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으로 퇴학의 중징계를 받은 가해 학생이 교육청 재심에서는 출석 정지로 징계 수위가 대폭 낮아진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징계 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이처럼 징계에 불복해 학교와 교장, 교사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한 학부모의 법정 소송도 해가 갈수록 증가합니다. 일각에서는 2012년부터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토록 한 것을 이유로 지적합니다. 내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라면, 혹은 피해 학생이라면 어떨까요. 법정으로 가는 학교폭력, 어쩌면 여러분도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학교폭력을 대하는 올바른 학부모의 자세를 생각합니다.
취재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사진 전호성
도움말 김서규 교사(경기 유신고등학교)·조남주 교사(서울 상계고등학교)·전홍관 변호사(산성 로앤아이피)·최민희 팀장(푸른나무 청예단 학교폭력SOS지원단 통합지원팀)·황유진 교사(서울 연희중학교)
자료 <2016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분 관련 소송 현황>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 북> 참고 교육부
편집부가 독자에게 ...
학교폭력, 예방만큼 소중한 치유의 시간 학교폭력의 피해 학생 수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학교 일선에서는 학교폭력 문제가 여전합니다. 대상 연령이 더 어려졌고, 언어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처럼 교묘하고 은밀한 유형의 학교폭력이 등장했으니까요.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발생한 학교폭력을 어떻게 잘 해결할지도 고민할 때입니다. 그런 면에서 학교의 징계 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학교폭력으로 이미 한 번 멍든 아이들이 어른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입는 건 아닐까요. 학교폭력을 치유하는 과정, 예방 활동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_ 홍정아 리포터 |
Part 01 통계로 본 학교폭력 현주소
가장 많은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 피해 장소는 교실 안
교육부에서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교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학교폭력은 소폭 줄었다. 하지만 증거가 남지 않거나 지능화한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은 증가하는 추세다.
학교폭력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그 양상도 변화를 거듭한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괴롭힘에서 출발한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폭력,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 처음엔 친구들 사이의 장난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2차 학교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학교폭력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 신체 폭행, 스토킹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학교폭력의 피해가 발생하는 공간은 주로 학교 안, 그중에서도 교실이 가장 많았다. 학교 밖에서는 사이버 공간, 놀이터, 학원 주변 등의 순이었다(그림 2 참. 조)
서울 상계고 조남주 교사는 “학교폭력 징후는 교사뿐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도 파악할 수 있다. 부모와 대화가 적고, 자신의 문제 행동에 대해 이유와 핑계가 많으며 화를 잘 내는 아이, 사 주지 않은 고가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친구가 빌려준 것이라고 둘러대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해 학생의 징후로 의심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해학생 부모 소송제기 건수 해마다 늘어
학습·또래·집단 부적응 학생이 주변 학생과 마찰을 일으키고, 이것이 주변의 친구나 교사, 학교 제도의 탓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한 학생을 “정신 똑바로 차려, 왜 만날 그러니?”라고 꾸짖으면, 교사의 폭언과 편애를 문제 삼아 학교와 교장,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심지어 그 때문에 아이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생겼다며 법정 소송을 준비하는 학부모가 있을 정도다.
경기 유신고 김서규 교사는 “과거와 지금은 학교폭력의 양상이 다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끝까지 법리를 다투려는 경향이 커졌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내 처분을 두고 특히 가해 학생 학부모들이 재심 청구는 물론 법정까지 가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풀이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처분 관련 소송 현황’에 따르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처분에 불복, 재심을 청구한 건수가 2013년 764건에서 2015년 979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그림 3 참조). 징계에 불복해 학교·교장·교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도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그림 4 참조).
산성 로앤아이피 전홍관 변호사는 “종전에는 교사가 학생들을 자율적으로 지도하면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바로잡았다. 지금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학부모들의 학교폭력 징계와 관련한 법률 자문 요청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라고 전한다.
Part 02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내 전문가 참여 늘려야’지적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가해 학생 징계 처분은 그동안 명확한 기준이 없어 비슷한 폭력에도 학교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사례가 많았다. 과도한 처분의 결과는 해마다 1천 건 이상의 재심 청구와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푸른나무 청예단 학교폭력SOS지원단 통합지원팀 최민희 팀장은 “가해 학생 학부모 중엔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해, 피해 양측 학부모의 감정 싸움이 법적 다툼으로 번지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정서적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더 큰 상처를 입는다”고 지적한다.
징계 처분에 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이해하고 화해, 조정하기보다는 승패 논리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폭력 조치 사항에 따라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아 꼬리표처럼 학생을 따라다닐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 조치 사항은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1호 서면 사과부터 9호 퇴학 처분에 이르기까지 9단계로 분류해 관리한다(그림 1 참조).
가해 학생에게 봉사·출석 정지 등의 처분을 내려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안일한 대처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현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2014 년 시행된 ‘학교폭력 예방·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심의기구다. 전체 위원 중 과반 이상 학부모가 참여한다. 교사를 포함해 법조인과 의사, 경찰 등을 위원으로 위 촉할 수 있다. 주로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와 징계, 가해·피해 학생 간 분쟁 조정을 심의하는 역할을 맡지만, 기구의 역할과 운영방식, 인적 구성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 변호사는 “피해 학생 학부모는 가해 학생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내 자녀가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반면, 가해 학생 학부모는 자녀의 장래에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고려해 최소한의 조치만을 원한다. 이렇게 상반된 의견이 충돌하니 징계 처분에 불복하는 학부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안에 전문가 참여도를 높이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현재 국회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구성 시 외부 전문가를 과반수 이상 위촉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가해·피해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상처 치유와 선도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시급하다.
교육부, 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 판단해 징계 수위 결정
교육부는 지난해 9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기준을 확정해 발표했다(그림 2 참조). 가해 학생이 행사한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지속성, 고의성 등 다섯 가지를 판단 기준으로 해 다섯 개 요인 각각을 상·중·하로 평가하는 방식. 서면 사과부터 출석 정지나 전학, 가장 심한 경우 퇴학까지 여섯 가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판정 점수가 1~3점으로 경미할 땐 피해 학생에게 서면 사과하는 수준에서 징계 처분이 끝나는 반면, 점수가 높을수록 사회봉사,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퇴학 등으로 징계 수위가 높아진다.
서울 연희중 황유진 교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학교 모두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학교의 징계 처분에 분란의 소지까지 생기면 가해·피해 학부모는 재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입는다. 학교 담당 교사 역시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학교의 징계 처분에 대해 나의 자녀를 처벌하려는 게 아니라 선도와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교육적 조치로 받아들이는 학부모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