Reuters]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6일 차에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 극우 군사 연대가 다시 헤드라인으로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부대의 존재를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및 비나치화를 위한 … 특별 군사 작전”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다.
월요일 우크라이나 방위군은 트위터에 아조프 전사들이 자국에 배치된 러시아의 동맹국인 이슬람 체첸을 상대로 사용하기 위해 돼지 지방으로 총알을 코팅하는 영상을 트윗했습니다.
Azov는 또한 러시아의 침공을 앞두고 군사 훈련을 통해 민간인 훈련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Azov 연대는 무엇입니까?
Azov는 극우의 자원 봉사 보병 부대로, 약 900명으로 추산되는 이 부대는 초민족주의자이며 신나치와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대는 2014년 5월 초민족주의적인 우크라이나 애국자 갱단과 네오나치 사회국회의원(SNA)에서 자원봉사단으로 처음 결성됐다. 두 그룹 모두 외국인 혐오 및 신나치 이상에 참여했으며 신체적 공격을 받은 이주민, 로마 공동체 및 그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대로서 이 그룹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인 도네츠크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과 최전선에서 싸웠습니다. 침공을 시작하기 직전에 푸틴은 돈바스로부터 반군이 장악한 두 지역의 독립을 인정했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전략적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을 탈환한 지 몇 달 후, 부대는 공식적으로 2014년 11월 12일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통합되었으며 당시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2014년 시상식에서 그는 “이들은 우리 최고의 전사들이다. 우리 최고의 자원봉사자들”이라고 말했다.
누가 Azov를 설립했습니까?
이 부대는 우크라이나 애국자(2005년 설립)와 SNA(2008년 설립)의 지도자를 역임한 Andriy Biletsky가 이끌었습니다. SNA는 우크라이나 내 소수 집단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에 Biletsky는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목적이 “세계의 백인들을 최후의 십자군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inferior races]”.
Biletsky는 2014년에 의회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선출된 공무원이 군대나 경찰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Azov를 떠났습니다. 그는 2019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습니다.
42세의 그의 지지자들은 Bely Vozd 또는 White Rule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2016년 10월에 극우 국가군단당을 창당했으며 그 핵심 기반은 아조프의 참전용사들입니다.
우크라이나 군대에 합류하기 전에 누가 Azov에 자금을 지원했습니까?
이 부대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자체 군대가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을 물리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준군사적 지원군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이 군대는 과두 정치인에 의해 개인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에너지 거물 억만장자이자 당시 Dnipropetrovska 지역의 주지사였던 Igor Kolomoisky였습니다.
Azov 외에도 Kolomoisky는 Dnipro 1 및 Dnipro 2, Aidar 및 Donbas 부대와 같은 다른 지원 대대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Azov는 다른 과두 정치인인 도네츠크 지역의 억만장자 주지사인 Serhiy Taruta로부터 초기 자금과 지원을 받았습니다.
네오나치 이데올로기
2015년 당시 연대 대변인인 Andriy Diachenko는 Azov의 신병 중 10~20%가 나치라고 말했습니다.
부대는 전체적으로 나치 이데올로기를 고수한다고 부인했지만, 만자 및 SS 레갈리아와 같은 나치 상징이 아조프 회원들의 제복과 몸에 만연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복에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만자와 유사한 네오 나치 볼프산겔 기호가 있습니다. ‘민족사상’을 상징하는 ‘N’과 ‘나’의 합성어일 뿐이라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회원 개개인은 신나치주의자라고 공언했고, 회원들 사이에는 강경한 극우 극우 민족주의가 만연해 있다.
2018년 1월, Azov는 수도 키예프에서 질서를 “복원”하기 위해 National Druzhyna라는 거리 순찰대를 배치했습니다. 대신, 부대는 로마 공동체에 대해 학살을 자행하고 LGBTQ 공동체 구성원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잡지인 Nation의 특파원은 2019년에 “우크라이나는 군대에 네오나치 조직이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인권침해와 전쟁범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CHA)의 2016년 보고서는 아조프 연대가 국제인도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보고서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Azov가 사용된 민간 건물에 무기와 군대를 내장하고 민간 재산을 약탈한 후 거주민을 쫓겨난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보고서는 또한 돈바스 지역에서 수감자들을 강간하고 고문하는 대대가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Azov에 대한 국제적 반응은 어떻습니까?
2015년 6월, 캐나다와 미국은 네오나치와의 연관성을 이유로 자국 군대가 아조프 연대를 지원하거나 훈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은 국방부의 압력으로 금지령을 해제했다.
2019년 10월 Max Rose 하원의원이 이끄는 미 의회 의원 40명은 미 국무부에 Azov를 “해외 테러리스트 조직”(FTO)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지난 4월 Elissa Slotkin 하원의원은 다른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포함한 요청을 바이든 행정부에 반복했습니다.
Azov에 대한 초국가적 지원은 광범위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극우의 새로운 허브로 부상했습니다. 3개 대륙에서 온 남자들이 전투 경험을 추구하고 유사한 이념에 참여하기 위해 Azov 훈련 부대에 합류하는 것으로 문서화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의 진동
2016년 페이스북은 처음으로 아조프 연대를 ‘위험한 조직’으로 지정했다.
회사의 위험한 개인 및 조직 정책에 따라 Azov는 2019년 플랫폼에서 금지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Ku Klux Klan 및 ISIL(ISIS)과 같은 그룹을 포함하는 Facebook의 Tier 1 지정 아래에 배치되었습니다. Tier 1 그룹을 칭찬, 지원 또는 대표하는 사용자도 금지됩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한 2월 24일 페이스북은 아조프에 대한 찬사를 허용하겠다고 말하며 금지를 철회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 대변인은 “당분간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수호한다는 맥락에서나 우크라이나 방위군의 일원으로서 아조프 연대를 칭찬하는 데에 좁은 예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
“그러나 우리는 모든 증오심 표현, 증오 상징, 폭력에 대한 칭찬, Azov 연대에 대한 일반적인 칭찬, 지원 또는 표현 및 커뮤니티 표준을 위반하는 기타 모든 콘텐츠를 계속 금지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에 기반을 둔 웹사이트 인터셉트(Intercept)는 정책의 역전은 페이스북 중재자들에게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이제 러시아에 대한 아조프 병사들의 미래 전장 행동을 칭찬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정책에 따르면 이 그룹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칭찬’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회사가 어떤 종류의 비폭력 전쟁을 예상하는지 불분명합니다.”라고 Intercept는 썼습니다.
오데사 출신의 친러시아 DPR 전사와의 인터뷰대다수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전쟁을 기대하고 있다. 도네츠크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할 때 대개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패닉은 없다. 전쟁은 이미 8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전쟁이 조금(또는 더 많이) 격화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러시아와의 통일이 궁극적인 역사적 사명이며 해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기자명드미트리 플롯니코프
입력 2022.03.12 08:10
'우린 절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않을 것': 키예프에 의해 자신의 신념으로 감옥에 갇혔던 DPR 전사, RT와의 대화
오데사 출신의 친러시아 DPR 전사와의 인터뷰
동원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시민들이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의 노보아조프스크 마을에서 대열을 짓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작전이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이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8년 전만 해도 남부와 동부지역은 친러시아적 성향이 강했고, 키예프 정권은 러시아와 긴밀한 유대를 원하는 활동가들을 잔인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겨냥한 공격적인 전쟁선전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RT는 증거 없이 "친 러시아 전복활동"으로 기소된 후 4년을 감옥에서 보낸 오데사의 활동가 블라디슬라프 돌고셰이와 이에 대해 대화했다. 2019년, 그는 포로교환의 일환으로 석방되었다. 이 인터뷰 후 블라디슬라프는 의용군으로 최전선에 나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인민민병대에 합류했다.
- 친러시아적 정치적 견해를 갖게 된 경로는 무엇이었나?
나는 내 정치적 견해를 친 러시아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러시아인이다. 특정 문제에 대한 당신의 입장이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할 때 당신은 친러시아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민족적으로, 정신적으로, 국가적으로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상황일 뿐이다.
내 견해는 내 주변환경에 의해 형성되었다. 오데사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러시아적인 도시다. 러시아어가 절대적으로 우세하며, 심지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도 우크라이나인이 오데사에 오면 러시아어로 말하기 시작한다고 불평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오데사의 정체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동화를 촉진한다.
나의 성장과정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친러시아 정치인이셨지만 다행히 나에게 어떤 견해도 강요하지 않으시고 그저 책을 읽으라고 권하셨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역사가들이 쓴 책을 읽었다.
- 오데사의 러시아 운동은 유로마이단 사건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2014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이것이 민족주의자와 정교회 활동가 모두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은 민족주의자, 정통 기독교인, 좌파 등 매우 다양한 그룹이었으며 모두 러시아 정체성이라는 하나의 생각으로 결합되었다.
유로마이단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우선, 우리는 그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유로마이단이 어느 편에 섰는지 이해했고 서방이 우리가 속하기를 원하는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2월에 민병대를 편성하기 시작했지만 너무 늦었다. 마이단은 이미 발생했고 백색테러단체와 자금이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준비할 새도 없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러시아 속담처럼 빠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닥칠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친절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5월 2일의 비극적인 사건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시위 도중 노동조합에서 친러시아 시위대 50명을 살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2월 21일 연설에서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도자들은 이것이 평화로운 시위이며, 단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가 오게 되면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친서방 혁명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부패한 식민지배 체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민주주의는 서구만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외부 영향에 취약한 불안정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 5.2 비극 이후 달라진 점은?
키예프 정권이 허용한 일부 합법적인 정치활동이 있었다. 공산주의와 종교적 견해를 가진 노인들이 수행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급진주의자들은 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공격할 용기가 있었다. 많은 건장한 남성들이 최전선, 돈바스로 갔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합격한 것은 아니다. 한 번에 100-150명의 수감자들이 오데사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사람들은 돈바스로 가려고 하다가 체포되었다.
오데사와 오데사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하 그룹도 있었다. 나에 대한 기소는 – 그리고 혐의가 입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내 지휘 하에 있는 방해 공작부대가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여러 지역에서 테러 공격과 방해공작 활동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이 보이지 않는 투쟁인 지하운동은 약 18 개월 동안 존재했다. 경험도, 기지도, 자원도 없는 지하운동에서 18개월은 정말 긴 시간이라는 말을 믿어 달라.
- 왜 나라의 남동부의 다른 도시에서 오데사와 비교할 만한 비극이 없었는가?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서의 거점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그 문제에 대해 매우 큰 목소리를 냈고 지금도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행복하지 않는다. 현재 오데사 시장인 게나디 트루하노프가 러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친러시아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트루하노프가 5월 2일이 되기 얼마 전에 쿨리코보 폴 광장에서 연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로마이단 승리와 비극 사이에서 그는 우리 편이었다. 이후에 그는 유턴을 했다. 그는 꽤 전형적인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다른 우크라이나 도시에서도 친러시아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토미르를 보라. 물론 5월 2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토미르는 오데사가 아니라 오데사 서부에 가깝다. 하르코프에서는 아주 상황이 나빴고 니콜라예프에서는 임시 캠프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투쟁, 거리 전쟁이었고 사상자가 있었지만 카메라와 언론은 그것을 다루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말한다면, 나중에 아조프 부대(러시아 연방에서는 금지됨)의 일부가 된 유로마이단 지지자에 의한 2014년 전쟁조차 하르코프 사건보다 덜 무서웠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다.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들어올 수 있는지, 사람들은 항상 기습공격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거리에서 말 그대로 전쟁을 치뤘고 자동차와 집에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실종되었다. 그것은 내전이었다. 그 당시 일이었다.
- 그렇다면 2014년 우크라이나 남동부 대부분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봄'이 승리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2014년에 실패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봄'은 민스크협정 II에 따라 2015년에 끝났다. 그때까지 군사적 적대행위도, 최전선도 없었음에도 수십만 명이 정치활동을 했으며 오데사 등지에서 지하운동에 가담했다. 나중에 포로로 교환된 우크라이나의 정치범 수를 보면 분명하다.
- 최전선이 오데사나 니콜라예프가 아닌 도네츠크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간편함 - 모든 것이 위치에 관한 것이다. 운 좋게도 도네츠크는 러시아가 물, 에너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자원 봉사자들도 거기에 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은 오데사의 경우가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친러시아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가깝지만 오데사 지역을 지원할 자원이 부족했다. 지역 민병대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결국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 당국 건물을 습격하여 압수했다. 그러나 친러시아적이지만 러시아인은 아닌 우리의 '현명한'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보안국 본부를 습격하는 모험을 피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친러시아적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따라서 오데사가 도네츠크의 발자취를 따랐다고 상상해 보자. 오데사 지역은 단절되어 물이나 에너지 공급이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란을 꾀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크림의 봄이 시작될 때 일부 오데사 주민들이 크림으로 갔다가 돈바스로 갔던 이유이다. 무장 저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그들은 싸우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은밀한 지하활동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많은 주민들(주로 실로비키(siloviki) – 법 집행 및 보안 요원)은 유로마이단을 지지했다. 그들이 위협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가?
우크라이나 실로비키는 공무원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가 전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부엌에 앉아 친구들과 보드카를 마실 때나 러시아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건 그렇고,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인 우크라이나 실로비키가 집에서 한 말 때문에 체포되어 투옥되고 제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단순히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누가 권력을 잡았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대부분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의해 대우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맞았다. 불과 1년 후 우크라이나 실로비키는 새로운 마이단 시위를 진압했다.
- 돈바스 공화국은 2014년에 했던 선택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하고 있는가?
나는 돈바스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고 믿는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살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나 민스크 협정의 이행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전쟁을 기대하고 있다. 도네츠크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할 때 대개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패닉은 없다. 전쟁은 이미 8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전쟁이 조금(또는 더 많이) 격화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러시아와의 통일이 궁극적인 역사적 사명이며 해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우크라이나와 오데사의 남동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나 친러시아 민병대가 어떻게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러시아 내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일화를 말씀드리겠다. 소련 초기 삼국 동맹의 연합군이 오데사에서 철수하자 지역 주민들은 백군과 홍군을 꽃으로 맞이했다. 알다시피, 오데사 사람들은 러시아 국가의 일부이다. 그들은 러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지역 주민들이 러시아 군대를 꽃으로 맞이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게다가, 나는 돈바스의 남자들이 적 후방에서 공격을 시작해 우크라이나 보안국을 방해함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표명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높이 평가될 것이다.
-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치운동이 가능한가?
안 된다. 모든 오피니언 리더와 2014년 러시아 봉기를 주도한 사람들이 사망했거나 도네츠크와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에도 친러시아 정치세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2014년 이전에는 크림 반도에 러시아 블록이 있었고 오데사에 로디나 당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일부 지방분권화된 정치 그룹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당국은 대규모 정치운동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지난 8년 동안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운동가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우크라이나화 노력을 보아 왔다. 우크라이나의 그 지역에 남아 있는 러시아 국가 정체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거주자의 압도적 다수 또는 적어도 그들의 부모는 소련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러시아 국가정체성이 그 나라에서 결코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소련은 선전효과와 시민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부과하는 면에서 현대 우크라이나와 결코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국가정체성은 살아 남았다.
러시아인은 항상 러시아인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배신자가 있을 것이다. 항상 있다. 그러나 지구의 소금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선전이 아무리 쏟아진다 해도 러시아인으로 남을 것이다. 불행히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는 국가가 귀하에게 통지할 때까지 러시아인만 될 수 있다.
-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할 기회가 있었는가?
두 공화국의 역사에는 두 가지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15년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협정을 고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을 때 벌어졌다. 그때 우리가 공격했어야 했다. 민스크 협정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항복행위로 작용했었다. 우리가 그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 유감이다. 두 번째 실수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와의 평화조약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돈바스의 관점에서 나는 그 누구도 우크라이나로 두 공화국의 반환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지난 8년 동안 자신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돈바스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린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8년 전에는 동의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우리를 그 나라에 묶는 유대감이 있었다. 지금은 끊어진 인연이다.
저자: 드미트리 플롯니코프(Dmitry Plotnikov), 구소련 국가의 역사와 현재를 탐구하는 정치 저널리스트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존엄의 혁명'이 어떻게 전쟁, 빈곤 및 극우의 부상으로 이어졌는가우크라이나 국민의 64.7%가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인 4명 중 1명과 젊은이 3명 중 1명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를 원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유로마이단의 승리라고 할 수 없다.
기자명올가 수카레브스카야
입력 2022.03.10 06:13
수정 2022.03.10 06:15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존엄의 혁명'이 어떻게 전쟁, 빈곤 및 극우의 부상으로 이어졌는가
호전적인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과 친서방 운동가들로 구성된 잡다한 사람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바꾸기를 원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실망스럽다.
2013~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유로마이단 사건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갈등의 양측은 그들을 다르게 바라보지만, 한때 모두에게 친숙했던 우크라이나가 그 이후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는 것은 모두에게 분명하다.
인민혁명인가, 쿠데타인가?
극적인 사건의 원동력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 간의 연합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빌뉴스에서 열린 동방 파트너십 정상회의에서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총리 니콜라이 아자로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유럽 산업표준으로 전환하는 데 1,500억~1,600억 유로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오랜 기간 협정을 준비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그 결정은 폭탄이 터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 결정이 발표된 직후인 11월 21일, 우크라이나 블로거 무스타파 나얌은 소셜 네트워크에 행동을 촉구하는 글을 게시했다. 따뜻하게 입고 우산, 차, 커피, 좋은 분위기, 친구를 데려오라.” 이것이 바로 유로마이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확인된 바와 같이 이 시위는 야당 블로거와 소수의 학생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시위가 시작된 직후, 많은 정치적 거물들이 연루되었다. 11월 30일, 이리나 게라셴코 의원은 토크쇼에서 진압 경찰이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서방 언론인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이것이 고의적인 허위 정보라고 의심했다. 주요 도시 광장에서 경찰과 활동가 사이의 실제 충돌이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게라셴코의 발언은 그들을 촉발하기 위한 도발이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은 사실 훨씬 더 일찍 경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부 증거에 따르면 첫 번째 폭력 사건은 11월 23일에 발생했다.
미국과 EU 회원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EU와의 협정 서명을 연기하기로 결정하기 오래 전에 시위를 시작하고 조직하고 미디어 준비가 시작되었다. 유로마이단을 다루는 가장 주목할 만한 매체는 흐로마드스케 TV라는 인터넷 채널로, 2013년 9월에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5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95,000달러를 추가로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전 국장인 알렉산더 야키멘코는 나중에 외교우편의 양이 증가하고 새로운 달러 지폐가 혁명의 이름인 키예프의 메인 광장, 마이단 네잘레즈노스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나중에 보고했다.
서방은 관심을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서방 정치인들은 마이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연설했고 EU 외교관들은 연설에 참석했다. 미 국무부 공식 대표인 빅토리아 눌랜드는 마이단에 개인적으로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미래 통치자 임명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녀는 나중에 미국이 "민주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50억 달러를 할당했음을 인정했다.
2014년 2월 20일, 사건이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아침에 마이단에서 총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시위대와 경찰 모두가 사망했다. 이러한 사건은 조사된 적이 없다.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조지아의 저격수가 시위대 총격에 가담했다고 한다. 조지아의 엘리트 아바자 부대의 전 사령관이었던 트리스탄 치텔라시빌리 장군은 그의 전 부하 중 한 명인 코바 네르가제가 알렉산더 레바시빌리와 함께 작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직 두 사람은 키예프 스비아토신스키 지방법원에서 우크라이나 베르쿠트 특수부대의 전 대원을 대표하는 변호사인 알렉산더 고로신스키와 스테판 레시코에게 공식 증언했다. 조지아군의 소식통에 따르면 미군 장교인 브라이언 크리스토퍼 보잉거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총격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저격수 중 한 명이 BBC에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서방 언론은 그들의 증언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월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 에릭 푸르니에 프랑스 외무부 유럽대륙국장이 야당 대표들과 함께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문건에는 “이 협정에 서명한 후 48시간 이내에 2004년 우크라이나 헌법의 효력을 회복하는 특별법이 채택·서명·공포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 순간부터 쿠데타는 문자 그대로 분 단위로 추적될 수 있다.
2월 21일 오후 4시 40분 : UNIAN 통신사는 야누코비치와 우크라이나 의회인 베르호브나 라다가 2014년 2월 23일 오후 4시 40분까지 합의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서명에 대한 정보를 게시한다.
2월 21-22일 밤: 유로마이단 운동가들이 정부 청사와 의회를 점거한다.
2014년 2월 22일 오후 12시 29분 : 베르호브나 라다의 수장인 블라디미르 리박이 해임된다.
오후 12:34 : 알렉산더 투르치노프가 그를 대신하여 의장으로 선출된다.
오후 1:08 : 베르호브나 라다가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오후 5시 11분 :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행사' 결의안 채택.
2014년 2월 23일 오후 12시 36분 : 대통령의 직무를 베르호브나 라다 의장에게 할당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헌법 개정을 위한 합의에 명시된 시한이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EU는 베르호브나 라다 의장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인정했다.
화염병을 맞은 경찰
누가 전쟁과 탄압을 시작했는가?
공식적으로 돈바스 전쟁은 4월 7일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독립 선언에 따라 투르치노프가 "대테러 작전"의 착수를 발표하면서 2014년 4월 13일에 시작되었다.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은 4월 27일에 독립을 선언했다. 키예프의 작전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사실,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3월 돈바스에 배치되었는데, 이 지역이 독립을 선언하기 훨씬 이전이었다. 유로마이단의 집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정부 청사를 점거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전술을 처음 사용한 것은 2014년 1월 마이단 활동가였다.
한편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 주민들은 새 정부가 귀를 기울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말에 시위를 조직했다. 반대자들과 달리 오데사의 노동조합 건물에서 산 채로 화형된 시위대 30명은 무장하지 않았다. 이는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유럽에서 방영금지를 요구한 카날+의 프랑스 다큐멘터리 '혁명의 가면(The Masks of the Revolution)'에서 밝혀졌다.
2014년 5월 9일, 우크라이나 탱크가 마리우폴 도심에 진입했으며, 그곳에서 비무장 시민들이 위대한 대조국전쟁의 승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행진하고 있었다. 그날 늦은 오후, 지역 경찰서 앞에서 극우 아조프 부대가 연루된 총격전이 벌어져 경찰과 민간인 사이에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이 조사를 요청했지만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억압 기제가 작동하여 소셜 미디어에서 반유로마이단 댓글이나 좋아요에 대한 징역형이 일상화되었다. 최근의 예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간의 화합에 대해 이야기한 오드노클라슨키(급우) 소셜 네트워크의 게시물을 한 번 좋아한 혐의로 우크라이나 형법 109조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은 수미 지역 주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며칠 전 알렉산더 파체비치 경찰청 부국장은 "'러시아의 세계' 열광자들이 구금되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 경찰청은 심각한 허리 수술을 받은 저명한 저널리스트 미로슬라바 베르드니크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했다. 우크라이나 헬싱키그룹 공동 설립자 올레스 베르드니크의 딸인 그녀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인권운동가이다. 미로슬라바 베르드니크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의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문제를 개괄적으로 다루기까지 했다.
키예프 정부는 국제기구의 우려를 무시하고 러시아 예술가가 우크라이나에서 공연하는 것을 막고 러시아 서적과 러시아, 심지어 우크라이나 TV 채널을 금지하고 있다. 유럽 평의회 의회에서 통과된 모든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인 우크라이나화는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유엔인권감시단의 마틸다 보그너 대표는 우크라이나화에 반대하거나 “러시아어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거나 친러적 인식과 의견을 표명한 사람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위협, 협박, 폭력 선동과 관련된 사건을 지적했다."
EU 및 미국 국민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개인 데이터를 수집한 악명 높은 미로투보레츠(조정자) 웹사이트가 계속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과 전 독일 해군 중장인 카이-아킴 쇤바흐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러나 미로투보레츠 데이터베이스의 유명 인사들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기자 올레스 부지나와 우크라이나 합동군사연맹의 수장인 올렉 칼라시니코프와 같은 사람들은 결국 살해됐다.
나치즘의 정당화와 확산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OUN)의 이념을 계승한 급진 극우 극우주의자들이 유로마이단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크라이나는 나치즘에 대한 지지를 묵인한다. OUN이 2010년 2월 25일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결의가 유럽의회에 의해 규탄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키예프는 '20세기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한 전사들의 법적 지위와 추모에 관한 법률'을 채택했다. 이 법은 제3제국의 선동자인 OUN과 UPA(우크라이나 반군)를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한 전사로 격상시켰다. 이 조직의 지도자 중에는 나치 독일의 군사정보기관인 압베르가 간첩 활동을 위해 모집한 스테판 반데라와 독일 슈츠만샤프트 201 보조경찰 대대의 하웁트만인 로만 슈케비치와 낙티걸 부대의 사령관이 있었다.
유로마이단 활동가들이 그린 나치 상징, 그래피티에 «경찰에게 죽음을»
나치 하 1941년 6월 30일 OUN이 발표한 우크라이나 국가복원법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 중요한 날로 간주된다. 이 법안의 3조는 “새로 형성된 우크라이나 국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점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과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고 도움을 주고 있는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지도하에 국가사회주의 대독일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이다.
유엔안보리 연설에서 이리나 베레즈나야 법률정책 및 사회보호연구소 소장인 엘레나 베레즈나야는 반데라와 그의 지지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의 건립과 마찬가지로 친위대 제14무장척탄병사단(SS Galicia Division)의 미화와 청소년에 대한 애국심을 가장한 네오나치 그룹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자금지원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신-OUN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법 집행기관에 깊숙이 침투했다. 조지워싱턴 공공정책연구소는 미국 행정부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최고의 군사훈련 기관인 헤트만 페트로 사하이다치니 국립 육군사관학교가 극우 단체인 센투리아의 본거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은 우크라이나 영토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방 국가에서도 나치 사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미국 언론 폴리티코에 따르면 전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인 안드리 빌레츠키가 지휘하는 아조프 부대는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공식 지부가 운영되는 신나치 그룹인 북유럽저항운동과 연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운동의 상승’*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미국 백인 우월주의자 로버트 런도는 부대원들과의 회의에 초대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같은 기사에서는 같은 민병대와 뉴질랜드 모스크에 대한 공격으로 무슬림 51명을 살해한 호주 백인우월주의자인 브렌튼 태런트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나와 있다. 또한 2018년 플로리다 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미 육군 참전용사 크레이그 랭이 키예프 편에서 동부 우크라이나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고 보도했다.
*Rise Above Movement는 "폭력적인 네오나치와 파시스트의 느슨한 집단", 백인 민족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극우주의자로 다양하게 묘사되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호전적인 대안우파 거리투쟁 단체이다.
글로벌 안보 문제와 외교정책 문제에 중점을 둔 미국 수판 센터가 발행한 새로운 보고서에 요약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는 초국가적 백인 우월주의 극단주의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에서 허브로 부상하여 전 세계에서 외국인 전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하디주의자들이 시리아와 같은 곳에서 싸우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지만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이제 전투를 배울 수 있는 자체 극장을 갖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와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의 갈등이 2014년부터 격렬해지면서 전 세계의 전사들을 끌어들였다. 양쪽에서 싸우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50개국에서 약 17,000명의 외국인이 그 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2014년 11월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편입된 아조프 부대가 공식적으로 미국의 외국 테러조직 목록에 등재되어야 한다는 미 의회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으며 자금지원 금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신나치 민병대가 구현되었다.
군사화로 인한 경제적 실패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현재 2013년에 비해 8배 이상 증가했지만 경제는 전반적으로 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2021년 우크라이나 GDP는 1,950억 달러(2013년의 1,82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상쇄되었다. 특정 상품의 경우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1%에 달해 지난 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CASE 우크라이나 싱크탱크의 CEO인 드미트리 보야추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러나 물량 면에서 우리의 수출은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이전과 똑같이 생산하지만, 세계시장의 가격 때문에 더 많이 벌었을 뿐이다.”
동시에 부채도 늘어났다. 2013년 우크라이나의 대외 부채는 279억 달러였으나 2021년 말에는 477억 달러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는 점차적으로 산업 및 농업 국가에서 원자재공급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2013년 기계 제작 수출은 18.9%(129억 달러)를 차지했지만 2017년에는 9.9%(43억 달러)로 떨어졌다. 2021년 대외무역 구조는 이러한 추세를 확인시켜준다.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최고 수출품은 철금속(139억5000만 달러, 2020년 대비 81.4% 증가), 곡물(123억4000만 달러, +31.2%), 동식물성 유지(70억4000만 달러, +22.5%)였다. 수입의 경우 에너지 자원을 제외하고 키예프는 기계 및 장비(142억 달러, +22.9%)와 화학 및 관련 산업 제품(97억 4천만 달러, +32.8%)이 필요하다. 미국 대사가 우크라이나가 농업 초강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이러니다. 한때 우크라이나로 알려졌던 "소련의 곡물창고"는 이제 점점 더 많은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2021년에는 80억 달러 상당의 식품을 수입했다(2020년 대비 19% 증가).
키예프에서 파괴된 장갑차
동시에 우리는 탈산업화를 목격하고 있다. 2014년 리보프 버스공장이 폐쇄되었고 2018년 자포로즈스키 자동차공장에 대한 파산 절차가 시작되었다. 2016-2019년에 안토노프 항공기 제조업체는 단일 항공기를 생산하지 않았다. 2021년 7월, 한때 소련 조선산업의 핵심이었던 니콜라예프 조선소가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대규모 항공우주 및 로켓공장인 유즈마쉬는 2014년 이후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2013년에는 50,449대의 자동차가 우크라이나에서 제조되었지만 2021년까지 그 수는 7,002대로 감소했다.
생활수준도 떨어지고 있다. 생활편의 요금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요구 사항으로 인해 현재 생활편의시설의 부채는 30억 달러에 달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분석가인 블라디미르 케메리스는 “관세는 계속 인상될 것이다. 2020년 여름에 우리 정부는 IMF와 각서에 서명했으며 가스가격은 시장에서 완전히 결정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시장가격은 더 높아 질 것이다. IMF도 이 요구 사항을 몇 번이고 강조했고 우리 정부는 이전 대출을 갚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대출을 받기를 희망하면서 IMF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가스공급 계약을 종료한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키예프는 EU 국가들보다 더 많은 기름값을 지불해야 한다. 10월에 EU 전역의 휘발유 가격은 300유로에서 700유로 사이였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1,100유로에 달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량으로 나라를 떠나고 있다. 2020년에는 601,200명이 EU 거주 허가를 받았다. 프투카 인구 및 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이주 노동자의 수는 250만~300만 명에 달했으며 2014~2021년에 106만8000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2021년 첫 10개월 동안 인구 유출은 지난 11년 동안 최고 기록인 600,000명을 초과했다.
키예프 국제사회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의 64.7%가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인 4명 중 1명과 젊은이 3명 중 1명은 다른 나라로 이주하기를 원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유로마이단의 승리라고 할 수 없다.
저자: 올가 수카레브스카야(Olga Sukharevskaya), 우크라이나 태생의 전 외교관이자 작가
세계각국의 후진국을 찾아가서 생물학전을 시도하는 자들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죠. 더구나 가장 강하다고 하는 국가가 저지르는 몰상식한 행태를
1. 언론장악! 2. 통신장악! 3. 경제장악! 4. 군사력장악!
이라는 4가지를 장악하여 그 표적이 된 나라는 여과없이 당하고 말죠. 한국을 위시한 소위 자유진영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의 나라들이 다 당하고 있죠. 러시아와 중국도 그놈들에게 속절없이 이지매를 당하면서 대놓고 죽을래살래를 택하라고 윽박지르죠. 세례언론이 박살난지 오래고 통신이 장악되어 개인 뿐만이 아니라 국가전체가 도청당하는 실정이죠. 경제력은 어떤가요........ 전쟁을 일으켜서 방어하라고 무기를 팔아먹는 희한한 꼴이 곳곳에서 벌어지죠. 상태가 이런대도 모지리들은 자유를 찾고 평화를 찾는 자체가 웃음을 파는 슬픈 배우로 전락한 좀비가 되죠. 거기에 맞춰서 짐승들은 무슨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미시적 상대에게 이지매를 가하는 즐거움을 즐기죠. 거시안을 가진 놈이 있다고 해도 미친놈이라서 모지리 중에 모지리로 살기를 자처하죠. 여하튼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생명의 사르는 기름은 거의가 바닥이 나는데 모지리들의 모진향연은 그칠 줄모르죠. 물질윤회고리라고.
첫댓글 외세와 야합
분열과 내전으로 인한
21세기
서북청년단이
분열의 씨앗 과 그것의 과실을(실패한 과실일지라도) 먹은 nato
인민대중을 함부로 탄압학살하는
인민의 원쑤들에 대하여서는
그가 누구였던 어떤 세력이였던
불로 다스려 그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게 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이 민병단 처리후 평화와 안정을 도모,유라시아 개발을 위한 것 아닌가요? 디극화로 포장되어.......
국내에도 주피터프로그램인가 미군이 탄저균에 보톨리늄에 들여와 실험을 하고 있다는데 입닫고 있죠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94621.html
평택,부산에도 미군 생화학무기 실험실이 있지요.
부산에는 쥬피터 프로젝트라고 부산시민 단체 인근 주민들 날마다 데모해도
끄떡도 않고 다른 일반시민들,부산시도 관심 밖.
우크라이나 전쟁 배경에 대해 많은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www.jajusibo.com/58919
눌랜드 차관, 우크라이나 생물무기 의혹 인정?
김민준 기자
기사입력 2022-03-14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생물무기 개발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논란은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6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하리코프) 등 도시 2곳의 실험실에서 비밀리에 진행한 생물 시험을 미 국방부가 지원했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러시아 특수부대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 논란에 불을 지른 건 지난 8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있었던 빅토리아 눌랜드 미 국무부 차관의 답변이다.
우크라이나에 생화학 무기가 있느냐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의 질문에 눌랜드 차관은 부인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에 생물학 연구 시설이 있는데 연구 자료가 러시아군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인과 협력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눌랜드 차관의 발언은 사실상 미국과 협력 아래 우크라이나가 생물무기 연구소를 운영했다는 뜻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다.
토마스 매시 하원의원(공화)은 이 발언을 두고 “진지한 인정”이라고 표현했다.
세계각국의 후진국을 찾아가서 생물학전을 시도하는 자들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죠.
더구나 가장 강하다고 하는 국가가 저지르는 몰상식한 행태를
1. 언론장악!
2. 통신장악!
3. 경제장악!
4. 군사력장악!
이라는 4가지를 장악하여 그 표적이 된 나라는 여과없이 당하고 말죠.
한국을 위시한 소위 자유진영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의 나라들이
다 당하고 있죠.
러시아와 중국도 그놈들에게 속절없이 이지매를 당하면서 대놓고
죽을래살래를 택하라고 윽박지르죠.
세례언론이 박살난지 오래고 통신이 장악되어 개인 뿐만이 아니라 국가전체가
도청당하는 실정이죠.
경제력은 어떤가요........ 전쟁을 일으켜서 방어하라고 무기를 팔아먹는
희한한 꼴이 곳곳에서 벌어지죠.
상태가 이런대도 모지리들은 자유를 찾고 평화를 찾는 자체가 웃음을 파는
슬픈 배우로 전락한 좀비가 되죠.
거기에 맞춰서 짐승들은 무슨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미시적 상대에게
이지매를 가하는 즐거움을 즐기죠.
거시안을 가진 놈이 있다고 해도 미친놈이라서
모지리 중에 모지리로 살기를 자처하죠.
여하튼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생명의 사르는 기름은 거의가 바닥이 나는데
모지리들의 모진향연은 그칠 줄모르죠.
물질윤회고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