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돌려보내심
1 여섯 살 되시는 병자(丙子 : 道紀 6, 1876)년에 풍물굿을 보시고 문득 혜각(慧覺)이 열려 장성한 뒤에도 다른 굿은 구경치 않으시나 풍물굿은 자주 구경하시니라.
2 이 해에 성부께서 가세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들 학봉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려고 태인 장군리(泰仁 將軍里) 황씨 집성촌에서 황준재(黃俊哉)라는 이름 있는 훈장을 구하여 들이시거늘
3 훈장이 어린 학봉께 “도령, 공부해야지?” 하고 하대하니 학봉께서 물끄러미 훈장을 쳐다보시다가
4 스스로 천자문을 펼치시어 ‘하늘 천(天)’ 자와 ‘땅 지(地)’ 자를 집안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읽으시고는 책을 덮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시니라.
5 훈장은 그 신이하신 기운에 눌려 어린 학봉이 노시는 모습만 바라볼 뿐이더니
6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공밥을 얻어먹기도 민망하여 다시 학봉께 “도령, 공부하셔야지요?” 하고 조심스레 여쭈거늘
7 “하늘 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노시다가 시간이 되면 가시지요.” 하시는지라
상제님께서 6세 되시던 해에 천자문의 '하늘천 땅지'를 읽으시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다'하신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아시겠지만, 천자문은 4언절구시 250개로 구성된 대서사시입니다.
天으로 시작해서 也로 끝나는 천자문속에는 삼황오제의 이야기와 文, 史, 哲이 모두 담긴 인문종합교양서입니다. 그런데 첫 구절이 바로 '천지현황' 이고 상제님께서는 이 첫구절 '천지'를 읽으시고 책을 덮으신 것입니다.
이 대목을 좀더 실감나게 느낄수있는 것이 바로 '기대승의 천자문 일화'입니다.
기대승의 천자문 일화
기대승은 아시다시피 퇴계 이황과 서신으로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조선시대 유명한 성리학자입니다.
그가 어린 시절 다섯살때 훈장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고합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7살때까지 천자문의 첫구절인 '천지현황' 구절에서 한 자도 더 나아가지못했다고합니다.
화가 난 훈장은 소의 고삐를 잡고 '하늘천! 할때 고삐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땅지! 할때 고삐를 땅으로 향하게 해서 하늘천하면 소가 고개를 들고 땅지 하면 고개를 떨구게하는 걸 보이며 '이 소도 하늘천과 땅지를 알건만 너는 어찌 모르느냐!"라고 혼내키더랍니다.
이에 기대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합니다.
'天地玄黃을 三年讀하니, 焉哉乎也를 何時讀고'
천지현황을 삼년간 읽었으니, 언재호야를 어느 세월에 읽을것인가...
언재호야는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이니
기대승은 이미 천자문의 천자를 모두 알고있었으나, '천지현황'
즉 '하늘은 푸르고 땅은 누렇다' 이 네 글자에 담긴 뜻, 보다 정확히는 '천지'를 알고자 했으나 3년간 알지 못해 그 다음 글자를 읽지 않은것입니다.
이에 훈장이 '너는 이미 천자를 모두 외우고 시까지 쓰는구나 그런줄도 모르고 소보다 못하다했으니 미안하다'라고 했답니다.
천재 성리학자 기대승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자했던 학문의 의미와 깊이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상제님께서 '천지'를 크게 읽으시고 책을 덮으신 그 모습에서 우주의 참 하느님으로서의 기상과 풍모를 성성히 느끼게합니다.
글쓴이 : 흑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