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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계 2:8-11)
할렐루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하나님께 우리의 사연을 아뢰는 곳입니다.
비록 이 세상 한 가운데 살아가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껏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도 많은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각 교회들이 코로나 19 방역을 위하여, 많은 협조를 했지만, 정부에서는 때로는 주일낮 교회 문을 열지 말라고 강제명령을 발하기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함부로 대합니다.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소중한 곳입니다.
은혜의 자리요, 축복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일부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일곱 교회를 통하여,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말씀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두 번째 교회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한마음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마음교회를 다스리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 한마음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그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 음성이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2-16)
무슨 의미일까요?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라는 말은 일곱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는 말은 왕의 위대함과 찬란함을 말합니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라는 말은 왕의 거룩함을 말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라는 말은 왕의 위엄을 말합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라는 말은 왕의 강함을 말합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라는 말은 왕의 엄숙함을 말합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라는 말은 왕 앞에 서 있는 대신들을 의미합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는 말은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라는 말은 눈을 들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한 보좌에 앉아 계시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분이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요,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들어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는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사 6:1-4)
그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도 요한은 서머나 교회에 편지하면서,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헬라어에서, “알파”는 첫 단어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단어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오직 요한계시록에서만 세 번 나옵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사도 요한에게,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1:6절을 보면,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2:13절을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시작과 마침이 되십니다.
역사의 시작이요, 역사의 마지막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역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분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님,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무덤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다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24)고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사도들의 고백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의 동일한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고전 15:14-15)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모든 성도들의 고백도 동일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 적이 없습니다.
어느 시대이든, 어떤 장소이든, 듣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메시지는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무덤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깨버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아멘.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환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게 된다 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핍박이 심한 당시에, 예수님의 얼굴 그림을 바닥에 던져놓고, 그 예수님의 얼굴을 발로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을 택했습니다.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죽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찬송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스데반이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 그 자리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훗날,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숱한 핍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습니다.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을 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네로 황제 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의의 면류관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궁핍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안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단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종교에 속은 사람들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장차 믿는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 일 동안, 환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일 동안”이라는 말은 환난을 받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핍박을 받을지라도, 환난을 받게 될지라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면, 주님께서 그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중도에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끝까지 믿음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아멘.
우리는 귀를 열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할 때, 깨어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자에게 복은 어떤 복일까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내려 주실까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는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첫째 사망은 무엇이고, 둘째 사망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망은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이 땅에 살다가 죽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째 사망은, 죽고난 다음, 지옥에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 어떤 핍박과 환난에도, 믿음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8)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해진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후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도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영원한 형벌의 나라인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죽음 후의 일을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죽고 난 다음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고 난 다음에, 알게 되면, 큰일 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천국과 지옥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내가 천국을 선택하거나, 지옥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천국을 갈 것인가? 지옥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죽기 전에, 결정됩니다.
죽고 난 다음에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미 결정된 다음입니다. 결정된 대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그런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오래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옥을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천국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은 죽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없는 곳에 가려고 할 것입니다.
이 땅이든, 죽고 난 다음이든, 하나님이 없는 곳, 바로 그곳이 지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다가, 하나님이 없는 나라인 지옥에 가는 것, 어쩌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땅에서는 하나님 없이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안될 말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고 난 다음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천국과 지옥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지금 이곳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어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이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거절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 있든, 끝까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처음과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주님!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오니,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아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형편을 모두 아시오니, 우리에게 크신 긍휼을 베푸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