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잔잔한 기쁨과 깨달음을 선사해 주시는 불음이 깊으신 단단단현님과 껄쩍향광님께 우선 합장 ^^ _()_
아둔한 저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 하겠지만, 불교강의임에도 예수교를 끌어오거나 노장사상, 달라이라마와의 대화 등 동서고금의 인문학을 함께 다루며 27강으로 이어진 도올선생의 주장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여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신을 중심으로 하는 브라흐만 인도사회에 인간 중심의 사상적 대혁명을 이룬 싯다르타의 초기불교(근본불교, 원시불교) 이후, 인도 전역에 불탑을 세우는 등 불교 포교가 유행하고 성황을 이뤘던 아쇼카왕 시대에, 불탑공양하러 전국에서 몰려든 신도들로 인하여 대단위 관광지로 변한 성지에는 천하주유로 지식이 많아지고 언변이 뛰어난 장사치들이 관광안내(불교연사)를 하며 먹고 사는 직업이 생기게 되었다.
돈이 많은 그들은 전문적인 불교 지식인이 되어 걸식하는 승단과는 다른, 경제적으로 독립된 재가교단을 이루게 되었고, 어렵고 힘든 부처님의 계율에서 벗어난 재가자들은 자유롭고 독창적인 사상체계까지 갖춰 마침내 출가승까지 두게 되어 어렵게 수행하는 소승불교를 비꼬는 대중들의 현실적인 대승불교로 자리를 잡았다.
중동과 유럽에 이르는 대상무역 상인들이 많은 대승불교는 이 시기 동방정복에 나선 서방의 알렉산더왕이 머물렀던 아프가니스탄 지역 아잔타로 전해져 그곳에 성행하고 있던 그리스문명(조형예술)의 영향을 받아 불상을 만들게 되었고, 탑(法:자력신앙) 중심의 초기불교는 불상(타력신앙) 중심의 대승불교로 변질되고, 이 불교는 서방이 아닌 티벳과 돈황을 거쳐 중국으로 전래된게 중국식 불교(격의불교)다.
하지만 이 대승불교는 더 이상 변질되어선 안된다는 자각 하에 초기불교 회귀의 모습을 보이며 금강경(반야경)으로 발전하여 空(진제)와 假(속제)가 中道를 이뤄야 한다고 보았다.
즉,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無와 空이란 아래와 같은 역설법적 논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1.진리가 없으면 허망도 없다.
2.선이 없으면 악도 없다.
3.깨우침이 없으면 무명도 없다.
-자등명법등명-이기에 살불살조를 해야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예수를 죽여야 구원을 받는 것이지, 아무리 불상 앞에서 천만번 빌고 수천만의 불상공덕을 해봐야 사구게로 이웃을 교화하는 것만도 못하다.
이때의 금강은 언어학적으로 다이아몬드가 아닌 벼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금강산은 벼락산으로 해야 정확한 표현인 것이다.(박수)
-도올선생 강의는 여기까지-
결국 도올선생은 공(空)을 말하는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인 반야경(금강경)은 어디까지나 초기불교에 기반한 가장 발전된 불교사상이라고 강변합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이 냥반(^^)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잘 들어보면 선생은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인기영합적인 면에서 거의 천재적인 감성을 가진 학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고방향이 다른 많은 이들이 이 선생에게 무한한 질투심을 동반한 지탄을 해대는 것이겠지요... ^^;;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류사상사에 혁명을 가져온 창시자인 붓다의 사상에 기반한 위대한 가르침 아닙니까?
사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사상은 원칙적으로 부처님법에 반하는 사상이 맞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사상은 나름대로 부처님법을 역설적으로 충실히 설명해주는 일종의 방편인 셈이지요.
따라서 선생의 강론을 잘 들어보면 공사상처럼 여러 곳에 무리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냥반의 포효(^^)는 고집화된 우리들의 영혼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자체로 위대한 한국의 철학가임에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소견을 문자로 다 표현 못해서 죄송하오나 이것으로 오늘의 부족하고 미련한 제 소고를 이만 줄입니다.
내공이 깊으신 님들의 강력하고도 무한한 질타와 지탄! 앙망합니다!!! ^@^
-사족-
저는 초기불교와 비슷한 형태를 지닌 현재의 남방불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불교로 봅니다.
제행무상이라... 이 세상 모든 것은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게 순리요 그것이 천리임에도 2,500여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남방불교는 위대한만큼 현실화가 필요한 잘못된 제도라고 여깁니다.
위대한 불교의 유적지가 황폐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불법이 오롯이 장엄된 자연스런 모습... 이것이 진정한 불법의 모습이 아닐까요!
첫댓글 음..
부처를 보는 방법의 차이라면 괴팍한가요?
지칭하는 냥반은
두루두루 섭력한바
나름의 정견 아집이 생겨겠지요
이렇게 답글 적은 저또한 그러하고,,,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타당,
참의로 어려운 대목이 아닐수없습니다
눈,귀막고 공부(?)한 이른바 어느나라 큰시님들을 보면 안타가웁기만합니다
우리만의 울타리에서 최고이지 밖에나가보면
저어~뒤에 줄서고(?)있어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숙제는 아는만큼이라도 행하기
@자명 어려운 숙제입니다... ^^;;
드랙이 안되네요..? 좀 게으른 손 좀 더 편해 볼랬더니..ㅎ
저도 초기불교와 같거나 같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그 형태를 고수하는 현재의 남방불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답답한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제행무상이라는, 불조가 깨달아 설하신 그 진리를, 자기들은 하나도 바꿀 수 없고 바꾸지도 않겠다고 강변하며, 발전하는 그 사회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교학이 수승하다는 스리랑카에서도 출가승이 줄어들고, 자타 인정하는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소수인 이슬람교도들이 박해받고 추방당하는 걸 그네들 상좌 교단에서 묵인아니면 조장하는 현실을 보면, 무슨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건지 딱하기도 합니다.
저는 부처님이 말씀한 지혜가 양심과 연민에 기반한 이성적 사고에서 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도를 깨쳐서 단박에 얻는 그런 전지한 사고 능력이 아니구요.
팔정도란, 죽어서 윤회하여 더 좋은 세상에 복받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전제이기 보다는, 그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사람다운 사람으로써, 이웃과 더불어 훌륭하게 사는 데 필요한 지침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도라는 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아니라면, 아마 서방정토를 가기위한 통행증에 쓰인 글귀에 불과하겠지요. 아니면 지옥을 면할 수 있는 면죄부에 그려진 글씨이든지요.
공 타령은, 부처님 말씀을 빌려 좀 거칠게 말하자면,
희론이올습니다, 희론!
도올 선생처럼, 박학다식 하다고해서 현상을 꿰뚫어 아는 것은 아닐 수 있는 것이지요.
더우기 불교에 관한 그의 강연 내용으로 보아서는, 그는 어쩌면 대중을 현혹하는 외도 논사일 개연성이 커 보입니다.
지혜가 있거나, 적어도 직관력이라도 얻을려고 한다면, 그는 자기 주장에 앞서서 불교의 역사적 흐름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겁니다. 법사가 아니라 학자로서도 말이지요.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천하주유로 지식이 많아지고 언변이 뛰어난(뛰어나긴 하나?) 지식 장사치요, 좋게 말해서 철학 대중강연자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돈 많은 부모 만나서, 남들 소위 조국근대화의 대열에 징발당고 있을 때,
@마하수카진명
이 대학 저 학교 오래 다니며 외국 글로 된 책 좀 더 많이 읽은 복이야 있었겠지만, 적어도 '안광이 지배를 철한' 경지에 오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말한 무와 공에 관한 세 가지 논리의 결정체가 과연 논리적으로 보이는지요? 제게는 일면 그럴듯한 논리로 불교를 호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나쁜 의도는 아닐 거지만, 아마 우리 시대정신의 한계이겠지요!
사두.._()_
@마하수카진명
사족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남방 상좌불교는 소승이라고 비꼼을 당할 만한 면모가 그 시대만큼 여전히, 지금도 참 많습니다.
@마하수카진명 이 자리를 빌어 大樂진명님께 합장하며 인사 올립니다... _()_
단단단현님이 님을 일러 중중무진하고 현묘한 원불사 지혜제일 도반이라시더니 그 말씀이 정확합니다 그려...^^
현묘무극하다는 노장사상에 이런게 있더군요.
텅 빈 대우주= 太虛.
대승의 空 또한 이 태허와 같은 마음 속의 우주라고 풀고 싶습니다.
마음이 어떤 것으로 가득한 것보다는 채움의 여지가 많은 텅 빈 충만같은 공동= 空!
넘 아동틱한 발상일까요? ^^
@太山 형님같은 단현님이 그랬지만, 大樂진명님과도 꼭 술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가까운데 계시면 연락주세요.
저는 강남 개포동에 삽니다. 010-5283-0080 김훈철
@마하수카진명 비논리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있더군요.
도올선생이 그러던가...?
암튼 이런 말을 듣고 앙천대소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말에 현혹되는 놈은 이 세상에 가장 못나고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물론 제가 너무 좋아하는 -많은 것들을 생각케 만드는 도올선생-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
@太山 고맙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다음달 말에 서울 갈 일이 있습니다. 전갈 드리겠습니다. 사두.._()_
@마하수카진명 제가 좋아하는 분들은 전부 먼~ 곳에 계시군요.
서울 오시면 향광천왕표 쐬주 일병이 아니라 대락태산표 막걸리 일말 사겠습니다... ^^;
아니고!
이 시간이면 거의 매일 째려있는 데 심심해서 보니 태산님이 숙제를 초등학생 방학숙제만큼 내놨습니다.
오늘은 양고기갈비찜에 제주도 피대기 구워서 56도 이과두주 소주 2병 도수보다 더 마셧는데...
그래도 몇 자 적고 내일 다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우선, 존경하는 도올 선생님은 불교인이 아닙니다.
그는 철학자일뿐, 부처님의 근본불교에 대한 사랑이 없는 분이시지요.
철학적으로 모든 사상을 편력한 후 이런저런 사상들의 핵심 정도를 파악하여 강의의 주제로 삼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 근본교학보다 쉽고 단순한 공사상을 근본교학보다 훨씬 아니 수백 배 좋아합니다.
부처님이 어렵고도 난해한 근본교학을 평생을 가르치시면서 잘못 이해하고 딴 소리하는 제자에게 이 어리석은 놈아!! 이 바보 같은 놈아!!수없이 나무라시면서 근본교학을 가르치셨지만, 색식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공사상만 깊이 체득하면 그 즉시 탐진치가 사라진다 라는 반야부 공사상 앞에
부처님의 그 모든 교학과 수행은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관사상의 대표 용수와 그의 수제자 제바 모두 초기 부파불교인들에게 칼로 살해당했었지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외도였기 때문입니다.
여몽환포영만 깨닫고 체득하면 그 즉시 도일체고액하고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교학 수행이 부질없는 어린애 같은 소리라는 데 초기불교인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깊은 역사적 에피소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도올 선생님 역시 아신다고 해도 당신에게는 공사상이 훨씬 매력적일 것입니다.
몰론 인생을 살면서 회의가 들 때, 공사상은 가장 쉽게 다가오지만 가장 큰 위안이 될 훌륭한 사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사상은 부처님께서 가장 경계하고 거칠게 공격하신 외도사상입니다.
바로 단멸론이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이 허망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라면 이세상에 깊은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환상에 지나지 않고 꿈과 같과 그림자 같은... 현실 세계가 아닌데 어떻게 살아도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런 공사상가들에게 외도라고 단언하시고
이 세상은 내 눈 앞에 그려지는 현상이 세상이고 보이지 않거나 생각속에 만들어지는 것은 허상이라고 단언하셨지요.
그래서 현재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고 현법열반을 역설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행복하고 이웃과 평화롭고 모두 함께 이익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비희사의 공덕을 쌓아라 시면서 이 세상이 바로 불국토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공한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만이 만인 인생의 전부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허망한 것이 아니라 무상하지만 한 평생밖에 못사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유일한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인들이 공을 무상 무아를 줄인 말처럼 호도하지만
그것은 택도 없는 말입니다.
도올선생님이 제행무상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인지 강의를 듣지 못했기에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제행무상이라는 말은 세상의 실체는 분명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탐욕이 앞서 마치 영원한 것처럼 욕심을 부려 고통을 자처하기 때문에
제행무상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집착 갈애를 떠나면 행복하다 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핵심교학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행무상이 마음에 안든다면 그것은 개인 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과 무상은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제행무상은 실체 실재가 분명한데 변하고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이고
공은 이 세상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재 현상이라고 느끼는 것이 없는 물거품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단현 태산 진명 모두 환상 속의 그대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공사상은 현실을 부정합니다.
염세주의라는 얘기지요.
마치 기독교가 이 세상은 시험대라서 믿으면 영원히 천국에서 살고 안 믿으면 지옥 가는 중간다리 같은 역할밖에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야 공사상이 판을 치다보니 모든 것이 허망한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면서 반야불교가 점점 타락일로를 걷다 악취공 단계에 이르러,
식자 가운데 더이상 단멸론으로서는 구원이 없다라는 자각하에 나라는 존재가 더이상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일어났습니다.
즉 유식론자들이지요.
내 인생이 환상이 아니라 그 어떤 식이 잇어 영생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 식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그 식에 대한 가치와 이론을 부여해야 했고 그 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수행도 부여했습니다.
유식론자들은 반야 공사상을 배척하면서 다시 초기교학을 중심으로 힌두 아뜨만을 대입해서 영혼 비슷한 실체를 만들어 갑니다.
이렇게 불교라는 이름으로 그 시대 사상들과 합종연횡의 재미난 융합이 지금의 불교라는 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상가들은 제나름의 이론으로 강의도 하고 주장도 펼치는데 도올선생님도 그런 분 가운데 한분일뿐입니다.
제행무상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셨다는데, 제행무상은 만고의 진리일뿐
개인의 주장과 무관하게 제행무상은 그저 제행무상일뿐입니다.
남방불교에서 그를 이용해서 돈벌이하는 것도 아닐텐데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컷 쓰고 보니 제행무상 운운은 도올 선생님이 아니라 태산님 의견이네요.
아c!! 안 보여 ㅎㅎㅎ...
남방스님들께선 제행무상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깨달은 수행자는 탐욕과 악의를 떠난 삶은 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600년 동안 변함없이 수행자적 고행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세상의 오욕락을 버리고 떠난 수행자의 모습을 탁발이나 기타 수행을 통해 보는 재가자들에게
그 모습 자체가 훌륭한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이고 존경하고 공양올리고 싶고 보위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지요...
@단현 아이고~ 죄송...
단현님을 힘들게 해드려서 오늘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그려...^^;;
불법에 정통하신 설법제일 단현님을 저는 불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합니다.
굳이 이렇게 수고하실 것까지는 없으신데... 다정도 병인양 이런 수고를 해 주시다니요... ^^;;
@太山 남방스님들의 거룩한 탁발 모습은 저 또한 너무나도 아름답고 성스러운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진명님이 지적하신대로 그 모습들이 너무나도 현실에 안맞는 진부한 고대관습이라는 것입니다.
고온다습하기에 전염병이 창궐할라치면 저 아름다운 사람들 모두가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기 쉽상인 그런 고리타분한 제도...
탁발한 음식을 들고 경내로 돌아와 공양간에서 합친 후에 나누어 공양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도 한심한 생각이 들더이다.
이래서 동남아 불교국들이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太山 탁발 좋지요
우리나라에서도 테라와다승들께서 탁발을 몸소 보여 주십니다
다만 다만 말이죠? 정말 바라는게 있어요
탁발은 성스러워 보이나 전법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의 장면은 안보입니다
찾아온 고객에게만 전법을 하시는지
가가호호 방문하여 포교활동의 사진은 지금껏 본적이 없습니다
어떤불자 께서는 내가 아는 시님이 말이여? 산속에서 20년간 도를 닦었띠야~~~
제 대답==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요 혼자 도 닦아서 혼자만 수행 해서
지금 자리에 앉아서 뭘 하는게 있는데요?
그~~그~그건 나도 자알~~~ 모르면 자랑 하지 마쇼
좀 부족하나마 그래도 산에서 가끔 내려와서 포교도 하고
실천행을 하는 그런 승가를 원하오~~_()_
@단현 단현님
남방불교 자랑은 하지 마쇼~~!!!
저는 부처님의 초기 원음이 정말 와 닿아서 공부를 할뿐 입니다
뭐 앉아서 고객 맞이 하는것은 현재 대승불교와 다를바가 뭐 있습니까?
정말로 부처님의 행을 배워서 제대로 된 도리를 하고 제자가 되려면
부처님이 하셨던 대로 실천행을 해야 합니다
탁발 하니까 다 우러러 보지 맙시다 그건 전시효과밖에 안됩니다
그 외에 무슨 활동 을 했는지는 없잖아요?
초기불교 근본불교는 정말 부처님의 원음을 배우고 실천 한다
이런 모습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모습을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침부터 발끈해서 죄송 합니다만
현실 입니다
아우 다시 살쪄서 힘들구만 헥 헥
물론 저도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일침을 좋아 하고 해박한 지식도 높이 평가 합니다만
불교의 정설에 대하여 가끔 틀린 발언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가 틀리지 않기 때문에 억지발언 하는분들과 차원이 다르다는것을
생각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지금까지 주장 하지만
배워서 남 안주더라는것 입니다.
어느 스님들께서 거룩한 모습 보여 주시던가요?
부처님 원음 배우시고 우리도 부처님처럼 입으로는 강조 하시지만
뭘 햇나요?
실천행을 했어요? 난 못봤소~!!!
법문만 한다고 그게 다 아닙니다
집짓는데 입으로 벽돌 쌓지 않습니다
나서야 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정말 그런 모습들이 불자를 끌어들이죠
아~~~C
괜히 휴게소에서 열받았네 10시부터 수업 이라서
밟아야 하네.. 오늘 아침 식사는 김밥 한줄 입니다 아 물 한잔도 있었구랴~~~~
아침부터 열내서 미안하오~~~! _()_
자신에게 고정관념이 얼마는 있는지?
자신이 글을 쓰면서 과연 자비롭고 평온하신지?
자신이 과연 바른 이론과 실천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듣고 행하여
과연 불교전 반에 옳다 그르다 나날이 시시분별 할
그런 조건이 되시는지?
과연
자신한테 얼마나 관심을 갇고 이해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한 가지라도
생각하고 행하는지?
바깥의 대상에 시비분별에서 자신에게 자신에게 ..관심을
그런 그런 지금을 감히 기원합니다.
그런 그런 법우님들의 소리를 더 듣고 싶습니다.
결코 동류는 동류끼리 모인다 했습니다.
무엇이던 지나치지 않은 그런 균형과 조화를 기원합니다.
평온하십시요.
_()_
남방불교는 혼자서 은둔수행ㅁ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마을마다 사원이 있고 초하루 보름법회와 명상 수행도 하고 인터뷰도 합니다 외부스님 초청밥회부터 또 무승부는 법회들이 수두룩하며 심지어는 마을 장터로도 이용합니다.또 마을 집안의 대소사에도 참여합니다. 가령,누구네 집에 결혼식이 있다면 결혼 전 날에 초청되어 가서 계를 주고 법문하고 점심 공양하고 돌아옵니다. 심지어 땅을 사고 땅을 팔았을때도 초청하더군요. 마을에 어떤 일이 있으면 하루알과가 끝난 저녁에 사원에 와서 얘기들을 합니다. 주지 스님이 보탬이 될 만한 야기도 하고..그렇습니다. 개인적 이야기 상담 역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듣고 얘기해주고 하
따라서 남방불교가 저열하다거나 소산이라는 편견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저열하고 천박한 오해는 버리세요. 다만,정치얘기 군사적 얘기등을 계율에 따라서 하지 않을뿐입니다. 투표권도 없고요. 중에게 무슨 여와야 진보보수가 있겠습니까?요즘 국민들이 어리숙한것도아니고 왜 중들에게 지금까지도 세상 참여를 말합니까?얻어처먹는다고..그래서입니까?동남아 불교 국가가 경제적 후진국이라고해서 부처님 말씀처럼 보시와 지계 명상을 게을리 합니까?돈만 있으면 닙빠나에 이르고 천상에 태어납니까?내가 아는 그들의 사회는 범죄도 아주적고 마음들도 너희 선진국보다 좋아서 마음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네 감사 합니다..
스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주 오셔서 불제자들에게 좋은 가르침도 주십시오
저희들은 다투면서 진리를 더 파악하고
조금씩 알아 갑니다 _()_
스님 자주 뵙지는 못해도 뵐때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_()_
남방불교 승가와 교단의 은혜로운 모습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고아원 양로원부터 초중고대학교 기타 대부분의 복지시설을 승가에서 운영하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지도하고
재가자들의 생활까지 일일이 보살피고 도와서 그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절에 돈을 받는 보시함 불전함조차 없지만 큰 불사나 스님들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은 불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뿌리깊은 재가신자들이
적절한 때에 자발적인 보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동국대 대학원 과정의 담마끼띠 스리랑카 스님이 추진하시는 스리랑카문화원 설립기금으로 원불사에서 100만원을 보시한 적이 있는데
놀란 것은 재한국 스리랑카인들이 소소한 일상사까지 모두 스님께 상담하고 스님께서는 관공서 병원 관세청 회사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일을 처리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같은 스님의 모습이 바로 남방불교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복에만 의지하는 한국불교와 판이하게 다른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율원스님 같은 깨인 스님들이 점점 많아져서 한국에도 아름다운 불국토가 이뤄지길 소원합니다_()_
단호태산님의 글이 도올선생의 공에 대한 강연을 비평한 것이었는데, 여러 댓글들이 달리면서 남방 상좌불교에 대한 언급이 더 부각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율원 스님의 진심을 불러온, 편견적 시각의 저열하고 천박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덧글을 남긴 셈이 됐군요..
어설프게나마 몇 가지 변명을 적고 싶은데, 이미 시간이 많이 깊은 밤인지라 먼저 인사만 드립니다. 불조의 올바른 가르침을 찾고 실천 수행하는 일이라면 그 치열함에 승속이 따로 없겠지요. 나중에 한 번 뵙겠습니다. 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