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카산드라개존멋
1984년 프로야구는 전기 리그 / 후기 리그로 나눠서 각각 우승자를 뽑고 두 팀끼리 한국 시리즈를 치루는 형태였음. 만약 한 팀이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를 둘 다 우승하면 한국 시리즈 없이 그 팀이 우승 ㅇㅇ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 리그를 우승한 후 후기 리그 우승까지 노렸지만 다소 분위기가 안이해진 삼성과 달리 나머지 팀들이 이 악물고 경기해서 우승권에서 멀어짐. 삼성 감코는 주전들 체력 아끼며 한국 시리즈를 대비하는 거로 노선을 틀게 됨.
마지막 두 경기가 남을 때까지 후기 리그의 우승 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음. 1위인 롯데의 우승이 유력하지만, 삼성이 남은 두 경기에서 롯데를 잡는다면 2위 OB베어스(현재의 두산 베어스)가 우승할 수도 있는 상황 ㅇㅇ.
순위표를 보며 고민하던 삼성은 두 팀 중 비교적 만만한 ‘롯데 자이언츠’를 한국 시리즈에 올리기로 결심함. 롯데는 전기 리그에서 삼성한테 1승 9패를 했고, 롯데 부동의 에이스인 최동원도 삼성한텐 비교적 약했기 때문.
여담으로 당시 삼성 타격코치는 박영길이었는데, 박영길은 프로야구 창단 전 실업팀 롯데의 감독이었음. 최동원의 피칭을 코앞에서 자기 눈으로 본 바 있는 박영길은 “최동원 올라오면 안 된다, 차라리 (주전 다 내보내서 롯데를 잡고) OB 베어스를 우승 시켜주자”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나머지 감코진이 롯데를 밀어벌임.
결국 삼성은 역사에 (안 좋은 의미로) 길이 남아버린 져주기 게임에 돌입함.
공격할 때는 안타 치고 일부러 오버런해서 주루사하기
수비할 때는 쉬운 뜬공 일부러 놓치기, 일부러 실책 저지르기, 롯데 홍문종이 타석에 들어서면 고의사구 주기. (당시 타격왕이 삼성 이만수였는데 이만수 타율은 0.340 / 롯데 홍문종은 0.339였음. 져주는 김에 이만수 타격왕도 유지해주려고 한 것)
프로 경기에서 이런 추태를 벌인 삼성은 당연하게도 욕을 오지게 먹었고, MBC는 중계를 끊을까 고민까지 함. 흐구옌이 예전에 삼성을 싫어해서 중계 때 대놓고 편파했는데, 삼성을 싫어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져주기 게임이었음 ㅎㅎ,,,(구장 바꾼 후로는 좋아함)
와중에 해태 타이거즈(현재의 기아 타이거즈)는 3위라 OB 베어스 상대 두 경기를 다 잡아도 후기 리그 우승은 못하는 상황이었음. ‘제과업계 라이벌인 롯데가 코시 가는 꼴을 볼 바에야 OB를 보내겠다’는 마인드로 같이 져주기 게임 시전함ㅋㅋㅋㅋㅋ
그 보답으로 OB는 도루왕 경쟁 중이던 해태 김일권한테 도루를 대량 허용해서 도루왕을 만들어주지만 삼성이 롯데한테 두 경기를 다 대준 바람에...해태는 그냥 져준 사람 됨.
어쨌든 삼성vs롯데의 한국 시리즈. 전력은 삼성이 압도적 우세였음. 롯데는 정규 리그 100경기 중 52경기에 최동원이 등판할 정도로 최동원 의존도가 심한 반면, 삼성은 김일융-김시진 확실한 1, 2선발에 불펜도 준수했음. 애초에 최동원이 있음에도 전기 리그 4위하고 후기 리그도 간신히 우승한 것만 봐도ㅇㅇ...돈 걸라고 하면 롯데 팬조차 삼성에 걸 상황.
결국 롯데는 최동원을 1, 3, 5, 7차전 선발로 내보내는 미친 엔트리를(...) 짜게 됨. 이 때 나온 명언이
“동원아...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그렇게 시작된 1차전.
최고 에이스인 김일융을 (최동원 없는) 2, 4, 6차전에 등판시켜 확실히 3승을 챙기고 // 아무리 최동원이라도 연투가 반복되면 지칠 테니 후반인 5차전이나 7차전 쯤에 1승을 더 챙겨 우승하는 게 삼성의 계획이었음.
롯데의 선발은 최동원
삼성의 선발은 김시진
예상대로(?) 최동원이 9이닝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며 롯데 승. 이때 삼성이 최동원에게 단 1점도 뽑아내지 못하고 패배하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직관하고 한숨 쉬던 삼성 팬이 있었으니
삼성의 구단주이자 (당시) 부회장인 이건희ㅎ....
쨌든 다음날 2차전.
롯데의 선발은 신인인 안창완
삼성의 선발은 김일융
결과는 당연하게도(?) 김일융의 9이닝 2실점 완투승, 시리즈는 다시 1대1
3차전
롯데의 선발은 이틀 쉰 최동원
삼성의 선발은 마찬가지로 이틀 쉰 김시진
똑같이 이틀을 쉬었다지만 최동원은 9이닝 완봉을 했고, 김시진은 3이닝 4실점 후 강판됐었음. 당연히 최동원의 피로도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 최동원은 이를 악물고 던졌지만 4회와 7회에 1점씩 내주고 말았음. 반대로 삼성은 야수의 실책으로 롯데에게 2점을 내줌.
쨌든 두 선발투수가 8회까지 각각 2실점하며 호투를 이어갔지만 8회 말, 강한 타구가 김시진의 발목에 맞음. 복숭아뼈가 골절된 김시진은 마운드를 떠나고, 9회 말에 롯데가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3대2로 롯데 승. 최동원은 9이닝 2실점 12K 완투승을 거둠.
4차전
롯데의 선발은 2선발인 임호균
삼성의 선발은 이틀 쉰 김일융
김일융이 8이닝 무실점하며 삼성 승. 시리즈는 다시 2대2
그리고 5차전
이틀 쉰 최동원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음. 연투&혹사의 개념이 없어 막 던지던 시절이지만 선발-휴식-휴식-선발-휴식-휴식-선발을 하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함. 심지어 최동원은 매 선발마다 완투를 했으니 ㅇㅇ
최동원은 필사적으로 던졌지만 롯데 야수의 실책까지 겹치면서 2실점을 함. 7회, 스코어는 2대2. 에이스 최동원이 올라왔음에도 아직 경기가 치열하거니와 최동원의 구위가 떨어진 게 눈에 보임ㅇㅇ. 삼성은 하루 쉰 김일융을 마운드에 올리고, 김일융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음. 반면 최동원은 7회말에 솔로홈런을 맞아 스코어 3대2로 삼성 승, 최동원은 8이닝 3실점 2차책 완투패.
이제 삼성은 내일 6차전만 이기면 우승임ㅇㅇ
다음날, 6차전.
롯데의 선발 투수는 임호균
삼성의 선발 투수는 김시진
김시진은 복숭아뼈가 부러진 상황이라 진통제로도 어찌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음. 하지만 1, 3차전에서 최동원은 완봉승 완투승을 한 반면 본인은 부진했잖음? 게다가 시리즈가 김일융vs최동원처럼 흘러가니 김시진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음ㅇㅇ...김시진은 명예 회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마운드에 오름.
임호균이 4이닝 1실점 호투를 하며 스코어는 3대1. 청천벽력으로 임호균 손가락 살점이 까짐.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손끝으로 공을 채서 회전을 줘야하는데, 손가락 끝 살점이 파였으니 더이상은 투구가 불가능함.
롯데는 어차피 오늘 지면 끝이었음. 불펜을 총동원하려고 다음에 올릴 투수를 고민하는데, 어제 완투를 한 최동원이 코치를 찾아가 자진해서 등판 요청을 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등판한 최동원은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롯데 타선이 3점을 더 뽑아내며 롯데 승. 승부는 7차전으로 가게 됨.
무리인 걸 알지만 그래도 팀이 이길 수 있다면 선수 생명을 걸고서라도 기꺼이 등판하는 선수가 최동원이었음. 하지만 7차전은 당장 내일. 5차전 6차전 합쳐 13이닝, 시리즈 전체 31이닝을 던진 최동원이 또 등판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음. 반면 삼성은 5차전에서 3이닝 던진 후 하루 휴식한 김일융이 있었고ㅇㅇ
그리고 7차전 당일인 월요일, 기적처럼 비가 내림. 하루 휴식한 최동원은 다음날인 화요일에 선발로 등판함.
롯데의 선발 투수는 최동원 (1, 3, 5, 6차전 31이닝 소화 / 하루 휴식)
삼성의 선발 투수는 김일융 (2, 4, 5차전 20이닝 소화 / 이틀 휴식)
둘 다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음. 특히 최동원의 구위는 누가 봐도 떨어진 상태. 6회까지 스코어는 4대1, 삼성의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음.
한편 이건희는 자기가 직관 갈 때마다 삼성이 져서(...) 이 날 집에서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4대1까지 스코어가 벌어지는 걸 보고 안심하며 야구장으로 향함. 롯데는 믿을 만한 투수가 최동원 임호균 뿐인데 임호균은 어제 선발로 써서 쓸 수 없고 최동원은 누가 봐도 구위가 떨어진 데다 고작 3이닝 남았으니ㅇㅇ
BUT...이건희가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장효조 만세 사건’이 벌어짐. 삼성 장효조의 치명적인 실책이 벌어지며 스코어는 4대3.
타선의 분전에 힘을 얻은 듯 최동원의 구위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함. 당시 롯데 포수였던 한문연의 표현에 의하면 “공이 점점 빨라지고 살아 들어오는 느낌”, 삼성 박영길에 의하면 “한 열흘 놀다 온 최동원이랑 맞붙는 느낌”
그리고 8회, 롯데 유두열의 극적인 역전 쓰리런 홈런이 터지며 6대4로 역전하고
최동원이 남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9이닝 4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롯데가 우승하게 됨.
열흘 동안 5경기 등판, 4승 1패, 4완투, 40이닝 소화, 610구, 평균자책점 1.80,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4승 투수.
지금 가장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자고 싶어요.”라고 말할 정도의 강행군이었음. 최동원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이때 이미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다는 것 ㅇㅇ,,,,,
어쨌든 최동원은 유일무이한 한국 시리즈 4승 투수가 되며 롯데에게 첫 우승을 선물했고, 이건희는 PTSD가 생겨 두 번 다시 야구장 직관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드님은 승요던데...)
“아부지, 해태는 선동열이 델고 그래 우승을 많이 했는데, 롯데는 와 최동원이를 델꼬 우승을 한 번빼끼 몬 했십니꺼?"
"아들아, 해태는 해태가 선동열이를 델꼬 우승을 했지만은, 롯데는 최동원이가 롯데를 델꼬 우승을 한기라."
라는 만담이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
- 끝 -
첫댓글 전생같다ㅜㅜ no. 11
동열헴,,,ㅠㅠㅠㅠㅠㅠ 롯데팬이지만 이런 디테일한 내용까지는 몰랐어
우와...이래서 최동원이구나ㅠㅠ
와….
와 미쳤다.. 이랴서 최동원최동원 하는구나.. 개감동
동원헴....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투혼이다
동원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