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지난주에는 영상 20도 가까이에 이르는 여름 날씨 같더니..
오늘과 내일은 영하의 날씨로 코끝이 쌔근하게 매섭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안 올것도 아니면서 왜 애를 먹이고 있는지 하며 은근히 자연을 힐난하는데..
봄이 더딘게 아니라 내가 성급한 건 아닌지..
우리는 내가 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나는 만물의 척도'라고 한 비씨 5세기 인물인 그리스의 프로타고라스(BC 485-415/410)나
'우주에서 내가 가장 빼어났구나!'라고 한 인도의 석가모니(BC 6th or 5th century), 그러니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우리의 자존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참 놀라운 사실은 저리 빼어난 인물들이 BC 7-4세기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그때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저런 훌륭한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을까?.
그리고 이천 오백 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더 이상 오를 곳을 찾지 못하니
인간의 장난감으로 출발한 AI에게 지구에서 지존의 자리를 양보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저와 같은 판단은 봄을 투정하듯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지..
마치 법정에서 검사 측의 공소 사실만을 듣고 피고 측 변론은 아직 듣지 못했음에도
판결이 난 것처럼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설사 에이아이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시대가 온다 해도..
그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게 있는 것은 없는지..
우리는 고대에도 그랬고 중세.. 현재도.. 심지어 전쟁 중에도 그것을 바라니..
행복이 그것이다.
왜 사냐고 물으면 태어났으니 산다고 하지만.. 태어나 살면서 행복하길 바라는 것은 모두의 소망이 아닌가..
그런데 삶이 행복하지 못했으니 완전한 죽음인 열반에 이르지 못하고 또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아는 과학 상식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자연에 있는 것은 모양이 달라질 뿐[무상] 근본인 에너지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은 물질인 몸과 정신이라는 마음이 화합되어 있는 존재다.
여기서 몸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생로병사 변화를 하지만 근본인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인도에서는 윤회를 발견했다.
윤회란 몸은 죽으면 새 몸으로 변하고, 죽은 몸에 있던 식은 새 몸과 결합한다는 것.
윤회가 참이라면..
몸을 만드는 근본 물질 에너지가 있어야 하듯이..
식을 만드는 근본 식 에너지가 있어야 하리라.
그것을 인도인들을 브라흐마라고 했다.
비유하여 인간 개인은 브라흐마라는 바다에서 일어난 파도의 물방울과 같다.
마야인 윤회를 멈추려면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브라흐마인 바다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와 같은 자연을 신으로 인격화한 신 중심 사상을 부정하며 출현한 사건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BC 7-4 세기로..
이 사건은 천동설을 깬 지동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인 인류사 일대사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자연 아니 신이 일체를 만들었는 창조설[또는 전변설]에 극단적이 끝이
일체는 신이 아닌 근본 원소의 화합적 결합에 의해 생겼다는 유물론[적취설]이다.
그와같은 유물론의 결과가 바로 AI 시대 아닌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듯, 인간이 AI를 창조했으니.. 인간의 위대함은 그 순간 신과 동등하게 되었다.
더불어 유물론은 최고로 값진 술이 든 술잔을 들며 부라보!^^ 를 외칠 순간이 왔다.
그런데 AI가 바둑 세계에서 이세돌을 이기듯.. AI가 모든 면에서 인간 위에 있게 된다는 것은..
'우주에서 내가 가장 빼어났구나!'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성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무엇은 보았지만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가..
인간이 자연에서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한 육체가 된 완력 때문이 아니다.
육체적인 물질 면에서 보면 인간은 약자가 틀림없다.
성인이 되었다 해도 호랑이나 곰, 뱀, 악어, 독수리를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육해공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이라는 정신적인 능력을 사용한 덕분이다.
'우주에서 내가 가장 빼어났구나!' 하는 석가세존의 탄성은 인간의 완력이 아닌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을 보며 나온 것이다.
고장 난 AI가 아니라면 결국은 인간의 조정을 당하게끔 되어 있는 게 AI다.
그러기에 우리가 염려해야 한 것은 AI가 아닌 AI를 콘트럴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자리에 푸틴이나 시진핑, 트럼프, 윤석열 같은 독재자 근성이 있는 자가 있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으면 어찌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공자가 인륜을 강조하고, 석가세존이 선행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어떤 인간이 지도자의 근본적인 덕목인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국민들은 부적격자를 지도자로 세우면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도자로 뽑히기 전에 그가 어떤 자인지를 국민이 아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부적격자인 자가 지도자가 되면 그를 신속히 밀쳐낼 수 있는 법이 다듬어져 있어야만 한다.
3년은 너무 길다.