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골 야생화
삼월 둘째 일요일이다. 근교에 봄이 얼마만큼 왔는지 궁금하다. 용추계곡으로 들어 야생화를 살피려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도 되겠으나 진례산성을 넘어 길고 긴 임도를 걸을 예정이라 창원중앙역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215번 버스를 탔더니 도청과 역세권 상가를 거쳐 금방 창원중앙역에 닿았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 들머리로 향했다.
등산 안내소에 이르니 휴일 아침을 맞아 회사팀인지 동창회인지 단체 산행객이 나보다 앞서 걸었다. 아카시를 비롯한 낙엽활엽수는 아직 잎이 돋는 기미가 없어 나목은 삭막해 보였다. 지난겨울은 비가 잦아 바위에 부딪힌 계곡물은 포말을 일으켜 소리를 내면서 흘러 여름 장마철과 같아 보였다. 용추정을 지나면서 등산로 바닥에 핀 보라색 고깔제비꽃이 보여 눈높이를 맞추었다.
제비꽃은 종류가 여럿인데 용추계곡에선 고깔제비꽃이 먼저 피고 남산제비꽃도 연이어 개화를 서두르지 싶다. 비음산으로 연결된 가파른 날개봉 비탈에는 연보라 현호색이 무리를 지어 피어났다. 이즈음 용추계곡 응달에서 개체수가 흔해 희소성이 다소 떨어져 야생화 탐방객에겐 무덤덤 스쳐 지나는 현호색이다. 용추1교부터 개울을 건너는 목책 보도교에서는 물소리가 여전했다.
겨우내 삭막한 골짜기에서 청청한 잎맥을 간직했던 맥문동은 난초처럼 싱그러웠다. 반(半)상록인 쥐똥나무도 새봄이 되니 이파리가 더욱 파릇해졌다. 용추2교를 지난 등산로를 벗어나니 북향 돌너덜 틈새 피는 노루귀가 눈길을 끌었다. 노루귀는 흰색과 분홍색 두 가지인데, 거기는 흰색으로 피는 노루귀였다. 진해에서 왔다는 한 사내는 노루귀 앞에 엎디어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었다.
용추계곡에는 까치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산자고가 흔한데 잎줄기가 솟아올라 곧 난초 같은 꽃을 피우지 싶다. 볕 바른 자리 돌부리 사이 부엽토가 쌓인 가랑잎을 비집고 자라는 산자고였다. 백합과 알뿌리로 종양을 다스리는 약초로 쓰여 시어머니가 등창이 생긴 며느리를 위해 뿌리를 캐 빻아 병을 낫게 해 생긴 이름이 ‘자애로울 자(慈)에 시어머 고(姑)’를 붙여 산자고라 불린다.
용추5교에서 출렁다리를 지난 쉼터에는 쌍둥이로 착각할 만큼 얼굴이 닮은 모녀가 앉아 정담을 나누었다. 중고등학생으로 여겨지는 앳된 딸은 신학기 초인데 엄마를 따라 산행을 나섬이 기특해 보였다. 우곡사 갈림길에서 포곡정을 향해 가다가 응달 물가에 가라는 괭이눈이 보여 사진에 담았다. 습기가 많은 계곡에서 이른 봄에 파릇한 잎이 돋아 고양이 눈처럼 생긴 노란 꽃이었다.
너럭바위 쉼터에 이르기 전 소나무 아래 노루귀 자생지로 가 봤다. 이미 야생화 탐방 선행 주자가 다녀가 가랑잎이 밟혀 길이 반질반질했다. 자잘한 솜털이 붙은 가느다란 꽃대에서 앙증맞게 핀 분홍 노루귀였다. 거기는 용추계곡에서 군락을 이룬 노루귀 자생지라 야생화 탐방객이 잊지 않고 찾는 명소다. 아까 흰 노루귀를 카메라에 담던 사내도 내 뒤를 따라 올라와 다시 만났다.
너럭바위 쉼터를 지난 응달 숲 바닥에는 잎이 얼룩덜룩한 얼레지가 자주색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려 했다. 그 어디쯤에서 잎맥이 나오면서 하얀 꽃을 피우는 홀아비바람꽃도 꽃잎을 펼치려고 했다. 일전에 의림사 계곡에서 본 변산바람꽃은 저무는 즈음인데 바람꽃은 세부 종류와 지역에 따라 개화 시가가 차이가 났다. 늦여름 주황색 꽃을 피우는 상사화는 잎줄기가 시퍼렇게 자랐다.
포곡정에 닿아 진례산성 동문으로 올랐다. 성터 산마루에서 몇몇 지기들에게 폰 카메라에 담은 야생화들을 카톡으로 보냈다. 용추계곡으로 들어 무르익은 봄꽃 열차에 무임 승차해 실시간 남긴 현장 사진이라고 전했다. 동문 터에서 비탈을 내려가 진례 송정으로 가는 길고 긴 임도를 걸었다. 길섶에 전호를 닮은 사상자와 엉겅퀴를 몇 줌 캐 들녘을 지난 진례면 소재지까지 걸었다. 24.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