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하는 '성경적 기준'의 의미
너 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입에 달고 사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성경대로", "성경적으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좋은 말씀도 성경대로 그대로 행하면
안 될 때가 있다. 특정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내 것으로 받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하나님의 경륜을 구분하고, 말씀이 주어진 대상을 바로 보자는 것이 '경륜' 또는 '세대주의'라고 하는데, 이
당연한 해석법을 이단으로 분류하는 이들도 있다. 과도한 세대주의는 문제지만 상식적인 세대주의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가장 정확하다.
한 예를 들어
본다.
유대인이 모두
회개하고 온전히 다 돌아오는 일은 주님의 공중 재림(휴거) 전에는 없다. 열방 모든 민족이 주님께 돌아와 그분을 찬양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건은 각각 대환난의 마지막 부분과 천년왕국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따지지 않고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의 선교로 그것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이해하고 아무리 애써도 그날은 오지 않는다.
유대인이 다
회개하는 날이 재림이라며 아무리 이스라엘 전역을 누벼도 그런 일은 안 생긴다.
또한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부르며 이 세대에 세계 복음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날은 이 세대에 오지
않는다.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리로다. (합 2: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합
2:14, 개역)
이 말씀을
보고 그렇게 믿는 것이겠지만, 모든 열방이 주님께 돌아온다고 무작정 믿는 것은 일단 비성경적이다. 마귀의 하수인이 된 자들, 무신론자, 이슬람과
각종 우상숭배를 일삼는 종교인들이 다 돌아온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자들과 음녀에게 원수 갚으시는 마지막 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들이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사 우리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는 일이 얼마나 더 지속되리이까? 하더라. (계 6:10)
그분의 심판들은 참되고 의로우니 그분께서 음행으로 땅을 부패시킨 그 큰 음녀를 심판하시고 또
자신의 종들의 피의 원수를 그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더라. (계 19:2)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면 모든 민족이 주님의 영광을 알게 된다는 하박국의 말씀은 거짓인가?
물론 아니다.
열방이 모두 주님을 깊이 알고 찬양하는 일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일이다. 다만 그것은 이 세대가 아니라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고 없는, 믿는 자들만의 세상인 천년왕국에서 벌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떤 분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성경을 꼭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성경이 다 우리에게 주신 지침이면 왜 성경에 없는 성탄절은 지키면서 중대한 절기인 유월절 같은 것은 안
지키는가? 십일조도 해야 하고 성전도 세워야 한다면서 왜 구약의 많은 율법과 지침은 무시하는가?
그러면 대답할
것이다. 시대가 다르지 않느냐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바로 그거다. 그렇게 시대가 다른데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안 지킨다면, 지키고 있는 부분의 기준은 다만 지금의 교단과 교회,
또는 목회자가 하라고 하는 부분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성경적'이라는 말은 합당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말씀대로'
뱀을 집었다가 죽는 사람들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볼 사건이 있다. 다음 두 오순절파 목사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 대한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8, 개역)
아래 뉴스에서
보듯이 이렇게 하다가 죽은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인데 이들은 왜 죽었을까? 그들은 순교한 것일까? 그러면 왜 아무도
그들을 따라 하지 않는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한 목사가 예배를 집도하다 뱀에 물려 사망했다. 풀 가스펠
사도교회의 목사인 마크 울포드(44)는 일요일 오후 예배를 드리던 중 뱀에 물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다음날 숨졌다. 한 병원 관계자는
"그는 뱀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예배 중에 일어난 일로 보이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성령의 힘을 강조하는 기독교 종파인 펜테코스트파에서는 뱀을 가지고 종교적 의식을 치르며
웨스트버지니아주는 미국에서 이 의식을 허용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 뱀 의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케이트 포울러는 울포드 목사가
셰바라는 이름의 방울뱀을 집에서 키웠다며 목사가 자신이 결국 뱀에 물려 죽게
될 것을 예견했었다고 말했다. (2012) -사진 속 뱀은 어둡게
처리함.
미국에서 '뱀 목사'로 불리는 제이미 쿠츠 목사가 독사에 물려 사망하는 변을
당했다.... CNN과 AP 통신에 따르면 쿠츠 목사는 전날 오후 8시 30분께 자신이 목회하는 켄터키주 교회에서 뱀에 물린 채 귀가했으며 오후
10시께 결국 집에서 절명했다. 지역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가 쿠츠 목사에게 병원에 가자고 설득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뱀 다루는 능력을 지닌 그는 일부의 성경 해석을 토대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믿음만 있으면 독사에 물려도 해를 입지 않는다'라는 이른바 뱀 구원설을 신봉해왔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에도 출연해 방울뱀 등 온갖 종류의 독사를 다루는 시범을 보인 바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웹사이트에서 쿠츠 목사에 대해 "뱀에 물려 자기 손가락의 절반을 잃고
다른 사람들이 예배 중에 죽어가는 것을 보더라도 뱀들을 계속 움켜쥐면서 성령의 믿음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뱀 물림 등 신비주의 현상을 이용한 개신교의 전도 행위는 미국의 대부분 주에서 법으로
금지돼 있으나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켄터키 주 등 중부 내륙과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쿠츠 목사는 2008년 뱀 74마리를 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체포됐으며 지난해 2월에는
독사를 소지한 채 테네시 주에 들어갔다가 체포돼 1년 보호관찰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테네시 주는 1947년 교회에서 5명이 뱀에 물려 사망하자
뱀을 이용한 목회활동을 금지했다고 CNN은 전했다. (2014)
매우 안타까운
사고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마가복음 16장 18절을 따라 한동안 뱀을 들고 전도 집회를 했으면서 왜 치명적인 독을 마시는 것은 보여주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병자를 고치려 했다는 얘기도 없다. 독을 마시기는커녕 뱀을 만지다 그 뱀의 독만으로도 죽었으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셨거나 기록자가 잘못 적은 것인가?
이에 대한
반응은 신앙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말씀대로
행한 믿음은 대단한 것이며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이라는 반응도 있지만,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지금 주님의 제자이면 뱀을 만지고 독을 마셔도
무해하다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런 견해는 우선 제외한다.
말씀 해석의 두 가지
방식
뱀 목사가
실수했다고 보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1. 첫째, 극단적인 태도로 성경을 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말씀을 모두 문자적으로 보거나
모두 영적으로 보면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저 목사들의 사건은 영적인 것을 문자적으로 판단한
오류라고 본다.
2. 둘째는 바로 세대주의, 즉 하나님의 경륜이 매번 다르다는 주장이다. 각 시대, 각 사람에게
주신 말씀은 그 취지와 정신 면에서 본받을 점이 있지만, 성경 기록은 반드시 모두가 실천할 일이 아니라 우리의 배움을 위해 주신 것이다(롬
15:4). 그러므로 저 목사들의 문제는 우리에게 행하라고 주어진 말씀이 아닌 것을 행한 실수이다.
어느 것이
맞을까?
나는 2번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번이 맞는다고 여기는 분들에게는 "성경의 어느 것이 문자적인 말씀이고, 어느 것이 영적인 부분입니까?" 하고 묻고
싶다.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 모세가
홍해를 가름
-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감
-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용광로에서 살아남
- 예수님의
처녀 탄생, 각종 이적, 십자가 사건, 부활, 승천, 재림
그리고
- 뱀을 집고
독을 마셔도 무사할 거라고 하심
1번 해석법을
믿는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맨 밑의 뱀 문제는 문자가 아닌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이보다 훨씬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나머지 항목들은 문자적인 해석에서 더 멀어지는 것 아닌가?
어떻게
뱀에게서 지키지도 못하는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죄를 제거해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 영적인 것이 아닌지, 대체
문자적/영적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재미있는
것은, 저 마지막 항목을 뺀 나머지는 믿든 안 믿든 '문자적으로' 실제 일어났다고 대부분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저
내용들을 믿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한다는 뜻이다. 속으로는 영적으로 보면서 신자들에게는 문자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만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예수님의 입에서 양날 달린 날카로운 검이 나온다(계 1:16)'고 하면, 이것은 영적으로, 영 혼 육을 나눌 정도로 예리한 말씀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요한의 환상이기도 하고, 이런 말씀을 주신 하나님도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을 것을 알고 주신 말씀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정확한 의미는 우리가 나중에 더 알게 될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
이외에 우리가 성경에서 처음부터 영적인 부분이라고 제쳐 둘 일은 많지 않다.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그냥 영지주의처럼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닌
정신적 산물이나 신화가 되어버릴 것이다.
세대주의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문자적 사건이든지 거기 영적인 해석이 뒤따르고, 영적인 교훈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영적인 측면도 있는 것과 영적인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유나 은유 등이 아니면 일단 문자적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다음에 영적인 부분을 보는 것이다.
성경과
역사에 대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도
세대주의적
관점에서는 뱀 이야기를 포함해 저 말씀을 다 실제적인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문자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고 사실인데, 왜 지금은 뱀을 집으면
죽는가? 주님이 승천하시던 이때는 성경도 복음도 교리도 완성이 되지 않았고, 성령님도 임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믿을 근거가 없으므로 특별한
권한을 주신 것이다. 이 과도기에 사도들은 기적을 행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능력들은 점차 사라지고 복음은 기적이 아닌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으로 전파된다. 명확한 진리의 선포가 가능할 때는 기적보다는 이성적으로 믿어야 진짜 믿음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던 사도 바울도 나중에는 아무 기적도 행하지 못했는데, 2천 년이나 지난 오늘날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신다는 것은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고 시대와 수신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아니면서 아무나 아무때나 용광로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다. 주님은 지금도 그 일들을 하실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시대가 아니며, 우리에게 뱀을 집거나
독을 마시거나 옷을 한 벌만 가지고 무일푼으로 선교의 길을 나서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 방법만으로만 백 퍼센트 성경을 이해하고 다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둔한 머리로는
잘못 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미숙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기
성경을
거짓말로 만들지 않기
이것을
실현하려면 그때그때 달리 문자적/영적이라는 어정쩡한 해답을 내놓지 말고, 체계 있고 일관성 있게 주님의 뜻을 나누고(구분), 분별하는 것이
필수라는 뜻이다.
소설을 쓰는
방식 중에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다. 만일 소설이 5부로 구성돼 있다고 치자. 작가는 각 부에 이야기를 배치하고, 결론을 위해
중간중간 복선과 암시와 플롯을 삽입하며 창작한다.
예를 들어
1부에는 그 여자의 출생의 비밀이 아예 안 나오고, 2부에는 그 여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만 나온다. 작가가 몰라서 더 안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거기까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 작가가 고수일수록 구성과 타이밍, 전개의 속도와 시점은 완벽하게
설계되어 한 치의 오류도 없이 퍼즐의 아귀가 들어맞게 된다.
4부까지 보고
이 여자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도 안 되고,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말이 안 된다 판단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오해하면 안 된다.
진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경도 이와 같이 일부만 보면 안 되고, 한 부분을 보고 전체로 확대해석해도 안 된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기록을 지금 시점에서
동일하게 판단할 수 없다.
옛
대언자(선지자)들은 교회시대, 은혜시대라는 역사적 유예 기간을 아예 볼 수도 없었다. 그런 입장에서 기록한 말씀을 교회시대를 사는 이방인인
우리가 적용할 때는 주의를 요한다. 또한 맨 앞에 예를 든 미래의 대환난 기간이나 천년왕국을 모르는 사람이 그 시기에 있을 일을 묘사한 구절을
지금 적용하려 하면 뒤틀려 버릴 수 있다.
성경과 모든
역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완전하게 구성돼 있다. 이것을 하나의 관점, 하나의 독자, 하나의 시대로 보고 적용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고, 이런 관점을 따르는 사람들은 좀 더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두고, 현재는 효력이 없는 성경을 방어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는 천지창조 이후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세상과 우주는 그 자체가 기적이며, 이것을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믿는 이상 어떤 기적도 그분의 계획 안에서 경륜을
달리하는 것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모든 역사 중 아주 짧은 한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세상 역사가 성경의 기록대로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은 기적이므로 단순히 성경을 거짓과 허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해석법 중
가장 적합한 방법은, 명백한 영적 이야기나 비유 등이 아닌 한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그다음에 역사적, 시대적, 상황적으로 이해하며, 이후에
실제적, 영적 적용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경륜이 읽힌다. 모든 것은 완벽한 작가이신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으므로 그것을 무시하고는
어떤 것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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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장황하게
썼지만, 성경의 시대와 정황과 배경과 수신자를 구분하는 것은 특정한 해석 방법이 아니고, 무슨 '주의'도 아닌, 그저 필연이라는 것이 요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풀리지 않고 오히려 꼬여버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던
방식과 조금 다르다고 눈을 감지 말고, 성경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한번 시뮬레이션을 해 보라.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인데 왜 시대와 수신자의
구분이 필요하냐고 묻기에는 주님의 계획이 너무나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세분화되어 있음을 느낄 것이다.
정교한 말씀이
두루뭉술하게 적용되면 무리수가 따른다. 이는 완전하고 빈틈없는 주님의 속성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부족하지만 우리가 완전한 말씀 속에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경륜을 헤아릴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댓글 무지 무지한 목사네 !
큰 믿음을 가지라는 뜻을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해서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다니......
그러게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음 ;;
독은 마시면 안됩니다. 신사도 할아버지들 전부 오셔도 독 마시면 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