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냉이를 캐러
비가 잦던 이월을 보내고 삼월을 맞아 이레가 지난 주중 목요일이다. 봄이 시작되자 자연학교 발걸음은 여기저기 둘러봐야 해 마음과 몸이 바빠진다. 삼월 첫날은 구산면 난포 갯가로 나가 쑥을 캐왔다. 이튿날은 여항산 미산령을 넘으면서 머위를 몇 가닥 캐고 가랑잎을 비집고 노란 꽃잎을 펼친 복수초를 만났다. 연이어 대산 들녘으로 나가 죽동 천변 산수유꽃과 꽃다지를 완상했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약차를 달여 놓고 아침 식후 이른 시각 현관을 나섰다. 등으로 둘러맨 빈 배낭에는 우리 집에서 유일한 농기구인 호미를 챙겼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대방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탔다. 소답동에서 주남지를 둘러 대산 들녘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더니 요양원이나 산업단지로 출근하는 부녀들과 등굣길 학생들로 차내가 혼잡했다.
대산 일반산업단지와 가술을 지나자 남은 승객은 한 아주머니 나뿐이었다. 나는 마지막 손님이 되어 종점 신전 마을에서 내렸다. 동네 어귀는 평소와 달리 아침 이른 시간 촌로들이 몇 나와 서성였다. 마을 회관 앞으로 가니 간단한 제상이 차려져 있었다. 마을과 연이 닿는 분이 돌아가 장례식장을 출발한 영구차가 고인이 살던 마을로 와 노제를 지내고 화장장으로 가는가 싶었다.
이방인은 마을 안길에서 북쪽으로 나가니 들녘이 펼쳐졌다. 비닐하우스엔 방울토마토와 풋고추를 키웠고 노지는 비닐멀칭으로 봄 감자를 심어 놓았다. 대산면에서 동읍과 경계가 되는 하옥정 앞들은 연근 농사 단지라 연을 캔 빈터에 기러기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바이칼 호수 근처까지 먼 행로 비행에 소진될 열량을 확보하려고 마지막 먹이활동에 분주했다.
북면에서 동읍 본포를 비켜 대산 강둑을 따라 김해 한림으로 가는 국가 지원 60번 지방도 신설 도로가 부분 개통했다. 수산교 근처까지는 뚫렸는데 유등에서 한림 구간은 미개통으로 연차 사업으로 공사 중이다. 하옥정에서 상옥정으로 가니 옥정교차로가 나왔다. 신설 도로는 농지에서 지면을 높여 찻길을 뚫으면서 강둑처럼 높여 쌓은 채 강변을 따라 김해 생림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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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교로 나간 목요일 오전 수업은 냉이 캐기였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 호미를 챙겼더랬다. 강둑 언덕과 농지로 보내는 수로 언저리에 냉이가 자랐다. 냉이는 두해살이 십자화과로 지난해 가을 싹이 터 겨울을 넘겨 봄이 되면서 잎줄기를 불려 키웠다. 볕이 바른 자리 냉이는 꽃대가 올라와 좁쌀같이 자잘한 꽃송이를 달고 있었다. 냉이는 꽃이 피면 나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꽃대가 올라온 냉이는 거들떠보질 않고 검불을 덮어쓴 그늘 속에 잎줄기가 싱그러운 냉이만 골라 깼다. 봄이 오는 길목 비가 잦아 습기를 머금은 뿌리는 흙을 붙인 채 캐 모았다. 지난겨울 몇 차례 냉이를 캐 이웃 지기들에 보내서 봄내음을 나누었다. 대산 강가 말고도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다소 먼 남강 하류 의령 지정 성당리와 화포천 습지 근처로도 나가 냉이를 캐 왔더랬다.
냉이에서 꽃대가 솟지 않았다면 채집량을 더 늘려 주변에 보내고 싶지만 뿌리에 심이 생겨 나눌 여건이 못 되어 아쉬웠다. 봄이 무르익어 근교 산자락을 누벼 산나물을 마련하면 그때 나눌까 싶었다. 꽃이 피지 않은 냉이만 골라 캐 모아 뿌리에 붙은 흙을 털며 검불도 가려냈다. 선별을 마친 냉이를 비닐봉지에 채워 배낭에 넣고 추슬러 짊어지고 들길을 걸어 죽동 당산을 지났다.
죽동은 마을이 제법 컸는데 오래전 아이들이 모여 재잘거리며 놀던 유아원은 적막이 쌓인 재가 노인 요양원으로 바뀌어 직원들이 뜰에서 뭔가 작업을 했다. 산수유꽃이 핀 죽동 천변은 먼발치서 바라보고 윗대방으로 가는 찻길의 앙상한 메타스퀘이어 가로수 열병을 받으며 가술을 향해 걸었다. 들녘 바깥 사방으로 에워싼 산들은 아득한 곳에서 외적을 막아주는 성처럼 보였다. 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