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싱 여행3 - 노신의 마을 루쉰꾸리에서 노신이 공부했다는 서당인 삼미서옥을 보다!
닝보역 宁波站(영파) 에서 고속철 기차를 타고는 불과 40분만에 사오싱베이짠 绍兴北站
(소흥북역) 에 도착해 택시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832路 버스를 타고 港鉞路口
(항월로구) 에 내려 88路 버스를 환승해서는 루쉰꾸리 魯迅故里(노신고리) 에 도착합니다.
담에 그려진 루쉰(魯迅 노신) 이 담배를 피우는 큰 벽화 아래에 여러 모습의 동상을 구경
하는데, 이 도시 사오싱 绍兴(소흥)은 항저우만 남쪽 닝소평원에 있는 도시로 춘추전국
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 에 의해 건설된 월국의 도읍지 로 역사가 깊은 도시 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 이 건설한 월국 도읍지로 臥薪嘗膽(와신상담) 고사로
유명하고 송나라 시인 육유의 로맨스 심원 이 있으며 중국 근대에 들어 주은래 와 시인
루쉰 의 사적이 있으니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인데 소흥주의 고향 이기도 합니다.
진(秦)나라때 산인현, 수(隋)나라 때 위에조우(越州 월주) 가 설치되었고, 당(唐)나라때
월주(越州) 로 회계현 (會稽縣) 등 2현을 설치하였다가 남송(南宋) 대에 처음으로
사오싱 (沼興府 소흥부) 으로 되고 당송 시대에 왕희지 등 유명한 시인을 배출하였습니다.
항주와 80km, 영파와 100km 거리인 사오싱 은 운하 가 즐비해 중국의 베니스 라 불리며
다리 가 많기에 수향교도 (水鄕橋都) 라고도 하는데... 찹쌀로 빚은 사오싱주(酒) 가
있고 용정차에 비견되는 핑수이차 (平水茶 평수차) 와 견직물 에 도자기 로도 유명합니다.
사오싱 (沼興) 은 항저우, 영파에 이어 저장성 3위 공업도시로 광저우 와 더불어 원단 을
도매로 취급하는 도시이자 저둥운하와 철도의 요지로 수로망이 발달한지라 동양의
베니스 로 불리는데 광역 인구는 500만으로 수(隋)· 당(唐)시대 분묘군이 발견되었습니다.
1500년된 소흥의 상징 대선탑 과 란팅정(蘭亭 난정)· 회계산(會稽山)· 월왕대(越王臺)
등 역사적인 고사와 관련있는 명승지가 많으며... 작가 루쉰(魯迅) 의 출생지 로 노신
기념관 이 있으며 주은래의 가족 이 살았고 선위안(沈園 심원)·동호(東湖) 가 있습니다.
관광객 들이 어찌나 많은지 발디딜 틈도 없는데 노신의 집과 박물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먼저 왼쪽 우펑선(乌蓬船 우봉선) 배를 타는 운하 옆에 자리한 노쉰이 지은 소설 孔乙己
(공을기) 표시 옆에 三味書屋(삼미서옥) 을 보는데 입장료 없이 신분증만 보이고 들어갑니다.
입구에 노인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는 동상 이 서 있고 거기 비석에 孔乙己口乞苗香豆
라고 적혀 있으니... 그럼 노신이 쓴 소설 공을기 에 나오는 두부 과자 를 뜻하는
것일까요? 쿵이지(孔乙己 공을기) 는“광인일기”후 루쉰 두번째 백화(白话) 소설 입니다.
소설은 1919년 4월 “신청년”에 실렸는데 시엔헝(咸亨 함형) 주점 을 배경으로 ‘나’
는 열두살 때 부터 이 주점에서 점원 노릇을 했는데 공을기를 관찰 하니....
청나라 말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쿵이지(공을기)’라는 인물을 통해
봉건 과거제도의 폐단 과 육체노동을 수치로 생각하는 유자의 자세 를 그리고 있습니다.
굶어 죽을지언정 신분을 낮추어 막노동을 하지않는 유교사상을 비판 하면서도 몰락한 봉건
지식인에 대해 인도주의적 시각 으로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오히려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아 즐기는 중국인들의 국민성에 비판의 채찍 을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쿵이지 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수염이 희끗희끗할 때까지 제대로된 직업을 가져본적이
없으니 10년은 깁지도 않고 빨지도 않은 장삼(長衫) 을 입고 있다는 서술에서...
쿵이지 가 여전히 지식인의 환상 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으니 그는 지식인의
그룹에도 들지못하고 그렇다고 짧은 옷을 입은 막일꾼 그룹에도 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서서 술을 마신다 는 말에서 쿵이지는 삶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미 짧은 옷을
입은 막노동꾼 과 다름없지만 본인은 지식인의 자존심을 지키려하고 있음을
알수 있으니... 사람들 과 이야기할 때는 지(之), 호(乎), 자(者), 야(也) 를
운운해서 사람들의 홍소 를 자아내며 열두살 먹은 점원까지도 쿵이지를 무시 합니다.
그렇다고 쿵이지 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남들이 필사 를 맡기면 책, 종이, 붓,
벼루 까지 행방불명 이 되어 필사를 맡기는 사람이 없었으니 도둑질 을 하다가
들켜서 얼굴에는 상처만 늘어나고 나중에는 다리 까지 부러지게 되지만....
아이들에게만은 열심히 글자를 가르치는데서 착한 마음의 소유자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쿵이지를 도둑 이라고 놀릴 때만 관심이 있고 그의 얼굴에 상처가 나든 아님
거인(擧人) 한테 맞아 다리가 부러지든 또는 죽든 무관심 이었으니 마지막으로
주점에 올 때 쿵이지는 이미 다리가 부러져서 손을 사용하여 거의 기다시피해서
왔지만.... 주인을 포함한 손님들은 “쿵이지, 자네 또 도둑질했지!” 하며 놀려댑니다.
수천년 동안 유교의 봉건사상 에 물든 중국인들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존엄과 삶의 권리
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잔인한 인간들이었으니
루쉰 은“광인일기”에서 인육을 먹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친 바 있으니.... 그럼“쿵이지”는 “광인일기”의 연장선 에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孔乙己便漲紅了臉, 額上的青筋條條綻出, 爭辯道, “竊書不能算偷······
竊書! ······讀書人的事, 能算偷么?”
쿵이지 는 얼굴을 붉히고 이마에 퍼런 힘줄을 가닥가닥 세우며 항변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야, 책을 훔친다! 그건 독서인의 일 인데, 어떻게 도둑질이라 할 수 있겠나?”
삼미서옥 (三味書屋) 은 노쉰이 12살 때부터 5년간 공부하던 서당 인데 壽鏡吾(수경오)
선생에게서 지각했다고 꾸지람을 들은 후로는 책상 위에 “早 조”자를 새겼다는데,
옛날 보름간 러시아 전국 일주 배낭여행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푸쉬킨시 에 있는 학교에서 푸쉬킨이 공부하던 책상 을 보던 느낌 입니다.
그런데 노신은 삼미의 뜻 을 풀이하기를 讀經味如稻梁 讀史味如肴饌 讀諸子百家味如醯醢
( 독경미여도량 독사미여효찬 독제자백가미여혜해 ) 라고 했으니....
경서 經書 를 읽는 맛은 밥을 먹는 것과 같고, 사서 史書 를 읽는 맛은 안주와 반찬
을 먹는 맛과 같으며, 제자백가 를 읽는 맛은 식혜와 식해를 먹는 맛과 같다고 했습니다.
壽鏡吾(수경오) 선생이 하던 서당 산웨이수유 (三味書屋 삼미서옥) 의 원래 이름은...
三餘書屋 (삼여서옥) 인데 이는 董遇 故事(동우 고사) 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董遇(동우) 는 3국시대 위나라 홍농 사람으로 책읽기를 좋아해 경서를 강의하였으며
후일 황문시랑과 대사농 벼슬을 지냈으니 서로 제자 가 되겠다고
몰려 들자 허락하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먼저 책을 100번을 읽기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100번 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자... 세가지 여유 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으니 곧 겨울 冬(동), 밤 夜(야) 그리고 비내리는 날 陰雨(음우) 입니다.
겨울은 사시사철 중에서 한해의 나머지 이고, 밤은 하루의 나머지 이며, 비내리는
날은 맑은날의 나머지 라는 뜻이니..... 여기서 나온 물고기
3마리 가 헤엄치는 모습을 三餘圖(삼여도) 라고 부르게 된 데서 연유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