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산동의 봄
아침 기온이 빙점 근처까지 내려간 삼월 초순 둘째 주말이다. 어제는 지기 둘이 야생화 탐방 안내를 부탁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아침 이른 시각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나가 여항산 미산령에 피는 복수초꽃을 완상하고 왔다. 귀로에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저무는 바람꽃과 붉은대극을 찾아 문안을 드리듯 둘러봤다. 그 골짜기에 자생하는 삼지닥나무와 생강나무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날이 밝아온 토요일 아침에 어제 의림사 계곡에서 본 생강꽃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밭둑에 매화꽃이 향기가 멎고 나면 / 연이어 산수유가 노랗게 수를 놓아 / 벚꽃이 피기 전에도 호강하는 눈이다 // 산기슭 찾아가면 낙엽 진 활엽교목 / 겨우내 시나브로 부풀던 꽃망울이 /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팝콘처럼 터진다” ‘생강꽃’ 전문으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온 그 꽃이다.
아침 식후는 곧장 산책을 나서지 않고 아파트단지와 가까운 농협 마트 토요 장터에서 시장을 봐 왔다. 간식으로 삶아 먹는 고구마 한 상자와 대파를 한 단 사다 놓았다. 장터가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만 열려 파장되기 전 시장을 봐 놓고 느지막이 산행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 성주동으로 가는 212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 대방동에서 종점이 가까운 프리빌리지 아파트에서 내렸다.
용제봉과 불모산 숲속으로 가는 등산로 데크를 올라서니 삼정자동 마애불상이 바라보였다. 골짜기 남향에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더미로 다가가는 진입로에는 봄을 맞은 꽃밭이 드러났다. 작년 여름날 아침에 아마 독실한 불자인 듯한 한 할머니가 꽃밭을 가꾸던 모습을 본 적 있다. 어디 사는지 몰라도 그 할머니는 봄이 무르익어 화초에서 움이 터 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리지 싶다.
자주 드나들어 주변 풍광이 익숙한 등산로 따라 걸으니 나처럼 단독 산행을 나선 이가 더 보였다. 간간이 부부이거나 자매인 듯한 이들이 나란히 걷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불모산이나 용제봉 기슭으로 봄날에 찾아와 산나물을 채집해 나갔으나 근년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불모산에 제2터널이 생기면서 생태계가 달라져 북면 야산이나 진전이나 진북의 여항산 미산령으로 개척했다.
용제봉 가는 갈림길 이정표에서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서자 볕이 바른 자리에 움이 튼 머위가 보여 배낭의 칼을 꺼내 캐 모았다. 올봄 들어 구룡산 민자 건설 터널 용전 요금소 근처와 진전 둔덕골에 절로 자란 머위를 캔 바 있다. 숲속에서 머위 순을 캐고 낮게 자란 낙엽 활엽수를 빠져나가니 용제봉에서 흘러온 개울에는 잦았던 비에 계곡물이 넉넉하게 흘러갔다.
자손들이 성묘를 다녀가는 무덤인 듯한 곡부 공씨 선산에 엉겅퀴가 자랐다. 겨울에는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방석처럼 납죽 펼쳐 자라는 엉겅퀴는 고라니나 노루가 뜯어 먹고 싶어도 잎줄기 붙은 가시 때문에 온전하게 살려져 있었다. 아까 머위 순을 캐듯 엉겅퀴 순도 캐 모았다. 볕이 바른 산소라 한 무더기 양지꽃이 잎줄기 끄트머리에 꽃망울을 달고 노란 꽃을 피웠다.
용제봉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은 물소리를 내면서 바윗돌을 비집고 흘렀다. 어제 의림사 계곡에서 본 생강꽃이 불모산 계곡에서도 낙엽 활엽교목 틈새 노란 수를 놓고 있었다. 창원터널이 가까워진 산기슭에는 농막과 함께 텃밭 농장이 나왔는데 주인을 기다리는 개가 나를 보고 짖어대다 제풀에 그쳤다. 쌀쌀하던 기온은 낮이 되자 볕살이 퍼져 점차 기온이 높아져 추운 줄을 몰랐다.
불모산동으로 나가 저수지 둑으로 가니 한 아낙이 봄볕을 등지고 쑥을 캐고 있었다. 손에 낀 장갑이 손가락만 꺼내도록 자른 모양에서 쑥을 재바르게 캐는 아낙임을 알 수 있었다. 불모산동 기점을 출발하는 101번 시내버스로 집 근처로 와 카페에서 꽃대감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자리를 일어서며 배낭의 머위와 엉겅퀴는 채집량이 적어도 친구에게 모두 건넸다. 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