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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https://youtu.be/vk6014HuxcE?si=boBG2EGHVT5n5T4H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마천루 가득한 도시를 연상케하는, 밝고 따사로운 가을의 한낮이었다.
J는 짙게 썬팅된 차에서 내렸다.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같은 차에서 함께 우르르 내려 J의 뒤에 바짝 붙어섰다. 건물 입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H의 얼굴에 볕처럼 환한 빛이 돌았다.
"또 우르르 달고 왔네?"
"뭐, 아무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래도 스튜디오까지 데리고 오는 건."
"왜. 부담스러워?"
"조금."
"자기가 이해해. 재벌이잖아, 나는."
그것도 정보가 극히 적은 P그룹의, 알려지지 않은 혼외자. J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문득, 너무 지나치고 장황한 설명이 아닌가 싶어 말을 삼켰다. 막 펼치기 시작한 소설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H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더이상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는데도 J는 늘 자신의 말과 행동에 변명 비슷한 이유를 댔다. H를 만나는 반년동안 생각보다 깊게 자리잡은 습관이었다.
반년을 공들인 대사가 이제 그 결실을 보려하는 중이었다. 흥을 감추지 못하고 저만치 뛰어가는 H의 뒷모습을 보는 J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산뜻했다.
J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하늘은 몹시도 높고 파랬다. 제 앞날도 이처럼 늘 푸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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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H에게서 발생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J가 H의 속을 알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이후의 H는 어떻게 될까. J가 최근에 가장 많은 상념에 잠기는 주제였다.
사실 H가 어떻게 되든 J가 알 바는 아니었다. H는 J의 타깃이었고, J는 H를 철저히 속였다. 입에서 거미줄을 뿜어내면, H는 착실하게 줄을 실처럼 제 몸에 꿰어나갔다. 그리하여 온몸이 칭칭 감겼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모든 것이 저질러진 이후의 일들은, 냉정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J의 알 바는 아니었다.
"어때?"
"예뻐."
"영혼이 너무 없는데?"
"있어. 가득. Full. 만땅."
조금도 흥이 나지 않지만 J는 어떻게든 H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맞춰주어야 했다. 한달 전만 해도 세상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H를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저 작고, 아리따운, J의 신부다. 한겨울의 신부가 될, 가을의 H.
스튜디오에 들어서면서 둘은 손을 꼭 붙잡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엉거주춤 일어나 둘을 맞이했다.
이혼 사실을 알린 지, 고작 두 달 반 만에 결혼 발표를 하기 때문일까. 맞잡은 손이 조금 축축해진 것 같았다. 오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자마자, 갈아타듯 새 연인과 열애를 시작했다. 럽스타라 불릴 만큼 SNS에 티도 잔뜩 냈다. 그리고 상대는 무려 열다섯의, 재벌 3세. 모든 구절이 헐뜯기 좋았으니,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나 지금보다 결혼 발표를 하기 좋은 시기는 없다. 여러모로, 적절한 시기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짤막한 인사를 나눈 후, 가까이에서 마주한 상대의 낯빛에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다. H의 옆에 서 있을 때마다 지겹도록 많이 목격한 얼굴이었다.
J는 알고 있었다. 상대의 눈에 제가 어떻게 비칠지 말이다. 남자라기에는 신체조건이 평균보다 월등히 떨어졌다. 신장이 작았고, 어깨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몸에 근육보다는 지방이 더 붙어있었다. 얼굴의 뼈는 각진 곳 하나 없이 둥글었다. 뭇남성들처럼 머리를 짧게 깎아도, 남성용 정장과 구두를 신어도 조금도 남자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저, 혹시 성별이 어떻게 되십니까?" 같은 무례한 질문을 건네지 않았다. 아니, 감히 건넬 수가 없었다. J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니까. 그에 대해서 마땅한 설명 같은 건 구태여 늘어놓지 않아도, 언급하지 않는 것만으로 답이 되었다. 당연히, 나는, 남자다. 키가 고만고만할지 언정 옆에 H를 예비 신부로 둔 한국인이라면, 그러니까 한국의 혼례법상으로는, 당연히 남자일 수 밖에 없다. 남자가 아니라거나 하는 선택지는 여기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당연한 것을 굳이 물을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의아해도 말이다.
"예. 일단, 두 분 결혼 발표 축하드립니다."
운을 뗀 기자는 미리 받아보았던 대로 약속된 질문을 하나씩 착실히 이어갔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으므로 J와 H 역시 준비해 온 답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마치 둘이서 울리는 골든벨처럼.
인터뷰는 예상보다도 더 차분하고 길게 이어졌다. 의아한 표정을 좀체 감추지 못하는, 기자 특유의 날이 선 눈빛을 계속 마주 하는 일은,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사람을 지치게 했다. 체력이 실시간으로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럼 여기서 명확히 하도록 하죠. 누가 먼저 꾀었나요?"
기자의 말에 주변 공기를 누그러뜨리는 웃음이 샜다. 숨을 나직하게 뱉은 J가 대답했다. 생각이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 J가 꾄 것이 맞으니까.
J는 H를 꾀었다. 예정된 일은 아니었다. 원래 비즈니스라는 건 변수가 많은 편이라지만 이는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P그룹의 혼외자, 젊은 사업가 정도가 설정의 전부였다. 재벌도 하고 싶은데, 집안 배경으로 사업하는 어린 애처럼 보여서는 안 됐다. 능력이 있어 보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관이 충돌하듯 설정이 충돌했다. 그러니까 재벌 3세도 맞고, 자수성가도 하는 젊은 능력자. 그게 현재 J를 꾸며주는 도금된 수식어였다.
생각해 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대로 돈 많은 자제들이 환장하고 배운다는 귀족 스포츠 아카데미에 잠입하여, 인맥을 넓힐 것. 그리고 투자를 가장한 돈을 꾈 것.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H는 안중에 없었다. 아니다, 있기야 했지. H와는 친한 지인 정도가 되어, H가 여기저기 저를 소개해 주면 더없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고객이기도 한 돈 많은 학부형들에게 말이다.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고요."
대답을 하면서 J의 시선은 H의 얼굴을 향했다. 대본에도, 생각에도 없던 일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왜일까.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일까, 하는.
운이 좋았다. H는 어느날엔가 펑펑 울었다.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그냥 펑펑 울었다. 아이가 있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H의 시선이 J에게 따갑게 꽂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본능적으로 J는 깨달았다. 자신이 촉발점이라는 것을 말이다. 제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여겼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안 될 게 없어보였다. 끝에 가서는 이건 하늘이 내린 천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를 꾸며주는 것들 앞에, 진짜가 붙을 수 있는 기회였다.
P그룹, 후계자, 재벌 3세, 자수성가 사업가, IT 기업가, 사업 대표, 부자. 그 어느 것에도 깃들지 않았던 진실이 이제 막 생기려 했다. H의 남편이라는 새 타이틀이 말이다.
저를 말로써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진실되고 대단한가.
H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에게 자신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국민이 그를 알아보았다. 온몸의 상처가, 목에 건 메달이, 집에 있는 수도 없이 많은 상장과 트로피와 감사패가 그를 증명했다. 입 열어 내가 누구인지 밝히기 전에 모든 이가 그를 알아보았고 그를 증명했다. 신분증 하나 내밀지 않고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H는.
그런 H를 갖는다면, 그러면 더이상 J 역시 저를 무어라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P그룹이니, 재벌 3세니, IT 사업가니 구구절절 어디서 무슨 비즈니스를 하고, 몇 살이고, 어느 집 자식이건 머리를 짜내거나 입으로 거짓을 뱉지 않아도 되었다. H의 남편입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증명될 터였다.
왜 진작 이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사랑을 하자. 열애를 하고, 결혼을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J는 낭만적인 감상에 젖어있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사랑이나 사기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는 게 사랑이든, 사기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같은 것이었다. 사랑도, 사기도. 다 서로 등처먹고, 등처먹히는 거였으니까. 히데코가 숙희에게 그런 것처럼. 숙희가 히데코에게 그런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함께 도망칠 수 있을까.
끝내 한 배에 올라 타 서로의 감쪽같은 연기에 웃어주며, 변장을 지워줄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다.
H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증명해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무릇 그러하듯이. H는 절대 J와 함께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J는 그렇게 판단내렸다. 그렇다면 아낌없이 등처먹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자꾸 그후가 궁금해지는 걸까.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에 막차를 타기 위해 결국 상영관을 나올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애닳게.
하지만 J는 자신에게 이후를 궁금해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 성난 투자 사기의 피해자들의 고소장이, 등처먹힌 이름들이 낱낱이 적힌 리스트가 영화 크레딧처럼 끝도 없이 줄줄이 이어질 것임을 알았다. 피의자이자, 동시에 감독인 이는 그전에 상영관에서 나가야 했다. 물밀듯 상영관 복도를 벗어나는 관객 중 하나가 되어 사라져야 마땅했다. 그래야만 이 각본은 성공하므로.
차라리 즐거운 생각을 하자. 뉴욕. 그래, 뉴욕으로 가자.
뉴욕으로 떠나서 더이상 굴레로밖에 작용하지 않는, 개명 신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이름부터 벗어버리자. 데이비드 J, 아니 어쩌면 샐리 J라는 이름을 가질 수도 있겠지. 그런 뒤에는 얼굴도 바꿔버리자. 외국에서 생활하기는 이곳보다 더욱 쉬울지도 모른다. 수중에는 차고 넘치는 돈이 있을 것이고, 나이는 시리게 푸를 만큼 젊었다. 앞날은 바다처럼 넓고, 부푼 꿈마냥 넘실거린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시안의 외모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하는 서양인들을 쉽게 속여 다시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진짜 무엇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별의 별 성별도 인정해 주는 곳이니 무엇이 되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진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만들어 갈 수도 있겠지. 그 모든 것이 이제 한 계절 뒤면 현실이 될 터였다.
J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H를 바라보았다. 못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그 감정은 진실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타겟이여. 내가 등처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실재여. 그러니 이것은 사기이고, 또한 사랑이다. 절박하고, 또 유일하기에.
한겨울에 결혼을 약속한, 때이른 축하를 받은 기묘한 커플이 스튜디오를 떠난다. 웨딩로드를 걷듯이 나란히 손 맞잡고 한 발씩 내딛는다. 환한 가을빛 속으로 나아간다.
아무리 걸어도 겨울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해는 밝지 않을 것이다. 웨딩드레스 대신 입기로 한 맞춤한복은 입을 일이 없을 것이며, 예약된 식장에 들어서는 일도 없을 것이다. 둘의 이름을 적은 혼인신고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가고 싶다며 열거했던 휴양지들 그 어느 곳에도 그들이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끝내 J가 H의 배우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더없이 순조로웠으므로.
J는 생각했다. 이번 만큼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첫댓글 아니 망상에다 쓴거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필력 개미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력 도란 ㅋㅋ
미쳤나봐...이게바로 개아가공 후회공 루트임?ㅋㅋㅋㅋㅋㅋㅋ
노래 틀어놓고 읽는데 노래에서 뉴~욕 하는순간 개터짐 미쳤나ㅠㅠㅋㅋ
뉴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필력 미쳤어
아니 미쳤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케 잘 쓴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력 뭐야? 소설 한편 뚝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