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Spartacus , 1960 제작
미국 | 액션 외 | 15세이상 관람가 | 195분
감독 스탠리 큐브릭, 안소니 만
출연 로렌스 올리비에, 커크 더글라스, 진 시몬즈, 찰스 로튼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 연출, 커크 더글러스,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즈, 찰스 로튼, 토니 커티스 등 초호화 멤버가 출연한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에 대항했던 실존인물인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삶을 다루고 있는 걸작 서사드라마입니다.
트라키아 출신의 노예 스팔타커스(커크 더글러스)는 검투사를 훈련하는 바티아투스(피터 유스티노프)에게 팔려가게 된다. 경기장에서 훈련을 받던 스팔타커스는 동료 검투사를 이끌고 반란을 주도한다. 반란은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가고 도망친 노예들이 합류하며 커다란 세력이 된다. 노예들은 스팔타커스를 따라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하를 계속한다. 한편 수도 로마에서는 대립하는 두 원로원이 반란군을 각기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
스탠리 큐브릭과 커크 더글라스가 전작 <영광의 길>에 이어 두번째로 함께했고 로마 공화정에서 일어난 최후의 노예반란인 제3차 노예전쟁(Third Servile War) 또는 반란군의 지도자인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을 딴 스파르타쿠스의 난(War of Spartacus)을 소재로 로마 원로원의 암투와 탐욕, 검투사와 노예들의 의리와 신념을 그려낸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도전과 의지의 숭고함에 경의를 표하게되는 작품입니다.
<영광의 길> 참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당대 슈퍼스타들의 명연기,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잃지 않는 긴장감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과 훼손할 수 없는 인권이라는 주제는 이 작품을 걸작의 반열에 올리기 충분하며 제3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피터 유스티노프)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쿼바디스>(1951년), <벤허>, <클레오파트라>(1963년) 등과 함께 고대 로마시대를 다룬 고전 명작중 하나가 되었고 영화 평론가인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도 이름을 올렸으며 2017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 국립영화등기부가 영구 보존하고 있습니다.
1960년 당시로는 드문 엄청난 규모로 제작되었는데 1,200만 달러의 예산과 스페인 정예사병 8,000명을 지원받아 로마병사로 활용하는 등 1만 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하여 마드리드 외곽에서 대규모 전투 등 야외장면을 촬영하였고 초반부의 검투사양성소의 훈련과정과 일대일 검투시합 장면, 영화 후반부 노예반란군이 로마정규군과 격돌하는 대평원 전투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인 상남자 영화이기도 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실존 인물이며 그는 기원전 73년 동료 검투사들과 함께 로마 공화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3년간 전쟁을 치뤘는데 영화에서는 스파르타쿠스가 대대로 노예였으며 광산에서 일하다가 검투사로 뽑힌 것으로 나오지만 문헌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군에 소속되었다가 탈영하고, 그 때문에 노예의 신분이 되었고 엄청난 무예 실력 덕분에 검투사가 되었다고합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스파르타쿠스가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아는 것이 많았으며, 냉철하고 신중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칼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스파르타쿠스를 꼽았을 정도로 스파르타쿠스는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는 세력에 대항해 사투를 벌였던 혁명가로 남아있습니다.
별세한 故 커크 더글러스는 <스팔타커스>(1960년)를 제작 및 기획했으며
힘과 근성, 단호한 의지가 바탕이 된 카리스마를 영화 내내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치르는 동안 점점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해 나가는 스파르타쿠스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원작 소설을 쓴 하워드 패스트는 1950년대 매카시즘이 판을 칠 때 반미 활동 조사위원회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3개월 간 징역살이를 했는데 그때 감옥에서 처음 소설을 구상, 집필했고 출소하고 나서 완성된 소설을 출간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으며 <로마의 휴일>(1953년)의 각본을 쓴 돌턴 트럼보가 소설 <스팔타커스>를 시나리오로 각색했는데 그 역시 매카시즘 때문에 11개월의 징역살이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스탠리 큐브릭은 <영광의 탈출>(1960)의 오토 프레밍어와 마찬가지로 돌턴 트럼보를 공개적으로 고용해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극단적인 반공사상인 매카시즘과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시대에 종언을 고했습니다.
<로마의 휴일> 리뷰 참고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비화로 더 화제가 되었는데 커크 더글러스가 찰톤 해스톤에게 <벤허>의 주인공역을 빼앗기자 <스팔타커스>의 제작과 주인공을 맡아 영화에 사사건건 간섭해 연출을 맡았던 앤서니 만 감독이 중도하차하게 되었고 그의 후임으로 젊은 스탠리 큐브릭이 메카폰을 잡지만 그 역시 촬영 내내 제작진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커크 더글러스는 <벤허>와 같은 웅장한 대하 역사극을 원했고 특히 자신을 초월적인 영웅 캐릭터로 묘사해달고 요구했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멜로드라마식의 인위적인 설정들을 싫어했으며 스탠리 큐브릭이 각본 수정과 일부 재촬영을 요구했지만 제작진과 마찰이 빚어져 그는 이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스팔타커스>를 빼버립니다.
커크 더글러스는 나중에 큐브릭을 대놓고 미친 놈이라고 욕했고 큐브릭은 '지를 영웅 캐릭터로 발광하듯이 뽐내달라던 미친 놈 주제에?'라고 서로 미쳤다고 비웃었고 심지어는 커크 더글러스는 이 당시 '스탠리 큐브릭은 유능한 시발 새끼다'(Stanley Kubrick is a talented shit)라는 폭언까지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출연진들은 프랑코 제피렐리의 1977년 성서 영화 <나사렛 예수>에서 다시 등장하며 크라수스 역의 영국출신의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니고데모, 바티아투스 역의 피터 유스티노프는 헤롯 대왕으로 출연했습니다.
오프닝 장면은 말그대로 예술 그자체!
<스팔타커스> 최고의 명장면
포로가 된 노예들 앞에서 크라수스가 ‘누가 스팔타커스냐?’고 묻자, 무더기로 앉아있던 포로들이 "내가 스팔타커스다(I am Spartacus)!"라고 외치며 줄줄이 일어서는 장면은 너무나도 뭉클하고 감동적입니다.
로더리고 영화 글 모음 1000
첫댓글 갑자기 연속 영화 소개!
이런게 카페의 매력이죠~
잘 보겠습니다~ ^^
즐감하세요 ^^
며칠전에 유선에서 방영을 해줘서 오랜만에 커크더글라스를 보게 되어 반가웠는데 감사히 읽겠습니다. 선댓글 후정독!!!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릴때에 극장에서 봤던기억이 있는 영화네요. 그때는 스타팔커스라고 알고갔었는데...
영원히 회자될 당대의 명작이라 그런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더군요. 트럼보가 집필한 각본은 무려 1천 4백여(!) 페이지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걸 스탠리 큐브릭이 여섯 시간(...) 분량으로 줄여냈다고 합니다. 시사회 버전까지만 해도 동성애 코드적 씬도 들어가 있었는데 가톨릭 단체의 압력으로 편집했다고도 하고요. 스파르타쿠스 제작 구상이 이뤄지던 시기에 아서 쾨슬러 원작의 <글래디에이터>를 율 브린너 주연 영화 제작도 추진 중이었는데 커크 더글러스가 투자자를 더 유치한 덕분에(?) 빠그러졌다는 비화 등등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더네요. ㅎㅎ
다른 얘긴데 예전에 선배가 당나귀에서 당시 최신 영화였던 트로이를 한참 걸려 다운받았는데 아무리 봐도 브래드 피트가 안나오더라고ㅋ 고전 트로이 받은 거였음
저는 이거 ㅋㅋㅋ
대학 때 기숙사 옆방 형이
"야 이거 그래픽 ㅈㄴ 좋대!!"
암만봐도 뭔가 이상함.. ㅋㅋ
@불타는 똥꾸 ㅋㅋㅋㅋ 당시 다운로드는 지옥이었죠 물론 불법이었지만 ㅠ
유능한 시발새끼.. 정확한 표현이긴 하네요ㅋㅋㅋ 달리 얘기하면 자존심 센 커크 더글라스도 실력만큼은 인정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