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이 창창한 청년이 또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출렁다리였다. 지난 3월 28일 오후 1시 5분쯤 강원 원주시 한 관광지 내에서 신원 미상의 사망자가 발생해 경찰이 조사한 결과,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10대 여성 청소년인 A양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양 집에서 유서가 발견된 정황 등을 고려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타까운 소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온다. 2021년 한 해에만 모두 1만3,352명(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통계)이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매일 평균 무려 36.6명꼴이다. 뉴스로 알려지는 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인구 10만 명당 고의적 자해에 의한 사망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26.0명(2021년 통계청 기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8개 회원국 평균(11.1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도 수년간 이어오고 있다. 많은 노력에도 줄어들지 않는 자살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아 경찰 소방관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기본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국내 1호 '위기 협상' 전문가인 이종화(60) 한림대 국제학부 겸임교수는 지난달 30일 본보와 통화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그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내오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혹시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은 생각하는 거야?'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상생활에서 금기시돼 선뜻 꺼내기 어려운 '자살'이란 말을 먼저 꺼내라니,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물어보기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극단적인 생각', '나쁜 생각',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상대가 자신의 자살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할 수 있어, 살리고 싶다면 직접 분명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대학 졸업 후 모교에서 교수(2012~17년)로 재직한 그는 2005년부터 미국 연방수사국(FBI), 뉴욕 경찰, 프랑스 경찰특공대에서 위기협상교육을 받고, 2009년 국내 최초로 경찰대에 위기협상과정을 개설한 인물이다. 위기 협상은 인질범, 자살기도자, 정신질환자 등 위기에 직면했을 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과정이다. 현재는 위기협상컨설팅 업체인 크라이시스네고(CNS) 대표이며, 올해 봄학기부터는 한림대서 위기협상강의도 맡았다.
-자살시도자가 보내는 신호라니, 어떤 행동을 말하나?
"참 곤란한 질문이다. 일단 평소와 다른 행동 보이는 것 자체가 신호다. 다만, 사람마다 보이는 양식과 행동이 다르다. 대개 명랑한 사람이 갑자기 우울해지면 이상한 신호이고, 반대로 우울한 사람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도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유형화하기 어렵고,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가족이나 친구, 동료만이 옆에서 평소와 다른 행동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만약 유형화한다면 그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은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아 간과하게 된다."
-낌새를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직접적으로 '너 지금 힘들어서 자살 생각하는 거야?'라고 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자살'을 화제로 잘 대화하지 않고, '자살하면 안 돼'라고 교육받았다. 인생 살다보면 누구나 힘들어 어느 순간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볼 정도로 위기를 겪기 마련인데, 그때 쉽게 가족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 못 한다. '도와달라'는 구조요청이나 다름없는 신호를 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살시도자 본인이 꺼내기 어려우니까 먼저 '자살' 얘기를 꺼내야 한다."
-만약 '자살 생각이 있다'고 답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주고 위로와 공감을 해준 뒤 전문가 상담이나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주위 친구 가족 동료가 신호를 빨리 포착해서 직접 물어보는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이 교수는 본인도 가족에게 자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녀들한테는 아직 그런 낌새가 없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 사업이 어려워진 동생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주변에서 돈도 빌리자, 느낌이 이상해 '혹시 자살 생각하는 거냐?'라고 물어봤는데, 다행히 '아니다'라고 해 넘어갔었다"면서도 "저도 많이 강의했지만, 물어보기 전에는 상당히 고민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만약 그때 물어보지 않고, 이후에 동생이 자살(시도)을 했다면 아마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의 행동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꼭 물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부모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형사들이 청소년을 붙잡아 보호자인 부모님한테 연락하면 대부분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라고 하고, 나머지는 '우리 애가 그랬다면 그건 친구 잘못 만나서'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하곤 한다. (웃음) 그건 부모가 주로 학업이나 성적, 진로 문제 등 관심사항만 지켜봐 평소 아이의 상황이나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몰라, 행동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적지 않은 가정이 이런 상황에 해당돼, 대화 소재로 자살을 꺼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대화해봐야 한다. 자살 유가족 중에서도 자녀를 잃은 분들이 가장 상실감이 크다."
이 교수는 최근 강연 현장에서 만난 대학의 상담센터 종사자들에게서 '신입생들의 우울감이 굉장히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하며 우려했다. 그는 "이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을 많이 하고, 직간접으로 피해를 봐 그 여파가 사회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요즘 경제도 안 좋아지고 있어 (자살) 위험이 가중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자살과 죽음은 다르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여러 가지 문제 해결 방법 중 하나로 간주한다. 내가 봉착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힘드니까 자살을 생각하는 거지, 죽을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혼동한다. 그래서 자살 생각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고, 그때서야 자살과 죽음을 동일시하면서 위험을 인지하게 된다. 자기가 먼저 꺼내지 못한 자살이란 말을 상대가 먼저 물어보니까 솔직하게 대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여기서 문제 하나. OECD 자살률 꼴찌는 어느 나라일까? 이 교수가 자살예방교육 중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북유럽 선진국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정답은 튀르키예와 그리스다. 2019년 기준 자살률이 튀르키예는 4.4명, 그리스는 4.6명에 불과하다.
-두 국가가 자살률이 낮은 이유는 뭔가?
"예전에 그리스 출장 갔을 때 현지인들을 만나보고 그들을 지켜보니까, 굉장히 낙천적이라 내일 걱정을 안 한다. 매일 걱정 근심을 달고 사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두 국가가 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민총소득(GDP)이 하위권에 속하는데도 자살률이 낮은 걸 보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생관, 삶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각박하고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살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 이런 엄청난 차이로 이어졌다고 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인당 GDP는 우리나라가 3만4,980달러, 튀르키예는 9,830달러, 그리스는 2만140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