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좀 한가져서 출근하고 나서 짧은 글 투척하고 갑니다. 아침에 편히 보시라고 올리는건데, 재밌어하시면 종종 이 컨셉으로 올려보겠습니다. 다만 저는 현대사만 다룹니더..
-
1990년 1월 22일 있었던 사건 중, 제가 봤을때 가장 역사적 사건이라 할만한 사건이 뭐 있을까, 좀 생각해보다가 이 사건을 골랐습니다. 많은 분들도 아시지만 이 사건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전개에, 특히 87년 체제 이후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을 골랐습니다.
3당 합당.
이 사건은 민정, 민주 공화당이 합당한 사건입니다. 1월 22일 오전 민주정의당(노태우),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 이 3인은 청와대에서 긴급회동, 공동발표문을 통해 세 당의 합당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민주자유당이라는 새로운 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른바, '내란의 힘'이란 정당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실상 양당체제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 정치사에서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1월 22일은 중요한 날입니다. 내란의 힘 같은 당은 오늘 생일파티라도 해야할텐데, 어쩌면 숨기고 싶은 과거라서 그럴 일은 없겠죠.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3당 합당은 군부를 축으로 한 구세력과 신세력, 사실 5.16군사쿠데타와 12.12군사쿠데타를 상징하는 두 세력이 김영삼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87년 민주화 이후 제도권 정치영역 내에 안착하게 만들어준 '최악'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하게만 본다면,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에 시달리던 노태우가 정치적 난관 타개를 위해 김영삼에게 SOS를 요청했고, 그 결과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곘지만, 긴 흐름에서 본다면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엿을 먹인, 김영삼이 뒤통수를 후려갈긴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폭압 아래서 민주화를 위해 길고 길었던 투쟁을 해온 모든 이들에 대한 최악의 배신이었습니다.
역사엔 IF가 없다지만, 그래도 IF가 없으면 재미가 없죠. 상상 가능할까요? 3당 합당이 없었더라면? 민정당(신군부), 공화당(유신)의 유산이 제도권 정치내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군부독재의 역사를 좀 더 제대로 청산할 수 있었을까? 이 역시도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이 알려주듯이 극우 콘크리트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존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쪽을 뽑는 사람들이 그때에도 36%가 있었던거죠. 하지만 반대로, 김대중(27%), 김영삼(28%)을 합치면 반대도 가능했던 것이 그때의 정치적 지형입니다. 김대중-김영삼의 55%는 민주당 지지자와 중도층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선입니다.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은 자신의 지지층을 지키고, 중도층을 흡수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왜 김영삼은 함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DJ가 아니고 군부독재를 상징하는 세력과 손을 잡았을까? 김영삼과 DJ의 정치적 견해가 달랐던 것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했던건 그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영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 김영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긴 생애로 볼 때, 김영삼은 늘 기회주의자 포지션을 지켰습니다. DJ에게 늘 열등감을 느꼈고, DJ처럼 목숨을 건 투사라고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김영삼이 능력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능력과 자산이 있었고, 깡다구도 있었습니다. 다만, DJ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민주당 계열 내 상징성 앞에선 빛이 바랬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DJ는 박정희가 누구보다 싫어했고, 죽이려 했던 존재였고, 신군부 역시 DJ를 죽이려 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DJ가 국내에 들어오는 것도 막으려 필사적이었습니다. 그 DJ를 이기는것이 김영삼 평생의 목표였습니다.
3당 합당은 쉬운 선택입니다. 노태우그 득표한 표 + 자기가 확보한 표(경상도의 압도적 지지)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김영삼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후, 군부를 그대로 놔둔 것도 아니었고 5.18진상조사 등 군부에 대한 청산작업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군부의 유산과 잔당이 제도권 정치 내에 그대로 남아서 정치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계엄이후 내란을 옹호하고 민주주의 역사, 법치주의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내란의힘이 어디에서 온 정당일까, 그 근원이 무엇인가, 란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아아-하고 이해되는 지점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 때문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습게 보지만, 역사의 무게란 그런 것이죠.
여기까지, 오늘 1월 22일의 역사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아 참, 이걸 빼먹었네요. 사실 3당 합당과 관련하여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무효입니다! 이것이 어찌 회의입니까? 이의가 있습니다. 이의가 있으면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가 어디 있습니까? 토론과 설득이 없는 회의도 있습니까?" - 이름 모를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초선의원의 외침.
진짜 끄읏!
첫댓글 김영삼의 민주화 운동의 공은 인정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최악의 행보와 지금의 영호남 구도를 더욱 공고화한 것은 3당 합당(야합)이었습니다.
지역주의 이야기를 못했는데, 좋은 지적이십니다. 오래전부터 DJ를 지지해온 구도, 여촌아도와 호남이란 지형에다가 경상도 특히 PK를 강하게 끼얹어서 포위해버렸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이거덕에 하나회 때려잡았죠
김영삼의 최고 업적으로 내세우는것 중 하나지만, 3당 합당이 없었다면, 하나회 청산 못했을까요? 오히려 더 잘됐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역사의 재미란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어차피 알자회 생겼고 삼당 합당으로 전두화 노태우 처벌에 소극적이다 국민여론 안좋아지니 국면전환용 처벌성격이 강했기에 그리 좋게보지는 않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ㅜㅜ
그 깡다구와 배짱, 원칙.
재미지고 영양가 있는 현대사 한토막 소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역사 한토막과 무관하게 저는 김영삼 하면 외환위깁니다. 98군번인데 별 생각없이 만19세 입영 신청했다 당시 신병으로 미어 터질 때 가는바람에 보급부터 다 엉망진창이었습니다. ㅜㅜ
외환위기 자체가 다 그의 탓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자리라는 건 그거마저 다 그의 탓으로 떠안는 자리라, 김영삼의 공과를 생각하면 공보다는 과가 압도적으로 크다 할 거 같습니다.
YS하면 imf인 시절이 있었는데 한국사회에서도 imf가 인제는 먼 과거가 되어서 희석되었나봐요
우리나라 근대사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진짜 너무 충격적이였죠. 김영삼이... 그래도 합당해서 권력은 특유의 정치력으로 잡았지만, 지금남아 있는 지역주의 폐해가 너무 크긴 하네요.
당시 신문헤드라인만 봐도 그 충격이 느껴지죠ㅋㅋㅋㅋ예고없는 합당
김영삼에 대한 생각은 제 생각과 같네요. 마지막 노통 사진은 참.. 울컥합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사진입니당
역시 이것도 가정일 뿐이지만 13대 대선에서 김영삼이든 김대중이든 한편이 양보하여 양김이 합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많은게 바뀌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쉬운거고요.
김대중 대통령 육성회고록을 보니 그때 양보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김영삼측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하더라구요. 하튼..
재밌습니다. 더 써주세요!
김영삼은 진짜 좋게 생각할 수가 없죠. 지역주의가 완전 뿌리 내리고 호남 배제 등..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노태우가 합당하자고 했지만 거절했죠. 김영삼은 권력욕이 엄청났다고 봅니다.
김영삼은 진짜 큰 사람이었지만 역사적 평가는 그 큰 존재감만큼이나 크게 갈릴 정치인이라고 봅니다.
YS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DJ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다고 생각해서...저는 저 둘의 순서는 아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