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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U-18시절부터 떨친 위력
2002년. 카타르에서 여렸던 아시아 U-19선수권에서 왕바오샨이 이끌었던 중국청소년대표팀은 세계대회 출전권은 물론 내심 대회우승까지 노렸다. 하지만 시리아에 대패하고 베트남에 비기는 졸전을 펼치더니 간신히 오른 8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4-1로 대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중국축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바로 2년전 '이천수-최태욱'이 버텼던 한국을 10여년만에 누르고 대회3위에 올라 아시아에 충격을 던지더니 다음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아시아대표로 참가한팀중 유일하게 16강을 달성. '초플래티넘 세대'라고 불리었던 그팀의 다음으로 출범한 팀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팀이었다. 더욱이 대회 개막 5개월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최성국-정조국'이 버틴 한국청소년대표팀에게 비록 3-1로 패했지만 내용상은 대등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축구협회는 팀이 귀국하는 그대로 해산시키고, 2002년 말부터 베이징세대의 주축이 되는 U-17팀에 대한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해가 바뀌어 U-18이 되었다. 2003년 1월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던 ‘러시아 국제 청소년축구대회’가 그 무대였고,공교롭게도 한국과의 질기디 질긴 인연도 이 대회 결승전이라는 무대에서 시작되게 된다.
그 대회에 참가팀들의 면면은 한국과 예멘만 U-17대표팀이었고 중국을 비롯한 다른 모든 팀들은 1살이 더 많은 U-18대표팀이었는데 이 한국과 중국이 결승전을 치르게 된 것...1살 더 많은 선수들인데다가 도저히 청소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체격조건을 자랑하는 중국 U-18대표팀인지라 윤덕여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 U-17팀이 일방적으로 밀릴 것으로 내다봤고 실제 10분만에 중국이 선취득점을 올려 그렇게 전개될 듯 했지만 상황은 그때부터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한국의 골잡이 신영록이 2골을 기록하는 등 맹반격을 펼친 한국청대에 전반전을 1:3으로 뒤진채 마치고 만 것...후반전에 맹반격을 펼쳐 극적으로 3:3 동점을 만들었지만 승부차기에서 3:4로 패배했다.
명실상부한 중국 U-18대표팀이 한국의 그것도 자신들 보다 1살이 더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U-17대표팀에 무릎을 꿇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하지만 당시 그 대회와 관련 대한축구협회에 실렸던 기사들을 검색하고 또,중국측의 자료를 찾아보면 2002년 러시아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과 작년 2004년 말레이시아 U-19아시아 청소년대회에 참가했던 그 선수들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있었다. 즉,2년전의 그 팀은 최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중국 U-18청대는 아니었다는 얘기...
최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팀은 약 반 년 후 한국 제주도에서 열렸던 ‘韓中日 국제 청소년 교류전’의 부속 행사 가운데 하나였던 3개국 U-18 청소년대표팀 대회에서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동갑내기 홈그라운드의 한국청대를 맞아 2:1 승리를 거둘 당시 득점자가 덩팡저우,조우하이빈 등 현재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익숙한 선수들인 것만 봐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마침내 2004년 올림픽의 해는 밝았고, 축구팬들은 1월 '후베이성 韓中日블루스타스컵'을 기억할것이다. 당시 한국청소년대표팀은 후베이성선발에 패하는 졸전을 벌였고 대회 최하위에 링크되었다. 중국 U-19는 대회전적 2승1무로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문제는 박주영,차기석,이강진등이 뛰었던 한국청소년대표팀을 3-1로 격파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이 청소년팀...
정예 멤버들로 팀을 구성해 공식 출범한 후 2004년 10월9일 밤 말레이시아 아시아 청소년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의 박주영에서 2골을 얻어 맞으며 침몰해 준우승에 머물기 직전까진 극동의 동갑내기 한국,일본의 청소년대표팀들과의 대결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그래서 그동안의 중국 성인대표팀이나 올림픽대표팀이 한국과 일본에 채이고 밟혔던 그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이 팀...
아시아 청소년대회 한국과의 결승전 직전 “한국엔 100% 이긴다.”는 둥 “결승엔 한국보단 일본이 올라왔으면 우린 조금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둥 “우리 세대는 恐韓症이 없고 오히려 한국에게 恐中症을 심어줬다.”고 떠들어대 우리 한국 축구팬들의 강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이 팀...
2년전 2005년 네덜란드 세계 청소년선수권에 참가했던 중국 U-20 청소년대표팀임과 동시에 내년 자기네 안방에서 치르는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U-23 올림픽상비군 연령대에 정확히 해당되기에 중국축구협회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키우는 세대로 중국식 표현으론 ‘08의 별’이라 불리우는 바로 그 집단이다.
2.프랑스 툴룽과 한국의 파주에서 일으켰던 파란
2004년 6월..형님들은 보름전 한국과 이란에 밀리며 결국 조3위로 아테네행 본선티켓확보에 실패했고, 동생들은 프랑스 툴룽컵에 참가하였다. 놀랍게도 프랑스와 브라질을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대회 3위를 차지하였다. 98년 리진유,리티에,리웨이펑,장위닝,타오웨이등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의 주축멤버가 됬던 그 팀이 4위에 오른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것이다. 아테네올림픽 본선진출실패로 침울에 빠져있던 중국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국언론은 의외로 '초플래티넘세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지나친 호들갑은 자제하였다. 그러나 브라질과의 3~4위전 승리이후 태도는 돌변. 결승골이 되어버린 마오지안칭의 결승골은 브라질수비 3~4명을 농락했던 득점이었고 브라질을 경기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압도해버린것이다. 8월에 벌어졌던 한국전지훈련. 거기서 한국청소년대표팀과의 두차례 연습경기가 있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중국이 사상처음으로 한국에게 2연승을 거두어버렸다! 1차전의 결승골은 하오준민의 크로스에 이은 현 08올림픽대표팀의 실질적 에이스이기도 한 천타오의 발에서 터졌고 2차전에선 190의 장신 조우위의 발에서 터져나왔다. 중국축구 역사상 한국축구와의 교류가 시작된 이래 이런 일은 전무했다.한국축구를 상대로 한 대표급 경기에서 그 어떤 연령별 대표팀도 이루지 못했던 이 놀라운 일을 마침내 2004년 중국 U-19 청소년대표팀이 해 낸 것이다.
당시 이 결과는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결코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때마침 몇 개월 전 그렇게나 기대했던 올림픽대표팀이 또다시 한국의 높은 벽에 막혀 아테네행이 좌절되어 신음하던 대륙은 4년후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할 그 연령대의 선수들이 역시 한국 올림픽팀 선수들로 자라날 동갑내기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원정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으며 2연승을 거둔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들떠있었다. 반대로 한국은 28일 1차전 패배는 “뭐,그럴수도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막상 31일 경기마저 패하자 박성화 감독과 선수들을 질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떤 곳에선 “이젠 우리가 골짜기 세대를 가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슬금슬금 나오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약 7개월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도 아닌 아시아권의 팀에게...그것도 심지어 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맞붙는다 할지라도 왠만해선 3연패는 당하지 않는 묘~한 전통도 함께 갖고있는 한국축구가 중국에게만 3연패를 당했기에 그 파장은 좀체 가라앉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훗날 말레이시아 청소년대회 결승이 끝난 후 증명되었지만...8월말 당시 한국청대는 중국과의 연습경기 얼마전에 본선 장소인 말레이시아 전지훈련을 다녀온데가 다시금 중국전을 대비한 선수소집도 프로팀들과의 공조가 원활치 못해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상당수 빠질 수 밖에 없었으며,무엇보다 중국과의 연습경기 결과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파주에 입소한 후 내내 강도 높은 체력과 전술훈련을 실시했기에 응당 정상컨디션이 아니었음을 중국청대는 간파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 실제 중국과의 연습경기 전날에도 박성화 감독은 자신이 짠 프로그램대로 강한 체력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청대는 연습경기를 연습경기 답지 않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인테성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탶들이 두 차례 평가전 모두 최정예 멤버들을 투입시킨데다 그 멤버들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도로 끌어내게 하는 등,그라운드 곳곳에 분석관을 배치시켜 놓고 그들의 모든 것을 담아간 한국을 계산해 넣지 않은 채 너무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기까지 한 모습을 보였다. 1차전에서 최정예 멤버들을 투입해 소기의 목적인 승리를 달성했다면 2차전 정도는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리저브 멤버들을 테스트해 의외의 물건을 발굴하는 기회로 삼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남는 것이다. 실제,현 중국 A대표팀에서도 당당한 주전급인 조우하이빈은 중국청대가 한국청대와 가진 연습게임 기간 동안 당시 중국대표팀이 월드컵 지역예선 원정전을 치르러 말레이시아로 날아갔기에 응당 한국엔 오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와서 연습게임 1차전을 뛰고 그 다음날 홀로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던 것이다.
4.말레이시아 청소년대회 본선. 공든탑이 결승전 하나로
중국은 단연 대회 우승을 최고 목표로 삼고 말레이시아에 왔다. 그리고 현지 전문가들 역시 중국청대를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국들 가운데 하나로 점 찍고 있었다. 본선에서 중국이 속한 조엔 이란-인도네시아-카타르와 같은 팀들이 포진해 있었는데,전력이 가장 처지는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곤 이란,카타르 모두 만만찮은 전력이었기에 조별리그부터 결코 쉽지 않은 행보가 예상되었다.
특히나 코칭스탶은 이란과 맞붙는 1차전에 무척이나 신경썼는데 그도 그럴것이 어떤 연령대 대표팀간의 경기이건 이란축구는 중국축구에 상당히 부담스런 존재로 다가가기 때문임은 우리들도 익히 알고있는 부분...그리고 무엇보다 인테성 감독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은 지난 이란 올림픽대표팀 멤버이자 아시안컵에서도 이란 대표팀의 주전 윙플레이어로 뛰면서 우리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18살의 유망주 호세인 카비가 과연 이란청대에 합류 하느냐 마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그 선수 하나의 이란청대 합류 여부에 따라 중국청대의 기본전술 자체를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이미 동일 연령대를 뛰어넘어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위의 대표팀에서 활약하던 어떤 선수가 다시 동일 연령대 대표팀에 들어갈 경우 그로 인한 팀 전력의 대폭상승은 우리의 이천수나 박지성 그리고 이번 한국청대의 김진규를 통해 알 수 있었고,중국팀 자신도 조우하이빈,자오쉬르 같은 A대표팀 경험자들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상대팀의 이런 선수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카비는 대회직전 컨디션난조로 이란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했던 이란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0-0무승부로 승점1점을 획득한다. 다음 상대인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5-1의 대승을 거두고 다음상대는 중동의 복명 '카타르'였다. 조1위를 확정해야만 부담스러운 일본 U-19대표팀과의 일전을 피할수 있었고 만약 1위를 확정한다면 8강상대는 개최국이긴 하나 약체인 말레이시아였다. 카타르와의 일전에서 덩팡저우의 결승골을 앞세워 1-0으로 승리했고 8강상대 말레이시아는 예상대로 3-0의 승리를 거두었다. 제1차목표인 세계대회출전권을 확보한 중국은 4강전인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예상외의 고전을 펼쳤다. 하지만 후반전 8분 주팅이 행운의 골을 터트리며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상대는 공교롭게도 그해만 3연승을 거둔 한국이었다.
인테성 감독은 한국전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자세였다. 올 해 모두 이겨봤는지라 어느정도 자신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팀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러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 한국이 일본과 치른 준결승 장면을 비디오 테잎으로 입수 해 분석한 후 파주에서 자신들이 2연승을 거뒀던 그 팀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훗날 한국 박성화 감독의 회고담을 들어보면...“결승전 직전 양 팀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 때 중국 선수들이 뭔가 불안한 눈치로 자꾸 한국 선수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더라.”고 했다.
바로 이로인해 인테성 감독은 커다란 전략적 실책을 범하게 되는데...과거 5경기를 치러오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초반부터 정상적인 경기운영을 포기한 대신 한국에게 주도권을 허용하되,체력적 우위는 중국에게 있는 것은 확실하니까 후반전엔 체력이 떨어진 한국에 맹공을 퍼붓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아무래도 인테성 감독은 연습경기에서 한국을 상대로 단 1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던 수비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 팀의 간판스타인 MF조우하이빈이 시리아전에서 부상을 당해 한국전 출장이 불가능 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전략 수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테성 감독이 간과했던 두 가지 치명적인 요소가 이미 결승전을 앞둔 중국청대엔 내재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한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할것이라 확신했던 체력부분으로 중국청대는 결승전 직전까지 무려 2개월이 넘는 장기합숙이 진행중이었는지라 체력은 물론 심리적인 면에서도 컨디션 사이클이 가파르게 하강곡선을 긋는 시기였다는 점이다. 반대로 한국은 박주영의 말처럼 두 차례의 연장전을 치르면서 오히려 어떠한 체력적인 한계점을 초월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 상태였고 예선 초반부터 온갖 어려움을 뚫고 결승에 오른만큼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강력해져 있었다.
두 번째는 바로 수비의 핵 펑샤오팅의 부상으로 인한 한국전 결장이다.
뒤에 선수들의 면면을 소개할 때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펑샤오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중국청대 수비진용의 탄탄함의 정도가 크게 좌우될 정도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이다. 바로 지난 중국 올림픽대표팀 수비라인의 두웨이와 같은 존재로 보면 될 것이다. 이미 파주에서 열린 두 차례 연습경기서 그는 한국 박주영에 대한 완벽한 봉쇄 뿐 아니라 빼어난 공격가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국측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 바 있을 정도이니 결승전에서의 그의 결장은 중국청대가 가시밭 길을 걷게 될 것을 이미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테성 감독은 그의 공백을 런용순이 충분히 커버할 것으로 지나치게 확신했던 것이다. 물론,런용순도 상당한 역량을 갖춘 선수이긴 하지만 분명 펑샤오팅엔 한 수 이상 떨어지는 선수인 만큼 시간대가 문제이지 어느 순간부턴 한계를 드러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결승전. 경기초반 조심스럽게 풀려나가던 경기는 한국의 백승민의 슈팅한방에 전세가 뒤집혔다. 김승용의 코너킥을 골키퍼 구안젠이 펀칭하자 백승민이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이 슛은 수비수의 발을 맞고 나왔지만 이 슈팅 한방을 기점으로 중국은 점점 코너에 몰렸다. 자오쉬르가 예상외로 부진했고 결국 한국의 박주영에게 환상적인 선제골..페널티 에어리어라는 좁은 공간에서 박주영 한 명에게 탄왕송-왕쇼우팅-웨안웨이웨이-류위에 이어 골키퍼 구안젠 까지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이었다. 6분뒤 박주영에게 추가득점을 허용해버렸다.
후반전 '에이스'천타오를 투입하는등 나름 반격을 시도했지만 왕홍량이 오장은에게 비신사적 반칙을 하는 바람에 퇴장당했고 결국 한국에 2-0으로 패하며 대회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종료직후 대륙의 치우미들은 다시한번 대대적으로 감독 이하 선수들을 성토하기 시작했고,선수들 못지않게 오만함으로 부화뇌동 했던 중국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싹 바꿔 인테성 감독의 역량 부족과 선수들의 기술부족을 꼬집으며 비판이 아닌 ‘비난’ 일색으로 그들의 논조를 통일했다.
어떤 언론에선 “한국 거둔 대회 11번째 우승과 중국이 거뒀던 딱 한 번의 우승의 차이가 한국축구와 중국축구의 차이를 그대로 대변하는 슬픈 현실!”이라며 개탄했는데...그나마도 그리 자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중국이 거뒀던 그 한 번의 우승은 과거 한국과 같이 차지한 공동우승이었다는 것이다.
5.네덜란드에서 '초플래티넘 세대'를 재연하다
2005년 1월.. 결승전의 쇼크를 딛고 카타르대회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주축 몇몇이 제외된 상태에서 한국과 대결하였는데 한국팬들과 관계자들은 한국의 완승을 예상했건만 박주영에게 선제골을 허용한뒤 천타오의 어시스트에 이은 루린의 동점골이 터졌고 박주영과 신영록에게 다시 연속골을 허용했지만 다시 추격골을 터트리는등 3-2로 석패하였다. 이날경기에서 탄왕송이 부상당하였다. 원인은 김승용과 부딪힌뒤 코뼈부상을 당했고 그로 인해 대회잔여일정을 모두 접게되었다. 경기뒤 기억나는 말은 전반전 추격골을 성공시킨 루린 : “나는 이번 경기로 한국팀을 처음 경험한 셈인데 한국팀과 시합을 하기 전 내가 그들 시합을 보면 한국은 꽤 맹렬하게 사력을 다하여 뺏는 팀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실제 경기를 뛰어보니 그렇게 인상적인 팀은 아니었다. 우리가 꽉 제어를 하자 그들은 단순하게 길게 연결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물론,그랬음에도 기회를 허용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인테성감독은 대회직후 사임했고 중국축구협회는 독일출신 지도자 '크라우천'을 영입했다. 6월 마침내 개막한 세계청소년선수권. 터키와 우크라이나, 파나마와 같은조에 속한 중국은 이들을 상대로 2승1무를 거두며 '초플래티넘 세대'가 아르헨티나에서 이룩했던 '1골'만 넣고 16강을 이룩했던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다. 2003년 UAE에서 벌어졌던 세계청소년선수권에는 참가못했으니 중국으로선 대회참가 2연속 16강진출의 쾌거였다. 특히 공격수 가오린의 성장은 또하나의 쾌거였다. 크라우천에 의해 대회직전 엔트리에 합류했고 파나마전에선 팀의 4번째 득점을 터트리기도 했다. 비록 16강에서 독일에게 3-2로 석패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본선진출실패, A대표팀의 2006독일월드컵 2차예선탈락등으로 비통에 빠져있던 중국축구계에 희망을 던져주었다. 몇몇은 대회뒤 주광후가 이끌었던 A대표팀에 합류해 한국에서 벌어진 동아시안컵대회에도 참가했다.
6.베이징올림픽을 목표로!
현재 중국축구계에 있어 베이징올림픽 메달은 지상과제이다. 만약 안방에서 조차 망신을 당한다면 안그래도 최근 심한 손상을 입은 중국축구계에 직격탄이 될것이다. 더이상 올라갈수도 없는 최악의 수렁에 빠지고 말것이다. 2006년 11월.. 한동안 조용했던 이팀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베이징올림픽을 향해 출항했다. 트루시에다,본프레레다 했던 감독직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가나를 이끌고 16강에 올랐던 두이코비치에게 돌아갔다. 공격축구를 신봉하며 이것을 자신이 지휘할 중국올림픽팀에 그대로 이식 시키겠다고 약속한 두이코비치는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튼튼한 수비가 전제조건이라며 그동안 비디오 분석을 통해 중국올림픽팀의 여러 문제점들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러한 발빠른 준비자세는 즉각 중국 언론들의 호감을 샀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일.
다음은 두이코비치 감독의 인터뷰 가운데 핵심 부분만을 발췌해봤다.
“중국축구협회와 이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나는 대단히 기쁘다. 그간 나의 능력과 경험으로 이 팀을 맡아 가르쳐 베이징올림픽에서 성공을 거두길 희망한다. 솔직히 말해 중국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맡아 가르치는 것은 나로 말하자면 대단히 거대한 도전, 그러나 이러한 도전을 통해 중국축구에게 선진축구를 심어줄 자신이 있으며 결국 08올림픽에서 충격의 4강신화를 달성하겠다. 준비 시간이 짧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시각부터 657일의 준비 시간이 또한 있고, 이 시간은 우리로 말하자면 무슨 큰 문제가 아니다. 일찍이 내가 교직을 맡은 가나팀 또한 고작 9개월을 조련한 후 독일땅에 들어갔지만 16강에 진출하며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비록 나에게 있어서 중국 올림픽국가대표팀을 맡아 가르치는 난이도는 가나 국가대표팀을 맡아 가르치는 것 보다 더 크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는 중국에 오기 전에 중국 올림픽팀이 치른 최근 시합의 녹화 테잎들을 여러번 봤는데, 이것을 통해 나는 팀에 매우 많은 출중한 선수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공격,미드필드,수비 3선 모두에 핵심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이것은 작전을 중히 여긴 팀이고, 나는 나의 교육을 통해 반드시 그들에게 더 큰 진보를 가져다 줄 수 있을것이라 믿고 있으며 중국 축구팬들에게 08올림픽에서 1부의 만족의 답안을 제출할 것이다.”
두이코비치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본올대와의 친선경기를 관전했고 거기서 670일간의 로드맵을 작성했을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우리 한국 축구팬들에게 25일 저녁에 펼쳐질 이 모습은 어쩐지 낯익은 장면이 아닌가? 그렇다. 지난 2000년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었던 한국대표팀이 20세기 마지막 A매치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당시 기세등등했던 일본대표팀과 치르고 있을 때 경기장 귀빈석 한 켠에서 두꺼운 코트를 차려입고 안경을 낀 초로의 한 사내가 날카롭게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던 그 모습......그렇다. 히딩크. 바로 거기서부터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 쓰여질 한국축구의 신화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의던 타의던 어쨌든 히딩크의 그 모습과 비슷하게 흉내를 내려는 것 같은데......
그럼 중국 올림픽팀도 두이코비치의 이런 모습을 통해 08년의 신화를 예견할 수 있을까? 그건 오직 하늘만이 알 뿐이고, 실제 그러기 위해선 한국축구의 허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은 비단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중국축구가 높아지기 위해선 한국축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나 대표팀을 맡았을 당시에도 잘 해낸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부분...
지금 가나대표팀은 자국 축구 역사상 가장 빼어난 선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또 이 선수들이 한데 모인 집합체이다. 그리고 그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은 이미 세계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기에 9개월이란 조련 시간만 있어도 충분히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물론, 청소년기와 현재 U-21 연령대에서 중국 선수들 개개인의 역량은 아시아에선 한국과 더불어 분명 정상급에 위치한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세계수준은 아니잖은가! 게다가 언제나 중국의 유망주들은 U-21을 기점으로 해가 갈수록 능력이 떨어지거나 정체해왔다. 항상 되풀이 되어왔던 역사다.
개인적으로 제발 이 부분을 두이코비치가 모르고 한 얘기였기를 간절히 바란다!
7.2007년 올해의 모습
1월초. 두이코비치사단은 잉글랜드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첼시와 합동훈련을 가지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고 현지 클럽팀들과 연습경기를 치뤘는데, 올초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터진다. 바로 퀸스파크 레인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벌어진 난투극이다! 이 일로 '주범'가오린은 일찌감치 중국으로 귀국해야만했다. 잉글랜드전지훈련에서 돌아온뒤 가진 첫 대회는 본토안의 또다른 나라! 홍콩에서 벌어진 '칼스버그컵'대회였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베이징올림픽티켓을 확보한 중국은 다른 아시아국가에 비해 조직력을 쌓을 시간이 많았다. 두이코비치취임이후 첫대회였던 칼스버그컵에서 첫경기 호주를 2-0으로 격파하였다. 호주수비수 로버트 콘스와이트가 자책골, 종료직전 지앙 닝의 중거리슛이 터졌다. 결승전 상대는 호주보다 한수아래로 여겼던 자메이카였다. 하지만 왠걸? 자메이카의 빠른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고 결국 사실상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홍콩에서 우승컵을 자메이카에게 내주고 말았다.
5월 우루과이 올림픽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뤘다. 쿠이펭과 주팅의 연속골로 2-1로 승리를 거두었고, 경기 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두이코비치 감독은 "오늘 선수들 플레이에 만족하며 선수들이 전술을 잘 이행해주었다. 하지만 오늘 허용한 골은 우리가 아직 많은 부분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라고 말해 팀 전술 향상에 아직 시간이 필요함을 밝혔다.
이날 상대팀 우루과이의 구스타보감독은 "어려운 경기였고 중국팀 플레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전술이행 능력과 경기력은 오늘 우리보다 나았다"라고 중국팀을 평가했다. 중국은 곧바로 6월에 열리는 남아공 8개국대회와 프랑스툴룽컵에 참가했다. 툴룽컵에서 네덜란드를 누르는 이변을 일으켰고 서서히 두이코비치의 축구가 이식되어 가는것을 확인 할수 있었다. 2002월드컵당시의 한국과 비교하자면 히딩크감독이 컨페더레이션스컵부터 서서히 자신의 전술이 이식되가는것을 느낄수있었다지?
7월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진 북한,일본,보츠나와와의 4개국대회에서 예상밖의 성적을 거두었다. 북한과 무승부,아프리카의 약체 보츠나와에게 조차 홈에서 패하고 만것이다! 중국언론들의 냄비근성을 알아줘야하는 대목이 있는데 불과 한달전만해도 두이코비치를 찬양했던 자들이 홈에서 보츠나와에게 패했다는 이유로 그의 전술과 지도력에 문제를 삼은 것이다.
자국에서 열리는 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이 시작될 무렵, 두이코비치사단은 잠시의 휴식기를 가진다. 올 12월. 다시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소집되었고 지난 14일 창샤에서 벌어진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30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이날경기에서 양팀은 각각 골대를 한개씩 맞추었다. 며칠뒤 광저우에서 비공개평가전을 치루었는데 결과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19일 자국의 슈퍼스타 '샤오 지아이'가 활약하는 분데스리가 에네르기 코트부스와의 평가전에서는 주팅의 선취골에도 불구하고 경기종료 4분전 어반 스켈라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허용하며 올해를 마감한다.
8.멤버 소개 및 스타플레이어
GK
구안젠:04~05년 중국청소년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던 선수이다. 신체조건은 크지않으나 공중볼처리와 반사신경이 뛰어나며 한국의 김영광과 유사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이다. 04년 툴룽컵 직후 당시 중국 A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아리에 한도 대표팀 발탁을 고려했을 정도이다.
DF
펑샤오팅:186의 건장한 신체조건을 갖춘 중국청대 수비의 핵으로 마치 지난 중국 올림픽팀의 두웨이의 존재감과 똑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홍명보의 지능적인 부분과 김태영의 맨마킹 능력 부분을 고루 갖춘 선수로 무엇보다 그의 진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수비수임에도 보여주는 빼어난 공격 기여도이다.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자주 득점하고 있으며 과거 홍명보가 그랬듯 기습적으로 최후방에서 치고 올라와 공격수들에게 촌철살인의 스루패스를 넣어주기도 한다. 현 중국C리그 ‘최연소 득점선수’와 ‘최연소 팀 주장’ 두 개의 자랑스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2년전 프랑스 프로리그 명문 낭트 팀에서 입단테스트를 받기도 했는데,그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점이 워낙 큰 것이 아시아 청소년대회 결승전이 끝나고 중국팀의 한 선수가 박주영의 선취골을 아름답기까지 했다고 평가하면서 “만약 펑샤오팅이 결승전에 나왔다면 그는 결코 그런 골을 넣진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탄했을 정도였다니 펑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정도인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수려한 외모까지 갖춰 두웨이와 더불어 장래 중국축구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안웨이웨이 : 182의 신장을 갖추었으며 4백에서 펑샤오팅과 함께 중앙수비를 담당하는 전투적인 센터백이다. 파이팅이 넘치다 못해 옐로카드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상당히 거친 장면까지도 종종 불사한다. 어린 나이에 슈퍼리그 명문 가운데 하나라는 산동에서 주전 자리를 꿰찰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런용순: 역시 186의 탁월한 신체조건을 갖춘 센터백으로 확고부동한 팀내 주전 수비수라기 보단 주로 펑샤오팅의 백업멤버로 활용되는 선수이다. 몸싸움에 능하고 제공권도 수준급이나 무엇보다 급격한 방향전환 등 순간동작이 느리고 보폭이 넓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청소년대회 결승전서 한국의 박주영에게 당한것도 바로 이것에 기인했다.
탄왕송 : 4백에서 오른쪽 윙백을 보는 선수로 역시 스피드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오버래핑시 측면침투에 이은 크로스는 매우 날카롭다는 평가다. 빼어난 슛팅력도 갖추고 있다. 김승용과는 카타르에서의 악연이 있다.
MF
하오준민: 2003년 핀란드 U-17세계 청소년선수권 대회 중국대표팀 멤버로 참가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잉글랜드의 첼시 등 몇몇 구단에서 입단테스트를 제의를 받았던 현 중국올대의 오른쪽 날개이다. 체격조건은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개인돌파가 특기로 2005년 8월 파주에서 가진 연습경기 1차전서 한국청대 박희철을 농락하다시피 하며 천타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했다. 그 경기가 끝난 후 박성화 감독조차,“하오준민이 워낙 잘했다.”고 높게 평가했을 정도.
자오쉬르 : 186의 좋은 체격조건을 갖춘 미드필더로 18살의 나이에 명실상부한 중국 A대표팀에 뽑혀 동아시안컵,아시안컵,월드컵 예선 등 굵직굵직한 대회를 이미 경험해 노련미가 상당하다. 자라오면서 U-16,U-19는 물론 작년 U-23대표팀에도 뽑힌적이 있었을 만큼 엘리트코스를 두루 거치는 중으로 청대에선 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데 그와 콤비를 이루는 조우하이빈이나 왕쇼우팅이 주로 수비에 비중을 두고 자오쉬르는 그 역량을 공격에 집중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빼어난 슛팅력이 바탕이 된 득점력을 갖췄다는 얘기.
쿠이텡:2004년부터 올림픽팀과는 별도로 훈련된 '08팀'출신이다. 독일출신 클로젠의 지휘아래 2년간 독일에서 훈련했던 선수이고 두이코비치 부임이후 여러차례 득점을 터트리며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FW
주팅 : 현재 중국올대 포워드 진용에 포진한 선수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확보한 선수이다. 빠른 스피드와 제공권을 함께 갖췄으며 득점력은 현재까지 나타난 데이터에 근거하면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들에 비해 가장 탁월하다. 무엇보다 두이코비치 감독의 높은 신뢰를 받는 이유는 일단 볼을 빼앗기면 최전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압박하는 그 자세일 것다.
천타오 : 팀내 최고의 기술능력과 순간 스피드를 자랑하는 중국이 기대하는 공격수이다. 소속팀 창사에서도 단연 주전 포워드로 19살의 나이에 올시즌 팀이 기록한 골의 약 30% 정도를 혼자 도맡아 기록했을 정도의 득점력을 자랑한다. 비록 조우하이빈,자오쉬르,펑샤오팅 같은 선수들에 비해 국가대표 데뷔는 가장 늦은 2004년 11월에 했지만 이미 18살 때부터 자국 언론들로부터 꾸준히 ‘시간이 문제일 뿐 반드시 국가대표로 뽑히고야 말’ 선수라는 칭찬을 받아왔다. 실제 그에 대한 기대가 어느정도냐 하면 2004년 11월17일 홍콩과의 월드컵 2차예선 그야말로 ‘生死의 대결’을 앞두고 골결정력 부족으로 한창 비판받던 리이가 대표팀 엔트리에 오르자 일부 언론들과 매우 많은 치우미들은 “리이를 넣을바엔 차라리 중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천타오를 기용하라!”며 아리에 한 감독에게 압력을 넣었을 정도였다.킥도 정확해 코너킥,프리킥 등 중국팀이 얻어낸 플레이스킥의 대부분을 그가 책임지고 있다.
마오지안칭 : 2003년 핀란드 U-17세계 청소년대회에 참가했던 중국청대 주전 골잡이 출신으로 이미 그 대회 예선을 겸했던 2002년 UAE U-16아시아 청소년대회때부터 놀라운 골결정력을 과시한 바 있다. 탄탄한 신체조건에 기술적인 역량도 갖춘 중국 포워드로는 보기드문 스타일의 선수인데 프랑스 툴롱대회 브라질과의 3~4위전에서 그가 터뜨린 기술적인 결승골 장면은 아직도 중국 치우미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한다.
덩팡저우 : 이미 4년여전부터 우리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선수. 중국 프로축구 최고 명문 다롄 스더 유스팀이 배출한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잠재능력을 높이 평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거액을 지불하며 데려갔을 정도이다. 하지만...현 시점에선 빛이 많이 퇴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아직은 설 자리가 없기에 벨기에 리그로 임대되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진 않으나 현재 잉글랜드 언론들은 물론 맨체스터 클럽 내부에서도 덩팡저우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자라나는 형편...무엇보다 비슷한 연령대의 자국 잉글랜드 출신 루니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덩팡저우에겐 크나큰 악재로 작용하는 중이다. 이번 시즌 주로 리저브팀에서 뛰고있으며, 이 중국 소년은 현재의 시련은 자신을 단련시킬 최고의 기회로 여기며 훗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의 주전 포워드자리를 노리고 있다.
톱스타
조우하이빈(MF):어린시절부터 축구영재로 소문났고 그의 플레이를 한번본 중국 A대표팀 아리에 한 감독은 주저않고 그를 대표팀에 선발했다.
그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최고의 영광을 누린 조우하이빈은,이미 그 해 연말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한국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우리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어느정도 낯익은 선수이다.
흔히 187의 신체조건을 갖춘 중국팀 수비형 미드필더라면 특유의 거친 몸싸움과 압도적인 제공권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하는 선수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기술형에 더욱 가까운 미드필더로,공격 작업시엔 안정된 볼트래핑과 정확한 패싱능력을 선보이고 심지어 직접 득점을 올리는 횟수도 상당하다. 수비시엔 비상한 두뇌회전을 바탕으로 상대방 패싱의 흐름을 예측해 한 발 먼저 끊어내는게 이 선수의 주된 특기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선배이자 중국 A대표팀의 미드필더인 리티에와 매우 흡사한 선수라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두 선수의 9살 차이라는 결코 적잖은 연령의 갭에도 불구하고 조우하이빈이 리티에 보다 조금 더 낫다는 성급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점도 군데군데 노출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 좋은 신체조건을 100% 활용하기엔 아직 신체 밸런스가 완벽하게 잡혀있지 못하다 보니 자세가 다소 불안하단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를 결코 간과할 수 없는게 한국의 조병국이 2003년 동안 각급 대표팀 경기와 K리그에서 보여준 치명적인 실수는 청소년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친 조영증,김호 감독이 늘 지적했던 자세불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조우하이빈 입장에서도 중국은 물론 아시아 수준을 뛰어넘는 미드필더가 되기 위해선 하루바삐 개선해야 할 부분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아직 마인드 콘트롤 부분에서도 미숙해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이지만 이 부분은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할 것이므로 그다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이미 유럽의 주요 클럽들이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하고 올 7월 동남아4개국 아시안컵대회 본선에선 그의 플레이를 직접 보기위해 결코 적잖은 스카우터들이 중국 경기에 몰려들었다 한다. 만약 그 역량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한다면 그는 선배 두웨이와 더불어 유럽의 유수 클럽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값어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첫댓글 그렇근요
너무 길다 글이..그러나 다 읽었다..
길어서 보기가싫다 ㅡ,.ㅡ
켁 누가썻노 글진짜잘쓴다
덩팡저우 퍼거슨이 알아보고 영입한게 아니라 길 사장이 데려온걸로 알고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