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우신문 편집국장이 카톡으로 보내준 종이신문 칼럼 PDF
경우신문(警友新聞) 편집국장의 성의가 대단합니다.
이번 달에도 고정 칼럼 필자인 제게 가장 먼저
<지면 파일>을 카톡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종이신문은 며칠 후 우편으로 배달될 것입니다.
전국 경찰관서와 경우가족 등 경우신문 독자가 참 많습니다.
【윤승원 칼럼】
어느 평범한 전직 경찰관 아내의 신선한 ‘역발상’
― 산책길 남편 바지 뒷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넣어 주는 이유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아니, 저럴 수가…’
산책길에 못 볼 것을 보았다. 어느 여자고등학교 앞길이었다. 60대 남자가 개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개가 갑자기 쭈그려 앉더니 길바닥에 똥을 쌌다. 견주(犬主)의 손에는 배설물 뒤처리 용품이 들려있지 않았다.
개가 ‘볼일’을 마치자 주인은 배설물을 슬슬 발로 밀었다. 길가에는 가로수 나뭇잎이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개의 배설물을 발로 굴려 길가로 밀더니, 낙엽으로 살짝 가려 놓았다.
“그러면 안 돼요.”
뒤따르면서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 섞인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 ‘비양심, 몰상식’을 목격하고도 묵인하는 것은 더 큰 괴로움
하지만 못 본 척 지나치기로 했다.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조금도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앞섰다. 자칫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지나치자니 속이 끓었다.
비양심, 몰상식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묵인하자니 더 큰 괴로움이었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누군가 뒤따르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당당하게 개를 앞세우고 걸었다.
이런 일이 흔히 벌어지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낙엽으로 가렸으니 그 정도면 뒤처리를 잘한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학생들이 빈번히 오가는 길이다.
차라리 가랑잎으로 가리지 않았으면 행인들이 ‘무서워’ 비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살짝 가려 놓았으니 이미 배설물이 아니다. ‘지뢰’다.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오물을 살짝 은폐해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견주.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감정을 다독이기 어려웠다.
행인들이 무심코 걷다가 가랑잎으로 위장된 것을 밟을 것이다. 그것을 밟은 행인들의 낭패감이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 평범한 보통 사람 상식을 뛰어넘는 ‘어른’의 민망한 모습
도덕과 윤리를 중시하는 아름다운 전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력을 가졌다고 해서 ‘어른’ 아닌가. 평범한 보통 사람의 기초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어른의 민망한 모습이었다.
산책길 2시간여 동안 ‘얄미운 개 주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요즘 동네 이웃끼리 가장 많이 교류하는 이야기가 ‘반려동물’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웃 간 가장 활발하게 공유되는 주제가 반려동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개는 ‘동물’이다. 똥오줌 가리지 않는다. 사납게 짖거나 언제 사람을 공격할지 모른다. 돌발적인 피해도 발생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급격히 늘었지만, 외출 시 준수 사항을 지키지 않는 일부 견주들 때문에 나는 산책길에 불쾌한 경험을 자주 한다.
“【경고】 ‘양심’에 호소합니다. 주변 개똥 제발 치우세요.”
지역 주민이 오죽 화가 났으면 가로수에 이런 경고문을 부착해 놓았을까. ‘양심’에 호소하는 지역 주민의 화난 얼굴이 읽힌다.
◆ ‘법보다 양심이 상위 개념’이라는 전직 경찰관 아내의 ‘생활철학’
집에 와서 산책길 목격담을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뜻밖에 이런 말을 했다.
“어디 가서 그런 불쾌했던 목격담 꺼내지도 마세요.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개 주인을 보더라도 감정적으로 나무라지 마세요. 배설물을 발견한 사람이 재빨리 치우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 피해 보지 않게 먼저 본 사람이 치우면 돼요. 그게 바로 공덕 아닌가요.”
아내는 이런 것을 굳이 ‘선행(善行)’이라 표현하지 않았다. ‘선행’이란 개념보다 ‘공덕(功德)’이란 말이 더 듣기 좋았다. 가정주부의 신선한 ‘역발상’에 공감했다.
현실적으로 절실한 문제지만 나는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고마운 아이디어’ 제공이었다.
아내는 평범한 가정의 70대 할머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손자 예뻐해 주고, 재래시장에 가서 건강에 좋다는 식재료 사다가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가정주부다.
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법보다 양심이 상위 개념’이라는 생활철학이었다.
한평생 경찰관 아내로 살아오면서 일선에서 단속 임무를 수행하는 남편의 수고로움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양심’ 있는 국민이라면 경찰관을 굳이 고생시키지 않아도 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평범한 시민의 생활덕목이었다.
◆ 곳곳에 숨어 있는 ‘시한폭탄’ 미리 제거하는 일도 ‘공덕(功德)’
우리 사회에는 ‘지뢰’와 같은 위험 인자가 곳곳에 숨어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다. 이 같은 ‘지뢰’를 미리 발견하여 제거하는 일에는 법적인 단속과 처벌 권한이 있는 사람만의 책무가 아니다.
양심을 바탕으로 한 반듯한 품성이 우리 사회의 ‘지뢰 제거’ 역할을 한다. 이런 일들은 시민의식으로 발전해야 선진국이다.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보여준다.
아내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꼭 챙겨주는 게 있다. 검은 비닐봉지다. 이것을 잘 접어서 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준다.
이 비닐봉지는 다용도(多用途)다. 산에 가면 깔개로도 사용하고, 얼마 전엔 맨발 걷기 산책로에서 깨진 소주병 조각을 주워 담기도 했다.
길거리에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개똥’도 여기에 담아 치운다. 나는 이것을 ‘비닐봉지’라 하지 않는다. ‘공덕 봉지’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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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용(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 관장) 2024.05.06.11:55
지뢰 제거, 공덕 봉지~~
마음에 크게 와 닿는 참신한 언어입니다.
양심이고 시민정신입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박 작가님이 정곡처럼 짚어 주신 핵심 주제로 하여금
저의 졸고가 더욱 독자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듯싶습니다.
<양심>과 <시민 정신>을 되살려 주신 박 작가님의 격려 댓글입니다.
전국 경찰관들과 경우 가족들이 큰 공감의 박수를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