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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捐補(연보 獻金(헌금)으로 바꾸어 버린 目的(목적)을 아는가?(막 12:41~43)
◾부제목: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가, 아직도 부담이 되고 인색한 마음이 든다면, 이는 부자 청년과 같이, 100% 종교인이라는 것을 아는가?
"예수께서 ✔연보(捐補) 궤(櫃)를 대(對)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捐補) 궤(櫃)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富者)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寡婦)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지라. 예수께서 제자(弟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眞實)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寡婦)는, ✔연보(捐補) 궤(櫃)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兄弟)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前)에 약속(約束)한 ✔연보(捐補)를, 미리 준비(準備)케 하도록, 권면(勸勉)하는 것이 필요(必要)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準備)하여야 참 ✔연보(捐補)답고, 억지(臆志)가 아니니라"(고후 9:5).
"이것을 조심(操心)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巨額)의 ✔연보(捐補)로 인(因)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毁謗)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고후 8:20).
"저희가 대제사장(大祭司長)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前)에, 하나님의 전(殿)에 ✔연보(捐補)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門)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居民)들에게서 거둔 것이라"(대하 34:9).
"무리가 여호와의 전(殿)에 ✔연보(捐補)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祭司長) 힐기야가 모세의 전(傳)한 여호와의 율법책(律法冊)을 발견(發見)하고"(대하 34:14).
* 序論(서론) 및 背景(배경)
✔ "연보궤"는 헬라어로 ≪가조필라키우≫이다. 이는 연보를 넣은 상자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헌금함에 해당이 된다.
예수님 당시의 연보궤가 설치되어 있 장소는, 성전 안에 있는 "여인의 뜰"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에 있었다. 이곳에는 이방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여인의 뜰과 구별을 하는 남자의 뜰과, 이방인들의 뜰 사이에 벽을 따라서, 놋쇠로 만든 나팔 모양의 연보궤가, 13개가 놓여 있었다.
✔ 13개의 연보궤 가운데, 9개는 성전세나 희생 제물 대신 받치는 연보를 넣는 궤였고, 4개는 성전의 수선과 장식을 위한 연봐를 넣는 궤였다.
오늘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대부분 헌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과 초대 회에는, 헌금이 아니라 연보라고 불렀다.
연보는 영어로 gift와 contribution이다. 헬라어로는 4가지가 있다. 첫째, 하드로게스(hadrotes)이다. 둘째, 하플로테스(haplotes)이다. 셋째, 유리기아(eulogia)이다. 넷째, 로게이아(logeia)이다.
✔ 연보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의연금(기부금, 출연금)을 말한다.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바울이 모금한 돈이다(고전 16:1).
헌금은(獻金)은 받은 바 은혜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치는 금전이다.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봉헌을 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지켜 지고 있다.
✔ 그렇다면 헌금이 성경적인가? 아니면 연보가 성경적인가? 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
1. 성경에 돈을 바치는 예배가 없다
✔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 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헌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연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을 조심(操心)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巨額)의 ✔연보(捐補)로 인(因)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毁謗)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고후 8:20).
✔ 한국 교회도, 역시 6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의 모금을 연보라고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연보가 슬그머니 사라지고, 헌금이란 용어가 새로 등장을 했다.
이는 목사들이 돈을 더 많기 걷어 드리기 위해서, 구제를 위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으로 바꾸어 버렸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목사들이 꼼수로, 연보를 헌금으로 바꾸어서, 수많은 돈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 만시지탄! 지금부터 당장 헌금을 연보로 바꾸고, 연보의 용도인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데 사용을 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는 0.1%의 소망이 없다.
2. 헌금과 연보의 차이를 아는가?
어떤 분들은, “그것이 그것 아니냐?”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연보와 헌금이라는 용어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본래 신약 성경의 연보(eulogia)의 의미는, "모금"이라는 뜻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나눔을 강조하고 있다. 즉 구제를 위해서 사용되었다.
반면에 헌금(doron, gorban)은, 예물의 뜻으로서, 하나님께 받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 다시 요약을 하자면, 연보는 사람과 나누는 돈이다. 즉 구제이다. 그러나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 그렇다면 헌금과 연보 중에서, 어떤 것이 성도들에게 헌금을 거둘 때에, 보다더 약발이 더 좋을까요? 이는 물론 헌금이다.
✔ 이 대목에서 대충 짐작을 하겠지만, 교회들이 굳이 연보를 헌금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이유는, 결국은 돈을 더 걷기 위한 것이다.
✔✔ 교인들에게 이웃과의 나눔을 강조하는 구제보다는, 하나님께 바침을 강조하는 헌금이, 훨씬 더 큰 수입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교인들은, 자신의 친 형제와 친 자매들에게는, 별로 나누어 주지를 않는다. 그러나 헌금에 열심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으로, 아주 심각한 기만이고, 아주 잘못된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自己) 친족(親族), 특(特)히 자기(自己) ✔가족(家族)을 돌아 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背叛)한 자(者)요. ✔불신자(不信者)보다 더 악(惡)한 자(者)니라"(딤전 5:8).
✔✔ 본래 과거의 오래된, 개혁 한글 번역본의 구약 성경에서는, 헌금이란 용어가 아예,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신약의 누가복음 21장에, 헌금이 단 두 번이 나오는데, 그것도 사실은 부자들이 연보궤에 넣은 돈이다. 그러므로 실제는 연보인데, 이를 굳이 헌금이라고 억지로 번역을 했다.
✔ 그러므로 개혁 한글 성경에는, 실제로 헌금이라는 용어나, 헌금 제도 자체가, 아예 한 곳에도 없었다고, 이해를 하면 맞는 것이다.
✔ 반면에 연보라는 용어는, 구약 성경에 2번이 나오고, 신약 성경에 12번이 나온다. 연보가 도합 14번이나 나오고 있다.
✔✔ 그러다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개정 번역판으로 바꾸어 지면서, 많이 바뀌어 버렸다. 번역자들은 의도적으로, 연보를 13곳에서 8곳으로 줄여 버렸다. 오~매! 어째야 쓰까? 땠찌! 매매!
✔ 그리고는 반대로, 연보로 번역되어 있던 곳은, 헌금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 결과 오히려 헌금이란 용어를, 2곳에서 8곳으로 증가를 시켰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판은, 개선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악이 된 셈이다.
✔ 그러므로 bnk는, 절대로 개역 개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역 한글이, 훨씬 더 원어 성경에 가깝고, 훨씬 더 바르게 번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3. 성전 연보궤의 용도를 아는가?
성전 연보궤의 그 대표적인 구절을 소개한다. "무리가 여호와의 전(殿)에 ✔연보(捐補)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祭司長) 힐기야가 모세의 전(傳)한 여호와의 율법책(律法冊)을 발견(發見)하고"(대하 34:14)이다.
✔ 성전의 연보궤에 보관된 돈은, 분명히 연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보를 구태여 헌금으로 바꾸어서 번역을 해 버렸다. 오매! 어째야 쓰까? 땠찌!
이것은 번역자가 무식해서 실수를 한 것인가? 아니면 고의적으로 번역을 한 것인가? 이는 지혜로운 성도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고 싶다.
✔✔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에는, 입구부터 시작하여 13개의 연보궤가 놓여 있었다. 이는 제사할 때에 바치는 제물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는 오직,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걷는 돈이었다.
✔ 다시 말해서 연보는, 가난한 이웃과 나누기 위한 돈이었다. 그러므로 연보를 바친다는 말보다는, 연보를 낸다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이다.
✔ 그런데 본래는 제대로 잘 번역되었던 연보라는 용어를, 개신교가 굳이 헌금으로 바꾼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 이는 한국교회의 일부 교권주의 자들이, 돈에 대한 욕심때문에, 성경의 원어마저도 그 의미를 변개하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 가장 중요한 점은, 본래 유대교의 성전에는, 오직 연보궤만 있었다. 제사 중에는 제물 외에는, 그 어떤 헌금의 행위도 없었다.
✔ 성전의 제사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므로, 신약의 예배에서는, 별도의 제물이나 예물이 필요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 그러므로 오늘날 현대 교회의 예배에서, “하나님께 돈을 바치라”라는 가르침을 삼가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돈을 걷기 위해서, 목사들이 사기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 돈을 바치라”라는 가르침은, 교인들을 속이는 기만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돈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 신약 성경 27권 그 어디에도,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기 위한 자발적인 연보와, 십일조 외에는, 그 어떤 헌금도 성도들에게 요구한 기록이 없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聖徒) 중(中) ✔가난한 자(者)들을 위(爲)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同情)하였음이라”(롬 15:26).
✔ 사도 시대의 초대 교회는, 교인들에게 그 어떤 물질도, 그 어떤 예물도, 그리고 그 어떤 헌금도, 결코 요구를 한 일이 없었다.
4. 헌금이란 용어는 용도 변경의 꼼수라는 것을 아는가?
✔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돈을 직접 주시지도 않으신다. 만일 받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또한 하나님은, 직접 돈을 받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만, 가난한 사람들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들에게, 너희들이 직접 연보를 거두어서, 그들을 도와 주라고 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수 서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성전 연보궤의 목적이며, 동시에 신약 교회의 연보의 정신이다.
✔ 우리는 사도 시대의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모금을 한 것은, 오로지 연보 뿐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는 연보도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행위라고 해석할 수는 있는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원문까지 훼손하면서, 나눔보다는 드림을 은근히 강조하고, 돈을 걷기에 몰두하는 행위는, 분명히 엄청난 범죄 행위이다.
✔ 이는 연보의 근본 목적인, 가난한 이웃을 돕는 구제에서 이탈하여, 연보를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사들의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본래 성경의 연보의 용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를 위한 목적으로서, 단 한 종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헌금의 종류는, 자그만치 85가지 종류가 넘는 다고 한다. 이는 연보에 대한 어마무시하게, 용도를 변경시킨 것으을 볼 수 있다.
✔ 그래서 지금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구제를 해야할 마땅한 교회 돈의 95% 이상이, 엉뚱한 곳에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이다.
상상을 초월한 수많은 헌금의 대부분이, 먹고 마시고 건물을 짓고, 비품을 늘리고, 목사들과 직분자들의 인건비로 소비가 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이 헌금이란 용어와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바른 교회에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모금의 문화이다.
✔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 그 어디에도, 헌금이란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제사나 예배는, 결단코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 김명철 집사/ 육종 암 수술 40번을 하다
✔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침상에 누워서, bnk 목사님께서 선교를 떠나신다는 말씀을 듣고서, 기도를 하는 중에, 저의 마음 속에 형편이 되면, 30만원 정도 선교 헌금을 드리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러나 30만원이, 암 치료비도 부족한 가난한 저 한테는, 아주 큰 돈이라서 마음 뿐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저도 모르는 방법으로, 30만원을 모두다 채워 주셨네요.
선교비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고 너무나도 오묘한 큰 은혜이기 때문에, 저의 눈시울이 뜨거워 져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역시 우리 하나님이 최고이시죠? 저는 부자가 아니라서, 다행이 작은 금액이지만, 쉽게 후원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 가난한 암 환자가, 선교를 후원할 수 있도록, 선교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암 수술을 40번이나 한, 가장 가난한 저에게 주시는 큰 복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시는, bnk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날마다 빠짐없이 생명의 말씀으로, 저의 믿음을 더욱더 돈독하게 해주시고, 올바른 믿음의 길로 걸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bnk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절대로 잊지를 않겠습니다.
주후 2022년 8월 19일(금)
경북 경산시에서 김명철 집사 올림
김명철 집사의 카톡에 대한 실패한 bnk의 답변
✔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종이 김명철 집사님의 헌금을 받는 것은, 벼룩의 간을 빼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김명철 집사님 자신을 위해서, 하늘에 쌓아 놓는 것입니다.
✔ 그리고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서 네게 안겨 주리라.
✔ 누가 먼저 주께 드리신 후에, 갚으심을 받겠느냐? 최악의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바로 축복의 마중물입니다.
자우지간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잠을 푹 잘 수 있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늘 고맙고 감사하고, 늘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솰롬!!
5. 연보에 대한 영적인 교훈
(1) 성도는 마땅히, 겸손과 온유와 덕과 의와 거룩함과 사랑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擇)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者)처럼, 긍휼(矜恤)과, ✔자비(慈悲)와, 겸손(謙遜)과, 온유(溫柔)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오직 주(主)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情慾)을 위(爲)하여, 육신(肉身)의 일을 도모(圖謀)하지 말라"(롬 13:14).
(2) 직분이 중요할 수록, 높아 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恩惠)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驕慢)한 자(者)를 물리치시고, ✔겸손(謙遜)한 자(者)에게 은혜(恩惠)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3) 하나님은 연보를 드리는 자의 마음 자세를, 은밀하게 살펴 보고 계신다.
"이스라엘 자손(子孫)에게 명(命)하여, 내게 예물(禮物)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者)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 찌니라"(출 25:2).
(4) 연보는 각자 하나님이 복과 은혜를 주신대로,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한다.
"각(各)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福)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物件)을 드릴찌니라"(신 16:17).
(5) 하나님은 연보에 인색한 자를 미워하시지만, 연보를 풍성히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
"각각(各各) 그 마음에, 정(定)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臆志)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者)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6) 연보는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실 정도로, 믿음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富饒)하여, 너그럽게 ✔연보(捐補)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感謝)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1).
(7) 연보의 진정한 의미는, 연보를 드림과 동시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自身)을 주(主)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8) 돈 주머니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요한 웨슬리). 직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보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인색하면, 반드시 거듭났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9)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면, 세리장 삭개오처럼, 자원해서 재산의 50%를 드리고,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을 4배로 갚는다.
"삭개오가 서서 주(主)께 여짜오되, 주(主)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所有)의 ✔절반(折半)을, 가난한 자(者)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萬一) 뉘 것을 토색(討索)한 일이 있으면, ✔사배(四倍)나 갚겠나이다"(눅 19:8).
(10) 부자 청년과, 가롯 유다와, 아간과, 게하시처럼,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고귀한 직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지옥으로 떨어 지고야 만다.
(11) 다윗이 사랑을 받은 이유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드리면서도 즐거워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백을 했다.
"성전(聖殿)을 위(爲)하여, 예비(豫備)한 이 모든 것 외(外)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殿)을 사모(思慕)하므로, 나의 ✔사유(私有)의 금(金) 은(銀)으로, 내 하나님의 전(殿)을 위(爲)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金) 삼천(三千) 달란트와, 천은(天銀) 칠천(七千) 달란트라, 모든 전(殿) 벽(壁)에 입히며, 금(金), 은(銀) 그릇을 만들며, 공장(工匠)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29:3~5).
"나와 나의 백성(百姓)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主)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主)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主)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12)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 것을 내것이라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 주를 위해 쓰렵니다
천한 이 몸 내 것 이라고 주의 일을 멀리했네
주신 이도 주님이시요 쓰신 이도 주님이라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유혹 다 멀리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주님 사랑 받기만 하고 감사할 줄 몰랐었네
주님 말씀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었네
아버지여 연약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명령 순종 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 경고
만일 이 찬송을 부르면서도, 이 찬송의 가사 대로 실천을 하지 않는 다면, 이는 100% 바리새인과, 종교인과, 거듭나지 못한 자와, 육에 속한 자와, 짝퉁 교인과, 부자 청년과 같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단언하노라.
* 結論(결론) 및 敵用(적용)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이름이, 헬라어 원어 성경에 헌금으로 기록되었는가? 아니면 연보로 기록되었는가?
연모를 헌금으로 바꾸어 버린 목사들의 목적은, 헌금을 더 많이 걷도록 하려는 꼼수라는 것을 아는가?
예수님은 예수살렘 성전의 여인의 뜰에 있는 13개의 연보궤에 연보를 넣는 것을 보고 계신 것을 아는가?
연보를 드릴 때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풍성하게 드리는가? 마지 못해서 억지로 체면 때문에, 아주 인색하게 드리는가?
다윗이 수조원의 금을 드리면서도, 증거움과 기쁨을 참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백한 것을 아는가?
연보의 용도는 오직 한 가지라는 것을 아는가? 즉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라는 것을 아는가?
아직까지도 연보라는 말을 들으면, 아깝고 인색하고 부담이 된다면, 이는 100% 종교인과, 바리새인과, 거듭나지 못한 자와, 육에 속한 자와, 짝퉁 교인과, 부자 청년과 같이, 직분의 고하를 말론하고,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천국지옥 진짜있습니다.
예수사랑 사람사랑 사람사랑 예수사랑 아멘 🙏
"사랑하는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니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멘 🙏 아멘 🙏 아멘 🙏 임마누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